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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Dec 07. 2021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2021》 참관기

Seoul Publisher's Table 2021. "간만에 눈요기"

1. D Museum이란 장소 선택은 좋았다.


 페어(fair)라고 하면 응당 작은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말 그대로 시골 장터같은 느낌이 나야 제맛이라 할 수 있다. 전람회(exposition)과 달리 페어는 그와 같은 소규모성에서 정체성이 확립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공간마저 협소해야 할 필요는 없다. 참여자들 역시 소규모일 필요도 없다. 어디까지다 전람회처럼 개별 공간의 비대함을 추구하지 않을 정도면 좋겠다는 말이다. 

 지난 10월 효자동에서 있었던 책보부상이 너무 협소한 공간에 너무 많은 셀러를 입점시켜서 난리통을 만들었던 게 문제였다면, 11월 논현동에서 열린 UE100은 셀러를 제거한 비대면 운영이 큰 아쉬움을 남겼었다.

2021년 10월 23일, 종로구 효자동 카페베어에서 열린 "책보부상" 행사. 너무 좁은 곳에 너무 많은 셀러가 문제였다. 

 그래서 아주 넓직한 디뮤지엄에란 공간의 선택은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위드코로나로의 전환도 한몫했다고 봐야 할 테다. 정말 오랜만에 페어다운 페어를 본 것 같아, 참 즐거운 경험이 됐다.

 디뮤지엄 2층에서 4층까지 3개층을 사용해 160여개 팀이 참여한 터라, 다 돌아보는 일은 꽤나 피곤한 일이었다. 4층 입구에 들어서자, 도저히 더 걸을 힘이 없었다. 바로 옆 언더스탠드 애비뉴의 카페에 앉아 30여분 정도 책을 읽으며 다리를 쉬게 해주자, 다시 돌아다닐 힘이 났을 정도다.

 참여팀이 너무 많았다고 불평할 생각은 없다. 뷔페에 음식 종류가 많다고 투덜거릴 정도로 정신머리가 없진 않기 때문이다.

통의동 대림미술관이나 가봤지, 성수동 디뮤지엄은 와본 적이 없었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심심한 공간디자인이었다.



2. 독립출판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


 160여 개 팀이 적게는 한두 권에서 많게든 예닐곱 권의 출판물을 가지고 출점했다. 어림잡아도 600여 권 이상 됐다는 말이다. 되도록 다양한 책들을 모두 살펴볼 요량으로 꽤나 무리했기 때문에 금요일 당일 밤인 토요일에도 그 고단함의 여파는 계속될 지경이었다. 

넓은 공간과 충분히 확보된 관람자 통행로는 제대로 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펴보니, 크게 세 부류로 출판물들의 성격을 나눠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아티스트들의 포트폴리오 대용으로 보이는 출판물들이었다.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 작가, 사진작가, 만화가들이 자신의 시각예술작품을 코덱스(codex)란 물성에 녹여낸 형태를 취하고는 있었다. 꽤나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아무래도 문외한의 입장이 내리는 후한 평가일 테다. 해당 출판시장에서 먹힐 작품이었다면, 이미 출판되고도 남았을 테다.


 두 번째는 차고 넘치는 에세이란 명찰을 달고 나온 감정 찌꺼기들이었다. 평소에도 에세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문학적 소양에서 우러나오는 미문을 엮어내는 경우도 드물거니와, 하나의 주제로 코덱스의 전통에 따라 일관되게 완성된 형태를 이루는 경우도 희소하기 때문이다. 이십대 후반과 삼십대 초반의 ‘개나 소나’ 쏟아내는 미숙한 문장들을 들여다 보고 있자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문제는 독립출판물의 상당수가 이런 류라는 것이다. 더욱 아찔해진다.


 세 번째는 다양성을 담보하지만 돈이 될 것 같아 보이진 않는 출판물들이었다. 영화비평잡지 《FiLO》, '엄마‘란 존재에 천착한 잡지《magazine popopo》, 음악출판사 “Franz"의 책들, ”원주관람“이나 아홉프레스의 지역 탐색물들이 그랬다. 혹여 돈 좀 벌고 계시다면 죄송하지만, 아무리 봐도 너무 마이너하다.

