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철 Jun 16. 2023

《2023 서울국제도서전》을 다녀오다.

작년보다 커졌지만, 작년보다 낫다고 할 순 없다.

 작년에 처음 가봤던 서울국제도서전은 꽤나 실망스러웠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입니다. 무언가 ‘국제적’인 분위기를 기대했었습니다만, 그런 건 1도 느껴지지 않고, 되레 ‘내수용 직거래 장터’만 경험하고 왔으니까요.

 매번 그랬지만, 처음 가본 북페어들에는 과한 기대를 품곤 했습니다. 그러다 와장창 무너진 환상을 곱씹으며 두 번째 행사를 경험해 보면 그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도 하더군요.

 홍보대사로 위촉된 소설가 오정희 선생에 대한 보이콧이 어쩌다 보니 오는 줄도 몰랐던 김건희 씨 때문에 꽤나 폭력적인 사태로 비화하고 말았었습니다.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의 힘이 보여준 참으로 슬픈 뷔를레스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1. 여전히 ‘국제’라는 말을 붙이긴 어려웠습니다.

 외국 출판사에서 한국의 도서 판권을 살펴보거나, 외국의 판권을 한국에 소개하는 자리는 여전히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타이완을 제외하곤 이번에도 의례적인 참석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중화민국, 자유중국, 대만, 타이완, 차이니스 타이페이...중에서 요즘은 타이완을 자칭하는 듯하다. 표지 디자인이나 한자 디자인이 점점 일본과 동조되는 것 같다. 


 심지어 주빈국은 주권국가조차 아니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은 7개의 에미리트(주로 토후국으로 번역, 에미르emir가 통치하는 소규모 전제국)로 구성된 주권국으로, 그중 하나의 에미리트인 샤르자는 인구 89만의 아주 작은 구성국입니다. 러시아연방의 북오세티야-알라니야 공화국보다 인구가 조금 많고, 크림공화국에 비하면 절반 정도 수준입니다. 독일연방공화국의 자를란트국(Saarland staat, 우리나라에선 보통 州로 번역)보다는 인구가 작고, 미합중국의 사우스다코타국(state of South Dakoda, 우리나라에선 보통 州로 번역)과는 인구가 비슷합니다. 조금 더 빈정거려 보자면, 다음 주빈국이 파항(말레이시아의 술탄국으로 현 말레이시아 국가원수가 그곳의 술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석유 펑펑 아랍에미리트연합의 구성국답게, 참가 규모는 제법 있었습니다.



2. 대형출판사의 철저한 내수 대응

 국내 문학도서시장은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창작과비평사 세 곳의 과점체제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은행나무출판사 정도가 덧붙는 정도겠지요. 그런데 이들 출판사에선 서울국제도서전을 통해 외국에 판권을 수출할 생각이 딱히 들지 않습니다. 이들의 부스만 봐도 딱 드러납니다. 오로지, 철저하게 ‘내수 직거래 장터’를 노립니다.

 그렇다고 이들 대형 문화출판그룹들을 비난할 순 없습니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반값 재고 털이 행사를 할 수 없게 된 다른 대형출판그룹들은 참가조차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일반 관람객 입장에선 이런 부스야말로 찾아오는 즐거움이 생기는 곳이기도 합니다. 잘 꾸며진 부스하며, 10% 할인에 보태진 각종 한정 이벤트를 제공하다 보니, ‘손님몰이 판다’로 제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코엑스 A홀 중앙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습니다.    


 

3. Platform P의 부스는 반가웠다.

 파주 다음으로 ‘출판의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서울 마포구일 겁니다. 조금 과장해서 책의 서지정보면을 살펴보면, 열의 넷은 파주, 열의 넷은 서울 마포구가 출판사 주소로 나옵니다. 이런 마포구인지라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P)를 구에서 조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1인출판사나 출판관계인에게 ‘몹시 합리적인’ 비용에 사무공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좋은 교육프로그램도 열심히 준비해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격의 구청장님’은 작은도서관도 그렇고 플랫폼P도 썩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 봅니다. 파행적인 위탁운영도 그렇지만, 운영의 자율성마저도 침해하며 센터를 산으로 몰고 있더군요.

(관련기사: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91206.html)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리고, 구청장이 삽질해도 센터는 돌아가야 합니다. 입주사들과 함께 눈에 띄는 부스를 차렸습니다. 어차피 서울국제도서전이 ‘국내 최대의 북페어’임을 부정할 순 없으니, 이럴 때 소규모출판사들이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는 건 맞다 싶었습니다. 어차피 다양한 종류의 출판물을 출간한 것이 아니다 보니, 작은 부스에서 주목도 높게 ‘간판 상품’을 어필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4. 왜 왔는지 모르겠는 중소출판사

 “국내 최대 규모의 도서 직거래 장터”에는 중소출판사들이 반드시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형출판사처럼 ATL/BTL 가리지 않고 광고를 때려 넣을 수 없기에, 이런 기회를 잡아서 소비자에게 어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준비를 참 잘해서 와야겠죠.

