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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Jan 09. 2023

[북리뷰] 김진양_『술 먹는 책방』

경기도 파주: 나무+나무. 2015. "없어진 줄만 알았던 책방 이야기"

1.

작년 이맘때였던 것 같다.

동네책방에 대한 관심이 좀 커졌고, 그런 이유로 동네책방의 책방지기들이 쓴 책들을 한참 찾아보던 때였다.

서울도서관에서 펼쳐보았던 이 책을 그때 빌려보지 않았던 건, 책방이 없어진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상암동에 있다던 북바이북이 네이버지도에서 찾아보았더니 보이질 않았다. 하나은행과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되었던 한시적 프로그램인 줄로만 알았던 '광화문 컬처뱅크'로 완전히 옮겨갔을 줄은 생각조차 못했던 탓이 크다.

작년 10월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어딘가에서의 수다를 통해 당주동에서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도 꾸물거리다가 이제서야 다시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2.

우치누마 신타로가 먼저였는지, B&B가 먼저였는지, 이제 와서는 선후를 알 수 없게 됐다. 『책의 습격』, 『앞으로의 책방독본』의 저자이자, 리틀프레스 누마북스의 대표이면서, 일본 서점문화에 새로운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B&B'의 대표인 이 사람을 어떻게 처음 알 게 된 건지 말이다. 국내에선 '땡스북스'와 '북바이북'에 영감을 주었으며, 책방지기들의 성지순례 가이드로 잘 알려진 겐코샤의 무크지 『도쿄혼야상기행(번역서명은 도쿄의 서점)』에도 수록된 것으로도 알고 있다. 심지어 『술 먹는 책방』을 읽다 보니 겐코샤의 무크지가 열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야든동 우치누마 신타로와 'B&B'는 무척이나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형태의 서점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때는 온라인으로 BM을 전환해 성공적인 비보팅을 선보였던 'B&B'의 이력이나 구도심재개발로 이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력까지 일본의 '町の本屋'나 우리네 '동네책방'이 처한 현실이 그리 다르지 않구나 싶은 마음에 더 관심이 갔는지 모르겠다.

이런 저런 책들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일본과 한국의 서점들간의 관계망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벤치마킹의 대상과 그 영향의 결과가 선명해졌다. 이 책을 읽어 봐야 할 이유 역시 더 선명해졌다.



3.

책방기행에 관한 책들의 내용을 그닥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 그도 그럴 것이 기껏해야 두어 번 방문한 서점에 대해서 설익은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완전히 내 것이 된 감상이나 분석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자료'들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 내 것이 아닌 생각을 글로 포장하게 된다. 피상적이거나 표피적이거나 무책임한 글들이 책 안에서 부유하게 되는 경우가 잦다. 모순적이게도, 겐코샤의 무크지는 오히려 '자주 방문해 봐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현지인의 시선'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책방에 대한 책을 선택한다면 차라리 책방지기의 정체불명의 책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한 번 책을 골라 잡을 이유가 강화된다.

책방지기들이 쓴 책들을 여러 권 읽다 보니, 매번 같은 불만을 내뱉다가 벌컥 짜증이 난다.

문장에서는 문체적 미학을 찾아보기 어렵고, 목차는 도대체 왜 쓴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편집력은 바닥이며, 특히나 써놓은 짧은 글들을 되는대로 엮어내서 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응집력 없는 넋두리를 둘러 보자면,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울' 정도다.

이쯤 되면 여러 것들에 대해 둔감해질 만도 한데, 당최 익숙해지지도 않아 신경질이 날 정도로 예민하기만 하다.


이 책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짜증은 확실히 덜 난다.

