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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May 07. 2024

책방 프로그램 운영의 바이블

[북리뷰] 노희정_오늘도 책을 권합니다. 소동. 2021.

1. 사소한 것에 대단히 예민한 편


 북큐레이션은 책방과 도서관에서의 서가 편집(책 배치와 전시)을 일컫고, 개인에게는 맞춤형 책 추천을 말한다.
 북클리닉은 북큐레이터의 도움으로 개인별 소장 목록과 독서 이력을 점검하고 앞으로 받을 책 목록을 선정받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 4쪽 일러두기

 저는 용어의 정의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 편입니다. 그래서 주로 해당 용어들의 정의를 확인해 보기 위해 학술논문을 살펴보는 편입니다.

 북큐레이션이란 용어는 학술용어로써도 여전히 유동적인 편입니다. 주로 문헌정보학에서는 도서관 중심의 북큐레이션 개념을 정립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선별과 전시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그 밖의 학역에서는 주로 디지털 큐레이션의 개념에서 파생된 콘텐츠 큐레이션의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빅데이터의 개인맞춤 형태로 북큐레이션을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권두 일러두기에 약술한 북큐레이션의 개념이 아주 엉뚱한 것은 아닙니다만, 하나의 용어로 동시에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앞면이면서 뒷면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꽤나 모순적인 개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3장 ‘북큐레이션과 북큐레이터의 역할’이란 챕터는 아예 건성건성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큐레이션을 단순히 ‘서가 관리’로 치환하고, 북큐레이터를 ‘책방지기’로 바꾸면 별 무리 없이 읽어볼 내용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북클리닉이란 용어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습니다. 니은서점에서 북텐더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그냥 자기 서점의 서비스에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네이밍을 하는 것까지 트집 잡을 일은 아니니까요. 



2. 정말 도움 될만한 미세나노팁의 향연


 이 책은 우연히 곰곰이 책방을 들렀던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 시작되었다. ‘나의 20년 책방 운영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용기를 냈다. - 6쪽. 들어가는 글 / 책을 권하는 즐거움에 이끌리다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문체로 정말 도움이 될만한 미세나노팁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특히나 5쪽에서 27쪽에 이르는 ‘처음 차릴 때 고민한 것들’에서는 참 깨알 같은 팁들이 보입니다. 이건 직접 책방을 운영해보지 않고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인지라, 많은 내용들이 생략됐음에도 꽤나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책방을 지키면서는 책 읽을 시간이 없기에 책방에 일찍 출근해 혼자만의 책 읽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는 게 좋다. 마감 후 30분이라도 시간을 내서 그날 도착한 신간을 읽어보고 퇴근한다. 화제가 되는 책은 짬을 내서 읽어두는 게 좋고 그 책을 찾는 분들에게 설명을 해주면 더욱 좋다. - 32쪽

 책방지기에게는, 특히 혼자서 책방을 지키는 경우에는, 업무시간 내에 책 읽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는 걸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어느 자영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말이지 할 일이 차고 넘칩니다. 가끔 넋 놓고 앉아 계시는 자영업자들을 보는 경우도 있는데요, 둘 중 하나입니다. 정말 바쁘게 일하다가 잠시 쉬는 것, 그도 아니면 이제 곳 망할 상황이라는 것. 

 이렇게 짬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열심히 일하는 자영업자들은 잘 압니다. 그러나 그런 미세나노팁을 적절한 순간에 적당한 말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희정의 책은 읽을 만합니다.


 4장 ‘책방을 살린 프로그램’에서는 주목해 볼만한 조언들이 쏟아집니다. 이어서 5장과 6장에서도 눈길을 끄는 팁들이 계속됩니다. 내가 지금 책방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독서 지도 학원 매뉴얼을 읽고 있는 것인지 헛갈릴 정도로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해 세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발췌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강좌는 독서 강좌인데 일주일에 한 번 책방에 모여 책 읽고 토론하고 글 쓰는 수업이다. 물론 강좌비는 따로 받고 책값도 별도다. 
 일단 책 선정이 좋아야 하고 프로글매이 체계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책을 도서 종류별, 발달 단계별, 출판사별로 분류해서 여러 선생님들과 생각해 본다. 선정한 그림책이나 동화 중 감상용으로 괜찮은 책과 토론과 글쓰기용으로 괜찮은 책을 나누고 소장 가치가 있는 책들을 골라낸다. - 60쪽
 우리는 지난 25년간 봐왔던 그림책과 동화책, 비문학책까지 많은 책 목록들을 갖추고 있다. 책방 선생님들과 공유할 수 있는 목록들도 많이 있어 우리는 ‘추천도서 목록 부자’라고 한다. 그래서 적절한 책 선정과 책 지도를 할 수 있고 앞으로도 책을 추천하고 설명하는 일들은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 - 62쪽
 아이의 연령과 취향, 형편에 맞게 북클리닉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기존 회원들 중에 책 고르기가 힘들어 꾸준한 책관리와 우선 상담을 원하는 분들부터 시도해 보았다. 아이의 연령과 성별, 그동안 어떤 책들을 읽어왔는지 상담해 기록하고 현재 독서 상태는 어떤지 알아보았다. - 77쪽

