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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Dec 29. 2022

[북리뷰] 강성호_『서점의 시대』

서울:나무연필. 2022. "파편적인 서점사나 할 만큼은 다 했다"


1.

 이런 책이 출판되었구나 하고 알게 된 건 순천의 동네책방, '골목책방 서성이다'의 인스타그램 피드 때문이었던 것 같다. 워낙 여러 차례, 정성 들여 책을 소개한 탓이 크지 않나 싶다. 저자가 잠시 동네책방을 운영하기도 했던 동네이며, 지역사회 자체가 동네책방 친화적이기도 해서인지, "다정한 동네 이웃"의 애정은 좀 각별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후 이 책에서도 북한학 전문서점으로 언급되기도 한 우리 동네의 '이나영책방'이나, 신림동에선 너무 멀어 그저 마음으로 응원만 하는 연신내의 '니은서점', 지역의 중형서점의 이상적인 형태가 아닐까 싶은 구미의 '삼일문고' 인스타그램 피드에 소개되면서 관심은 올라갔다.

마침내 표지에도 로고가 올라온 신림동 '그날이오면'에서 책을 집어 들 수 있었다.



2.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movable type) 발명국'이란 국뽕 한 사발은 서적의 대량 생산 시스템을 구축한 구텐베르크의 업적을 뛰어넘기 어렵다. 오히려 15세기 이후 조선 사회가 '책'이라는 미디어를 일부 지식층에게 독점할 수 있게 했던 만행이 19세기 후반까지도 이어졌다는 걸 떠올려 보면, 들이켰던 국뽕을 토해내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는 19세기 후반까지도 서점의 역사는커녕 '책의 역사'조차 논하기 어렵다. 결국, 이 책이 제한적이고도 분절적인 기술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맞닿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author와 출판권copyright의 개념이 발생할 수 있게 된 것은 구텐베르크에 의해 출판산업publshing industry이 형성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서점의 역할이 규정되는 건 유럽에서도 19세기초에서야 가능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반도에서 출판산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가 갖춰진 것이 19세기말이고 민간 영역에서의 영역 확장은 20세기 초반에나 가능해졌다. 그렇다 보니 서점의 시대도 이때와 맞물릴 수밖에 없었을 테다. 무엇보다 출판과 서적 판매가 분리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단기간에 걸쳐 밀려들어온 '출판산업'이 극동아시아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이쯤 되니 이시바시 다케후미의 책, 『本屋がアジアをつなぐ 自由を支える者た』가 떠오르기도 한다.(물론 나는 일본어를 잘 알지 못하기에 국내 번역서로 읽었다. 유유출판사에서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라는 생뚱맞은 제목으로 내놓았는데, 원제를 번역하자면 '책방지기가 아시아를 잇는다: 자유를 지키는 이들' 정도가 될 듯하다. 번역가 박선형 선생도 이 제목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편집자에게 어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하튼 20세기 초반에 중국과 일본에 나타난 서점의 형태들은 출판사이자 지식인들의 살롱이자 새로이 나타난 저자들의 상품 판매처로서의 역할을 해냈다.

 그리하여 이 책은 부족한 자료를 열심히 그러모아서 20세기 한국 사회의 서점사를 통시적으로 고찰해 냈다. 꽤나 훌륭한 일을 해 낸 것이다. 글이 몹시 단절적이고 파편적일 수밖에 없는 건, 이 땅의 서점들이 격동의 20세기 동안 끊임없이 부침을 거듭했기 때문일 테다. 그 격류의 변곡점을 잘 짚어낸 것만으로도 이 책은 할 일을 다했다고 본다.


3.

 이 책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는 주요한 변곡점들로는 3가지 정도가 될 듯하다.

 첫째로는, 일제의 사상검증에 따른 좌파 이론서의 탄압과 분서(焚書)가 이루어졌던 1930년대와 군사정권에 의해 인문사회학서점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졌던 1980~90년대가 한 축을 이룬다. 질곡의 세월을 타파해 나아가기 위해서, 서점을 통해 책이란 미디어로 새로운 사상이 퍼지던 시기였다. 그로 인해 수요의 증가와 공급의 감소라는 기묘한 시장 상황이 빚어졌기에, 역설적으로 서점의 성장기가 되기도 했다.

 둘째로는, 해방 이후와 1950년대 그리고 1980년대에는 시장에 공급이 늘어나던 시기였다. 워낙 위축되었던 출판시장이 해방과 휴전으로 시장의 자율성을 제공해주었고, 1980년대에는 반덤핑제도의 도입 등으로 인해 공급자에 꽤나 큰 안정성을 제공해준 것이다. 2014년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독립서점'이 시장 포용력을 넘어서서 늘어나고 있는 현재의 상황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 가능할 듯하다.

 마지막 변곡점으로, 시장의 위축으로 인해 '살아남은 자들의 성장'이 가능했던 시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수요가 감소하거나 공급을 위축시키면 살아남은 소수에게 독과점의 지위가 발생한다. 이때 시장은 '고급시장'으로 성장하기도 하는데, 이때 포지셔닝을 잘 하면 시장 위축 시기 이전의 최성기보다 더 나은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 몹시나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은 아날로그 상품들이 하나 같이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1930년대 일제의 탄압으로 본정통의 일본서점들은 '아도'를 칠 수 있었고, 1960년대말 과도한 도서덤핑으로 모두 나자빠질 때 살아남은 서점들은 대형화할 수 있었으며, 2000년대 후반 인터넷서점과의 경쟁에서 중소형서점들이 죽어나갈 때에도 초기 '독립서점'들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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