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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Dec 12. 2021

[리뷰] 채도운_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

2021년. 지베르니. "브런치를 통해 작가가 된"


1. 고백이라는 제도


왜 항상 패배자만 고백하며 지배자는 고백하지 않는가.
그것은 고백이 왜곡된 또 하나의 권력 의지이기 때문이다.
고백은 결코 참회가 아니다.
고백은 나약해 보이는 몸짓 속에서 <주체>로서 존재할 것,
즉 지배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중에서


 어쩌다 보니, 책방 주인들이 쓴 ‘에세이’들을 꽤나 읽게 됐다. 일하듯이 책들을 읽다 보니, 어느새 독서가 주는 놀이로서의 즐거움보단 일이 주는 피로가 더 커졌다. 내 독서 태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일하는 듯한 느낌의 독서라는 건 아무래도 에세이란 장르, 특히나 비문필가가 처음으로 써본 문학적 글쓰기의 형태란 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내면의 고백을 시작으로, 빌둥스로만(bildungsroman)의 서사구조를 닮아가는 일률적인 구조가 ‘책방’을 무대로 펼쳐지게 되면서 그 개성들이 더욱 희석된 탓도 클 테다.

 무엇보다 글쓰기에는 익숙하지만, 문학적 글쓰기가 생업이 아닌 이들의 개성이 뚜렷하지 못한 문체들은 더더욱이나 구별을 희미하게 만들면서, 독서를 통해 맺게 되는 문학적 성취마저도 크지 않았던 탓도 있으리라. 


 채도운의 글들 역시, 반복적인 내면의 고백을 통해 전복적인 주체 회복을 꽤 하곤 한다. 내 안에 존재하는 ‘내면’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발견을 외부에 ‘고백’함으로써, 나약해진 자신의 주체성을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나는 순간 숨을 깊게 들이켰다. 아, 어째서 몰랐을까, 왜 몰랐을까.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 78쪽
 오늘 오신 손님은 핫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 거다. 그것도 두 잔 분량으로. 그 손님은 300원을 아꼈지만 나는 300원을 못 벌었다. 그 300원이 뭐라고 우울하고 속상하다. 그 300원이 아쉬워서 마음 아프다. -176쪽
  왜 그 이야기를 했을까? 공공기관 다닌 게 뭐가 자랑이라고 그렇게 말했을까? 공공기관 다닌 게 뭐가 자랑이라고 그렇게 말했을까? 그 대답이 오히려 나를 더 별 볼 일 없게 만들었다 그 순간 너무 처량했다. 부끄럽고, 한심했다. - 181쪽


 다만 그런 과정이 너무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심지어는 자기혐오 수준으로까지 반복적으로 침잠하다 보면, 독자 입장에서는 불쾌감이 늘어나기도 한다. 

 물론 ‘주체를 탐색해 나아가는 과정’이 그리 단순한 건 아니다. 모든 이야기는 서사구조를 가지게 마련인데, 더더욱이나 ‘카페 일지’와 같은 식의 에세이들은 카페를 시작하기 전의 상황 설명을 시작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승전결의 구조가 확실한 시간의 흐름을 전기(傳記)적 방식으로 기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과정이 하나의 책으로 묶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서술자의 내적 성장을 담지하지 않을 수도 없다. 따라서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을 수 없지만, 종국에는 단계적 성장의 외양을 갖추어야만 독자에게 의미 있는 독서가 될 수 있다. 그것이 하나의 책으로 묶이는 글 전체의 완성도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채도운의 글은 종잡기 어렵게 들썩거리면서, 끝내 질척거리기까지 하는 감정의 기복을 단절적으로 나열해서, 다소 불편한 독해를 조장한다.


 이제 겨우 4년차 카페 사장이자, 이제 30대에 들어선 ‘청년’에게 ‘완성된 어떤 것’을 기대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의연함 정도만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1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에 선정됐을 뿐만 아니라, 20 작품 중에서 단 네 권만이 종이책으로 출판되었다는 점까지 고려해 보면, 기본은 갖추어진 어엿한 작품이란 점은 인정해야 할 테다.

 감정의 과잉으로 난잡해질 수도 있었으나, 꽤나 차분하게 끌어 담은 문장은 미덕이다. 때때로 그 세대만이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 감정도 제법 매끄럽게 풀어냈다. 