 1995년 출간하기 시작해 2003년 폐간한 영화비평잡지 《KINO》를 떠올려 본다면, 《FILO》의 앞길은 그리 밝아보이진 않는다. ‘필로’ 이전에도 독립영화잡지가 없던 것은 아닌 모양이나, ‘키노’의 첫 편집장이었던 정성일 평론가와 같은 이들이 ‘각잡고’ 참여한 경우는 드물었다고 한다. 아무려나, 학창시절 열심히 사봤던 ‘키노’의 추억이 떠올라 반갑기는 했지만, 영화비평시장이 더 나아졌다고 보기도 어려운 요즘이라서 말이다. 잘 됐으면 좋겠는 마음이지만, 이성은 자꾸만 잘 될 리가 없어 보인다고 속삭인다. 이것도 참 괴로운 일이다.



3. 소구(needs)없는 기발함은 시장에 필요하지 않다.


 창업특강에서 창업아이템을 발표하는 청년들이나 예비창업패키지와 같은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보다 보면, ‘참 기발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하지만 기발하다고 해서 그게 좋은 아이템이 되는 건 아니다. 그저 기발하기만 할 뿐, 상품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당신이라면 당신의 물건을 그 돈 주고 사서 쓰겠습니까?”란 반문을 하게 되면, 으레 환경이나 윤리와 같은 거대담론의 당위 뒤로 숨곤 한다. “많이 팔아서 돈을 벌기 위해서 기획한 상품이 아니다”란 개똥같은 변명을 듣다 보면 어질어질해진다.


 책이라고 다를 수가 없다. 책도 상품이다. 책만 유별나게 문화를 담지한 상품일 리가 없다. 어떤 상품이든 당대의 욕망(desire)이 녹아든 소구(needs)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굳이 책이 아니라도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도 한다. 그런 상품들은 여지없이 많은 사람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받게 된다. 그래서 책도 소비자이 소구를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성 타령의 뒤에 숨어서 가치있는 일이란 도금으로 자기만족에 빠질 순 없다.

 심지어는 신춘문예나 문학잡지 추천, 공모전과 같은 등단 시스템을 거쳐도 자기 작품집 하나 제대로 출간 못하는 문학작가들도 제법 많다. 등단작품보다 더 나은 작품을 계속 생산해야만, 출판사나 잡지사들이 돈을 들여서 출판에 참여하게 된다. 등단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산을 넘어도 또 산인 것이다. 그런데 그 산 하나 넘지 못한 채, “문학권력들에 의해 입구컷 당했다”는 핑계로 자기 위안을 하는 것도 꽤나 봐주기 힘들다.  

아이폰은 20세기와 21세기를 일별하는 세기의 아이콘이란 점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최근 한 독립서점 관계자의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독립서점과 '결이 맞지 않은 책'에 정중하게 입고 거부 메일을 보냈더니, 뒤에서 꽤나 원색적인 비난을 하고 다니더란 말이었다. 독립출판분야에서 꽤나 유명한 서점이었기에, 그 입고 거부가 갖는 의미는 꽤나 컸을 테다. 뭐랄까, 독립출판계에서는 '그 서점에의 입고가 등단'이란 등식이 성립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심사기준은 모호하고, 심사평마저도 공개하지 않는다면 피심사자 입장에선 속에서 천불이 날 법도 하다. "책의 완성도 문제가 아니라 우리 서점과 결이 맞지 않아 신청을 반려한다"고 정중하게 의견을 전달했다고는 하지만, 그것마저도 해당 서점에 입고를  노리고 책을 만들었을 이에게는 꽤나 가혹한 평가가 됐을 테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 보면, "결이 맞으면 잘 안 팔리더라도 입고한다"는 그 서점의 소구마저 충족하지 못한 책을 찍어낸 쪽에도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고객의 소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기획 단계에서부터 잘못된 상품은 결코 시장에 나올 수가 없다. 분함 마음이야 이해하겠지만, 귀인오류에 빠지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테다.

책은 코덱스의 물성을 지키면서도 독자의 소구에 응답해야, 비로소 서점을 통해 독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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