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철 May 31. 2024

왜 번역한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책

[북리뷰] 가쿠타 미쓰요, 오카자기 다케시. 아주 오래된 서점. 문학동네

 2005년 4월 일본의 출판사 포푸라사(ポプラ社)에 책 한 권이 나왔습니다.

 소설가 가쿠다 미쓰요(角田光代)와 독서칼럼니스트 오카자키 다케시(岡崎武志)가 함께 쓴 『古本道場』가 그 책입니다. 일본인들은 '道'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듯합니다. 전통종교로 발전한 신토(神道)와 계급적 이데올로기로까지 부상한 부시토(武士道) 그리고 그 둘의 정수가 이어졌다는 치도(茶道)까지, 어떤 정신적 활동의 체계가 갖추어지는 것이 있다면 그렇게 열심히 '~도'라는 이름을 붙이는 듯합니다. 검도, 유도, 공수도와 같은 경우도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서 작명이 이루어진 것이겠지요. 후루혼도(古本道) 역시 같은 맥락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보입니다. 헌책이나 중고책이라고만 번역하기 어려운 후루혼이란 개념은 영어로도 used book만으로 번역되지 않습니다. 오래된 책도 후루혼이고 고서적도 후루혼이고 고가의 골동품도 후루혼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일본사람들에겐 아주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직관적인 제목인 후루혼도조겠지만, 우리말로 '헌책도장'같은 것으로 번역한다면 그 의미가 안드로메다로 가버립니다. 그렇다 보니 아주 생뚱맞은 번역서명인 『아주 오래된 서점』이 되었겠네요. 원제목과는 너무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담고 있는 내용을 1도 예감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번역제목을 가져다 붙였습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이음절로 '똥망'이라고 일컫습니다.


 일전에 저는 이지민의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를 다 읽고 악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글이라도 재밌게 써야 읽는 맛이라도 있"으며, "지루한 개인사의 나열은 주제인 책방 이야기와 맞닿지도 않고, 쓸데없는 책 이야기들은 빙빙 겉돌기"만 하다고 타박을 놓았죠.  이 책도 그런 지적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소설가 가쿠다가 개인적인 서점 탐방과 구매 경험을 정리하면서 개인사를 섞어 넣습니다. 그러고 나면 '사부'인 칼럼니스트 오카자키가 장소와 헌책방에 대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불편부당한 독자라면 응당 같은 반응을 보여야겠습니다만, 이번에는 경우가 좀 다릅니다. 일단 글이  재밌습니다. 작정하고 유머를 버무린 글이니 읽는 맛은 넘칩니다. 게다가 집필 의도 자체가 헌책을 만나는 개인의 감각을 어떻게 총체화 하느냐를 다룬 글입니다. 개인사와 책 이야기는 필수요소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구조적 유사성을 근거로 이 책도 같은 비판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절반 즈음인 와세다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당최 알아먹을 수 없는 소리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도쿄의 지리를 잘 알지 못합니다. 에도에서 도쿄로 성장하면서 도시가 어떻게 확장되었고, 각 지역은 어떤 형태로 변화해 왔는지도 잘 알지 못합니다. 도쿄란 도시의 연혁을 이해하지 못하니, 지역에 대한 언급들은 그저 공염불이 됩니다. 여기에 알 수 없는 작가들의 이름과 펼쳐본 적 없는 책들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송은영의 『서울탄생기』에 등장하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대표 작가와 그들의 소설은 웬만한 것들은 죄다 알고 있다는 것과 너무 차이가 났습니다. 알 수 없는 동네에서 알 수 없는 작가들의 알 수 없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니, 과장되었지만 재미있는 개념인 '후루혼도'만으로는 책장을 계속 넘길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중간에 책을 덮어버리게 되니, 번역해서 출간한 출판사에 궂은 몽니를 좀 부리고 싶습니다.  문학동네가 이 책을 번역해서 내놓은 게 2017년입니다. 우리나라에선 헌책방이 거의 다 말라죽은 시기죠. 일본이나 한국이나 중고서점의 대형화와 온라인화로 인, 더욱이나 시장이 기형화 하던 시기였고요. 그제야 이 '낭만적인' 12년 전 책을 번역한 이유를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목이나  그럴듯하게 바꿨으면 모를까, 엉터리 작명에 짜증은 더 커집니다. 이 20년 된 책을 도서관 일본수필 서가에서 꺼내 들면서 들었던 의아함은 마침내 참혹함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일본인에겐, 특히나 도쿄에 오래 살아온 이들에겐 지금 읽어도 좋을 책인 것 확실합니다만, 도쿄를 모르는 한국인이 20년이나 지난 지금 읽기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출판된 지 7년이나 지난 책을 펼쳐보라더냐며 타박할 수 있겠지만, 그즈음에 출판되었어도 여전히 읽을 만한 책들이 있다는 것, 심지어 일본책일지라도 그렇다는 사실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게 다 문학동네 탓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