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구선아. 책만 팔지만 책만 팔지 않습니다. 책세상, 2024.
사실 제목 때문에 굳이 챙겨 읽어본 책입니다만, 머리말을 읽는 순간부터 ‘지뢰를 밟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초장에 책장을 덮을지, 독서를 목적을 수정해야 할지 결정해야만 됐습니다. 책방 운영에 관해 좋은 책들을 이미 여러 편 만나본 뒤라 어중간한 책을 정독할 이유도 없었거니와, 아무래도 출판기획을 벗어난 책을 굳이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음을 다잡고 책장을 다시 펼쳤습니다. 서지면에 찍힌 발행일이 2024년 6월 14일입니다. 불과 한 달 전에 나온 책이니, 적어도 최신 정보는 반영하고 있겠구나 싶어, 그런 정보라도 갱신할 목적으로 마저 읽어보자 싶었습니다. 다만 그마저도 성공적이진 않아서, 책장을 덮을 때는 허탈함이 밀려왔습니다.
제목에 대해서는 바로 뒤에 이야기하겠습니다만, 우선 출판기획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판사는 항상 ‘좋은 책’을 내고 싶어 합니다. 누구에게나 ‘좋은 책’은 많이 팔려서 돈 많이 벌어주는 책일 텐데요, 그럴 경우 보통 내용도 훌륭한 편입니다. 거지 같은 내용의 책이 쓸데없이 많이 팔리는 경우는 좀체 없습니다. 심지어 날조된 내용을 담아 선동에 쓰일지라도, 그 책을 사서 읽는 이들에게나 그 책을 출판하는 이들에게나 딱 필요한 도그마를 전달해 주는 ‘좋은 책’일 테니까요. 말장난은 이쯤에서 정리하고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출판사는 좋은 책을 내기 위해 출판 기획을 합니다. 책세상의 경우에도 “책을 통해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모토 아래, 그저 ‘유용한’ 책이 아니라 ‘좋은’ 책을 만들려는 욕심이 보입니다. 그렇다 보니 책세상문고 고전의 세계 같은 돈 안 되는 시리지를 계속해서 출판하는 것이겠지요. 고전을 계속해서 펴내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인데요, 수요가 작지만 우리의 지식세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존재해주어야 할 책이 계속 우리 주변에 존재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번역조차 안 되었거나 절판되어 사라진 고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죠.
그래서 책세상에서는 ‘사장이자 직원입니다 경영에세이’ 시리즈를 기획한 것으로 보입니다. 1인기업/자영업의 신산(辛酸)함을 드러내면서도 잘 극복해 온 ‘선배’에게서 도움이 되는 팁을 제공해 준다는 좋은 기획으로 보입니다. 크게 돈이 될 리는 없지만, 틀림없이 ‘좋은 책’을 만드는 일이 될 테니까요. 그런데 이 책은 시리즈의 첫 책입니다만, 출판 기획에서 전반적으로 어긋나고 있습니다. 1인 자영업이란 사실에 개의치 않습니다. 꽤나 괘념할 만한 사실인데도 말이죠. 보통 머리말에서 출판사의 기획은 이러했고, 그런데 나는 이렇게밖에 쓰질 못했으니, 이런저런 것들이 아쉽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물론 좀 더 야심 차게 글을 쓴 사람은 그래도 이러저러하게 쓴 글이기도 하니 그런 점에서 만족해 주길 바란다는 변명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머리말에는 아예 없습니다. 출판사의 기획 따위, 아웃오브안중입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기” 마련이라, 역시나 혼자 경영하는 서점업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저 그런 책방 운영 에세이로, 자기류의 뇌피셜을 종종 만나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비즈니스는 생산-영업-관리의 세 가지 주요 업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서점과 같은 유통업의 경우에는 생산 대신 구매업무가 되겠지요. 물건을 사 오는 일이나 물건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물건을 파는 일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여기에 회계와 세무 그리고 고객관리 등의 관리업무까지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면 엄청난 업무하중에 짓눌리게 됩니다. 그래서 1인기업이나 자영업이 어려운 것이죠. 그래서 이 책의 시리즈가 기획됐을 터인데... 저자는 그런 난맥상이 안중에 없습니다.
