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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Apr 25. 2024

"웬만큼 이름 있는 동네 서점 주인들 책"과 마찬가지.

[북리뷰] 권희진. 꽃서점 1일차입니다. 행성비. 2021.

1. ‘실용 에세이’ 아니고 ‘대부분’ 중에 하나다.  

   

 웬만큼 이름 있는 동네 서점 주인들은 모두 책 한 권씩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서점을 열게 된 배경, 본인만의 소신과 철학, 운영 에피소드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이 책은 실용 에세이라는 성격상 서점을 열 때 생각해 봐야 할 더 실질적인 문제들에 주목했다. - 7쪽     


 머리말에서 이 책이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단호하게 규정했지만, 막상 살펴보면 ‘대부분’의 다른 책들만큼도 ‘더 실질적인 문제’를 주목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서점을 열게 된 배경, 본인만의 소신과 철학, 운영 에피소드’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헛웃음이 날 지경입니다.     

 사실 이 책의 기획의도에서부터 불가능한 작업이었다고 보입니다. 출판사에서 ‘1일차’라는 이름으로 얇고 가벼운 시리즈를 기획했으니, 거기에 제대로 된 무언가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그저 표피적이고 사변적인 담론들만 때려 박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한된 지면’의 태생적 한계일 겁니다.        



2. 본인만의 소신과 철학은 중요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철학입니다. 나는 왜 사는지, 무얼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데요, 그걸 우리는 철학이라고 합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인생관, 세계관, 신조 따위를 이르는 말”이라고 규정하고 있죠. “내가 이 짓거리를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와 같은 고민을 하다가, 하자거나 말자는 결정을 내리는 가치 판단의 기준들이 모이면, 우리는 그걸 ‘인생철학’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가치를 따지는 인생철학들 중에서 간주관적인 것들을 모으면 가치론이라는 학문으로서의 철학에 이르고, 그걸 좀 더 다듬으면 윤리학이나 미학으로 갈라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철학이란 게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다만 ‘개똥철학’의 가장 큰 문제는 관념화 과정에서 오는 개별적인 것들의 일반화입니다. 명확한 개별 사건들을 추상적인 일반 명제로 바꾸다 보니, 언어는 모호해지고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 들죠. 그래서 “뜬 구름 잡는 듯한 철학과 소신”은 언제나 달갑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문제는 철학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가게 이름 정하는 것 하나에서도 그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는 어떤 가치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래서 ‘브랜드 철학’이란 말이 차고도 넘칩니다. 이 책에서도 5페이지에 걸쳐 ‘디어마이블루’라는 브랜드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죠.

 서점업, 좀 더 크게는 소매업, 더 나아가서 장사 역시 본인의 철학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이를 테면 서점업을 바라보는 권희진의 철학은 “독자로 하여금 어떻게 우리 서점에 와서 좋은 책을 발견하게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그 책을 이곳에서 선택하게 할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동네 서점의 큐레이션과 이런 서비스적 차원의 다양한 시도들이 좀 더 특색 있게 이루어진다면 결국 사람들은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보다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게 될 것”이란 행동원리를 도출해 내게 됩니다. 이런 가치체계에 대해서는 “일종의 새로운 경험에 대한 소비”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요.     

 그렇다 보니, 이 얇은 책에서는 ‘실질적인 문제’에는 접근할 수가 없었고, 거의 모든 문제에서 ‘본인만의 소신과 철학’으로 점철하게 됩니다. 읽는 사람 입장에선 답답하지만, 고민의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에 무의미하진 않습니다.        

   


3. 실질적인 문제를 고민하기엔 글이 너무 짧다.    

 

 책방 운영에서 가장 큰 문제 두 가지를 꼽으라면, 매입 도서 선정과 서가 배치일 겁니다. 이건 무슨 장사를 하든 마찬가지인 문제입니다. 어떤 상품을 떼다가 어떤 식으로 팔까의 문제라서요. 아이템 선정과 판매 전략 수립으로 말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게 책방 운영에서 가장 큰 문제란 겁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 문제를 단 한 문장으로 넘깁니다. 이러면 실질적인 문제를 고민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입고할 책들의 목록을 살펴서 도매상과 직거래가 가능한 출판사들에 주문을 넣고 책장과 가구들을 조립해서 배치를 끝냈다. - 45쪽     


 입고할 책의 목록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서가 배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앞서 쓰지야마 요시오의 책, 『서점, 시작했습니다』의 리뷰로 갈음하겠습니다. 미투상품을 만들 게 아니라면 ‘나만의 철학’이 녹여진 서가 운영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들에서 ‘나는 이런 철학으로 서가 운영 원칙을 세웠다’고 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걸 이야기해 줄 필요도 있고요.