'문장력'이 의심스럽지만, 제법 문체가 깔끔해서 읽기에 불편하지 않다. 물론 읽기 좋은 편은 아니다. 식상한 관용표현이 어지럽게 반복되고, 성의없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들로 문장은 단조롭다. 간단하고 명료한 문장들이 '쏙쏙 잘 읽히지 않는' 이유와 맞닿는다. 문득 "요즘 사람들의 문해력"이란 걸 고민해 보긴 한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나의 문장들은 쓸데없이 고식적이며, 유난스럽게 현학적이라는 비판을 받곤 한다. '쉽고 잘 읽히게 힘 좀 빼고 쓰라'는 주문이 그만큼 잦다. '사흘과 심심한 사과'에 분노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문해력이 그저 그 세대에만 한정되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우리 또래인 40대 후반이나 넓게 봐서 50대 초반까지도, 평균적으로는 대단한 어휘력을 갖추고 있진 않다. 인터넷에서 넘쳐나는 '짧고 간단한 문장'의 정보에 익숙해진 시대인지라, '좋은 문장'에 대한 고민은 좀 다른 지점에서 숙고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장 큰 불만은 도대체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인가이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한국에세이'로 분류하고 있지만, 국립중앙도서관과 관악도서관에서는 한국십진분류법에 따라 '013 출판 및 판매'로 정리하고 있다. 그냥 써내려간 산문을 도대체 어떻게 규정해야할지 사서들에게 큰 시련이 되는 책들이 너무 많아진 탓이다. 814에 넣기에는 문학성이 성립되지 않고, 013으로 넣기에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숱한 책들이 사서에 따라서 어느 한 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람들이 보통 책을 살펴볼 때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이 책날개에 적힌 저자의 이력이다. 어떤 경력을 갖춘 사람이 이런 제목(제목은 살펴보는 과정 이전의 직관적이고 근본적인 인지 단계의 문제다.)의 책을 썼는지를 살펴보기 마련이라서 그렇다. 좀 더 내용적으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목차를 살펴 본다. 이 책이 어떤 얼개로 짜여졌는가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차를 살펴 보다가 오히려 미로에 빠지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책이란 것이 가져야 하는 기본인 '일관된 통찰력'이 결여됐기 때문에, 목차가 파편화된 탓이 크다. 그렇게 의미를 상실한 목차는 '독특한 말장난'으로 분식(粉飾)에 빠져든다. 의미없음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서 목차를 봐도 우리의 이해는 '안드로메다은하'쯤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게 된다. 이 책도 여지없다.



4.

2013년에 준비해서 개업한 서점이며, 책의 원고는 2014년에 씌여져 그해 말에 출판됐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간의 갭이 존재한다. 이제 와서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있을까 싶어질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독을 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물론 이미 상암동을 떠나 버린 '로컬기반 자영업'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생각해 본다면, 다른 브랜드 요소들도 꼽씹어볼 가치가 있겠나 하는 회의가 생길 법도 하다.


‘책방’이란 공간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꽤 낭만적으로 그려지고 실제로도 우아하고 서정적인 공간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낭만적인 느낌만 보고 책방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막상 책방을 해보니 ‘책’이라는 것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맣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아이템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책이란 것은 알면 알수록 너무 겁다는 사실에 정말 체력적으로도 힘에 부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 208쪽


동네책방이란 '사업'이라기 보다는 '자영업'이다. 이거 몹시 힘들다. 세상의 어떤 일도 도제식 수업을 통해서 '업의 정수'가 전수되지 않는 경우가 없다. 자영업은 더욱이 그렇다.

'공급과잉'의 자영업 시대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고품질 공급자의 부족'이라고 모종린 교수는 말한다. 이 부족현상의 이유로는 직업교육이 부재하는 학교교육과정, 자영업 창업자들의 경험 부족, 그리고 장인 정신의 결여를 꼽기도 했다. 준비되지 않은 자영업자의 '낭만적인 사고'는 언제나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말랑한 생각'이 차고 넘치고 있지만, '업'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꽤나 진중하게 고민하는 흔적이 몇 군데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읽어 볼 만하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립하면서 그에 맞는 브랜딩이 제법 잘 된 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베끼기'로 욕먹을 수도 있었던 상황을 완전히 긍정적으로 '벤치마킹'한 것으로 평가받은 것도 그렇지만, 살롱문화의 맹아적 형태를 꽤나 성공적으로 엮어낸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작은 규모의 동네책방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의 마케팅을 최대한 동원한 것도 눈여겨 볼 만하다. 여전히 주목해 볼만한 것들이 다음과 같다.


