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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Mar 01. 2022

[북리뷰] 송은정_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2018, 효형출판, "제목과 다르게 책방 연 이야기"

1. 매력적인 제목, 하지만 그저 그런 후일담


 무슨 내용을 담지한 서사이건 그것이 하나의 글로써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후적으로 글쓰기 행위를 통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서사는 후일담이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운명에 놓인다. 좀 쉽게 풀어 쓰자면, 글이란 일이 벌어진 나중에 쓰여지는 법이란 말이다.


 후일담이란 형태의 글쓰기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할 이유는 크지 않다. 하나의 서사를 사후 검증과 풍부한 주석으로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당대의 시대정신으로는 보편적 가치를 획득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보편성을 확보하면서 재해석되는 경우에는 무척이나 유효한 틀이 될 수도 있다.


 후일담이 부정적인 의미를 드러내게 된 것은 아무래도 90년대 ‘후일담소설’이란 문학비평용어의 등장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자기서사의 윤색이라는 후일담의 치명적인 약점이 그대로 노정되었고 거기에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분법적 단절을 선언적으로 그려냄으로써 후일담소설이란 비평용어는 하나의 멸칭으로까지 자리 잡게 됐다. 


 후일담이란 형식으로 자기서사의 윤색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인간 본연의 습성일 수도 있다. 심리학이 말하는 귀인 오류란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려는 습성이 있는데, 자기 자신이 원인일 경우에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등의 방어기제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송은정의 에세이는 잘 훈련된 문체의 여러 장점들이 잘 드러나고 있다. 문학적 글쓰기의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미학적인 문체일 뿐만 아니라, 비평과 같이 잰 체 가득한 학술문의 난해함과는 거리가 먼 독해용이한 문체는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마뜩찮은 이유는 제목과는 꽤나 거리가 먼, 그저 그런 후일담이라서 그렇다. 90년대 후일담소설에서 흔히 보았던 자기연민의 서사라던가, 여기저기에서 드러나는 귀인오류며, 가슴 설레는 초기 상황에 대한 판타지적 회상서껀 탄식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성실과 노력을 증언해줄 유일한 목격자이자 대변인이 되어 남들 보기에 번듯한 폐업 사유를 나열하고 있었다. 능력 있는 책방 운영자로 성장하지 못한 자신을 방어하는 데 급급했다. 내 안의 인정 욕구와 자존심이 서로를 밀치며 투닥거렸다.“
- 165쪽


 책의 제목을 짓는 것은 정말 큰일이다. 책이 어떤 장르에 속하며,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제목을 짓는 것에도 오래된 관습이 존재하고, 그 관습의 틀 안에서 제목을 독해하는 전통이 존재한다. 그런 이유로 역서의 원제를 보는 것만으로도 국내번역본의 마케팅용 제목의 헛헛함은 잘 드러나기도 한다. 

 그런 제목 독해의 관습을 통해서, 우리는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란 제목을 통해 책은 책방을 닫게 된 이유에 대한 통열한 자기반성과 이후에 대한 단단한 자기 결심이나 보다 치밀해진 미래 계획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어 보면...

 다음 리뷰에서 다루게 될 김민채의 《언젠가는, 서점》(2019, 북노마드)에서는 책의 초반부인 2번째 장에서 “창업 전에 읽는 폐업 이야기”란 소제목으로 이 책을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 명백히 전해져오는 “폐업이야기”에 대한 아우라에 비해, 폐업에 대한 고민은 그리 많지 않다.   



2. 책방 창업을 고민한다면 일독하길 권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서, 아무리 책을 읽어봐도 직접 경험하는 것에 비할 수는 없다. 경주에서 놀랄만한 성공을 거둔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의 양상규 대표 역시 책방이름과 같은 제목의 책에서 경험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책방 점원으로라도 일해 본 다음에 책방 창업에 뛰어들기를 강권하고 있다.

 책방 점원이 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점원을 고용할 수 있는 규모의 서점의 수도 많지 않지만, 그껏해야 파트타이머의 자리조차도 오버스펙이 되는지라 중세시대 도제와 같은 불안한 고용상태로 견습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불합리에 놓인다. 이래저래 고역이다.


 그렇다 보니 간접경험, 즉 책을 통해서라도 남의 경험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 

“ 제가 서점을 구상하면서 처음에 한 일은 생각해보니 참 어처구니없게도 서점에 가서 서점에 관한 책을 사서 읽는 거였어요.
노명우,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2020, 출판사 클”


 니은서점의 마스터북텐더 노명우는 그렇게 읽은 여러 권의 책으로도 제대로 된 갈피를 잡긴 힘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영업 창업을 준비하면서 예전에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책 몇 권조차 읽지 않고 덤비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먼저 경험하고 실패한 사람들의 뼈져린 조언들이 꽤나 많이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읽어 두면 도움이 될 만하다.


"일단멈춤을 시작한 뒤로 주 6일, 하루 평균 9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다. 그렇게 벌어들인 매출에서 월세와 각종 세금, 도서 구입비, 워크숍 강사비, 위탁 수수료 등을 제하고 나면 60~80만원 남짓의 순이익 손에 남았다. 2016년 최저임금 6,030원. 하루 8시간씩 주 5일을일하는 근로자의 임금 1,260,270원보다 못한 액수다."
- 153쪽


 자영업이란 이렇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창업자 1인 노동력에 기대는 소규모 서점 창업과 같은 경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책방을 운영하며 전업 작가의 길을 닦고 싶었다”는 송은정은 “철없는 욕심이었을까”를 자문하게 됐다.


"회사를 나왔다고 해서 자유분방한 삶이 내 품에 와락 안기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일단멈춤의 안녕을 위해 저녁을 담보로 시간을 빌려 쓰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저녁에 진행되는 워크숍이 주된 수입원으로 자리 잡으면서 일주일에 두 번 뿐이던 수업이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됐다. 자연히 퇴근 시간도 늦춰졌다."
- 119쪽


결국은 이런 것이 1인 자영업의 현실이란 것이다.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소규모 책방을 열겠다는 나이브한 아이디어는 철회하기로 했다”고 책의 서두에서 말하고 있지만, 자영업에 대한 나이브했던 접근방식은 책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읽어두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교훈들이 제법 많다. 특히나 책방 창업을 고민하고 있다면 일독을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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