2. ‘브런치’를 통해 작가로 등단하는 시스템


 이 책의 탄생 과정을 살펴보면 참 흥미롭다.

 블로그 서비스인 ‘브런치’를 통해 차곡차곡 쌓아온 글들을 묶어 내고, 하나의 일관성 안에서 전체적 맥락을 갖추게 된 ‘브런치북’이 하나의 ‘책’이라는 구조를 갖추게 됐다. 그리하여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에 선정되어, ‘밀리의서재’란 전자책 플랫폼에서 ‘밀리 오리지널 콘텐츠’로 공개된 것이다. 더 나아가 지베르니란 출판사에 의해 종이책으로 출간까지 되었다는 점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는 2021년 3월부터 5월까지의 응모를 시작해, 모두 2천567명의 작가가 3천933개의 ‘브런치북’을 신청했다. 이 중에서 20개의 작품이 선정되었고, 이 중에서도 단 4 작품만이 종이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이쯤이면 어엿한 등단 시스템이라고 봐도 되겠다. 특히나 종이책으로까지 출간됐다는 건 상업출판의 영역에서도 인정할 만한 완성도를 갖추었다는 걸 의미한다. 


 자본과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편입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만족에 그치는 수준이 독립출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다면
뭔가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대안 매체로서의 기능을 하기는 어렵다.
- 백창화, 김병록,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중에서


 독립출판에 대한 나의 부정적 인식은 크게 두 가지에 기인한다.

 우선은 독립출판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부재하다는 점이다. 마치 진정성(authenticity)과 마찬가지로 부재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는 역설적인 개념이 독립출판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 안으로 포섭되어 법률적이나 행정적으로 독립영화란 개념을 획득한 경우나, 어느샌가 산업 자체가 분자화 된 음반산업처럼 인디음악이란 개념 자체가 하나의 씬(scene)으로 정착해버린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두 번째로는 위의 인용문과 마찬가지로, 그 결과물들이 “그 안에 편입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만족에 그치는” 수준의 경우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브런치와 밀리의서재란 온라인 플랫폼이 ‘등단’과 유사한 심사와 인증 그리하여 상품화까지 연결시켜주는 하나의 시스템을 이룩한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물론 “또 하나의 출판 권력”의 등장으로 걱정하지 않을 수도 없지만, 좀 더 촘촘한 거름망으로 보여서 든든한 마음이 앞설 뿐이다.   



3. 가슴 짠해지는 순간들

 아무래도 지금 하고 있는 일 때문에 자꾸만 눈이 가는 부분들이 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소상공인의 일상을 강타해왔던 불황의 그늘과 그렇지 않아도 무한경쟁 속에 놓여 있었던 '과다한 자영업자'란 현실이 빚어내는 우울한 현실들 말이다.

   

배달이라 하면 가장 많이 쓰는 애플리케이션은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와 같은 플랫폼이다. 그런데 문득 두려워졌다. 플랫폼을 이용하기 위한 가입비, 이용비, 결제 수수료, 배달 대행료를 감안하면 또 다른 ‘월세’의 개념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손이 파들파들 떨린다 수수료도, 배달 대행료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결국 카페를 창업하면서 만들었던 SNS와 블로그를 통해 배달 서비스를 홍보하기로 생각했다. - 43쪽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다. - 102쪽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래, 애매하게 카피할 수 없도록, 나만의 특색을 잔뜩 묻혀보자.’ -142쪽
그리고 속으로 계산한다. ‘종이컵 31원. 컵홀더 64원. 냅킨 10장에 40원.’ 물론 표정에는 절대 아깝지 않음을 꼭 드러내야 하고, 필요하면 더 드리겠다는 마를 덧붙여야 한다. 손님이 가고 테이블에 남겨진 64원짜리 컵홀더를 보면 아깝다. 재사용하고 싶어서 몇 번이나 손을 들었다 놨다 했는지 모른다. - 172쪽 


 이렇게 보면, 띠지의 광고 문구, "매일의 고민과 염려 사이, 작은 위로를 더해줄 북카페 이야기"는 '북'만 뺀다면 꽤나 공감 가는 카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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