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싱크스마트. 2019. "짜증 날 정도로 엉터리 책"
책을 읽다가 이렇게까지 짜증 나고 화가 난 것도 오랜만이다. 이 정도로 엉터리인 책도 흔치 않다. 끝까지 책장을 넘기지 못하기로는 『다정한 개인주의자』 이후로 처음이고, 일부러 까려고 리뷰를 쓰기는 『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이후 처음이다.
우리가 굳이 남이 쓴 글이나 책을 읽는 것은 정보의 획득 때문이다. 심지어 문학작품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개별화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어떤 양태로 전달될 수 있는가를 문학작품은 하나의 정보로서 담지하고, 그 정보는 책이란 미디어의 형태를 통해 몹시 높은 정보하중의 형태로 전달된다. 쉽게 말해, 남이 잘 정리한 정보를 날름 받아먹으려고 남의 글이나 책을 읽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글이나 책의 내용이 부실하거나 잘못된 내용으로 채워져 있을 때면 꽤나 낭패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나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독서행위에 들어갔는데, 제대로 된 정보조차 얻지 못했다면, 이건 성질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글을 쓴다는 것, 그리하여 작가됨(Authorship, 또는 저자권)은 고대 로마에서부터 확립된 Auctor의 전통에 기반하여 현대 학문 체계에서는 꽤나 정형적인 요구를 받게 된다. 내용의 정확성과 진실성에 대한 꽤나 중요한 책임을 지게 된다. 그렇다 보니 책이나 글을 쓰는 과정은 꽤나 정형적인 전개 양상을 띠게 된다. 기승전결을 갖추거나,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논지 전개 양식을 확립하곤 한다. 학술논문이나 학술서가 전형적이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다가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건 위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북큐레이션에 대한 얼토당토한 뇌피셜로 비빔밥을 만들어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그 구성의 양식은 '자기 꼴리는 대로' 아무 데다 막 쓰는 것까지 무엇하나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북큐레이션이란 어중간한 말장난"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그리 잘 진행되고 있지는 않았다. 여전히 브런치에 저장만 되어 있을 뿐 끝까지 정리되질 못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북큐레이션이란 개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공부부터 해야만 했다. 우선 논문부터 뒤져보기 시작했는데, 큐레이터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이지호의 <큐레이터십과 관련된 권력>이란 논문은 논의의 시작점에서 꽤나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글을 준비하다 보니 이런 인용을 가져오기도 했다.
북큐레이션이라는 용어에 대한 정의가 현재로서는 모호하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개인을 위한 보다 전문적인 맞춤 서비스의 형태 정도로 인식되고 있으나 명확한 개념이 정의되어 있지 않아 북큐레이션을 현재 접목하고 있거나 앞으로 접목하고자 하는 현장의 실무자들조차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지적이다.
- 김미정, 김정명. <북큐레이션의 개념 및 활용 유형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2020, vol.46, no.2, 통권 93호 pp. 59-83 (25 pages)
어라, 그런데 저자가 김미정이다. 학술지에 투고하는 논문의 저자는 보통 앞에, 그리고 투고에 대한 학술적 지도자 차원의 책임을 지게 되는 교신저자를 뒤에 쓰게 된다. 김정명은 교신저자다.
혹시 동명이인일까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20년 공주대학교 문헌정보교육과 박사과정의 김미정은 2022년 2월 공주대학교에서 문헌정보교육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체험경제이론에 의한 북큐레이션 교육 프로그램의 효과 분석 및 모형 설정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봐도 그렇고, 6쪽에서 40쪽에 이르는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큐레이션과 북큐레이션의 개념에 대한 선행연구들을 검토한 것을 봐도 다른 사람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이전에는 특강 경력이 기술되었던 저자의 소개글에는 올해부터 교육학 박사라는 타이틀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같은 사람일 테다.
박사과정에서 청구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두 편 정도의 학술지 논문 투고가 관행이다. 석사논문 짜깁기로 자기 표절 논문 한 편, 박사논문 준비 자료로 자기 표절 논문 한 편 정도로 때우고 있는 것도 관행이다. 김미정 역시 2020년 4월과 10월에 북큐레이션과 관련한 논문 두 편을 학술지에 투고했다. 한국출판학연구에 제출된 논문이 그중 하나다.
2019년 11월에 출판한 책이었으니, 이전에 사단법인 한국북큐레이터협회로 민간자격인 북큐레이터를 양성하던 때에 원고가 준비되었을 테다. 독립출판과 독립서점의 담론에서 '기원을 은폐하고 자명한 무엇'으로 간주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북큐레이션이란 개념 역시 2019년의 책에서는 자명한 그 무엇을 넘어서서 자기 멋대로 뇌피셜을 늘어놓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그런데 2020년의 논문을 보면, 선행연구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2019년 책도 기가 막혔지만, 그에 대해 자기반성적인 태도를 보이는가 싶었던 2020년 논문도 딱히 들여다 볼만한 것이 못된다.
