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론 문외한을 위한 좋은 입문서
게임이론 문외한을 위한 좋은 입문서
제가 생각하는 좋은 입문서는 두 가지 자질을 갖춥니다. 첫째, 쉽게 읽힐 것. 둘째, 얇을 것. 이유 역시 간단합니다.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하면 입문서일 수가 없으니 얇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얇은 책을 최대한 쉽게 풀어써야 합니다. 그러니 쉽게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이 그렇습니다. 게임이론을 들어본 적이 있어서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 못하는 수준의 문외한에게는 이만한 책이 없을 듯합니다. 얇고 쉽습니다. 무엇보다 작가가 “제발 책을 덮지 말자. 기겁할 필요 없다! 이 책은 숫자와 공식의 사용을 배제한다. 훌륭한 책은 거의 다 그렇게 한다.”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읽어 보면 ‘존맞말’이라며 맞장구 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게임이론이 ‘콤퓨타 게임’을 만드는 방법에 관한 이론이냐고 반문하는 수준의 문외한이라면, 뭘 읽어도 쉬운 책이 나올 수는 없습니다. 심리학에서 행동경제학 다시 또 수학으로 옮겨가는 이 학제간(學際間) 연구를 아무리 쉽게 풀어도, 라면 봉지 뒤의 조리법 수준으로 설명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하임 샤피라는 게임이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다수의 의사결정자(player)가 있고, 상대의 결정이 나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 상황에서, 이들이 전략적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할지 예측하는 학문”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두 가지를 전제가 필요한데요, 플레이어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것과 플레이어는 의사결정에 있어서 상대의 반응을 고려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 두 가지 전제를 벗어날 경우, 게임이론은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플레이어가 합리성이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개썅마이웨이의 도른 자’라면 반응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게임이론은 말짱 꽝이 됩니다. 적어도 치킨 게임의 미치광이 전략조차도 예측이 가능한 일관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략이 될 수 있는 건데요, 행동 예측이 불가능하다면 정교한 수학의 영역에서 무슨 계산을 한들 헛짓이 될 테지요.
그래서인지 이 착실한 입문서는 곳곳에서 게임이론의 합리성을 일탈하곤 심리학의 저 너머로 달아나는 인간 행동들을 자주 언급하곤 합니다. 책 말미에 네 페이지에 걸쳐 정리한 글에서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 하임 샤피라는 이 책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 책은 게임이론을 다룬다. 아울러 확률과 통계 분야의 중요한 개념들도 건드린다. 이 세 가지 논리 분야는 우리의 의사결정 방식을 설명하는 과학적 토대를 이룬다. 셋 다 묵직한 주제들이지만 무겁지 않게 풀려고 갖은 애를 썼고, 날카로우면서도 유쾌한 책이 되려고 노력했다. - 4쪽
그래서 원서명 역시 『Gladiators, Pirates and Games of Trust: How Game Theory, Strategy and Probability Rule Our Lives』입니다. 부제인 게임이론과 전략 그리고 확률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검투사 게임, 해적 게임 그리고 신뢰게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제목에 언급된 게임들에 대해서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검투사 게임은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다루며, 플레이어(검투사)들은 승리를 위해 자신의 자원을 전략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이 게임의 핵심은 자원의 투자량과 승리 확률 간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 최선의 전략은 무엇일까요?”
하임 샤피라의 “답은 은근히 예상외”입니다. 선수들의 출전 순서는 승패에 어떤 변수도 되지 못해서 코치가 할 일은 없다는 겁니다.
합리적인 해적 5명이 100골드를 나누는 방법이란 아주 간단한 게임인데요, 이걸 게임이론의 두 가지 전제를 두고 풀어보면 상식 외의 답이 나온다는 겁니다.
