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김예진. 이토록 작은 세계로도. 북다마스. 2022.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벌고 있는 거예요. 물론 책을 판매해서 돈을 벌기는 해요. 그런데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목적으로 하는 일은 아니에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인 거지. 그 둘이 연결이 안 된다는 게 좀 서글프긴 하지만 어쨌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후회는 없어요.
-토스피드에디션. <그건 사업이 아니라 아주 비싼 취미 활동이야>
비즈니스라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한 일에 대해 글을 썼는데, 그 글을 읽고 비즈니스로 이해할 수가 없다는 투정을 부린 꼴이 됐습니다. 이거 참... 자괴감이 몰려듭니다. 리뷰를 게시하고 나서야 폐업한 걸 알고 글을 추가했는데, 이제는 그 사업의도까지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참 꼴이 우스워졌습니다.
마음대로 끄적여 놓은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펴냅니다. 꾸준히 물어봐 주신 덕분입니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쓴 글, 순간마다의 기록, 단편적인 생각이 섞여 있습니다. 부디, 어떤 식으로든 읽히는 텍스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5쪽
그랬구나~하면서 읽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읽혔지만, 읽고 싶었던 방식으로 읽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북다마스’의 운영자가 쓴 책이니 그냥 덮어놓고 읽어보자며, 도서관 서가에서 들고 온 제 잘못이 큽니다. 좀 더 꼼꼼히 책을 살피는 사전 작업을 생략해서, 괴로운 독서를 경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만,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한 제 잘못입니다.
‘글’을 쓴다고 해서 ‘책’이 되는 건 아니다. 반대로 말하면 책은 ‘글’만을 모아놓은 물건은 아니다. - 22쪽
이 말에 적극 동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 책은 무얼 말하고 싶어서 쓰인 것일까, 고민스러웠습니다.
생뚱맞은 글뭉치들이 아무렇게나 쓰인 건 아닙니다. 나름의 목차를 가지고 글이 배치되긴 했습니다만, 유기적이지도 않고 적확하지도 않은 조직이었습니다. 기왕 써놓은 글이니 전부 때려 넣어보겠다는 사나운 욕심으로 보였습니다.
출판사 편집자와 함께 작업하다 보면, 원고가 절반쯤은 날아가 버리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렇다 보니 충분히 썼다고 자부하던 원고가 분량이 모자라 추가 집필에 들어가야 해서 꽤나 당혹스러운 경험도 하게 됩니다. 보통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와 편집자가 2인 3각으로 작업을 할 때 벌어지는 일인 게지요. 그렇게 편집자의 개입으로 군살을 빼고 나면, 책이 참 담백해집니다. 글의 조직력은 더욱 단단해지는 거죠. 1인출판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고 봅니다.
관심을 주시니 감사한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답해드렸지만, 언젠가부터는 그 일이 지치기 시작했다. 같은 대답을 반복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어려움은 어떻게든 감내한다고 쳐도, 이동책방이라는 특이한 콘셉트가 책을 보게 하는 게 아니라 그 콘셉트에 대한 궁금증만 해소하면 그만이게 만들진 않길 바랐던 것 같다. - 14쪽
이런 상황에서도 “이 책 한 번 잡솨봐~”가 아니라 읽어보라며 팔아먹을 수 있는 책방개점기 정도를 준비해 둔다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책으론 그 역할을 해낼 수는 없을 듯합니다. 『북다마스: 이것도 책방인가요?』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면... 저로서는 꽤나 답답해지는 노릇입니다.
북다마스를 운영하며 ‘어떻게 먹고살려고 그러냐’라는 말을 많이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말을 잃었다. 나름대로는 이걸 어떻게 ‘비즈니스’로 풀어낼 수 있을지 한동안 고민하기도 했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 76쪽
제가 굳이 이 책을 집어 들었던 이유는 “이동형 서점을 어떻게 비즈니스로 풀어낼 것인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끝내 이 책을 읽는 것으로는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차량을 이용한 소매업이 소규모 자영업으로서 성공적이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유통환경이 더 이상 차량 소매업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이병헌은 트럭만물상 역을 분했습니다. 어릴 적 생각이 나더군요. 제가 어릴 적, 그러니까 40년 전쯤에는 강원도 산골 동네에 트럭만물상이 들어오곤 했습니다. 제법 장사가 됐지요. 읍내에서 5일장이 열릴 때를 맞춰 장을 보러 가곤 했으니, 트럭만물상이 가져오는 생필품은 ‘운반’의 고단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네에 점방 하나 없었냐고요? 네, 없으니까 그런 겁니다.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까지 한참 걸어 나가도, 기껏해야 농협 구판장이 있을 뿐입니다. 공산품 정도가 구비되어 있을 뿐, 생물이나 야채 같은 걸 구할 수는 없지요. 시골이니 야채쯤은 자급자족하지 않냐고요? 어림없습니다. 키우기 까다로운 야채들은 그냥 사 먹습니다. 그러니 유통의 모세혈관이 미치지 못하는 시골 동네에는 트럭만물상의 니치마켓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강원도 산골동네에 인구가 늘어날 리는 없습니다만, 도로는 개선되고 가족 차량을 이용하는 등 개인의 접근성은 비교도 할 수 없게 좋아졌습니다. 트럭만물상은 예전과 같은 인기를 구가할 수 없게 됐습니다.
