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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Dec 10. 2021

[북리뷰] 이지선_『책방뎐』

2021, 도서출판 오르골. "누가 표지와 제목으로 책을 고르나?"

1. 어떤 병신이 표지와 제목으로 책을 고르나?


 책을 대하는 자세 중에서 정말 싫어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표지와 제목으로 책을 고르고 구입한다는 것이다.

 책을 고르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다. 머리말과 목차 정도는 살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냐 말하기에 앞서, 적어도 그 책을 집어 들게 하는 최초의 동인(drive)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책의 정체성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표지 디자인과 제목이다. 그렇다 보니 서점의 평대가 됐든, 도서관의 서가가 됐든, 책을 손에 쥐게 하려면 최소한의 시각정보에 매력을 녹여 넣어야만 한다. 그런 이유로 잘된 표지 디자인은 제목을 도드라지게 드러낼 수 있는 형태가 된다. 간혹 표지 디자인으로 장난질 치면서, “혁신적인 디자인”을 운운하는 엉터리들을 볼 때마다 경악하곤 한다. 그 입에 디터 람스의 디자인 10원칙부터 복창하게 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다. “기발하지만 쓸데없음”이 여기서도 작동한다. 그래픽 디자이너 중에는 예술가적 지위에 대한 허영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이들이 있는데, ‘파격’으로 포장한 ‘규격미달’의 디자인을 보여주곤 한다. ‘Good design makes a product understandable.’이란 말을 좀 새겨주었으면 좋겠다.


 여하튼, 책의 표지 디자인과 제목만으로 책을 선택하는 건 그리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그 병신이 됐다.

 “책방뎐”이라는 제목에서 멋대로 내용을 상상했고, 머리말과 목차를 살펴볼 생각조차 안 하고 덥석 책을 주문해버린 것이다. ‘동네서점 바로대출 서비스’를 이용한 것이라 섣부른 선택이 가능했었다고는 하나, 관악구민의 공공재로 구매되는 것이란 점을 생각해 본다면 좀 미안한 짓을 저질렀다.

 “책방뎐”이란 제목에서 나는 이런 헛다리를 짚었다.

 우선 전(傳)이란 문체적 특징이 확립된 장르에 대한 착각이 책방 주인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에세이란 정체성에 눈을 뜨지 못하게 했다. ‘책방전’도 아니고 ‘책방뎐’이라 했고, 더구나 전주 사람이 썼다잖은가? 남도 사투리가 만발하는 유쾌하고 기발한 전기(傳記)를 멋대로 상상했던 것이다. 큰 불찰이었다.


 사실 이런 실수를 얼마 전에도 저질렀다. 정세랑의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수 없어》를 환경 에세이인 줄 알고 도서관에서 예약 대출한 적이 있었다. 내면의 고백으로 시작해서, 여행기로 이어지는 이 책을 그저 제목만으로 지구 환경에 대한 건강한 에세이쯤으로 지레짐작한 것이었다. 그때는 원했던 책이 아니었기에, 서점에서 잠깐 머리말과 목차를 살펴보고 책을 내려놓듯이, 도서반납함에 넣어버리면 그만이었다.



2. 더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초반부를 읽다가, 이 책을 그냥 덮어야 하나를 고민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완독을 하는 것도 좋은 독서경험이 될 수 있겠다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부에 책장을 덮을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물색 모르는 자영업자의 편견 어린 불평들이 숱하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산안을 짜면서 의아했다. 강사에게 주는 비용과 물품비, 간식비 등은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책방지기의 몫은 보이지 않았다. 모든 행사의 기획안을 만들고, 강사를 섭외하고, 당일엔 하루 종일 종종거리는 책방지기에겐 아무런 보상이 없었던 것이다. -38쪽


