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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Jun 28. 2024

《2024 서울국제도서전》을 다녀오다

김건희 후폭풍이 이렇게 거셀 줄은 몰랐다

1. 여전한 동네 잔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24 서울국제도서전을 다녀왔습니다.

 3년째 계속 둘러보고 있는데요, 규모의 변화는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예년과 별 다를 바 없이, 인터내셔널 북 페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내수용 북페어이고, 북페어라기보다는 북마켓에 더 가깝다는 근본적인 성격에는 변화가 없어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내용의 변화가 없다 보니, 규모의 변화를 체감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랑스문화원은 매년 빠지지 않고 부스 하나를 정성껏 꾸미고 있었습니다. 대만의 부스는 작년보다 더 충실해진 듯했습니다. 작년에 이어서 중동국가인 사우디가 주빈국으로 왔습니다. <스포트라이트 컨트리>인 오만과 노르웨이보다는 태국의 부스가 더 눈에 띄었습니다. 중국 출판사의 참여도 보이긴 하지만, 검열이 심한 중국 출판문화를 보여주는 듯한 디스플레이를 확인할 뿐이었습니다.  



2. 거센 김건희 후폭풍


 작년에 쓸데없이 김건희 씨가 축사를 하러 왔다가, 과잉경호 논란만 일으키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 존엄의 분노를 자아내면 어떻게 되는지, 출협과 서울국제도서전에 대한 후속조치를 통해 많이 보던 보복 수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강도 높은 감사와 지원 예산 회수 협박 그리고 향우 예산 지원 중지라는 '예산 장난질'의 전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사님이 축사하러 오신다'고 좋아라 했다가, 김건희 씨 기분 하나 못 맞춰주는 '병신들'이 되어서 이 사달이 난 거겠죠. 안 그래도 '출판계 빨갱이'들이 맘에 들지 않는 집권세력에게 예산 장난질을 부채질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지금까지 일을 참 잘해왔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처럼 비싼 부스임대료 문제는 올해 더 심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기도처럼 도에서 돈지랄을 해주지 않으면 언감생심인 행사였던지라 소규모 출판사나 동네서점은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다른 독립출판물페어에 목맬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제나처럼 매년 꽤나 큰 문체부 지원 예산을 받아다가 해외 북페어 참가를 가지고 방귀 좀 뀌던 걸 아예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문체부는 출협을 제치는 걸 넘어서서, 아예 출협이 하던 사업에 재를 뿌리고도 있습니다. 

출협은 많이 억울할 겁니다. '진짜 빨갱이'들에게 물어 뜯기는 와중에 현 정권마저도 이런 식으로 압박하면 버티기 힘들겠지요. 당장 작년 사건만 해도 문화계 블랙리스트왁 관련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소설가 오정희를 홍보대사로 위촉한 것으로 문제가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자칫 양비론으로 흐를 수도 있는 논의의 위험성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서울국제도서전을 출협의 돈벌이로만 생각한다는 비판이 한두 해 제기되어 왔던 것도 아니라서 그저 한숨만 내쉬게 됩니다. 이럴 때마다 악의 평범성을 다시 한번 고민해 보게 됩니다. 국가권력의 악행에 '위에서 시키는 일'이란 이유로 성실하게 동조하는 공무원들은 꽤나 비상한 꼼수들을 정교하게 만들어냅니다. 선한 이의 조그만 악행을 침소봉대해서 단죄하는, 사악한 방식에 익숙해진 국가권력은 '선택적 정의'를 자신의 무기로 삼고 있습니다. 완전무결하지 못한 존재들은 항상 그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평범한 악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예산 장난질에 맛 들인 보수정권의 인사들은 직능단체에 쿠션을 끼고 정부는 그저 자금만 지원하는 형태를 싫어합니다. '진흥원'과 같은 공공기관을 통해 집행하거나 부처가 직접 사업을 진행하고 싶어 하죠. 그러려면 '큰 정부'가 되어야 하는데, 그건 또 보수적인 경제정책과는 배치되는 행동이라서 자기모순이 됩니다. 권력을 틀어쥐고 싶은데 명분이 부족하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체육예술계만큼은 하도 복마전인지라, 정부의 간섭에 국민들의 시건은 꽤나 너그럽습니다. 답답한 노릇입니다.



