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의 예감을 확인하다
시절이 참 흉흉합니다. 12.3 내란만 해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1.19 서부지법 폭동까지 경험하고 나니, ‘내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책이 출판된 것을 알게 됐으니, 펼쳐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은 2022년에 펭귄랜덤하우스 자회사인 크라운 출판그룹 산하 임프린트, 크라운 출판사에서 출판됐습니다. 2021년 1월 6일 미의회점거폭동(January 6 United States Capitol attack)을 경험한 뒤에 출간된지라, 트럼프 1기 초반에 나온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책, 『How Democreacies Die』에 비해 좀 더 강경한 어조로 공화당과 트럼프 정부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1년도 되지 않아, 한국 사회 역시 트럼프 1기의 미국 사회처럼 망가져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그렇게 2022년 12월에 레비츠키와 지블랫의 책을 접했습니다. 이미 한국사회는 망가졌고, 더 망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망가질 것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가 망가지는 원인(why)보다는 그 붕괴 양상(樣相, how)이 궁금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책이 인상 깊었던가 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19 서부지법 폭동까지 벌어지고 나니, 그 원인보다는 현재 양상이 앞으로 어떻게 악화될 것인가가 우려스럽던 차였습니다. 그래서 2년여 전처럼 책 제목에 눈길을 사로잡혔나 봅니다. 그래서일까요, 꽤나 몰입할 수 있었던 책 읽기였을 뿐만 아니라, 몹시 만족스러운 해답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머리말에서 밝힌 이 책의 집필 목적이 제목에 그대로 드러났고, 책의 전체적인 구성과 내용 역시 목적에 부합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날의 미국에서 언제라도 내전이 발발할 수 있음을 이해하려면 현대의 내전을 발생시키고 규정하는 조건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 책을 쓰게 된 목적이 바로 이것이다. 내전은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불이 붙고 확대된다. -16쪽
시민들이 완전한 민주주의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 할지라도 정부가 언제나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독재자 지망자가 권리와 자유를 조금씩 갉아먹고 권력을 집중하면서 민주주의가 쇠퇴할 수 있다. - 32쪽
프레시안 전홍기혜 기자의 책, <아노크라시>를 읽을 때 불만스러웠던 점이 아노크라시의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그 개념을 보다 명시적으로 가다듬을 수 있게 됐습니다.
아노크라시 anocracy 개념은 “1974년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테드 로버트 거 Ted Robert Gurr 교수가 전 세계 각국 정부의 민주적 특성과 독재적 특성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한 뒤 만들어 낸 신조어”라고 천명함으로써 무엇을 확인해 봐야 할지가 결정된 겁니다.
이들의 개념에서는 정치체 점수 polity score을 완전한 민주주의 fully democracy에 +10점을 그리고 완전한 독재 fully institutionalized autocracy에 -10점을 준 상태에서 그 중간값인 -5에서 +5 사이의 상태를 아노크라시라고 정의합니다. 아노크라시 하에서 “시민들은 민주적 통치의 요소들 중 일부-완전한 투표권 등-를 누리지만, 광범위한 권위주의적 권한을 지니고 견제와 균형을 거의 받지 않는 지도자 밑에서 살아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릿의 책, 『How Democreacies Die』에서 자세히 다루어진 ‘선출된 독재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가 독재 국가로 변신하는 것은 지도자가 독재자를 본받아 국가를 조직하려고 애쓰는 이들처럼 검증되지 않은 허약한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들-대부분 매우 인기가 높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안전장치를 무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안전장치에는 대통령에 대한 제약과 입법, 사법, 행정의 견제와 균형, 책임성을 요구하는 자유로운 언론, 공정하고 개방된 정치적 경쟁 등이 있다. - 42쪽
대표적인 인물로는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튀르키에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꼽고 있습니다. 이들 “독재자 지망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건전한 민주주의의 요구보다 앞세우면서, 일자리, 이민, 안전 등에 관한 시민들의 공포를 이용해서 지지를 확보한다”라고 설명합니다.
이들이 아노크라시 상태에서 내전을 피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노골적인 억압”이라고도 말합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Nicolás Maduro가 한 것처럼, 군경을 동원하고, 지방 선거를 연기하며, 의회를 대체하고 헌법을 개정해서 행정 권력을 확대한다”는 겁니다. 선거와 제한된 개인적 자유와 같은 민주주의 겉모습을 유지하면서, 프로파간다와 언론 통제, 외국인 혐오 등을 활용해 정권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반란을 일으키는 대신 지도자들의 통치를 묵인한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잠재적인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네 가지 경고신호를 개발”했습니다. “1) 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고, 2)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3)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고, 4)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류에 추가로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이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에콰도르의 루시오 쿠티에레스과 라파엘 코레아가 꼽힙니다.
어떤 나라가 아노크라시 구간에 들어가면 , 가장 중대한 내전 경고 징후는 파벌 faction의 등장이다. - 60쪽
저자는 <파벌주의>라는 극단적 형태의 정치적 양극화가 정치 불안정과 폭력에 강하게 연관되었다고 봤습니다. 파벌주의로 분열된 국가에서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종족, 종교, 인종과 같은 정체성 정치를 표방하는 정당들이 타자를 배제하고 희생시키면서 통치하려고 한다고 봤습니다.
그리하여 한 파벌이 종족이나 인종 정체성만이 아니라 종교와 계급, 지리적 위치까지 공유하는 성원으로 이루어진 ‘초파벌 superfaction’이 되면, 전쟁의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다고도 봤습니다.
