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철 Jun 16. 2024

당의를 입힌 자영업 이야기, “내 멋진 책방”

[북리뷰] 페트라 하르틀리프.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2015

1. 리뷰를 쓰지 않겠다더니...

 책을 반쯤 읽다가 덕지덕지 붙였던 포스트잇 플래그를 떼어내고, 리뷰를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더랬습니다. 평상시의 독서법에 어울리는 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서점 주인이 쓰는 에세이에서 서점 이야기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자영업으로서의 서점에 관한 이야기를 하거나, 서점이라는 자영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주로 앞엣것을 읽고 싶어 합니다. 뒤엣것은 보통 서점이 아니라도 겪게 되는 일들을 중심으로 글을 쓰기 마련이거든요. 안타깝게도 이 책이 그 뒤엣것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책방주인들의 책에서 ‘책방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엿보며 지식을 갱신하고 싶었는데, 책방 운영을 하며 겪게 되는 ‘인생의 신산함’을 들여다보려니 짜증이 난다”면서 “그 와중에 읽는 재미라도 없으면 더 크게 투정을 부린다”는 리뷰를 쓰기도 했던 거겠죠. 다행스러운 것은 이 책 역시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어조로(in einem schlagfertigen und humorvollen Ton)” 쓴 덕에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저 즐겁게 읽으면 그것이 행복”이란 간단한 진리를 따르자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마지막 장을 쥐고 읽다 보니, 마음이 바뀌게 됐습니다. 어느새 몇몇 문단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고, 마지막 장에서만 두 군데에 포스트잇 플래그를 다시 붙였습니다. 무엇보다 독일의 도서정가제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숙제가 됐고요. 게다가 무엇을 읽건 간에 리뷰를 쓰는 버릇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지만, ‘즐거움의 총량’으로 따지자면 쓰는 편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꾸역꾸역 리뷰를 씁니다.



2. 당의를 입힌 자영업 이야기

 이 책의 원제는 『Meine wundervolle Buchhandlung』으로, 비교적 수수한 제목입니다. My Wonderful Bookstore(영어), Mi maravillosa librería(스페인어), 我的奇妙书店(중국어) 등의 제목으로 번역되었네요. 언제나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만 넘어오면 원제는 사라지고, ‘분더폴’한 번역서명이 재탄생하곤 합니다.

 “Eine Frau, eine Familie und ein gelebter Traum”

 출판사 책 소개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어조로”로 써 내려간 이 책은 서점이란 공간을 중심으로, ‘한 여자와 한 가족 그리고 하나의 살아 숨 쉬는 꿈’을 드러내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참 적절한 소개다 싶습니다.

 이 책은 2004년 오스트리아 빈 배린저街(Währinger Straße)에 위치한 망한 서점, ‘카를 스트로펙 서점(Buchhandlung Dr. Karl Stropek)’을 인수해서 10년간 잘 경영한 ‘성공한 서점주’가 2014년에 쓴 책입니다. 성공한 자의 후일담이란 거죠.

 최근 이러저러한 행사에 내가 연사로 초청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10년도 안 되는 기간 내에 작은 서점 두 곳을 열어 살아남았다면 그건 성공 스토리다. 또 여성 서점주로서 종종 입을 여어 자기 의견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이미 내가 누구인지를 다 안다. - 271쪽

 성공한 자의 후일담은 정형성을 띄게 마련입니다. 이미 성공했다란 사실을 알고 있으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야기하면 위선이 됩니다. 그렇다고 ‘나 성공했다’며 자랑을 떠벌리면 또 욕 들어먹기 십상입니다. 결국 ‘나도 위기를 겪었지만 극복하고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겸손하거나 유머러스한 문체로 풀어내야만 합니다. 딱 그런 책입니다. 그래서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에피소드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답다'는 달달한 당의(糖衣)를 입힙니다. 40대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경멸'할 정도로 싫어했었습니다. 그런데 꼰대가 되어서 그럴까요, 이젠 제법 참아낼 수 있는 아량이 생겼습니다. 그래서인지 용서점을 운영하는 박용희의 에세이, 『낮 12시, 책방문을 엽니다』에 대해서는 "우리는 세상이 좀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산다. 그래서 이 쓰디쓴 현실 속에서도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라고 말해주는 누군가의 소곤거림을 당의정임을 알면서도 주워 먹게 된다."라고 짧은 리뷰를 달기도 했습니다.