2020년 기준 전국 행정리 3만7563곳 가운데 73.5%인 2만7609곳에 식료품 소매점(슈퍼마켓·편의점 등)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읍·면까지 나가도 식료품점이 없는 마을은 1만1731곳(31%)에 이른다네요. 그렇다 보니 트럭만물상을 운영하는 사회복지사가 나올 만큼, 농촌 노인인구들의 '장보기 난민' 사태는 심각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직 트럭만물상은 해볼 만한 일이겠지요.
그나마 생필품이란 점에서 트럭만물상의 고객층은 넓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동형 서점’은 무척 까다로우면서 꽤나 적은 수의 고객층을 갖추고 있습니다. 수요 파악조차 하기 힘든 아이템을 돌아다니며 팔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거 정말 골 때리는 일입니다.
‘이게 과연 사람들에게 필요할까? “, ”괜히 남들 안 하는 특이한 거 좀 해보려고, 인정받으려고 하는 활동이 아닐까?’ 따위의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단지 좀 멋있고 싶어서 뭔가를 하는 것 같은 나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 27쪽
딱 이런 고민부터 앞서게 됩니다. 마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김희성(변요한 扮)처럼 “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장사라는 업의 기본적인 고민은 해보고 시작해야 했을 터입니다. 많은 스타트업이 무너지는 가장 큰 이유가 ‘시장의 소구 없음’이라는 점을 상기해 볼 때, 그저 특이하다는 것만으로는 비즈니스를 성립시킬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런 선행된 고민을 훔쳐보고 싶어서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만, 끝내 그런 어깨너머의 배움은 얻을 수 없었습니다.
가끔 북다마스가 출점한 카페에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하면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북다마스 출점을 요청하는 비용이 얼마인지 물어보는 살마도 봤다. 정반대의 생각들. 역시 정답은 없다. 계산된 정답이 아니라, 그저 마음이 맞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 126쪽
똑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출점비를 내야 하나, 출점비를 받아야 하나를 두고 고민하다 보니, 누가 손님몰이 판다 역할을 더 잘 해내냐에 따라 달라질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모객 능력이 높은 카페에 기대어 책을 팔아 보겠다는 전략이라면 수수료를 지급해야겠고, 모객 능력이 북다마스보다 낮은 카페에서 판다 노릇을 한다면 수수료를 받아야겠지요. 초기에는 지급하면서 인지도를 키운 다음, 인지도가 올라 독자적인 브랜드로 성장한다면 수수료를 받아가며 출점하는 방식이 비즈니스의 기본적인 마인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저 마음이 맞으면 그걸 충분”하다면, 소는 누가 키우고, 돈은 누가 벌 건지 알 수가 없게 되죠. 남이사 돈을 벌건, 사회사업을 사건 제가 상관할 일은 아닙니다만, “이동형 서점은 비즈니스로 가능성이 있는가?”란 명제에 궁금증이 많은 사람 입장에선 꽤나 ‘깝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내 유2(대전의 버찌책방에서도 이동형 서점을 운용하고 있더군요)의 케이스에서 답을 얻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2020년 3월, 서울에서 북다마스를 시작하고 가을에 전국 출점을 한 뒤 고민에 빠졌다. 정말 ‘이동책방’이라면 계속해서 먼 곳을 이동하는 게 맞겠지만, 막상 전국을 돌아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거점 이동’이었고, 가장 유력한 후보는 ‘제주도’였다. - 144쪽
고구마 하나가 더 얹혔습니다. 트럭만물상의 특징 중에 하나가 주기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어느 곳에 나타날 것이다라는 예측가능성이 소비를 예정하기 때문이죠. 마치 황금마차를 기다리는 격오지 근무 군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장을 만나게 되면, 숨이 턱 막히게 됩니다. 이쯤 되면 주먹구구 수준의 비즈니스 마인드조차 구경할 수 없는 거니까요.
