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노마드, 2019. “읽기 쉬운 자영업 창업 일기”
저자 김민채는 부산 해운대에 이어, 현재는 전남 순천에서 책방 “취미는독서” @librairie_aimer_lire를 운영하고 있다.
창업이란 행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이룩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름의 서사를 띌 수밖에 없다. 이야기성이 풍부한 이 서사의 과정은 문학적 글쓰기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책방지기들이 쓴 책들은 보통 에세이의 형태를 띄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문체적 미학이란 문학적 성과를 위해 경험이란 이름의 지식을 전달하는데 꽤나 실패하곤 한다. 그렇다 보니 김민채의 책처럼, 문체적 미학을 구축하기 보다는 전달성을 높이기 위해 이해용이하고 친숙한 문장들로 구성된 실용서에 가까운 개인적 체험의 일기는 보다 많은 정보를 전달하게 된다. 미덕이다.
특히나 전문가를 자칭하는 꼰대들에게는 익숙해져버렸고 또 그렇게 써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문체가 있다. 관공서에서 유래한 공적 문서의 문체에 영어식 학술 문체가 결합된 꽤나 요상한 문체 말이다. 이 문체에 익숙해져서 좋은 점 하나는 구글 번역기로 돌리면 몹시나 익숙한 영어문장들로 바로 번역된다는 점이다. 이런 문체는 읽기 편하지 않다. 같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도, 아재 문체는 짜증날 정도로 잘 읽히지 않는다.
김민채의 문체는 문학적 수사도 절제되어 있고, 쓸데없이 복문으로 문장을 늘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짐짓 겸손함을 가장한 것 같지도 않은 편한 문장(꼰대들은 유치해서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쓰겠다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 편하게 잘 읽힌다.
다만 권두에 선언적으로 제시한 문구와 마찬가지로 동전의 양면과 같은 택일의 문제에 닿게 된다.
“읽기 전에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했기에, 당신이 실제로 서점을 창업할 때 걸어갈 방향을 제시하는 행인이 될 수는 있지만 완전한 정답을 알려줄 수는 없다.“
책 속에서 답을 찾고 싶은 독자들은 보통 전문가의 저서를 찾게 될 뿐만 아니라, 권두언을 통해 자신감 있게 길을 알려주겠다는 선언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독서경험이 일천할수록 권위에 기대기가 쉬운데, 이는 독서에 쏟아내는 수고로움에 비해 더 많은 지식을 축적하길 원하는 경제적 태도에 기인한다. 그렇게 “당신 곁에 나의 경험이 머무름으로써, 당신이 조금이라도 외롭지 않기”를 바란 저자의 진심은 전달되기 전에 외면당할 수도 있다.
처음 자영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꽤나 많은 것들은 놓치곤 한다.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이 생긴다고 해도, 같은 실수는 꽤나 반복된다. 그게 인간이라서 말이다. 그렇다 보니 꼼꼼하게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일을 진행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늘상 예상치 못했던 사소한 문제들이 갑작스레 뒤통수를 치기 때문에 패닉에 빠뜨린다. 참 못해먹을 노릇이다.
오래된 소규모 점포의 건축물 대장을 확인해 본다든가, 창업지원센터와 같은 창업지원제도에 접근해 본다던가, 꼼꼼하게 사업계획서를 써본다든가, 대중적인 결제 방식을 살펴 본다든가, 로고 등 BI에 대해 디자인 측면에서 고민한다든가, 독립출판물과 굿즈 등의 입고에 대해 운영 측면에서 고민한다든가 하는 꽤나 꼼꼼하게 톺아 보는 노력은 눈여겨볼 만하다.
무엇보다 “취미는독서”라는 브랜드의 브랜딩 과정이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브랜드의 콘셉트를 구체화하는 이유는 결국 차별화를 위한 포지셔닝(positioning)에 도달하기 위해서다. 그 차별화는 브랜드의 고유성이나 정체성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브랜드를 만들면, 그에 맞춘 로고를 만들고 컬러 아이덴티티를 확립한 BI까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후북스가 어떤 콘셉트의 책방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작은 책방들은 한 가지 콘셉트를 가지고 개성 있게 꾸려나가는 곳이 많아서인 듯하다.
그러나 이후북스는 콘셉트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파는 것이 전부일 뿐.
- 21쪽, 《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 - 이후북스 책방일기》
평소대로라면 “콘셉트는 없다”고 바로 대답했을텐데.
그냥 책이 좋아서 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대단한 철학은 없습니다.
- 54-55쪽, 《오늘도, 무사》
특별한 콘셉트는 없는데요, 제가 읽어보고 좋았던 책과 주변 출판계 지인들의 리뷰를 살펴 좋은 책이라 판단되는 책을 가져다 둡니다. - 213쪽
책방지기의 책 중에서 니은서점 노명우의 책 다음으로 읽은 이후서점 황남희의 책에서 경악했던 구절과 이 책에서도 인용하고 있는 책방무사의 요조가 쓴 책의 일부분이다.
사실 요조와 같은 경우는 사람 그 자체가 브랜드로 충분히 성장했기 때문에 책방무사에 또다른 아이덴티티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요조가 하는 서점”이라면 이미 충분히 설명이 되는 것이다. “아나운서 김소영이 하는 당인리책발전소”와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셀러브리티 서점은 서점 자체의 아이덴티티보다 셀러브리티의 아이덴티티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남을녀들의 서점은 “특별한 컨셉트는 없고 내가 좋아서 가져다 놓은 것”으로 고객을 설득할 수는 없다. 실제로 그렇지도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란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 큐레이션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데, 이를 체계적인 언술로 풀어내질 못했을 뿐이다. 혀를 찰 일이다.