 정부 지원 사업을 마치 쌈짓돈 쥐어주는 걸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정부지원사업, 그러니까 국가예산이나 각종 연기금에서 제원을 마련하는 사업들의 경우에는 수혜자에게 귀속되는 자금 지원은 없다. 오로지 사업 진행을 위해 소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체육진흥기금으로 지원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나 한국작가회의의 지원사업의 경우에는 책방지기들의 인건비나 대관료 같은 귀속성 예산을 허용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당신들이 문화 사업을 자진해서 하시겠다면 그 소모성 예산을 지원해 드리겠소'란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광역자치단체나 기초자치단체로 내려가면 규정은 조금 달라진다. 국회의 감사를 받아야 하는 정부지원사업과 달리, 광역의회나 기초의회의 감사를 받는 지방자치단체와 그 산하기관의 지방재정 지원사업의 경우는 책방지기들의 강사료나 대관료를 책정해주는 경우들도 있다. 특히나 조례 제정을 통해서 서점 지원 사업을 진행하는 자치단체들에서는 조금 더 후한 편이 된다.


 아무래도 공급 조건이 더 좋은 곳을 찾아다녔고, 아무리 책이 좋아도 공급률이 높으면 손해나 다름없다 보니 가져다 둘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혼란스러운 도서 유통망은 책방지기들이 주체로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된 셈이다. -67쪽


 유통산업에 대한 몰이해가 결국에는 이런 식의 아전인수의 해석으로 귀결된다. 전국책방네트워크의 도서정가제를 바라보는 시선도 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의 일반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지 못한다. 도서정가제의 필요성은 도서유통산업에서의 과점 상황이 독점 상황으로 가는 걸 막는 데 있다.

 과거 출판유통구조는 작가-에이전시-출판사-인쇄사-배본사-도서도매상-지역총판-서점-독자로 이어지는 복잡한 구조를 가졌었다. 중간마진을 얹어야 하는 옥상옥의 구조는 필연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ICT의 발달과 물류의 진척으로 이 유통구조가 점차 단순화하고 있다. 문제는 유통플랫폼이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과점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출판사들의 소규모화에 따라 에이전시 단계가 줄어든 것만큼이나 배본업의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도서도매상과 지역총판의 경우는 북센이나 교보문고와 같은 대형 도매상 몇 군데로 과점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참고서/학습지/문제집을 제외한 일반도서의 유통은 지역총판의 손을 떠난 것으로도 보인다. 이렇게 유통구조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데, 이는 교보문고와 같은 통합 플랫폼 기업이나 알라딘이나 예스24와 같은 인터넷서점의 유통경쟁력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현행 도서정가제마저 폐기한다면, 이들에게는 과점을 지나 독점으로 갈 수 있는 날개를 달아주게 될 테다.  

 그런데 화살은 엉뚱한 과녁에 가서 꽂혔다. 공급률은 어느 시장에서나 다 존재한다. 특히나 과점 플랫폼이 유통과정을 장악한 대부분의 시장에선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 연출된다. 그나마 도서정가제라도 말할 수 있는 출판계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의류인터넷쇼핑몰의 경우는 과거 20%까지도 후려칠 수 있었던 공급률이 오픈마켓으로 내몰린 현재는 85%까지도 치솟았다. 헬조선에는 도처가 지옥이다.


 모두가 인터넷으로만 물건을 산다면 동네에 남아 있을 구멍가게가 있을까? 거대한 물류 센터만 살아남고, 배달앱으로 주문하는 플랫폼만 남게 되겠지. - 77쪽


 이쯤에 이르면, 그냥 세상 물정 모르는 동네 아줌마려니 생각하고 포기해야겠다 싶어졌다. 실제로 배달앱시장은 빠른 속도로 동네 구멍가게까지 위협하고 있다. 대형마트에 차이고, 편의점에 치이고, 하다 하다 배달앱에게도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구멍가게들이 그래도 살아남아 있는 이유는 근거리성 때문이다. 특히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로컬센트릭(localcentric)의 개념은 강화됐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던 온택트는 뉴노말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와중에, 로컬센트릭이란 시대 역류적 경험은 슬금슬금 뿌리를 내리고 있다. 특히나 문화경험과 결합되는 동네책방의 경우는 가장 강력한 것이 될 테다.