북큐레이션이란 개념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위해서는 우선 큐레이션이란 개념부터 이해해야 했다. 라틴어 쿠라레curare라는 동사는 쿠라토르curator라는 명사를 파생해 냈는데, 이 명사가 영어에서는 큐릿curate과 큐레이터curator로 파생됐다. 큐릿은 영혼의 수호자인 목회자를 의미하고, 큐레이터는 학예사를 의미하게 됐다.
curate란 동사가 존재하지도 않는데, curation이란 명사는 존재하는 이 기막힌 현실은 '큐레이터의 일'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2004년 'digital curation'이란 개념이 시작된 연유이기도 하다. 사서librarian에게는 아카이브archieve란 개념이 있었다면, 학예사curator에겐 큐레이션curation이란 개념이 존재했다. 해당 분야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선별해서 소장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서와 학예사의 일은 꽤나 근접한다. 다만 학예사의 일은 그렇게 소장한 '작품'들을 다시 맥락context을 고려해 선별해서 관람객에게 선뵈는 편집의 과정이 하나 더 존재한다. 라키비움lachievium이란 개념 역시 아카이빙에 그치던 도서관 사서의 작업을 내방객들에게 '맥락을 갖춘 책의 선별'을 통해 확장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초기 디지털 큐레이션의 개념이 정보의 선별, 선택, 소장이라는 아카이브의 개념에 천착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보의 최종 전달지인 정보소비자와의 관계를 설정하고, 그들에게 소비되는 용역service로서의 행위를 규정하다 보니 큐레이션이란 용어가 원용된 것으로도 보인다.
큐레이션이란 단어는 오해를 사기 쉽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파악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 마이클 바스카, 『큐레이션』
이와 같은 이해의 과정은 김미정의 2019년 책을 시작으로 2020년도 논문 2021년 박사학위 청구논문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참고문헌 목록에 올라가 있는 마이클 바스카의 『큐레이션』에서 머리말에서부터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김미정이 같은 시선으로 큐레이션을 이해하고 기술하기 시작한 것은 2021년 박사학위 청구논문에서나 가능해졌다. 그러니 리뷰를 하는 2019년의 책을 읽느니, 박사논문의 앞부분을 읽어보는 게 조금은 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큐레이션'이란 개념 자체에 대해 제대로 탐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반복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 보니 책이 사상누각이 된다. 개념이 바로 서 있지 않은데, 거기에 말을 붙인들 제대로 된 논리가 설 수 없고, 그렇다 보니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도 없다.
게다가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기본적인 마케팅 개념들이 '북큐레이션'이란 개념에 마구잡이로 동원되고 있다. 서점의 북큐레이션의 기초는 STP전략 구성을 그대로 원용하였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견강부회다. 심지어 브랜드 마케팅(또는 브랜딩)의 전략까지도 북큐레이션에 가져다 붙인다. 거의 건강기능식품 효능급의 응용력이다.
브랜드 마케팅에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이 페르소나조차도 북큐레이션의 과정에 가져다 붙인다. 터져 나오는 한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개인별 맞춤 북 큐레이션'이라는 개소리와 조응한 페르소나 타령은 큐레이션이란 개념 자체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으며, 마케팅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개인별 맞춤 북 큐레이션'이란 형용모순부터 숨 막히게 한다. 이를테면 '맞춤형 기성복'이란 형용모순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큐레이션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작업이다. 기성복을 만드는 작업이란 것이다. 그런데 개인별 맞춤custumizing이란 특수한 개개인을 특정하는 과정이다. 아무리 빅데이터를 돌리고 개인의 구매 정보를 분석해도, '딱 맞는 추천'을 해주지 못하는 현재의 개인최적화서비스의 한계를 카테고리화한 서비스로 대체하고자 하는 것이 요즘 유행하는 '큐레이션 서비스'이다.
심지어 VMD(visual merchandising)에 대한 오독과 곡해를 '북큐레이션'의 기능으로 첨가하기까지 한다. 머리가 아파질 지경이다. 마케팅의 역할은 그냥 마케팅을 공부하는 것으로 두었으면 한다. 이현령비현령도 이만하면 창조경제적이다.
마침내 책을 덮게 만든 최악은 도슨트의 역할에서 큐레이터의 필요성을 역설한 부분이다. 도슨트는 큐레이터가 아니다. 큐레이터가 도슨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만, 도슨트는 큐레이터의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규정된 학예사curator의 자격은 엄중하다. 아무나 큐레이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도슨트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 보니 "야 너두 북큐레이터가 될 수 있어!"와 같은, 아무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 자격증 남발이 가능할 테다. 이쯤 되면 더 이상을 책을 읽어 나갈 수가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