 다만, 20년 전에 시작한 서점의 10년 전 이야기인지라, 이 작지 않은 시차가 현재와 서로 닿지 않는 부분을 가져왔을 거란 점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3. 성공 요인 3가지

 하르틀리프 서점(Hartlieb Bücher)의 성공 요인은 크게 3가지로 꼽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 첫 번째는 ‘준비된 사람들의 준비된 서점“이란 점입니다.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않았던 서점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작한 듯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은 출판사 직원이고, 하나는 문학비평가이자 집필가였습니다. 출판문화와 밀접한 영역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으니, 아주 생뚱맞은 일을 하겠다고 덤빈 건 아니란 말입니다. 물론 에디터 일을 하다가 책방을 차린 사람들 중에도 누군가는 살아남았고 누군가는 문을 닫긴 했습니다만, 아예 생뚱맞은 일을 하다가 책방을 연 경우에 비하면 생존율의 차이가 큽니다. 게다가 시작부터 '비즈니스 마인드‘를 장착하고 차분한 사업계획서를 준비했습니다.

 탁자 위에는 우리의 미래 기업에 대한 사업계획서가 인쇄된 채 놓여 있었다. 서점 사업이 비록 수십 년은 아니라고 해도 수년째 죽은 분야라는 것을 아직 은행직원들이 모르고 있기를 우리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엑셀로 만든 도표와 케이크 모양의 도표를 열심히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남편은 해당 지역의 인구 동향, 소득 상황 추정치, 경쟁업체, 향후 10년 동안의 예상 매출 등등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준비했다. - 28쪽


 두 번째 성공비결은 그 준비된 사람들이 지역주민들에게 '서점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듯합니다. 하르틀리프 부부는 두 곳의 망한 서점을 인수해서 성공적으로 운영했습니다. 그 어느 시기도 '서점의 위기‘를 이야기하지 않았던 때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죽은 서점‘도 살려낸 거죠. 하르틀리프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자신의 성공 이유를 이렇게 적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성공비결은 우리 서점에서는 우리 서점에서는 모든 게 “옛날”과 똑같다는 것을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있다. 좁은 공간에 있는 수많은 책들, 천장 아래까지 서가가 꽉 차 있는 책, 쉬는 시간에도 책 읽기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열정적인 직원들. 예전에도 그랬듯이 말이다. - 272쪽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그 서점에 가면 책이 있다'는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는 겁니다. 일본드라마 <HERO>에서 뭐든지 “아루요!”를 외치던 이자카야상(다나카 요지 扮)처럼, 찾는 책을 내어줄 수 있는 서점은 꽤나 만족스러운 고객경험을 제공합니다. 인문서적에 한정되지만, 제가 사는 동네의 '그날이 오면'이 그런 편입니다.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열정적인 직원과 책으로 꽉 들어찬 서가가 필요합니다. 하르틀리프 역시 그렇게 서점을 운영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필요로 할 만한 모든 것을 갖추어 놓으려 했다. 우리는 최고이자 고객 지향의 서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찾는 모든 책을 다 갖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40평방미터란 절대 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점은 작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었다. 정해진 작은 공간에서 우리는 큰 서점 역할을 해야 했다. - 71쪽

 그렇다 보니 언제부턴가 ’큐레이션 서점‘이란 개념에 꽤나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됐습니다. 자신이 만든 개념에 얼마나 충실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겠으나, 다양한 수요의 여러 고객들이 굳이 작은 서점에 오는 이유가 되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하르틀리프가 두 번째로 인수한 ’망한 서점‘(2023년에 직원이었던 니콜 리스트가 인수하여 Buchhandlung List로 바뀌었다.)을 어떻게 기술했나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의 기업 구상이라니? 좁은 공간에 많은 책을 쌓아두고 많은 직원이 책 한 권 한 권을 열심히 파는 것. 그의 운영 방식은 그 반대였다. 그는 서점에 책도 얼마 갖춰 놓지 않았다. 그저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들을 구비하고, 한눈에 다 들어오도록 책을 쌓아두는 것이 전부이며 직원도 한 사람뿐이다. - 247쪽


 세 번째는 독일어권의 도서정가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지금이야 EU의 반독점 제재와 관련해서 끊임없이 공격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독일어권의 도서정가제는 굳건히 버티고 있습니다. 이 책의 가격만 해도 하드커버의 경우 아마존에서는 16.82유로, 독일 인터넷서점들에서는 18유로, 하르틀리프서점의 온라인서점에서는 18.50유로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페이퍼백의 경우에는 각각 12.15유로, 13유로, 13.40유로이며, 전자책은 세 곳 모두 8.99유로에 판매됩니다. 같은 독일어권이다 보니,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의 도서정가제는 탄탄한 동맹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이죠. 책값은 어디나 다 같아요.”
 “죽이네요!”
 “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는 이따금 여러 단체들이 도서정가제 홍보를 위해 돈을 어마나 쓰는지,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왜 대형 도서슈퍼마켓이나 인터넷에서도 책값이 더 싸지는 않음은 알지 못하는지 궁금하다. - 209쪽

 이렇게 ’완전정가제‘(독일 아마존의 할인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하에서는 인터넷서점과 동네서점이 충분히 겨루어 볼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2002년 시작된 독일의 도서정가제 덕을 본 것으로 보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뷰를 쓸 수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