 박람회(exhibition)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입니다. 브랜딩에 집중할 것인지, 주력 상품에 집중할 것인지 결정해서 역량을 결집시켜야 비로소 박람회에 참여하는 의미가 생깁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출판사들이 출간한 책이란 책은 죄다 모아서, 5일장 선 시골장터처럼 빼곡하게 ‘매대’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참 경악스러운 광경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박람회에서 이런 식의 패착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비싼 부스 비용도 떠오르다 보니, 있는 것 없는 것 죄다 선보이고 싶다는 막연한 욕심이 생깁니다. 거기다가 대형문학출판사들 부스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책을 사가기도 하니, 바라보고 있자면 부럽기만 합니다. 어린이 도서 출판사들의 부스에서도 무지막지한 쇼핑이 이루어지기도 하다 보니, 눈이 돌아갈 만도 합니다. 그래서 없던 장돌뱅이 마인드가 생기기도 하죠. 안타깝게도 그런 식으로 박람회 마케팅은 길을 잃고 ‘폭망’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도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진 부스를 보게 되면, 저절로 눈길이 갑니다. 어김없이 사진도 남기게 되더군요.     



5. 그래서 “경기도書”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광역자치단체는 경기도로, 1,400만 명이나 됩니다. 서울이 966만 명이니, 이제 경기도를 따라갈 광역자치단체는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인구수가 대변하는 것은 꽤나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가장 큰 건 재정규모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966만의 서울의 재정규모가 훨씬 더 크긴 합니다만, 그 외에선 경기도의 수준을 따라올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경기도가 돈을 쓰는 걸 보면 참 대단합니다. 공공기관의 다양함이 서울시를 능가합니다. 서울시조차도 경제진흥원에서 담당하는 콘텐츠산업 지원을 경기도에서는 경기콘텐츠진흥원에서 맡고 있습니다. 규모가 작은 도 단위에서는 경제과학진흥원이나 경제무역진흥원처럼 더 포괄적인 공공기관이 만들어집니다. 그렇다 보니 출판문화산업 진흥 사업처럼 경계가 모호한 경우에는 문화재단이나 경제진흥원이 조각조각내서 진행하곤 합니다. 서울시 같은 경우에는 서울도서관에서 일부 사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경기콘텐츠진흥원의 출판문화산업 진흥 정책은 꽤나 많습니다. 심지어 서울국제도서전에 부스 수준이 아니라 섹션을 마련해서 관내 출판사와 서점들의 참여를 돕기도 합니다. 다른 동네분들이 보시기에 꽤나 부러울 듯합니다.     



6. 가장 늦어진 독립출판페어

 작년 같은 경우, 리틀프레스페어-서울국제도서전-인천아트북페어 순으로 열렸었습니다. 그런데 리틀프레스페어는 지난달에, 인천아트북페어가 지난주에 먼저 열렸습니다. 규모 있는 독립출판페어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걱정이 되긴 합니다. 


    

7. 아름답지 않은, 2023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썸북스의 『토끼전』을 제외하곤,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책들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란 타이틀을 달 수 있었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심사평을 읽어 봐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코디언북 형태는 북아트의 단골 형식이라서 새롭다고 할 수도 독창적이라 하기도 어렵긴 하다.
전체적으로는 정성스레 써 내려간 서간을 첩첩이 접어서 곱게 자수 놓은 비단첩에 넣고 술이 달린 끈으로 정성스레 봉했던 우리네 전통을 떠올리게도 한다.

   

 ‘아름다운 책’이란 무엇일까? 맥락에 따라 정의가 달라지겠지만,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공모에서는 대체로‘잘 만들어진 책’을 뜻한다. 텍스트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으로서의,‘물성과 독서 경험이 잘 만들어진 책’이다. 조화로움과 가독성, 심미성과 독창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잘 만들어진 책’의 충분조건은 안정된 기량이다. 독창성 등 다른 가치들은 필요조건이 된다. 예년에 수상한 바 있는 디자이너나 스튜디오가 1차 심사를 통과해 다시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수상한 전적이 있다고 해서 억지로 배제하지는 않았으나, 이번에 출품된 작품이 예년 수상작과 같은 디자인 화법의 동어반복이라고 보일 때는 대개 제외되었다. 눈을 사로잡는 그래픽적 솜씨가 빼어나더라도 형식과 내용이 겉도는 책, 타성에 젖은 접근, 독서 경험이 아니라 단순히 포장만 바꾼 재디자인, 책의 존재 형식에 맞지 않는 판형이나 양장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불필요한 장치들, 기본적인 종이 결이 어긋난 책들, 빳빳해서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등 물성의 살핌이 부족한 책들은 수상작 목록에 올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책들도 각자의 고유한 장점과 매력을 갖추고 있을 때가 많았다.     


심사평만 놓고 보자면, 이렇게 훌륭한 판단력에 이의를 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심사평이 적용되어 선택된 책들이 그렇다면... 그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죠. 괴작을 도려내려다 범작들만 남겨놓은 듯해서 그렇습니다.

 


8. 역대 최악의 북큐레이션

 올해 초쯤이었나 서울도서관에서 “도서관에 관한 북큐레이션”이라면 내놓은 걸 본 적이 있었다. 이번에 “비인간, 인감을 넘어 인간으로”를 둘러보기 전까지는 서울도서관의 것이 최악의 북큐레이션이었습니다.

 사실 북큐레이션은 박물관학(museology)의 큐레이션을 그대로 적용해야 할 개념은 아닙니다. 오히려 디지털 큐레이션의 개념에 더 가까울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은 큐레이션이라 부르기도 꽤나 민망해집니다. 그저 쓸데없이 정제되지 않은 개념어들의 목록에 ‘맥락이 부재한’ 도서들을 던져놓는 방식으론 말이죠. 

 작년의 “규보(蹞步)”를 둘러보며 정말 흐뭇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찾았다가, 절망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틀프레스페어 2023》을 다녀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