 북클리닉은 곰곰이 책방이 가장 공을 들여서 상담을 하며 보람을 느끼는 제도이고 아이들과 회원들에게 유익하면서도 책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알찬 제도다. 우리는 곰곰이  책방이 선정한 목록들이 강매가 되지 않게 조심한다. 부담되어 책이 싫어져서는 안 되고 매달 선정한 책들이 기다려져야 우리도 보람이 있다. -82쪽
 이백 권 가까이 꽂힌 책은 3단 책꽂이가 가능하고 1년 동안 읽는 거니까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그래서 3단 서재 만들기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다. - 88쪽
 2020년 들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알게 하는 회원제를 만들었는데 이름은 ‘책재미 회원제’다. 북클리닉 회원에 비해 권 수는 적지만 한 달에 한두 권 읽으며 책 재미를 붙이는 회원 제도다. - 88쪽
 우리는 책방을 운영하며 곰곰이 신문을 만들어 이런 프로그램을 알려가기로 했다. 곰곰이 신문은 8면 중 4면은 책 소개와 책 관련 행사 내용을 싣고, 나머지 지면에는 어린이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해서 쓴 글과 기자 출신 청소년들이 쓴 칼럼을 실어 월간으로 발행하고 있다. 20년 역사가 된 곰곰이 신문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보관되어 있기도 하다. - 98쪽
 곰곰이 책방에서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를 연계해서 견학 프로그램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원하는 시간과 프로그램이 잘 맞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시간과 장소를 내준다면 책방으로서는 홍보에도 도움이 되고 아이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다. - 118쪽



3. 편집이 부재한 목차

 

막상 책을 읽다 보면, 읽은 걸 또 읽고, 그리고 또 읽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물론 느낌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쓴 걸 또 쓰고, 그걸 또 썼습니다. 책 원고를 쓰면서 일괄적으로 기술한 것과 기존에 써두었던 관련 원고(곰곰이 책방 이야기라는 표제가 붙은 다른 색의 페이지들)를 그저 같은 주제란 이유로 붙여놓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며, 전체적인 맥락에서 유기적으로 목차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앞에서 한 이야기를 뒤에서 또 하게 됩니다.

 저는 이런 중언부언을 엄청나게 싫어하는데요, 보통 두 가지 문제 때문인지라 더더욱이나 싫어합니다.

 첫 번째는 작가의 아집으로 편집자의 권한을 뭉갤 때 생기는 현상입니다. 원고는 작가가 쓰지만 책은 편집자가 만드는 거더군요. 정말 원고 많이 잘라먹고, 정말 많이 고칩니다. 그런데 그런 편집자의 업무를 작가가 막고 서면 답이 없습니다. ‘내 원고에 함부로 손을 대지 말라’는 작가들을 만나면, 편집자들은 속이 터진다고 하네요. ‘그럼 손 안 대도 되도록 글을 무척 잘 써주던가’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린다고 합니다. 결국 편집자의 기획 의도와는 다르게, 산으로 가는 책이 나온다는 거죠. 둘째는 편집자도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이 중구난방인 원고를 만났을 때입니다. 거의 대필 수준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손을 쓸 수가 없는데요, 이미 출판계약은 체결했으니 책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겁니다. 손절하는 마음으로 출판이 이루어지기도 한다네요. 

 물론 이 책이 그 두 가지 이유 중에 하나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제가 편집한 책도 아닌지라, 더더욱이나 알 수 없는 일이라서요. 그저 목차 작업이 좀 더 매끄럽고, 기존 원고를 해체해서 중복되는 내용들을 정제했다면 더 좋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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