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철 Dec 13. 2021

[리뷰] 백창화 등_『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2015년. 남해의봄날. "읽기 꽤 불쾌하고, 애매한 7년 전 이야기"

1. 책장을 넘기기 힘들 정도의 독선들.


 책을 읽다 보면, 초반부터 결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들이 있다. 시작은 보통  철학적인 부분에서 타협 불가능한 사고의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이 시작부터 그랬던 것처럼, 이 책 역시 시작부터 현실을 바라보는 철학적 태도에서부터 강한 거부감이 든다.


 가게에 들어가서 길을 물어보더라도 미안한 마음에 음료수 하나라도 사 먹는데 30분씩, 1시간씩 남의 시간을 빼앗아 귀한 정보를 얻어가면서 책 한 권 사 가는 일이 그렇게 불편한 소비일까? - 41쪽
 사람들이 은퇴 후 하는 창업 가장 흔한 업종이 음식적인 이유는 소위 ‘먹는장사’가 그래도 가장 많이 남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가 대비 이익률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또 하나 장점은 팔다 남은 음식을 가족이 먹으면 되기 때문에 어쨌든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 44쪽


 남이 하는 소매업에 대해서는 꽤나 하찮게 바라보는 태도가, 자신이 하는 소매업에 대해서는 꽤나 이타적인 행위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나 음식업에 대한 몰이해와 지식 부족은 단 세 문장만으로도 크게 드러난다. 혀를 찰 수준이다. 그런데 자신의 서점업에 대한 태도는 보통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태도가 보인다. 심지어 ‘1시간씩 남의 시간을 빼앗아 귀한 정보를 얻어가면서’라는, 선의마저도 상품 취급해버리는 막장 끝에 다다른 듯한 태도는 ‘갑질’의 그것과도 별 차이를 느낄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 보니 44쪽의 여러 문장과 45쪽의 첫 문장으로도 책장을 덮고 싶을 정도가 된다. 특히나 45쪽의 문장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인류가 간직하고 보관해야 하는 지적 재산임엔 틀림없고, 사람들에게 책이라는 제품의 실물을 전시하고 보여줄 수 있는 서점은 사려져서는 안 될 업종이다. -44쪽
책을 읽지 않고, 생각하기를 멈춰버린 이 야만의 시대에 그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45쪽


 그 와중에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문장도 하나 발견했다. 이미 어제 한 번 다른 글에서 써먹었는데, 독립출판에 대한 나의 스탠스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꽤나 꼰대스럽다 생각했던 부분인데, 이렇게까지 일치하는 걸 보면서 꽤나 무서워졌다. 노답 꼰대로 표변하기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는 불안감마저 느끼게 했다.   


 자본과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편입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만족에 그치는 수준이 독립출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다면 뭔가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대안 매체로서의 기능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 138쪽



2. 이래저래 어중간하다.


 6년 전에 나온 책이다 보니, 책의 내용들이 취재된 상황은 그 이전이 된다. 그렇다 보니 현재와는 사뭇 달라진 부분도 생겨났고, 여전히 그런 부분들도 남아 있다. 이렇게 시차가 발생하는 책들을 나중에 읽어보는 재미는 답안지를 맞춰보면서 오답 풀이하는 공부와 같아서 꽤나 재밌는 작업이 된다.

 그런데 책의 구성이나 문체, 무엇보다 뿌리 깊이 박힌 엘리티즘에서 우러나오는 자만(현학적이란 비난을 자주 듣는 내가 남의 말할 처지는 아닌 듯싶다.)은 재밌는 독서를 줄곧 방해한다.

 그뿐이랴, 책의 챕터 구성 자체도 꽤나 난잡해 응집력을 갖추지 못했고, 문장과 문단은 월간지 피처 기사식의 의장성이 도드라지다 보니 주제를 향한 결집력도 약했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문체적 특징들이 꽤나 잘 살아나 있는데, 21년을 살아가는 입장에선 그리 산뜻하진 못했다. 여기에 잡지 에디터가 비전문가적인 시선으로 선정한 것 같은 인터뷰 서점 목록이나 별첨 서점 목록도 한몫 보탠다. 출판사의 편집력이 난국을 초래한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의 서점 목록을 살펴보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결국 사라져 버린 서점들을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여전히 살아남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점들을 볼 때면 적잖은 위안이 된다. 주소가 조금씩 바뀌는 건, 언제나처럼 빌어먹을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일 테다.   



3.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에서 느낀 위화감의 이유


 이시바시 다케후미의 책, 《本屋がアジアをつなぐ : 自由を支える者たち》(번역명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는 동아시아 전역에서 공유되는 20세기 서점이란 공간과 민주주의에 대한 연관성을 탐구한 책이다. 유유출판사에서 번역 제목을 이상하게 붙여버려서 전혀 다른 내용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날이오면’, ‘풀무질’, ‘녹두서점’과 같이 한국 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서점들과 괴산의 ‘숲속작은책방’이나 혜화동 ‘책방 이음’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등장하는 이유는 쉽게 납득할 수가 없었다. 꽤나 큰 위화감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제야 수수께끼가 모두 풀렸다. 이시바시 다케후미와 ‘남해의봄날’ 출판사의 커넥션이 결국은 그런 사고를 이끌어냈던 게다.

 이시바시의 입장에선 찝찝할 수도 있는 노릇이겠으나, ‘남해의봄날’과 ‘숲속작은책방’ 입장에선 꽤나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