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야마시타 겐지 著/ 김승복 譯. 서점의 일생. 유유. 2019
저는 유유출판사의 제목 장난질에 꽤 짜증을 내는 편입니다. 이 책, 『가케서점 시절 ガケ書房の頃』 역시 창조적인 번역서명이 됐기 때문입니다. 질소 포장 같은 제목은 책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실망을 낳곤 합니다. 제발 이런 짓 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서점의 일생』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번역서 제목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나 궁금했었는데요, 아무래도 역자 후기에서 나온 듯합니다. 역자도 ‘공범’이란 이야기가 되겠죠.
가케쇼보는 2004년 2월 13일 금요일에 개점하여 2015년 2월 13일 금요일에 문을 닫았다. 이 책은 11년간 살아 있었던 서점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 305쪽
3대가 이어왔다거나 적어도 반세기 정도는 운영해 왔다면 모르겠지만, 겨우 11년 운영하다 문 닫은 책방에 평생, 한살이, 한생이 유의어인 ‘일생’을 붙여주긴 어렵습니다. 딱 고로(頃) 정도가 어울리는 기간이겠지요.
원제목의 수수함은 내용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책의 1/3은 책방을 시작하기 전의 자전적 사실들을 담담하게 적어냅니다. 그리고 1/3은 가케서점을 준비하고 운영하다가 폐점하는 과정을 다룹니다. 나머지 1/3은 책방인 듯 책방 아닌 책방 같은 호호호자(ホホホ座)의 이야기로 마무리합니다. 호호호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이 책의 소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立ち上げるまでの青春期、店での日々、その終わりなどを書き下ろした、詩情あふれる1冊
左京区北白川で丸11年間営業したガケ書房。喋らずに手話や筆談で過ごした少年時代、家出&上京、エロ本編集者生活、数々のミュージシャンや作家との交流、ガケ書房で起こった様々な出来事をまとめたエッセイ集。
(시작하기까지의 청춘기, 가게에서의 나날, 그 마무리 등을 써 내려간, 시정이 넘치는 한 권의 책. 사쿄구 기타시라카와에서 꼬박 11년간 영업한 가케서점. 말하지 않고 수화나 필담으로 보낸 소년 시절, 가출과 상경, 성인잡지 편집자 생활, 수많은 뮤지션이나 작가와의 교류, 가케서점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을 정리한 에세이집.)
문 여는 책방 이야기는 많아도, 문 닫은 책방 이야기는 적습니다. 송은정의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정도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유일한 문 닫은 책방 이야기가 아닐지 싶습니다. 2013년에 출간한 호리베 아쓰시의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 街を変える小さな店』(2018년 민음사 번역 출간)를 재작년에 읽으면서 ‘이미 문 닫은 책방’으로 인식하고 있던 곳이었기에 더욱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후일담은 페트라 하르틀리프의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와는 정반대의 경우이다 보니, 회한이 넘치면서 처절한 자기반성을 보여주게 됩니다. 야마시타 겐지는 서늘함을 지나 싸늘할 정도의 냉정함을 보여줍니다. 무척 희귀한 ‘추체험’을 아주 독하게 해 볼 기회입니다.
우선 서가 구성에 대한 반성을 여러 차례 보여줍니다. 자기류에 갇혀서는 안 되고, 고객 경험을 중시하라는 충고를 던집니다. 무엇보다 작은 동네 책방은 책을 선별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작은 공간에 맞춰서 선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란 점을 강조합니다. 그런 연유이기에, 더욱 정성 들여서 ‘자기 색깔’에 맞춰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소제목으로 쓰인, ‘그것이 있는 책방과 그것도 없는 책방’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망라형 서점과 제안형 서점의 차이이다. 제안형이라고 해서 흔히 말하는 셀렉트 계열 서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개인 경영 서점이 제안형 서점이다. 망라 가능한 예산과 공간이 없으므로 선택해야 한다. - 197쪽
그런 틈새라고 할까, 책과 만나는 역할 분담으로 개인 경영 서점은 존재한다. 오해해서는 안 되는 점은 대형 서점이 있어서 비로소 개인 서점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경제를 어떻게든 돌아가게 해 주고 있어서 저자도 출판사도 총판도 인쇄소도 그리고 작은 서점도 어찌어찌 꾸려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 198쪽
나는 인터뷰를 하면서 언제부터인가 가케쇼보는 ‘궁극의 보통 책방’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자동차가 튀어나온 외관에 독립 출판물이나 음반과 잡화 등도 취급하는 책방을 ‘평범한 책방’이라 칭하기는 이상하지 않나 싶겠지만, 내 스스로 책을 선별하는 이상 ‘소매업으로서 일반 유통 형태의 책방’을 하고 있다는 속내를 밝힌 것이다. 일부러 앞에 ‘궁극의’를 붙인 이유는 흔히 말하는 총판 배본에 모든 것을 맡기는 책방과 구별하기 쉽도록 단서를 붙인 것에 불과하다. 요즘 시대에 상품을 단 하나도 스스로 고르지 않는 가게를 꾸려 간다는 건 난센스이다. ‘셀렉트’라는 특별한 느낌을 앞에 내걸고 홍보할지는 점주의 취향 문제다. - 223쪽
책방은 ‘좁고 깊게’라는 광적인 상품 선별로는 지금 시대에 더 이상 인터넷에 이길 수 없다. ‘넓고 깊게’가 이상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즉시 효과를 발휘해 팔리는 책은 안타깝게도 ‘넓고 얕게’이다. 정말 재미있고 깊은 것은 팔리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여러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장소를 유지할 수 없다. - 225쪽
특히나 ‘긴타로아메책방 金太郎飴本屋’이란 표현을 다시 보게 돼서 흠칫했습니다. 타이틀 책방은 운영하는 쓰지야마 요시오의 책에서 처음 접했던 표현인데, 이 책에서 또 접하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일본에서는 ‘붕어빵 찍어내듯’과 같은 관용표현으로 사용하는 모양입니다.