다만, 저자는 “지금 열면 부족한 게 참 많지만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한 두 권의 책을 포함해서 제가 알고 있는 책만도 대여섯 권이나 되는 작가이자, 최소 7년 이상 ‘독립서점’을 운영해 온 서점인이기도 합니다. 자영업의 세계에선 “센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센 것”이란 진리에 비춰볼 때, 그의 경력은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렇다 보니, 책의 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지까지 전부 평가절하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면에서 충분히 좋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는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출판기획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 벌충되진 않습니다.
이 책의 제목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이 책을 제목 때문에 굳이 펼쳐봤습니다. 출판사에 대한 믿음과 저자에 대한 기대가 눈을 가려서, 목차조차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채 책장을 펼쳐든 제 불찰이긴 합니다만, 이렇게까지 제목을 배신할 줄은 몰랐습니다.
‘책방 연희’는 ‘책, 연희(演戲, a play)하다’의 줄임말로 말과 글, 동작으로 책과 도시를 이야기하는 도시인문학 서점입니다.
책방 연희는 작가이자 기획자, 연구자가 운영하는 서점으로, ‘책’만 판매하는 ‘책방’이 아니라,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곳입니다. 느슨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느슨한 연대가 되길 희망하는 “책방 연희”는 책, 온라인 및 오프라인 모임과 클래스, 전시, 콘텐츠 등을 통해 도시에서 나답게 살기 위한 공간과 시간 그리고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스튜디오연희(어반앤북)”을 함께 운영하며 서울시, 서울시도서관 등과 협력하고, 출판사, 서점, 창작자와 협업하여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장을 만듭니다. - 책방연희 홈페이지 소개글에서 https://www.yeonhui.com/intro/
최근의 작은 동네책방(서점을 지칭하는 용어에 대한 이 책의 끔찍한 설명은 점 더 뒤에 씹겠습니다.)의 운영 방식은 기존 책방의 개념을 아득히 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좀 더 빠르게 경험하면서 좋은 책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일본의 경우들을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살롱(salon)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요, ‘앞으로의 책방’은 인터넷서점과 대형체인서점마저도 책방이란 이름을 벗어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서비스업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책방연희 역시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곳”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는데요, 현재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살펴봐도 대충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출판기획과 제목에 부흥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뉜 글이 되었어야 했습니다. 우선은 구매-판매-관리의 전 영역에 걸친 1인 운영의 어려움과 그에 대한 극복 노하우를 다루는 부분과 다채로운 독서모, 글쓰기 워크숍, 독립출판 워크숍 등 프로그램 운영 노하우를 다루는 부분으로 구성되었어야 했습니다. 이미 시중에 넘쳐나는 보통의 책방 개업기나 운영기와는 차별적이어야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미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여느 책만 못한 책방운영기가 나왔습니다. 저자 입장에서는 책방운영기를 처음 쓰다 보니 꼭 필요한 작업이었겠지만, 그 이상을 기대했던 출판사나 독자의 입장에선 참 허탈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분노하는 순간이 ‘부정확한 정보를 무책임하게 전달’하는 작가의 태도를 만날 때입니다. 그 분노가 극에 치달았던 순간이 바로 김미정의 『북큐레이션』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 그리하여 작가됨(Authorship, 또는 저자권)은 고대 로마에서부터 확립된 Auctor의 전통에 기반하여 현대 학문 체계에서는 꽤나 정형적인 요구를 받게 된다. 내용의 정확성과 진실성에 대한 꽤나 중요한 책임을 지게 된다. 그렇다 보니 책이나 글을 쓰는 과정은 꽤나 정형적인 전개 양상을 띠게 된다. 기승전결을 갖추거나,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논지 전개 양식을 확립하곤 한다. 학술논문이나 학술서가 전형적이다.
책을 쓰면서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베낀다던가, 사실조차 확인해 보지 않고 뜬소문을 그대로 적는다던가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건전한 상식을 갖춘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도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을 참 대충대충 엉터리로 썼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구선아의 큐레이션 개념은 초기 디지털 큐레이션의 개념에서 멀지 않았습니다. 큐레이션의 개념에서 전용한 개념이긴 하지만, 큐레이션과는 확연히 다른 개념입니다. 수집-선별-보존이라는 아카이빙과 다르게 큐레이션은 전시라는 과정이 존재합니다. 심지어 그 전시라는 과정은 중요한 목적이며, 더 근원적인 목적은 전시물의 판매입니다. 그게 1960년대 뉴욕 미술시장을 중심으로 태동한 ‘큐레이터의 일’로서의 큐레이션이 갖는 의미였습니다.