북다마스를 기획하며 병행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영상’이었다. 바야흐로 유튜브의 시대여서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했고, 무엇보다 북다마스와 만나게 될 누군가(작가님, 독자분들, 공간 관계자분들 등)에게 북다마스를 설명하고 홍보하기 위해서는 그 형태나 가능성을 최대한 사전에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은 더 나아가, 그 자체로 재밌거나 유의미한 콘텐츠를 생산해 내길 바랐다. - 55쪽
아이디어만큼은 손뼉을 치는 수준이 아니라, 엄지 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상이란 미디어의 정보직관력을 텍스트 미디어는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이젠 검색 플랫폼으로도 네이버 다음, 구글 위에 위치할 정도죠. 잘 만 하면, 유튜브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열어줍니다.
잘한다면 말인데요, 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상 편집도 글쓰기와 똑같습니다. 글을 잘 쓰고, 잘 편집하는 건 기본이고, 그 글이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소비될 것인가를 고려해서 제대로 타게팅하는 게 필요합니다. 영상을 잘 찍고 편집하는 건 기본인데요, 그 영상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소비될 것인지 제대로 고민해서 기획해야지만 ‘조회’가 되고, ‘재생’이 이루어집니다. 혼자서 하기엔 너무 힘든 일입니다. 전통적으로 영상제작업은 작가-연출-촬영-편집의 4인이 공동작업을 해왔던 일입니다. 워낙 세상이 좋아져서, 혼자 기획하고, 혼자 찍고, 혼자 편집할 수 있을 정도로 장비는 단순화됐고, 영상 편집 애플리케이션은 직관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렇지만 혼자서 하는 작업이 4명이 함께 하는 작업과 같은 품질을 갖출 수는 없습니다. 분업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분업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비용’이란 문제 하나밖에 없고, 그 ‘비용’의 제약은 필연적으로 ‘품질 저하’를 가져옵니다. 그렇다 보니 경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 자체로 재밌거나 유의미한 콘텐츠’라는 자기기만으로 넘기기엔, 너무 품이 많이 드는 작업임을 다시금 확인해 보게 됩니다.
“아~ 네네. 인스타그램에서 봤어요. 저도 이게 뭔지 궁금했거든요.” - 62쪽
무릎을 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5년 전쯤의 인스타그램의 혁명적인 커뮤니케이션 어빌리티를 느끼게 해 준 문장이었습니다. 팔로워 1만이 넘는 북다마스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여전히 파워풀한 커뮤니케이션 툴일 테죠.
인스타그램은 스마트폰이란 프레임을 통해 꿈과 낭만을 실어 날라줍니다. 북다마스처럼 노마드 라이프를, 심지어 책을 팔며 구가한다는 것은 인스타그램이란 프레임으로 걸러 볼 때,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의도하지도 않았고, 따로 홍보를 할 생각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라서, 더욱 울림이 컸겠다 싶습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자영업자들에게 블로그 말고 인스타그램을 하라고 컨설팅했었습니다. 사진을 잘 찍는 것도 아니요, 글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는 이들에게 블로그를 운영하는 건 거의 고문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냥 직관적인 사진 한 장과 간단한 멘트(이것마저도 80% 이상의 보통 사람들에겐 쉽지 않습니다)만으로 때울 수 있는 인스타그램의 편의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3년 전쯤에는 후기 진입자에게도 꽤나 노출 기회를 부여해 주기도 했고요. 물론 이제는 더 이상 인스타그램을 권하지 않습니다. 블로그와 마찬가지로 업자들의 영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북다마스입니다.
2020년 3월 첫 출점(북다마스가 어딘가로 나가 책을 판매하는 행위)을 시작한 북다마스가 2023년 11월경을 끝으로 출점을 마무리할 예정이며 그 때까지 <Clutch Membership>을 운영하려고 합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지만 아무래도 갑작스럽게 들릴 이야기라서 조금 긴 서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북다마스를 시작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표현되고, 서로 소통하는 문화가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공간과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넉넉히 발견할 수 있었고, 이동책방으로서 역할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했는데, 너무도 감사하게도 많은 분께서 북다마스를 응원해 주셔서 그 가치와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일이었어요.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 2023년 6월 23일 북다마스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왜 출점을 종료했는가는미루어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가 단순히 지속가능성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직접 내밀한 사정을 들어보지 않고서는, 그저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가 될 듯합니다.
이 안타까운 이별에 이런저런 아쉬움이 크지만, 현재 상황을 제대로 확인조자 하지 않고 리뷰를 썼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더 큽니다. 이 부끄러움이 당최 가시실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