3. 동네잔치일 수밖에 없는 이유


 서울국제도서전은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최합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출판사들의 직능단체입니다. 그래서 회원사들만의 잔치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거더군요. 애초 1954년에 전국도서전시회로 시작했고, 1995년에야 비로소 국제도서전이란 이름을 갖게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싶습니다. 올해는 서울국제도서전주식회사를 설립해서 주관했는데요, 앞서 설명 드린 문체부와의 갈등 때문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산을 지원하지 않았으니, 행사 포스터에는 후원명조차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문체부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통해서 행사 참가 출판사 등에 홍보물이나 작가 초청비, 통번역비를 지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전체 비용은 알려지지 않았고, 188개사를 지원했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사실 출판사들 입장에선 서점을 끼지 않고 독자와 직거래를 하게 되면 10%의 할인을 해준다고 해도 20% 정도의 추가 수입이 발생합니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정성 들인 부스를 만들고 열심히 책을 파는 이유를 이제야 이해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특설 부스를 차리는 출판사들은 출협 임원진이거나 임원진이었던 것인지라, 자본의 논리가 작동하는 것도 있겠지만 의무적인 참가일 수도 있습니다. 현 출협 회장인 사회평론의 부스를 보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2년이나 백안시했던 특설부스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전시회나 전람회로 번역하는 Exhibition은 museum이란 전용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특정 물건을 관람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박람회라고 번역하는 exposition이 있습니다. 엑스포라고도 줄여 부르는 이런 행사는 주로 '상품'을 소개할 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코엑스나 킨텍스, 벡스코 같은 공간들이 활용됩니다. 그런데 엑스포 현장에서 판매까지 이루어지는 경우라면 fair라는 표현을 쓰게 됩니다. 아트페어나 북페어가 가장 흔한 예가 되겠죠. 지금까지 저는 서울국제도서전을 국제엑스포로 간주하고 비판했었는데요, 일천한 연혁과 성격 그리고 주관단체의 셩격을 고려하자면 그냥 로컬 북페어쯤이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나니 그런 비판이 너무 과했다 싶었습니다.



4.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주제 전시


 재작년 주제전시 <반걸음>을 꽤나 즐겁게 관람했던지라, 주제전시에를 보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될 뻔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주제전시와 올해 주제전시를 보면서,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허탈해졌습니다. 400여 권의 책이 서로 맥락 없이 하나의 주제, 그것도 모호하기 그지없는 부실하고 추상적인 말들에 의지하는 부족한 설명에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미술전시에서 큐레이션은 그런 맥락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서로 이웃하는 작품들은 같은 작가, 시대, 주제, 기법 등 여러 '맥락'에서 함께 감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전시에는 큐레이션이라 부를 만한 친절함이 부재합니다. 그냥 억지스러운 도서선정만 보일 뿐입니다. 물론 책 한 권 한 권의 면모를 살펴보면 각자에 대한 온당한 비평이 이루어질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잡탕에서는 그 진가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서점에서 이 따위로 큐레이션을 내놓는다면 책은 절대 팔리지 않을 겁니다. 



5.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는 이름으로 선정하던 10권의 도서를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BBK)> 4종 40권으로 늘렸습니다. 그림책이나 만화책이 포함되던 것이 이제는 가장 즐거운 책이나 가장 재미있는 책으로 뺄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BBK): Best Book of Korea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BBDK): Best Book Design in Korea

*한국에서 가장 즐거운 책(BBCK): Best Book for Children in Korea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BBPK): Best Book of Pleasure in Korea

*한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BBWK): Best Book of Wisdom in Korea

 이 중에서 BBDK는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Stiftung Buchkunst(독일의 출판디자인 관련 재단으로, 출판디자인재단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음)와 연계해서 라이프치히 북페어에서 <best book design from all over the world>라는 상을 수여합니다. 물론 숏리스트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며, 골든레터, 골드메달, 실버메달, 브론즈메달, 특별상 중에 하나라도 수상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난 성적을 둘러보면 아쉬움이 큽니다.

 올해는 10권의 책 중에서 정말 독특하고 심미성이 뛰어난 디자인을 찾아볼 순 없었습니다. 가독성을 해쳐가면서까지 디자인을 강조할 수 없는 '책'의 보편적 성격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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