이처럼 신간이 많아질수록 선별된 양질의 정보에 대한 수요가 커진다.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는 일이 큐레이션이다. - 61쪽
논문을 몇 개 찾아 읽는 것만으로도 뇌피셜에 근거한 개념은 교정되어야 한다는 자각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작업은 좀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김미정 이후 ‘북큐레이션’이란 개념을 마치 자명한 것인 양 자의적으로 규정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엉터리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서점과 책방이라는 용어의 개념에서 엉터리는 또 나옵니다. 우리는 서점이란 말을 보편적으로 씁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성이 더 높은 단어라서 그렇습니다. 행정용어로 서점이 쓰이고, 출판법 상의 법률용어 역시 서점을 사용합니다. 그렇다 보니 지자체 조례에서도 서점이란 용어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이 용어에 대해 심각하게 고찰해 보는 논문도 몇 편 존재합니다.
지역서점, 동네서점, 독립서점 등 작은 책방을 부르는 용어도 다양하다. 책방 운영자조차 섞어 쓴다. 먼저 나는 동네서점이 가장 큰 범주이고 그 안에 지역서점, 독립서점, 기타 서점이 모두 포함된다고 본다. 또한 책방을 서점보다 더 큰 범위라 여긴다. - 30쪽
이 경악스러운 자기류의 정의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무지막지한 억지가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엉터리들을 위해서 한미화는 『동네책방 생존탐구』의 첫 장을 이 개념의 정리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본문이 시작되기 전, 목차 뒤의 일러두기를 통해 “책방과 서점은 의미상 차이가 없으나 이 책에서는 구분을 두었다. 책방은 주로 2000년대 이후 등장하여 소규모 공간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독립서점이나 동네책방을 지칭할 경우 사용하였고, 서점은 이외의 거의 모든 곳에 사용했다”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미국의 independent store의 역어 확립된 독립서점이란 개념이 ‘독립출판물만 주로 다루는 책방’으로 전용되면서 용어의 혼란이 발생했고, 일본의 街の本屋의 역어인 동네책방이 제법 정감 있게 다루어지다 보니 2018년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의 결성 이후 제법 용어 정리가 이루어진 듯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서점은 글 서자와 가게 점자를 쓰는 데 반해, 책방은 책 책자와 방 방자를 씁니다. 책방은 음과 훈이 같은 한자로만 쓰인다는 점입니다. 책이나 방에는 순우리말이 따로 없다는 거죠. 그렇다 보니 어떤 책방지기는 “서점은 한자인데 책방은 아니라서 정감이 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야마시타 겐지가 《서점의 일생》에서 말했듯 “제시된 가격으로 산다는 건 속이거나 속는 게 아닌, 손님이 그 가치를 인정했다는 뜻”이니까, 작은 책방에서 책의 가치를 알고 책을 사는 모든 손님이 완벽한 손님인 것이다. 앞으로 난 얼마나 든든한 완벽한 손님을 만날까. - 143쪽
야마시타 겐지를 인용한 이 문장들에서 저는 눈을 비비고 다시 읽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마시타의 원문을 완전히 왜곡해서 인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어의 후루혼(古本)은 단순히 중고책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절판된 책 중에는 중고책이지만 비싸게 거래되는 책이 있습니다. 그래서 후루혼에 붙인 터무니없는 가격이 통용될 수 있는 기제에 대해 야마시타가 납득하는 합리화 과정을 다룬 겁니다. 절대로 “책의 가치를 알고 책을 사는” 것으로 곡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내 가치관으로 장사를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을 이 가게에서 배웠다. 이전에 일반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는 정가로밖에 책을 팔지 못했지만, 헌책방에서는 어떤 책이든 내 척도로 가치를 정할 수 있다는 쾌감이 있었다. 다른 가게에서는 3,000엔 하는 책도 우리 가게에서는 100엔에 팔 수도 있고, 다른 데서 100엔에 파는 책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여 3,000엔에 진열하는 것도 가능했다. 아직 인터넷이 그렇게 보급되지 않은 시절, 보람 있고 재미있는 체험이었다. 사는 사람은 지금처럼 경매 사이트나 온라인 서점의 시세가 아닌 그 가게의 가치 기준을 믿고 책을 산다. 제시된 가격으로 산다는 것은 속이거나 속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그 가치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야마시타 겐지, 『서점의 일생』
출판하는 서점, 즉 출판서점은 요즘 일이 아니다. 1910년쯤 책의 시장성을 보아 근대서점이 늘어났을 때, 서점이 출판사의 역할도 함께하였다. 서점은 곧 출판사였고 출판사는 곧 서점이기도 했다. - 168쪽
아전인수식 논리는 또 이루어집니다. 강성호의 『서점의 시대』을 제대로 읽었다면 적반하장의 논리가 튀어나오진 않을 겁니다. 서점이 출판사의 역할도 함께 한 적은 없습니다. 출판사가 서점을 겸했을 뿐입니다. 서점이라 부르기 힘든 책장사가 어느새 인쇄기를 운용하면서 ‘출판’을 시작했고, 그렇게 대량생산한 출판물을 소화하기 위해 자체 서점을 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대량생산의 기술이 먼저 확립되고, 그리하여 공급이 먼저 발생한 뒤에, 이를 따르지 못하는 유통 문제 해결을 위해 소매처를 수립한다는 일반적인 유통의 형태를 보여줄 뿐입니다. 1910년대의 현상을 이런 식으로 왜곡하는 건, 그저 현재 상황이 그렇게까지 비정상적인 건 아니라다는 설명이라서,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방귀가 잦으면 똥 싸기 쉽다’고, 눈꼴틀리는 글을 계속 접하다 보니 쉬이 넘길 수가 없습니다.
