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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Apr 01. 2024

책방 주인의 책이 재밌게 읽히면, 반은 성공이다.

[북리뷰] 강수희. 제주에서 먹고살려고 책방 하는데요. 인디고. 202

1. 책방주인이 책을 쓰는 건 무조건 옳다.


 책방주인이 쓴 책은 쓸모가 많습니다.

 서점에 와서 기념 촬영만 하고 가는 눈꼴신 인간들에게 '책방주인의 책'만큼 강매하기 좋은 아이템도 없겠지요.

 이전에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본 것이 있던지라, 링크를 걸어봅니다.



2. 재밌게 읽힌다면 절반은 성공이다.


 책방주인들이 쓴 책들을 이것저것 읽다 보니, 어떤 것들은 참 재밌게 읽었고 또 어떤 것들은 허탈해하면서 책장을 덮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책들은 읽은 직후에는 혹평을 해댔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는 훨씬 더 긍정적인 평가를 하게 되기도 하더군요.

 왜 그랬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기대를 충족’했는가가 가장 큰 문제였더군요.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참 다양합니다만, 결국에는 종이란 미디어를 통해 문자로 정착된 정보를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 정보 획득을 통해 지식을 갱신할 수도 있고, 문학의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으며, 책을 읽는 사람이란 자기효능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소설에 빠져 국문학을 전공하고 문학동아리에서 소설 습작을 하던 시절에는 주로 ‘문학의 즐거움’이 책을 읽는 이유였는데요, 나이를 먹고 꼰대가 되다 보니 문학적 즐거움보다는 지식의 갱신 쪽으로 무게 중심이 기울어진 듯합니다.

 그래서였나 봅니다. 책방주인들의 책에서 ‘책방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엿보며 지식을 갱신하고 싶었는데요, 책방 운영을 하며 겪게 되는 ‘인생의 신산함’을 들여다보려니 짜증이 났나 봅니다. 그 와중에 읽는 재미라도 없으면 더 크게 투정을 부렸고요. 


 ‘전직 방송작가’여서인지 주제를 다루고 문장을 직조해 내는 솜씨가 무척 ‘경쾌’합니다. 그 경쾌함에서 시작하는 뷔를레스크burlesque는 재밌을 수밖에 없습니다. 웬만해선 시트콤이 ‘재미없기 힘들다’는 사실과도 상통하겠지요. 무엇보다 첫 문장을 잡아내는 솜씨가 귀신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단점도 있습니다. 시종 유쾌함을 잃지 않아야 하다 보니, 제법 무거운 주제를 다룰 때에도 ‘경쾌함을 잃지 않는 의연함’이 앞서서 주제를 다루는 사상의 깊이를 얕아지게 합니다. “방송작가 출신의 반육반제(반은 육지사람. 반은 제주 사람) 제주 정착기”와 같은 에세이는 필연적으로 빌둥스로만bildungsroman의 서사구조를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희노와 애락의 교차를 보다 진중하게 다루려면, 어쩔 수 없이 진중한 문체로 담담하게 서술할 수밖에 없죠. 그렇게 침잠하다 보면, 문장 자체가 주는 언어의 묘미가 크게 반감되곤 합니다. 대중에게 즉자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언어를 오랫동안 훈련해 온 방송작가에게 잘 맞지도 않겠고요. 그렇다 보니 경쾌함 쪽으로 선택과 집중을 했으리라 봅니다.

 그리하여 무게감은 없지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아베크 방문 기념품’이 탄생한 듯합니다. 여기에 짧은 분량이 주는 독서효능감도 클 듯합니다. 여행지 서점에서 집어든 책을 그곳에서 휘리릭 다 읽었을 때의 효능감은 엄청나니까요.



3. ‘눈에 띄는 주저’는 역시나 완성도에 영향을 끼친다.


 읽다 보면 시원하게 트림을 하고 싶을 정도로 답답한 순간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마나한 뻔한 이야기 뒤로 숨을 때가 있다거나 말을 하다 서둘러 ‘입틀막’을 할 때가 있다는 거죠. 그 이유는 뻔합니다. 자기 검열 self censorship 때문입니다.  

 진도가 안 나갔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이야기를 내가, 내 손으로 써야 한다는 것. 디제이가 읽을 글을 쓰던 작가가 자기 얘기를 쓰려니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만 깨작깨작. ‘방송작가 출신의 반육반제(반은 육지사람. 반은 제주 사람) 제주 정착기’에 사람들이 관심이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쓰면 쓸수록 자신이 없었다는 얘기다. - 9쪽

 자기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보통의 인간은 기억편향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자기 방어기제도 작동하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쉽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거죠. 여기에 감정을 완벽하게 언어로 표현해 내기도 어렵지만, 그 표현이 사회적으로 용납이 되느냐의 문제도 남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별의별 일로도 다 꼬투리를 잡아 물어뜯다 보니, 솔직하게 무언가를 표현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자기 검열은 쉽게 스위치가 켜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뷔를레스크는 씁쓸한 끝맛을 남기며 끝나기 마련입니다.



4. 앞으로 동네책방에 대해 더 고민해 봐야 할 부분.


 도대체 동네책방의 정체성은 어떤 형태로 구축해야 하느냐입니다. '지속가능한 자영업'으로서의 가능성은 일찌감치 사라졌습니다. 산업 자체의 구조가 변했으니까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제2의 전파상, 제2의 레코드점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다음과 같은 정체성은 달가울 리가 없겠죠.

 동네 책방은요... 인생샷 포토존도 아니고, 공중화장실도 아니고, 인근 카페의 웨이팅 장소도 아니에요. 사진 찍고 대소변 보실 거면 연필 한 자루, 책 한 권이라도 사주세요. 휴지값은 벌어야 되잖아요. 그래도 남는 건 몇천 원이에요. 쫌! - 124쪽

 저는 동네책방과 편의점이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공산품입니다. 그것도 가격이 무척 저렴한 대량생산품이죠. ‘명품’이라 불리는 고가의 공산품과 달리, 전국 어느 서점에서나 동일한 공급가로 물량 걱정 없이 공급받을 수 있는 공산품입니다. 유통에 있어서 편의점 상품과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과거 동네 문방구 주인아저씨가 겸업으로 서점을 할 수도 있었고, 책을 읽지는 않지만 책의 재고 위치는 귀신같이 기억하는 책방주인이 장사를 잘할 수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도서유통 중간상을 통한 위탁판매가 일상이었던 시절에는 더 쉬웠을 테죠. 물론 출판종수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다는 점도 한몫했겠고요.

 하지만 지금은 오프라인 서점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습니다. 서적유통은 이제 인터넷이 중심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신선식품도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시대에, 도서와 같은 공산품이라면 더 쉽게 이커머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공공도서관의 공급도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전자책 등의 미디어 환경 변화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도서유통시장의 패러다임 자체가 붕괴 수준으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억의 동네책방’ 타령을 하고 있을 순 없는 거죠. 환골탈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베끄 먹거리 공구’, ‘제주 책방 동서남북 책 꾸러미’, ‘예약제 책방’과 같은 아이디어들에는 집중을 해보게 됩니다. 앞으로는 ‘책방’이란 이름은 그저 핑계고, 책을 중심으로 한 문화공간체험을 팔아야 하지 않나 싶어서 말입니다. 책을 팔아야만 수입이 생기는 도서유통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공간의 사용 시간’을 파는 김선달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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