 “디어마이블루는 200종의 책만 판매하는 서점”이라고 규정하며, “200종의 책만 소개하더라도 누가 오든 그중에 읽고 싶은 책이 한 권은 있도록 신중하게 서가를 꾸리고, 꼭 필요한 책을 추천해서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 자체로 디어마이블루 서점으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이란 철학은 공유할 만합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실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 방법은 이 책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그냥 철학만 존재할 뿐입니다.

 78쪽에서 83쪽에 이르는 “테이블은 있지만 음료는 안 팝니다”에서는 브랜드 가치를 고객에서 전혀 전달하고 있지 못하고, 그에 필요한 전략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84쪽에서 89쪽에 이르는 “책을 사서 읽는 경험의 즐거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체적인 팁 같은 건 없고 그저 입고 철학이 있을 뿐입니다. 그나마 55쪽에서 62쪽에 이르는 “동네 서점 실무 가이드”에는 ⓵SNS는 기본, ⓶사업자등록, ⓷도매방법, ⓸ 세금 신고와 같은 기초적인 내용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수박 겉핥기라서 반드시 더 세세한 정보로 넘어가야 합니다. 체크리스트로서의 역할로도 부족한지라, 실질적인 조언이 되긴 어려운 수준입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고집이 ‘규칙’이란 이름으로 드러납니다.

 우리 서점에 책을 들일 때 세운 규칙이 하나 있다. 한 종의 책이 다 팔려야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책을 들여놓을 것. 이것은 한 번 들인 책은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다 팔고 단 한 권도 절대로 반품하지 않는 서점이 되기 위해 정한 규칙이다. - 63쪽

 저는 이 규칙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경제학 이론이나 마케팅 이론으로도 납득할 수가 없는 괴상한 규칙입니다. ‘본인만의 소신과 철학’은 중요하지만, 그걸 남이 납득할 수 없다면, 그저 아집이 될 뿐입니다. 보다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이걸 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벤치마킹 하기에는 너무나 특수한 상황과 발언인지라, 난감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눈길이 가는 부분이라 공유해 봅니다.  

 

 이 오픈 행사 한 방으로 너무나 훌륭한 독서 모임 멤버들을 만났고 그날 오셨던 기자 분의 권유로 한라일보에 3년째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디어마이블루를 소개하는 방송을 찍기도 하고, 올해는 제주도정소식지의 편집위원장이 되기에 이르렀다. - 54쪽     
 우선 도매상이든 직거래 출판사든 모든 거래를 100퍼센트 현매로만 하고 반품은 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세웠다. 이렇게 되면 추후 정산이라는 과정과 반품할 책들을 고르고 포장해서 다시 택배로 보내는 과정이 필요 없어지니 나로서는 일 하나를 더는 셈이기도 했다. - 66쪽     
 ‘커피도 팔아야 하나’라는 고민조차 해본 적이 없다. 수익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더라도 바리스타 자격증은커녕 카페 아르바이트조차 해본 적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주변 멋진 카페들과 경쟁해서 커피를 더 잘 팔 자신이 없었다. - 78쪽     
 서점을 들어오는 순간 전면에 보이는 진열대에는 무거운 책들보다는 여행 와서 책 한 권 읽었다는 만족감을 줄 정도의 분량과 내용을 가진 책들을 포진시켰다. - 85쪽     
 독립 출판물을 받지 않는 이유는 좋은 독립 출판물을 입고하려면 상업 출판물과는 별개의 노력과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87쪽     
“깨끗한 샘플 책은 ‘더 라스트 북’으로 변신.” 샘플책은 ⓵중고책으로 취급하여 10퍼센트 할인을 적용한다. ⓶‘더 라스트 북’이란 이름이 블라인드북으로 처리한다. 일반제품에 파란색 도장을 찍어주지만, 이 제품엔 빨간색 도장을 찍어준다. -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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