마침내는 “양적인 팽창은 질적인 성장을 가져올 테니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란 나이브한 평가에도 한숨을 내쉬게 됩니다. 모든 양적 팽창은 질적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다만 그 변화가 양(+)의 변화가 아니라 음(-)의 변화인 경우가 많다는 점부터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현재 자영업의 양적 팽창은 질적 저하를 가져왔습니다. 자영업에서의 질적 성장을 추동하는 건 ‘경험과 지식’입니다. 경험은 오랜 수행(practice)에 의해 쌓이는 것이고, 지식은 교육을 통해서 획득하는 겁니다. 그래서 보통 다른 전문가들의 양성 시스템이기도 한 도제 시스템 속에서 자영업의 경험과 지식이 축적됩니다. 다만 무경험과 무지식의 초심자에게도 자영업이 가능하도록 만든 근대적 시스템은 존재합니다. 가맹사업/프랜차이즈 비즈니스가 바로 그겁니다. 이 새로운 비즈니스는 ‘종속적 자영업자’를 ‘비숙련’의 늪으로 빠뜨리고 있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지만 말입니다. 따라서 동네책방의 양적 팽창은 질적 저하를 가져올 분명한 증상으로 걱정스럽게 바라봐야 할 일입니다.
가끔씩 책방지기/책방운영자들의 글에서 접하게 되는 세상 한심한 인식들은 주로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출발하더군요. 조금만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귀신에 홀린 듯한 자기류의 억지들이 쉽게 발견됩니다. 특히나 지원사업에 대한 인식은 경악스러운 수준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납세자로서 다른 지원사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한 번쯤 떠올려 본다면, ‘세금 축내는 도둑놈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새삼 느끼게 될 턴데도 말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에서는 지원사업에 대한 교과서적인 기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유아기적 자기류는, 이래도 되나 싶게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별 고민 없이 찔러보는 제안이나 터무니없는 제안을 수없이 받았다. 특히 책방의 콘텐츠나 노동을 '공짜'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았다. 가장 많은 공짜 요청은 인터뷰다. 잡지, 신문, 방송, 콘텐츠 회사는 물론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연구생까지 인터뷰 요청자와 목적은 모두 다르지만, 매번 똑같은 질문을 하는 인터뷰들. 인터뷰는 '공짜'라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 매번 놀랍다. - 104쪽
아무리 레거시 미디어의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해도, 언론 인터뷰를 ‘공짜 노동’이라고까지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경악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이 바쁘거나 굳이 응하고 싶지 않다면 거절하면 그만인 일이지, ‘내게 공짜 노동을 강요한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요청하는 인터뷰나 모임 역시 ‘사업인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멋들어지게 과장하자면 ESG경영의 S를 수행한다는 거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 역시 여유가 없으면 안 해도 그만이지만, 그렇다고 ‘노동의 대가’를 운운할 사안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연구자들의 인터뷰는 다릅니다. 보통 연구자들의 인터뷰는 대부분 유료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연구비가 필요한 거고요. 연구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석사 과정의 대학원생의 경우, 서베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짜 인터뷰를 요청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제대로 된 샘플들에게 충분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되레 연구가 더 어려울 거라 봅니다. 어쩔 수 없이 돈이 들더라도 제대로 된 서베이 설계에 따른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겠죠.