주간베스트 칠판을 시작으로 북바이북의 모든 옥외 광고(?) 수단은 칠판이 되었다. 북바이북 제휴기업 공지, 커피 무료로 먹는 법, 다독왕 공지, 북바이북에서 구매한 책 북바이북에 다시 파는 법, 맥주무로로 먹는 법, 북바이북 주요 행사 일정 등 알려야 할 주요 내용은 칠판을 통해 전하기 시작했다. - 232쪽
책꼬리와 독서카드를 써 주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책꼬리는 북바이북에 있는 책, 북바이북에 없는 책, 북바이북에서 구매한 책, 북바이북에서 구매하지 않은 책, 북바이북에 추천해주고 싶은 책 등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책 추천평을 말한다. 매장에 들렀을 때 책꼬리로 디자인된 하얀색 도화지에 직접 손글씨로 써줘도 되고 바쁜 살마들응 메일로 보내기도 한다. -241쪽
독서카드 역시 북바이북에서 구매한 책이 아니어도 어디서든 읽은 책에 대한 간단한 10자평을 함께 채워 나갈 수 있다. 독서 카드 10권을 채울 때마다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데 한 번 방문에 10권 모두 채워 적고 커피를 무료로 마시는 손님을 만날 때면 놀람과 동시에 존경심까지 생긴다. - 244쪽


경계해야 할 태도도 곳곳에서 나타나지만 딱 한 가지만 특기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런 식이면 대체로 망한다.


언니가 1호점인 소설전문점을 담당하게 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면 바로 ‘소설전문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책방 느낌을 만들어가는 것이이었다. 하지만 ‘소설전문점’이라는 책방으로 참고할 수 있는 책방의 모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도 처음 해보는 시도라 어떤 것이 ‘소설스러운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 220쪽


'B&B'와 '북바이북'이 '가볍게 술 한 잔 하면서 책을 읽어 보며 고를 수 있는 책방'이라는 새로운 소비자의 욕구wants에 주목했다는 점을 떠오려 보자. 콘셉트까지 완벽하게 장악해 내면서 어떤 아이템을 판매해야 할지까지 일관되게 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의 욕구wants는 커녕 소구needs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소설전문점'이란 콘셉트는 감이 잡힐래야 잡힐 수가 없다. 망하지 않은 건, '술 먹는 책방'이란 콘셉트의 강렬함 때문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브랜드 네이밍에서 생각해 볼 것이 많다.

"북바이북은 북스퀘어Book x book is book²" 따위의 말장난을 혼자서 해보기는 했지만, 이 풍부하게 활용할 수 있는 말장난에 주목하진 않은 모양이다.

개인적으로도 영어와 기호의 말장난을 브랜드 네이밍에 활용했다가 폭망한 경험이 있어서 주저하게 되곤 한다. 보통 사람들은 영어와 기호의 말장난에 쉽게 반응할 정도로 스마트하지 않다.

책에서도 언급되는 "배러댄초콜렛, 팥티쉐 김영신https://www.instagram.com/mrs.magaret/"도 그 지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1999년에 나온 영화 <Better than Chocolate>이 생각나거나, '베터'가 아니라 '배러'로 뒤짚은 것이 오히려 'batter'를 떠올리게 하며 다른 업종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다만 '팥티쉐'만큼은 의미가 명확해진다. '팥으로 디저트를 만드는 사람'정도를 쉽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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