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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May 30. 2023

《리틀프레스페어 2023》을 다녀오다.

커진 책보부상, 하지만 정체성은 없었다.

 서울 스타필드 코엑스점에서 열린 《리틀프레스페어》를 다녀왔습니다.

 5월 26일에 시작해 28일에 끝나는 3일간의 일정 중에서 마지막 3일 차에 현장을 둘러보았습니다.

작년에는 무슨 이유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는지 캘린더를 살펴보아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지난 주말에 보러 왔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를 했던 기억이 남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주말 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금요일 저녁에 술자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더욱 아리송합니다. 

 비 오는 일요일에 찾은 행사장(라이브 플라자)은 살짝 더웠습니다. 아무래도 공간 자체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때에 행사를 치르기엔, 아무래도 별마당도서관 애니버서리 이벤트 기간에 맞춰져야 해서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3년 5월 28일 스타필드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리틀프레스페어.


 '독립서점'인 '스토리지북앤필름'이 주관하는 이 북페어는 <책보부상>이란 행사가 스타필드의 장소 후원을 통해서 몸집을 키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5월 마지막주에 행사가 이루어졌는데요, 작년에는 '별마당도서관 개관 5주년 기념행사' 중에 하나로, 올해에도 "6주년 기념행사' 중 하나로 홍보되고 있었습니다. 

 페어fair와 같은 행사를 치르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협찬'은 필수입니다. 협찬으로 어딘가에서 '삥'을 뜯지 못한다면, 다음 단계는 당연히 'N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장소 대여에서 부스 설치 등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게 되는데, 부스 비용으로 참가자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책정된 부스 비용은 페어 참가의 높은 문턱이 됩니다. 셀러 모집이 되지 않으면 관람객 모객에도 실패하게 됩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퍼블리셔스 테이블》이 D뮤지엄이나 무신사테라스에서 열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페어를 개최하기 적합한 장소가 아님(물론 부적합한 것도 아니긴 합니다)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선택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후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21년 10월 23일 효자동 베어카페에서 열린 《책보부상》


 '스토리지북앤필름'은 《책보부상》이란 이름으로 여러 차례 북페어를 진행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효자동의 베어카페에서 2021년에 진행되었고, 강남의 '일상비일상의틈'에서도 2022년에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베어카페에서 느꼈던 장소의 협소함이나 '일상비일상의틈'에서 느꼈던 공간의 불쾌함 크게 해소됐다 싶습니다.


2022년 1월 16일 역삼동 일상비일상의틈에서 열린 《책보부상》


 저는 '리틀프레스페어'라는 이름이 참 마음에 들었더랬습니다.

 일본에서는 독립출판이란 표현보다는 リトルプレス(리토루푸레스)란 표현을 더 잘 쓰는 듯합니다. 독립출판이란 개념은 크게 3갈래로 나뉘곤 합니다. 주류 출판시장의 질서에 편입하지 않고 독자적인 유통을 통한 독립출판(independent publishing), 저자가 스스로 출판과 유통을 감당하는 자가출판(self publishing), 북아트나 1인출판사와 같이 대량생산에서 벗어난 소규모 출판(small publishing)이 그것입니다. 시스템의 바깥으로 탈주하는 '독립'이나 버지니아 울프처럼 자주성이 드러나는 '자가'의 개념들은 현재 일본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와는 어울리지 않다 보니, 마음 편하게 소규모 출판이란 개념에서 Little Press를 사용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국내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소박한 작명이 더 좋은 울림을 가져왔습니다.


B1의 C섹션. 조금 더웠습니다.


 올해 2회째인데 아직까지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나 《퍼블리셔스 테이블》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합니다. 앞의 두 행사의 북적거림을 떠올려 보면, 너무 쾌적했습니다.

 숨 막혀 죽을 것 같아서 별로 돌아보지도 못했던 작년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호황은 지나칠 정도였지만, 재작년 D뮤지엄에서나 작년 무신사테라스에서의 《퍼블리셔스 테이블》의 적당한 붐빔은 오히려 둘러보기가 더 편했습니다. 느린 컨베이어벨트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상황이 되레 눈치 안 보고 부스 앞에 붙어 있기 마음 편하거든요. 그 뒤에서 어깨너머로 함께 살펴보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이렇게 벙벙하면 마침 그 부스에 서 있는 먼저 온 내객과 경쟁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


B2 라이브하우스 근처 부스들을 B1에서 조망했다.


 2년 정도 독립출판물페어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대략적인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북페어는 생산자에게 절실한 직거래장터일 뿐만 아니라, 중개상인 독립서점들도 참여하게 되기에 독립출판 생태계에 있어서 중요한 네트워킹의 장이 됩니다. 특히나 생산자들 간의 교류는 서로를 고무시키는 꽤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그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라이브하우스 옆의 에스컬레이터에서 본 행사장


 그래서 다양성이나 전문성 같은 걸 기대할 수는 없으니 그저 '아마추어리즘을 응원'하자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재작년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본 출판물을 작년 《퍼블리셔스 테이블》이나 《싱얼롱페이퍼》에서 또 봤는데, 여기 《리틀프레스페어》에서도 또 봅니다. 에세이(여행기 포함) 아니면 일러스트레이션북 또는 사진집 일색의 구색도 변함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논문'으로 배운 독립출판물의 이상을 더 이상 '현장'에서 확인할 순 없다는 현실을 재확인했습니다. 다양성을 갖추기엔 출판시장의 위축이 너무나도 강렬한 듯합니다. 상업출판에서조차도 초판 1000부를 다 소진하기 어려운 시대에 독립출판에서 다양성을 담보하는 저작물이 나오긴 어려울 듯합니다. 그저 개인의 필요에 의해 자가출판과 소규모 출판 사이에서 나오는 기존 출판물의 하위호환 버전들이 나오는 게 일반적일 수밖에 없겠죠. 여기에 전문성을 갖추었다면 굳이 독립출판이 아니더라도 작은 출판사들과 함께 책을 낼 수도 있는 저간의 출판문화를 생각해 본다면, 이곳에서 전문성을 기대하는 것도 연목구어가 될 듯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눈길을 사로잡는 부스가 세 곳 정도 있었습니다. 두 곳에서 판매하던 책은 외국 저자의 번역서였고 하나는 잡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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