책을 안 사고 책을 안 읽는 게 정말 책값 때문일까.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 값은 비싸지 않고 책 한 권 값은 비싼 것일까. - 132쪽
이쯤 되면, 정말 아무 말 대잔치로구나 싶어 집니다.
저는 가끔 커피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면서 원두 가격을 이야기하거나, 치킨값이 비싸다며 육계가격을 이야기하는 경우를 접할 때마다 할 말을 잃곤 합니다. 이 무적의 자기류에는 브란돌리니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로스팅된 커피 7g을 줬는데, 왜 스타벅스 화이트초콜릿모카를 못 만느니?”라던가 ‘육계 10호를 줬는데 왜 뿌링클 치킨을 못 만드니? “와 같은 반문을 해도, 성만 내지 자기류의 잘못은 이해 못 할 족속들이라서 그렇습니다.
책값이 비싸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도대체 왜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이 나올까요? 이 터무니없는 딴지는 원가 타령보다 더 어처구니없습니다. 식재와 문화재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차라리 넷플릭스 정기구독은 안 비싸고 책값이 비싸냐고 딴지를 걸었다면 이해라도 할 일입니다. 스타벅스나 투섬플레이스에서 커피 한 잔에 케이크 한 조각 먹으려면 국밥 한 그릇 가격은 훌쩍 넘깁니다. 그렇다면 이런 고민을 해 볼 순 있겠지요. 돈도 없는데 점심 또는 저녁을 굶고 커피와 케이크를 먹는 사치를 부려야 하나? 이틀 정도 라면에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스타벅스를 가야 하나? 정도 말입니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욕망과 다른 형태의 욕구를 비교선상에 놓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에 대한 회신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공급률 90퍼센트로 현금매입, 반품불가' 조건이라니, 이러면 교보문고나 알라딘에서 개인 소비자로 사는 게 나을 조건이다. 모든 서점에게 동일한 조건이었는지, 신생 서점이어서였는지, 지금도 같은 조건인지는 모르겠다. 독자와 책을 잇는 건 서점인데, 작은 책방은 자신들의 책을 독자에게 굳이 연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인 걸까? 당연히 난 그 책들을 입점할 수 없었다. - 40쪽
”먼저 출판계가 나서 도서 공급률을 살펴주면 좋겠다(134쪽)“는 한없이 이기적이고 나이브한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다 보니, 출판계의 현실은 외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출판계를 ’우리‘에 포섭하고 이해하고 있다면 이런 억지는 불가능하니까요.
대형출판그룹들 몇몇을 제외한다면 출판사는 보통 외주 시스템으로 돌아갑니다. 인쇄는 인쇄소에서, 제본은 제본소에서, 배본은 배본소에서 이루어집니다. 출판산업과 유통산업의 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그에 맞게 시스템도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죠. 그런데 여기에 출판사로 바로 소량 직거래를 하자고 덤벼 봐야 출판사 입장에선 ’수익‘이 나지 않습니다. 물류비용을 줄이려고 외주를 주고 있는 곳에 직접 유통을 트자고 해봐야 의미가 없지요. 되레 배송 과정의 파손과 반품의 매몰비용까지 고려해 본다면 굳이 직거래를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작은 책방은 자신들의 책을 독자에게 굳이 연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와는 아주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작은 책방은 우리 책을 보통의 방법으로 독자에게 연결할 생각은 없는 건가“를 되물어 볼 수 있겠지요.
184쪽에서는 ”나는 책방 바깥에서 버는 돈을 책방에 쓰지 않는다“라고 선언하고 있는데요, 머리말에서는 ”읽고 쓰고 만들고 듣고 말하는 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책을 사고 다시 읽고 쓰고 만들고 듣고 말하며 나와 당신이 즐거울 수 있는 공간을 지키는 애씀“을 말하고 있습니다. 책방연희 사업자 계정과 스튜디오연희 사업자 계정을 분리하고 있다는 말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자가당착의 진술일 뿐입니다. 하도 못마땅해하다 보니, ’책방도 흑자고 스튜디오도 흑자라는 자랑질‘인가 아니꼽게 보고 맙니다. 물론 그 와중에 흑자를 내는 몇 안 되는 동네책방이 아닐까 싶어서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