긴타로아메金太郎飴 서점이라는 말이 있다. 어느 서점이나 베스트셀러 중심 상품 구성 일색인 똑같은 라인업을 비판하는 말이다. 그 말에 호응하듯 셀렉트를 전면에 내세운 제안형 개인서점이 최근 10년 사이에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런 책방은 아무래도 직거래하는 출판사 책들로 편향되기 일쑤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런 책을 들여놓아야 하는 개인 서점이 늘어난 결과 逆긴타로아메 상태가 생겨난다. 선별 판매를 전략으로 삼는다면서, 그런 책방에 가면 비슷비슷한 책들이 즐비하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려면 역시 각 책의 특성을 알고 판매법과 매입법을 궁리하는 ‘서점원’의 기술이 필요하다. - 234쪽
경영에서도 더욱 신중해져야 함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경영에서 중요한 것은 운전자금입니다. 이 운전자금이 없을 때 발생하는 현상을 우리는 ‘부도’라고 합니다. 부도를 해결하지 못하면 끝내는 ‘파산’하고 마는 것이고요. 그렇다 보니, 운전자금의 융통은 경영에서 무척 중요한 일이 됩니다. 흑자 경영을 통해 기한 내 지급을 대비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한시적인 경영 실적 악화나 성장 선상에 있을 때는 여유 자금이 필요한 법입니다. 시작할 때도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한창 경영할 때도 늘 가슴에 새기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가게는 시작보다 지속이 압도적으로 어렵다. 운 좋게 개점 자금을 준비한다 해도 돈이란 금방 없어져 버린다. 얼마나 궁리하여 운영 자금을 회전시킬지가 그 사람의 진짜 역량이다. - 146쪽
초창기에는 돈이 부족한 달은 저금을 깨서 해결했다. 보통예금이 바닥나자, 다음은 정기예금에 손을 댔다. 어느새 정기예금도 다 사라지고 나는 기로에 내몰렸다. 이제 어디에서도 돈을 구할 데가 없다. 매출을 꾸려 갈 만큼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6년째부터 제자리걸음을 하며 매년 조금씩 줄어들었다. 큰 금액을 결제해야 할 때면 모자라는 달이 나타났다. 나는 드디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대출이라 하면 그럴듯하지만 결국 빚이다. 그때까지도 은행 사람이 가게에 자주 찾아와 대출 안내를 했었다. 처음에는 흘려버렸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으로 돈이 필요해지자 하늘이 계시처럼 들렸다. - 258쪽
야마시타 겐지는 더 이상 혼야(本屋)를 칭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가게’를 운영한다고 표현하고 있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조금은 궤변 같습니다만, 무슨 의미인지는 가슴 저리게 잘 다가옵니다.
나는 가게를 계속했지만 책방은 접었다. 사람들이 보면 아직도 책방이라고 하겠지만, 책방이라는 형태에 집착하는 것을 그만둔 셈이다. - 295쪽
호호호좌는 이제 책방이라 하지 않는다. 모체는 4인조 편집 그룹. 점포는 ‘책이 아주 많은 선물 가게’를 강조한다. 책방에 실망했기 때문이 아니라 조금 불편한 장소에 일부러 찾아와 체험하듯 물건을 구매하고 돌아간다는 의미로 책도 포함하여 모든 것이 선물은 아니냐는 뜻을 담았다. - 284쪽
일전에 저는 ‘금능책방 아베끄’를 운영하는 김수희 책을 리뷰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인 적이 있습니다. “동네책방과 편의점이 별 차이가 없다”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책은 가격이 무척 저렴한 대량생산품”으로 “전국 어느 책방에서나 동일한 공급가로 물량 걱정 없이 공급받을 수 있는 공산품”이라서, “유통에 있어서 편의점 상품과 차이가 거의 없다”라고 주장했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이 크게 바뀐 건 아니라서, “과거 동네 문방구 주인아저씨가 겸업으로 책방을 할 수도 있었고, 책을 읽지는 않지만 책의 재고 위치는 귀신같이 기억하는 책방주인이 장사를 잘할 수도 있었다”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야마시타 겐지가 저보다 8년이나 앞서서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었더군요. 이럴 때마다,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동네 서점의 도태는 자연의 섭리에 가까운 현상이다. 정말 안타까운 흐름이긴 하지만 이 업계에 몸담고 있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전에 책방은 적은 돈만 있으면 전문 지식이 없어도 개업할 수 있는 직종으로 인지되었다. 도매상이 그 서점에 어울릴 책을 적당히 골라서 날마다 보내 주었으니까. 책방주인이나 점원이 그 책에 대한 상품 지식이 없어도 진열해 놓으면 어느 정도 팔렸다. 하물며 책은 썩지도 않고 반품도 가능하다. 말하자면 담배가게 같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미디어가 제공한 오락, 정보원으로서의 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책이 아직 주류였던 시절, 그때는 아직 책방도 개인 경영이 주류였다. 큰 자본의 대형 서점이 책방의 주류가 된 시점은 버블 조금 이전쯤부터로 그즈음부터 자본력을 내세운 막대한 재고량을 서점의 가치로 내세우는 서점이 늘어 갔다. 그런 흐름으로 이전에 느긋하게 책방을 시작한 사람들이 도태되고 점점 사라져갔다. - 2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