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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Apr 27. 2024

소화불량의 불안과 우울, 그래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북리뷰] 김성은.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 책과이음. 2020년

1. 읽는 내내 너무 불편했다.


 이것은 어쩌면 나의 집,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나의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 그리고 그 집안에 들어가 사는 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머리말이라 하기에 너무 짧은 프롤로그에서 이 책을 왜 썼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그저 무엇에 대한 글인지만 나오죠. 그 와중에도 쓰나 마나 한 단어들로 모호하게 기술하고 있어서, 내가 이 책을 읽으면 도대체 무엇을 얻어갈 수 있나 하는 원초적 회의에 빠져야 했습니다. 이미 이 책의 존재는 알고 있었고, 2년 전쯤에 손에 쥐었다가 내려놓은 적도 있어서, 이번에는 기필코 읽겠노라 다짐했었습니다. 막상 책장을 펼치고 보니, 마뜩잖았네요. 시작부터가 영 불편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서점 ‘51페이지’의 대표님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왠지 서점이 꼭 하고 싶었고, 잘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 21쪽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감탄사로서의 “이런 XX”를 입에 담고 말았습니다. 2017년 3월에 시작해서 2021년 2월에 문을 닫은 코너스툴의 시작이 하필이면 2016년 9월에 시작해서 2020년 2월 이 책이 출판되기 전에 문을 닫은 서점이라니요. 심지어 “서점오픈 4개월 차 김종원”을 기억하기도 했던 터입니다. 슬픈 현실의 연쇄는 담담히 바라보고 있기 어렵습니다. 시작부터가 연타로 불편해졌네요.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의 p.170~171. 「서점 오픈 4개월 차 김종원, 51페이지, 노원구 공릉동」으로 소개되고 있다.


 작년에 비해 올해 달라진 것은 조금 더 확고해진 마음이다. 책방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 어떻게든 여러 방편으로 돈을 벌고 메꾸는 이 방식을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스스로 들어차 있으니 어느 해보다도 많은 일을 해낸 듯하다. - 204쪽

 이쯤 되면 그냥 죽으라고, 불편함을 들이붓는 수준입니다. 비극적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결연한 의지는 치사량에 가까운 불편함으로 다가와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들죠.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오늘도 어떤 책방이 문을 닫는다는 글이 올라왔다. 5년을 채웠다고, 미련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았다고 쓰여 있었다. 영업 종료를 알리는 글임에도 멀리서 본 그 책방이 언제나 그래왔듯 생기가 넘쳐서, 나도 언젠가 써야 할지 모르는 글을 언뜻 상상해 보았다. - 206쪽

 그 “언젠가 써야 할지 모르는 글”이 이미 쓰인 후에 보게 되면, 기분이 참 묘함을 넘어서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명랑한작별공지”란 해시태그로 시작하는 글이 2021년 1월 3일 코너스툴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와 있습니다. 



2. 소화불량 지경의 과도한 불안과 우울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읽고 싶은 책에 시간을 내어주려 한다. - 117쪽 


 자기 전에 누워서 펼쳐 들었을 땐,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과 불편함에 책을 읽는 게 너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117쪽에서 이 문장을 발견하는 순간, 일단 책장을 덮을 수 있었습니다. 차례를 미루어 두었던 책을 이제라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 터라, 도대체 이 책을 왜 읽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장이 매끄럽고, 하나의 주제로 응집하는 문단들의 조직력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왜 여기서 이런 인용문을 가져왔을까,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것만 빼면 말입니다. 적당한 의장적 용도로서의 효과는 있지만, 맥락이 튀는 경우가 잦아서 그리 칭찬할 만한 장치라고 보긴 어려웠습니다. 여하튼, 대체적으로 흉보기 힘든 잘 쓴 글이었습니다만, 흥미롭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랬나하고 생각해 봤습니다만, 그런 이유때문은 아닌 듯했습니다.