 이렇게 투덜거리다 보니, 책을 읽고 있는 내 꼴이 참 우스워졌다.

 그저 동네에서 책방을 하는 아줌마가 쓴 에세이일 뿐인데, 여기서 무슨 대단한 걸 얻겠다고 불평투성이냔 말이다.

 문장가로 소문난 수필가도 아니니 미문을 기대하지도 말 것이며, 철학적 사색으로 유명한 사상가도 아니니 인생의 오의에 대한 성찰을 바라지도 말 것이며, 재기 발랄한 이야기꾼으로 알려진 문학가도 아니니 대단한 내러티브를 원하지도 말 것을 다짐하고 읽기 시작하니 수월하게 글이 읽혔다.

 뛰어난 미문은 아니지만 잘 읽히는 문장은 분명한 미덕이며, 조금은 뻔하면서도 문득 날카롭게 바라보는 삶에 대한 진중함이랄지, 성석제만큼의 뷔를레스크한 재미는 없더라도 순간순간 뼈아픈 웃음을 짓게 만드는 해학은 그리 낮게 평가할 수 없다.

 제목에서 시작한 엉뚱한 기대가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혹평 불가의 글이었을 테다.



3. 서평단 이벤트의 명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며 주관적인 생각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가끔씩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특히나 누군가를 혹평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쓸데없이 색안경을 끼고, 너무 부정적으로 독해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책방뎐으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살펴보다가 오르골출판사에서 진행한 서평단의 피드를 두어 개 접하게 됐다. 지난해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반드시 표기해야만 하는 문구는 글의 신뢰도를 확 낮추게 된다. 그런데 서평단 이벤트의 근원적인 문제인 억지로 짜낸 듯한 ‘주례사서평’은 더 읽어주기 힘든 글들이 된다.


 그래도 출판사에는 계속해서 서평단 운영은 하라고 말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서평단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리 책에 호의를 가지고 먼저 접근하고 있으며, 웬만해선 악평을 쓸 일도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출을 늘리는 방법으로 나쁘지 않다.

 인터넷 상의 정보를 꼼꼼히 살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충 이미지와 보고 싶은 문장 몇 줄만으로 스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억지로 짜낸 서평일지라도 검색에 걸리는 게 중요하고, 노출 콘텐츠가 다양할수록 좋다.


 “대중은 어떤 책을 읽어보라는 권유와 안내를 원하며, 어떤 식의 평가를 원한다. 그러나 가치의 문제가 언급되자마자 평가의 기준은 무너져버리고 만다.”
- 조지 오웰, <어느 서평자의 고백> 중에서

 대중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 부지런히 홍보는 하자. 되도록 호의적인 서평을 유도하면서!



4. 출판 지원 사업

 “이 도서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1년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2021년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은 총 150편의 미발표 원고의 도서 제작에 각각 500만 원씩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오로지 도서 제작에만 비용을 소모해야 하며, 저자 인세, 원고료, 내부인건비, 홍보비로는 사용할 수 없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는 출판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지원 사업이 있다. 앞서 배지영의 에세이 리뷰에서 소개했던 ‘우수콘텐츠 출판 지원 사업’에 비해서는 지원 규모가 좀 작은 편이다. 그림책이나 사진집처럼 인쇄용지도 고급지로 선택하고 4도 인쇄는커녕 인쇄 품질에도 머리 터지게 고민해야 하는 경우에는 턱없이 부족할 테다. 그래도 에세이처럼 적장한 종이에 1도 인쇄나 2도 인쇄면 되는 도서의 제작엔 꽤나 도움이 되는 비용이다.

 무엇보다 창작 지원 사업의 심사를 통과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심사위원들이 사업비를 지원해서 찍어도 괜찮은 책이라고 인증한 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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