바로 이어지는 문장 “한 분야로 특화되고 전문성을 가진 서점으로 계획되지 않았다”는 선언과 함께, “사람들이 쉽고 가볍게 좋아하는 것과 취향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란 차별성을 갖춘 콘셉트를 기술해내지 않았다면, 이 책을 집어던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 장까지 읽지 못하고 책을 집어 던졌다”고 리뷰 제목을 정했을 것도 틀림없겠다. 다행스럽게도 213쪽에서 215쪽에 이르기까지 납득할 만한 콘셉트와 입고 원칙이 간단하게 쓰여졌다. 공교롭게도 요조의 책, 《오늘도, 무사》 에는 〈취미는 독서〉란 소제목의 글이 205쪽에서 210쪽에 걸쳐 쓰여있기도 하다.
그래, 창업을 하자. 내 공간을 열고, 글을 쓰고, 계속해서 책을 만들자. -19쪽
공간을 가진 소상공인 창업자들이 가지는 참 나이브한 생각 중에 하나다. 빛 좋은 개살구 오너이자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노동자가 1인 창업의 현실임을 깨닫게 될 때까지 잘 깨지 못하는, 참 달콤한 꿈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브하다고 혀를 찰 순 없다. 그런 환상이 추동이 되고, 추동이 강력해야 행동이 이루어지니 말이다.
나이브함이 드러나는 부분은 부동산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드러난다. 권리금, 젠트리피케이션, 재개발에 대한 외부인의 약탈적 시각을 꽤나 진지하게 정당화하고 있다.
세대간 부의 격차와 같이 객관적인 자료로 일반화할 수 있는 담론에는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권리금이나 젠트리피케이션이나 재개발은 전세대를 아우를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완전히 다른 복잡한 계층적 양태를 띄게 된다. “낡고 허름하지만 멋스러운, 상대적으론 낮은 세를 주고 작은 가계를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몽땅 부셔 없애”는 것이 아니라, “너무 낡고 허름해서 도저히 살 수 없을 정도고, 다시 예쁘게 지어서 제대로 된 세를 받고 싶은 그런 공간을 드디어 갈아엎을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저 “나처럼 가난한 젊은 창업가”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내놓으란 생떼가 범접할 수 없는, 그네들의 생존권과 재산권 문제이기 때문이다.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곳들은 대부분은 오래된 구도심이다. 이미 100년 전부터 부동산은 비싼 곳이었고, 90년대 초반까지도 활발한 유동인구로 인해 높은 임대료를 구가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부동산 가격이 저렴한 논 위에 신도시들이 생겨났고, 그 신도시들이 성장하면서 구도심은 몰락하게 된 것이다.
구도심의 부동산 소유자들은 꽤나 큰 격차들을 보인다. 구도심에서 수십년간 독점적 지위에서 성장한 부자들도 있지만, 세입자 신세로 수십년을 살아오면서 겨우 집 한 채나 가게 하나 마련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유일한 재산이 받는 평가는 과거에 비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고, 일찌감치 신도시로 이주하는 약삭빠름을 갖추지 못했던 소시민들에겐 기약없는 재개발과 숨통을 죄는 듯한 도시재생이란 태클 속에서 한숨만 늘어갈 뿐이다.
한옥에 살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한옥 보전에 열을 올리는 것처럼, 구도심에서 부동산을 보유하고 사는 현지인이 아닌 사람들이 구도심을 도시재생해야 한다고 떠들어댄다. 그 불편함과 막막함은 내 몫이 아니기 때문에 더 말하기 쉽다.
진짜 싸워야 할 적은 다른 곳에 있다.
세제 개혁을 통한 소득격차의 완화와 사회안전망 구축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며, 특히나 부동산 공개념의 확대를 통해 약탈적 임대차 제도의 전반적인 진전을 고민해야만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현행 임대차보호법이 워낙 거지같아서 생기는 일이다. 가게를 키우고, 상권을 키우고, 그리하여 그렇게 키운 노력과 열정을 ‘권리금’이란 이름으로 지불받을 수밖에 없는 현행 임대차보호법의 맹점을 바라보기 보다는 그저 “이상하고 나쁜 관행”이라 매도하기 바빠서는 안 된다.
더 나이브해서 위험한 태도는 그 제도로부터 초연한 척 하는 것이다. 보통 권리금이 행사되는 건 영업권리금과 시설권리금이다. “취미는독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서점을 그대로 넘기는 것도 아니니 영업권리금을 요구할 수도 없다. 뛰어나고 범용성 높은 인테리어를 갖추어 놓은 것도 아니라서 시설권리금을 요구하기도 딱히 어렵다. 바닥권리금은 오히려 건물주에게 환원되는 형태의 권리금이다. 본인 입장에선 무엇하다 요구할 게 없는 권리금 영역의 문제를 마치 자기는 받지 않겠다는 듯이 써내려가는 걸 보면 기가 찬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는 건물주들의 욕심많은 심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해운대 우동3구역 재개발처럼 오랜 기간 재개발이 표류하는 곳도 그 복마전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저 가지고 있는 집 한 채가 아파트가 되는 것으로 일반적인 원주민들과 막대한 금융비용을 지불하면서도 그 이상의 개발이익을 얻어야 하는 투기자본이 얽힌 곳에서는 매번 그런 식으로 조합 설립이 표류하게 된다. 이익이 좀 적더라도 후딱 재개발을 했으면 하는 원주민의 소박한 바람은 매번 투기자본에 의해 좌절되지만, 이상하게도 욕은 원주민들이 먹는다. 그나마 눈에 보이는 실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두 배로 속이 상한다. 잘 구획된 계획도시 좌동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나가는 우동 다른 곳을 마천루를 바라보고 있는 원주민들은 오늘도 속이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