 책장을 덮고 누워, 답답함과 불편함의 이유를 고민해 봤습니다. 이 책은 젊고 패기 넘치지만, 또 그만큼 섬세하고 나약한 한 자영업자의 자기 고백으로 넘쳐났기 때문이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저는 주로 책방주인들의 책을 읽으면서, ‘책방 운영’에 대한 것들을 추출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자기 고백의 서사가 그리 만족스럽진 않았던 거죠.

 이미 같은 경험을 몇 차례 해온 터라, 채도운의 책에 대한 리뷰를 링크하는 것으로 넘어가고자 합니다.

 “현대의 작가는 ‘어떤 관념도 사상도 주장하지 않고 그저 쓸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고백에 따라다니는 전도”라고 가라타니 고진은 주장합니다. ‘고백이라는 제도’를 통해 복권을 꾀하는 나약한 자아를 마주하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 과정에서 ‘배설의 쾌감’에 준하는 파토스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 독서는 내면의 지리멸렬함을 끌어안은 채 끝까지 불쾌감을 느끼게 할 겁니다. 그렇다 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 소화불량 수준의 불안과 우울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러다가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할 이유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 ‘소화불량 수준의 불안과 우울’이 이유가 됐습니다.

 자영업의 일종인 서점업을 하면서 겪어야 하는 불안과 그 불안의 누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우울에 대해, 이 책만큼 끈적하게 보여주는 책도 드뭅니다. 송은정의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정도가 유일한 것 같습니다. 다른 책들은 대부분 어른들답게 고백을 통한 ‘전도’에 성공했기 때문에, 책방을 운영한다는 자영업자의 불안과 암울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면, 이 책도 반드시 필독서 리스트에 들어가야 할 듯합니다. 물론 출판사 책과이음은 그런 책을 원하진 않았을 테지만요. 

 이런 마음을 먹고 나니, 리뷰 앞쪽에서 인용한 부분이라던가, 다음의 발언들이 새삼스러웠습니다. 한 편 한 편, 처절함이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가는 경우가 적지 않아 몹시도 불편했지만, 그걸 확인하자는 마음에서 책을 붙들고 있자니 책장이 넘어가긴 했습니다.

 이런 수비수의 태도를 취하게 된 연유는 ‘책방’, ‘자영업’, ‘개인사업’, ‘퇴사’ 같은 단어에 대해 사람마다 제각각 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다. 무례한 사람을 만난 일은 많지 않지만, 숨길 수 없는 기운으로 알아챌 수 있는 맥락도 있다. 가령, 자영업을 하는 나이 어린 여성은 분명히 드셀 거라는 예단, 퇴사를 하고 결국 자영업으로 뛰어드는 사람은 사회 부적응자에 가까운 나약한 인간임을 확신한다는 시선, 어린 나이에 개인 사업을 하는 것을 보니 역시 집에 여유가 있는 거라는 시기와 낙담 사이, 그 와중에 밥집도 술집도 카페도 아닌 책방이라니 팔자가 좋다는 불평까지. “회사 다녀요”라는 말이 얼마나 편리한지 이전엔 미처 몰랐다. - 98쪽
 영업 6개월 차 정도부터 1년 반 정도까지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손님이 없을 때 느끼는 불안은 상상을 초월했다. 내 인생의 낙관 비슷한 것을 영업 초반에 몽땅 끌어다 쓴 탓에 더 쥐어질 긍정의 ‘시크릿’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 133쪽


코너스툴은 말 그대로 corner에 놓는 stool을 말합니다. 

권투의 사각링은 두 개의 코너가 있습니다. 하나는 홍코너, 다른 하나는 청코너입니다. 나머지 두 코너는 백색으로 이루어져 있죠. 라운드 사이에 선수를 앉혀 놓고 코칭과 처치를 할 수 있는 의자도 코너스툴입니다. 책방 이름은 거기서 따왔다고 하네요. 그 코너스툴도 '하얗게 불태우고' 물러났을 거라 봅니다. 

만화 <내일의 죠>에서 나온 유명할 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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