역행 귀납법 backward induction, 그러니까 “선발주자와 후발주자가 있는 순차적 게임에서, 내게 가장 유리한 결정들을 알아내기 위해 상황이 끝나는 시점에서 출발해 거꾸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추론하는 방식”을 사용해 보면, 납득하기 힘든 배분 방식이 나타납니다. 결론을 접한 순간, “나라면 기분 상해서 이런 결과는 납득 못하지~”라며 키득거렸는데요, 하임 샤피라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수학적 해법은 질투심, 모욕감,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de 같은 중요한 감정들의 존재를 무시한다. 감정이 개입하면 수학적 계산은 달라질 수도 있다. - 41쪽
알렝 르두 Alain Ledoux의 추측 게임을 언급하면서도 “심리와 직관이 수학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신뢰게임은 신뢰 게임은 신탁자(Trustor)와 수탁자(Trustee)로 구성되는 게임으로, 신탁자가 수탁자에게 돈을 건네고, 수탁자는 받은 돈의 두 배 중에서 일정액을 신탁자에게 반환하는 행위로 게임이 이루어집니다. 이 게임의 내시균형은 신탁자와 수탁자 모두 혼자 꿀꺽하는 겁니다. 그게 ‘합리적’인 행동이란 거죠.
그런데 여기서 그 내시균형을 깨는 예가 발생합니다. 바로 논제로섬 게임인 여행자의 딜레마 Treveller’s Dilemma가 나옵니다. 이 게임을 창안한 카우시크 바수 Kaushik Basu를 인용해, “선수들은 오히려 지식이 부족할 때 경제적 접근법을 무시하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얻는다”라고 하며, “경제적 사고를 버리고 상대를 신뢰하는 것이 정말로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게임이론을 신뢰할 수 있나?”를 반문합니다.
여기에 “사회적 협력에 관한 딜레마 게임의 대표 격”인 사슴사냥 게임 Stag Hunt Game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이 게임에는 ‘협력해서 사슴을 잡는다’와 ‘배신해서 토끼를 잡는다’라는 두 가지 내시 균형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협력해서 사슴을 잡는 편이 가장 이득이 크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머리말에서 다루었고, 부제에서도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번역서명으로도 드러나는 확률 probability과 통계의 세계에 대해서는 이미 두 권의 책을 통해 단단히 충고를 들었던 터라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공갈협박범의 역설 The Blackmailer’s Paradox에서는 “게임에 임하는 합리적 방법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하기 어려울 때가 많”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상대와는 비합리적으로 싸우는 것이 되레 합리적일 수 있다는 이상한 결론을 얻게 됩니다. 심지어는 이 반복되는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깽판 치고 끝내는 한이 있더라도 ‘레드 라인’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최후통첩 게임 The Ultimatum Game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나 반복적 최후통첩 게임에서는 “과시적 엄포는 때로 공허한 협박에 불과”하기 때문에 “심리학과 심리전의 문제”가 되면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은 수학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도 부연합니다.
단판 최후통첩 게임에서 상대의 제안을 거절하고 차라리 빈손을 택하는 심리가 그렇다고 봅니다. 불공평한 제안을 거절할 때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에, 부당한 경쟁자를 벌주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는 겁니다. 심지어 독재자 게임 dictator game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응답자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는 경향을 보인다고도 합니다. 이건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합리성과는 다른 종류의 반응입니다.
가장 유명한 게임 이론 중에 하나인 죄수의 딜레마 Prisoner’s Dilemma에서는 “미래의 이득이 기대될 때 협력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파악합니다. 로버트 엑셀로드 Robert Axelord가 ‘미래의 그림자 shadow of the future’라고 렀다고 합니다.
특히나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의 내시균형인 팃포탯 tit-for-tat 전략에 대해서 엑셀로드는 다음과 같은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답니다.
1. 신사적으로 나간다. 내가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
2. 상대가 배신하면 반드시 보복한다. 맹목적 낙관은 넣어둔다.
3. 용서도 필요하다. 상대가 배신을 멈추고 협조적으로 나오면 과거를 묻지 않고 용서한다.
4. 시기하지 않는다. 가끔씩 지는 라운드에 연연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성공을 노린다.
진화적 게임이론 Evolutionary Game Theory과 관련해서는 다음 포스트로 대신할까 합니다.
순차적 게임 sequential game의 1달러 경매 Dollar auction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를 전합니다.
언젠가 한 번 이 게임을 전략적 사고 워크숍에서 써먹은 적이 있다. 이때도 100달러 지폐를 경매에 부쳤는데 호가가 290달러에 이르기까지 불과 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내 관찰에 따르면 선수들은 경매의 본질을 금세 망각하고 그거 경쟁에만 열을 올렸다. 내가 이기는 것, 상대가 이기는 것을 막는 것, 그것만이 그들의 관심사였다. - 1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