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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쉬나의 선택 실험실_쉬나 아이엔가

선택의 기술(the art of choosing)

by 안철

[리뷰] 쉬나 아이엔가 著/ 오혜경 譯. 쉬나의 선택 실험실. 21세기북스. 2010.

선택의 기술(the art of choosing): 좋은 선택의 핵심은 기술이다



Sheena Iyengar의 한글 표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참 많습니다. 인도계 미국인이니 그냥 영어의 한글 표기를 따른다면, 쉬나 아이엔가와 같은 표기는 어림없습니다. 이 책의 권말에 있는 주석에서는 ‘이옌거’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환장할 노릇입니다. 본인이 등판한 인터뷰 영상에서는 대충 ‘쉬나 아이옌가’ 정도로 들립니다. 그러니 어문규정에 맞춘 한글 표기는 ‘시나 아이옌가’가 맞지 않나 싶습니다. 이중모음으로 발음하는 I와는 별개로 y는 반모음의 음가를 갖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름의 한글 표기가 “뭣이 중헌디?”라고 반문하기 쉽습니다. 처음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진짜 중하더군요. 이 학자의 번역서를 찾아 읽어 보고 싶은데, 당최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름을 뭐라고 표기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이 책의 6장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혹시 그 유명한 잼 연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Have you heard of the famous jam study?)”

진짜 유명한 연구입니다. ‘선택의 역설’을 드러낸 기념비적인 연구였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를 확인해 보고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결국엔 한글 자료를 찾아보길 포기하고 2000년에 발표된 영문 논문을 찾아보는 선에서 끝냈었습니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자는 2010년 이 책, 그러니까 해챗출판그룹의 임프린트인 트웰브북스(Twelve Books of Hachette Book Group)에서 출간한 『The Art of Choosing』가 유일하게 국내에 소개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두 번째 저서는 2023년에야 출판됐기 때문이죠. 그런데 더 골 때리는 건, 이 책이 2010년, 2012년, 2018년에 걸쳐서 각각 제목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심지어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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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의 『The Art of Loving』이나 손무의 『The Art of War』를 떠올리게 하는 이 제목이 과연 적절한 제목이었는가는 회의적입니다. 일단 번역서명이 저렇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원서명이 책의 내용을 적확하게 반영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겠지요. 선택에 관한 심리학적 분석을 다룬 책이길 기대하고 책장을 펼쳤지만, 막상 읽어 보면 ‘선택의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책이었습니다. 왜 선택을 하는지, 왜 잘못된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 중구난방으로 이야기를 하는데요. 억지로 그러모으면 일종의 철학적 문제로 귀결된다고 봅니다. 프롤로그에서 드러낸 저자의 집필 의도에서 어느 정도 확인가능합니다.

선택은 너무나 다양한 뜻을 갖고 있으며, 그에 대한 연구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한 권의 책에 선택의 모든 것을 담기란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가장 연관되어 있으며 사고를 가장 자극하는 면들을 중점적으로 파고들어 보려고 한다. -14쪽

워낙 유명한 ‘잼 연구’ 때문에 기대가 컸었나 봅니다. “선택의 모든 것을 담기란 불가능”하다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일인지라, 그렇다면 어디에 집중을 하느냐가 관건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방식과 연관”된 면을 중점적으로 파고들었다고는 하는데, 이 책에서도 언급이 되는 리처드 세일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넛지』나 대니얼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의 『보이지 않는 고릴라』만큼 하나의 주제로 집중력을 갖추고 응집하지 못합니다. 물론 각 챕터에 동원되는 여러 실험들의 내용들은 흥미롭습니다. 챕터 하나하나도 그 자체로 완결성은 갖춥니다. 다만 7개의 챕터가 한 권의 책으로 묶였을 때는 의미 있는 완결성을 갖추지 못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번역서의 제목은 수시로 바뀌었지만, 이 책의 내용에 그나마 근접한 건 두 번째 것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존재(Sein)가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합니다. 인간이 됐건, 동물이 됐건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통해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것으로 존재를 유지하거나 소멸한다고 봅니다. 동의하기 힘든 견해인데요, 아무래도 존재론에 대한 차이 때문이겠지요.

존재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그 선택지의 가치를 판단해야 합니다.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따라서 ‘더 낫다’는 판단하기 위해서는 가치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 가치 체계가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칸트 철학이나 헤겔 철학에서 고민해 보면 참 머리가 아파집니다만, 그래도 간단히 정리하자면 선택을 통해 정체성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성립된 정체성에 근거해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자는 완전히 반대되는 주장을 합니다. 이건 좀 아니다 싶어집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기 위해 선택한다(I choose to discover who I am).” - 188쪽

되레, 저는 ‘숱한 선택을 하고 나면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게 된다’고 봅니다. 그런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은 충분히 동의할 수 있습니다.

“선택은 발명이다.” 이 말은 선택이 자신의 환경과 삶,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창의적인 과정이라는 뜻이다(To choose is to invent. What I mean by this is that choosing is a creative process, one through which we construct our environment, our lives, our selves). - 348쪽

그리하여 에필로그에 이르러 반전되는 선언에 이르러서야, 얼굴을 찌푸리며 그나마 안심하게 됩니다.

선택은 우리가 삶을 만들어 나가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선택하는 주체이며, 또한 선택에 의해 형성된다. 더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과학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선택의 핵심은 여전히 하나의 예술이다. (Choosing helps us create our lives. We make choices and are in turn made by them. Science can assist us in becoming more skillful choosers, but at its core, choice remains an art. ) - 4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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