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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Nov 13. 2021

UE100, 《제13회 언리미티드 에디션》 참관기

아트북이 뭔지 몰라서 직접 가봤습니다만, 오히려 개념을 잃고 돌아왔습니다

1. 아트북이 뭔지 몰라 직접 가봤습니다만...


아트북(art book)이 뭔지 모르겠어서, <UE100 제13회 언리미티드 에디션 - 서울아트북페어 2021>을 다녀왔다.

오히려 아트북에 대한 개념을 상실하고 돌아왔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아트북의 개념은 "아트에 관한 책"이었다. 미술관에 가면 흔히 접할 수 있는 미술(art)에 관한 책들 말이다. 미술비평서, 미술이론서, 작품도록 같은 형태들로 출간되며, 'art book store'란 간판을 달고 있는 부속 서점에서 주로 팔았다. MMCA서울의 미술책방이나 SEMA의 The Reference x SeMA가 art book이라며 팔고 있는 책들은 거의 다가 그렇다.


그런데 책이란 미디어나 책이란 물성을 대상으로 한 미술도 존재한다. 이것조차도 우리나라에서는 아트북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영어로는 Artist's book이나 Book art라고도 한다. 


여기에 전통적인 북디자인을 벗어난 책도 아트북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제도화되 판형을 벗어나고, 텍스트가 우위였던 책에 이미지의 지위를 역전시킨 형태의 전도적 북디자인 역시 아트북이란 이름으로 포섭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다 보니 '아트북페어'에 출품된 작품(work)들을 통해 그 개념을 이해해보고자 시도했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2. 개념은 실종됐고, 기원은 전복됐다.


100개의 저울(정확하게 세어본 건 아닌데, 대충 세어보니 102개쯤이었다.) 위에 올려진 책들은 정말 다양했다. 내가 알고 있던 전통적 의미의 아트북뿐만 아니라, 책을 매개로 한 북아트부터, 파격적인 북디자인으로 다가온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몹시도 의아하게 "여기서 네가 왜 나와"싶은 책들도 여러 권이 섞여 있었다. 아무리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고자 해도, 이건 아트북도 북아트도 아닌, 심지어 책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인쇄물들까지 버젓이 저울 위에 올라가 있었다. 맙소사!


사실 개념이란 건 사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며, 그 정의마저도 태생적으로 관념적이기 때문에 무 자르듯 정확할 수는 없다. 특히나 서로 다른 기원에서 비롯해서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거치면, 더더욱이나 모호해진다. 인디문화(indie culture)에 포섭되는 숱한 장르의 개념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비교적 많은 연구와 제도화를 통해 개념이 정립된 독립영화에 비해, 대중음악계의 인디음악은 여전히 애매한 것이나, 독립출판물에 대한 개념의 혼돈이 그러한 이유에 연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정립되지 않은 개념을 주제로 열리는 행사는 그 기원을 탐색해서 개념을 정립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이 행사에선 그런 노력이 '1도 없다.' 행사소개의 "‘UE100’은 100팀의 새로운 책 100종을 소개하는 행사"라는 소개에서부터 일단 좌절하고 시작하게 된다. 쉽사리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인 '아트북'을 이미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으로 상정하고, 그 기원을 전복한다.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이런 식으로 전시를 큐레이션했다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테다.

'벌써 13회째의 행사'이니 이전 행사들을 통시적으로 고찰하고 말을 덧붙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변명조차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링을 통해 이전 기록들을 살펴봐도... 1회에선 '인디 북&매거진 마켓'을 표방하다가, 7회쯤에선 난데없이 아트북과 독립출판이 병기되고 있다. 혼돈의 도가니다.

2019년 <월간 디자인>의 기사에서 보면, “독립 출판이라는 범주 중에서도 시각적 요소가 강한 출판물에 집중하겠다는 정체성의 표명”하기 위해 서울아트북페어라는 이름을 병기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 충분한 설명은 아니다. “내가 이 책이 아트북이라고 하면 아트북인 것”만으로는 아트북이 될 수는 없다.



3. 공간 디자인은 훌륭했다.


물질로서의 책이 가지고 있는 '질량'이 그 책의 가치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는 간명한 사실을 시각적으로 표현된 것이 백 개의 저울 위에 올려진 책일 테다.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이었으며 새롭기까지 한 공간 디자인이다.

거기에 비대면이 대세인 코로나 국면에서 그 창의성은 더욱 빛을 발했다. 전통적인 북페어의 부스 운영 방식을 벗어나, 오롯이 책 그 자체가 관람객/독자와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은 신선하다.

다만... 그래도 공간이 너무 협소하긴 했다.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집어 들면, 최소 4권 정도의 접근 영역이 봉쇄될 수밖에 없다. 그건 좀 아쉬웠다.


저울에 올려진 책들이 보기 불편하다면, 서서 기대어 보거나, 앉아서 볼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보시다시피 여기선 코로나 국면 같은 건 쌈싸먹었다고 보면 되겠다.

다양한 물성의 책들이 그 개성을 완연히 들어낼 수 있는 형태로 전시된 공간도 위층에 따로 구분되어 있다.

비대면 책구매시스템을 적용하면서, 마지막 계산대가 존재하는 공간이 따로 준비되어 있다. 여기서는 책쟁반마저도 의장용 오브제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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