이쯤에서 ‘종족 사업가 ethnic entrepreneur’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 용어는 1990년대에 밀로셰비치나 투지만 같은 인물들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지만, 그 후에 그런 현상은 세계 모든 지역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 되고 있다. 이 전쟁 선동가들은 대개 권력을 잃을 위험이 아주 높거나 최근에 잃은 경우가 많다. 자신의 미래를 확보할 다른 경로가 없는 까닭에 그들-대부분 전직 공산주의자들-은 분열을 냉소적으로 활용해서 다시 통제권을 잡으려고 한다. 그들은 정체성에 기반한 민족주의를 부추겨 폭력과 혼돈의 씨앗을 뿌리면서 연구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부활을 위한 도박> 전략을 활용한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대대적인 변화를 자극하기 위한 공세 시도다. - 70쪽
원래 자기 것이고 믿는 장소에서 지위를 상실하는 것은 못 참는다. 21세기에 가장 위험한 파벌은 한때 지배적이었으나 쇠퇴에 직면한 집단이다. - 95쪽
이 장에서 저자는 <지위 격하 downgrading> 개념을 도입합니다. “폭력의 가장 유력한 결정 요인은 한 집단의 정치적 지위의 궤적”이라고 설명하면서, 권력을 잡았다가 잃은 정치세력은 폭력을 통한 재집권을 기도하기 쉽다는 겁니다.
고도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보통 새로운 집권 세력을 정치적 경쟁자로 인정하면서 다음 선거를 통해 재집권을 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입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2023년에 출판한 책,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Tyranny of the Minority』에서 “정당이 지는 법을 배울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뿌리를 내린다”라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첫째, 앞으로 다시 승리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할 때, 정당은 패배를 더 쉽게 받아들인다. 두 번째 조건은 권력 이양이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즉,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생계가 어려워지지 않을 것이며, 권력을 넘겨주는 정당과 그 지지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이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박세연 옮김. 어크로스, 2024, 37쪽.
하지만 지위가 격하된 많은 종족 집단인 <토박이 sons of the soil>들은 전쟁을 벌이게 된다고 봤습니다. <토박이>는 한 지역의 원주민이거나 그 역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들이 태어난 땅의 정당한 상속자로서 특별한 혜택과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봅니다. 여기에 홈스테딩 원칙 homesteaing principle을 주창하는 개척자들이 등장한다면, 이 둘이 충돌로 전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선거판에서는 새롭게 정권을 획득한 정당에서는 홈스테딩 원칙에 근간해 정권의 정당성을 설파할 것이며, 패배한 정당에서는 토박이 개념에 근간한 상실감을 회복하기 위해 내전을 불사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딱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이 아닌가 싶어 집니다.
참을 수 없는 것은 희망이 사라지는 현실이다. - 116쪽
저자는 시위가 곧바로 내전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그저 “평화적 변화를 추구하는 낙관주의자들에게 남은 마지막 카드”라고 설명합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시민들은 오랜 차별과 가난을 조용히 받아들이면서 서서히 몰락하는 고통을 견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시위가 폭력적으로 진압되거나, 미래에는 생활이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폭력을 유일한 방법론으로 주목하기 시작한다고 봅니다.
선거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또한 시민들이 장기적인 시각을 갖도록 한다. 이번에 지더라도 다음에는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을수록 체제 안에서 평화롭게 활동하려는 성향이 높아진다. - 127쪽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번에 지더라도 다음에는 이길 수 있다’는 평화적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 그 사회는 희망을 가지고 폭력적 해결방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거나 시위에서 더 이상 희망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면, 강경수단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21대 총선에 이어서, 22대 총선에서도 패배한 국민의힘과 집권 이후 여소야대의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 윤석열 정부가 내란을 획책한 조급증 역시, 연속적으로 발생한 명태균 게이트나 김건희 게이트 때문에 회복 불가능하겠다는 희망의 단절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혐오와 가짜 정보 유포를 억제하면 내전 발발 위험성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 264쪽
SNS를 위시한 인터넷 환경이 점차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지구적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현상이 인터넷의 등장과 스마트폰의 도입, 광범위한 소셜 미디어의 사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 리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새로운 미디어의 탄생이 곧장 프로파간다에 동원되었던 경험은 지나 20세기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입증된 터입니다.
프로파간다의 총아로 꼽히는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1928년에 출간한 자신의 책, 『프로파간다』에서 "대중의 생각을 조종함으로써 대중이 새롭게 얻은 힘을 소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게 가능해졌다"라고 강변합니다. 특히나 "선전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확언할 정도로. 유용한 도구라고 주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인 영화의 유용성도 설파합니다.
영국의 사학자 데이비드 웰치 역시, 자신의 저서 『프로파간다 파워 Propaganda: Power and Persuasioin』에서 "1914년과 1918년 사이에 일간지와 주간지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영화 같은 매체들로 인해 일반청중(mass audience)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라고 말합니다. 영화는 확실히 국제적 선전을 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영화는 확실히 국제적 선전을 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란 레온 트로츠키의 발언이나, "우리가 이용하는 모든 예술 중에서 영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말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그 이후 1950년대에는 텔레비전 보급율이 높아지면서 이 새로운 미디어가 프로파간다에서의 정상 위치를 가져갔습니다. 그렇게 21세기가 도래했고, 이제 인터넷, 특히나 SNS가 프로파간다의 최상위를 차지했습니다.
페이스북은 처음에 민주화의 위대한 도구로 찬양받았다. 사람들을 연결하고, 생각과 견해의 자유로운 교환을 장려하며, 주요 언론 매체보다 시민들 스스로 뉴스를 선별하게 해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사람들의 수중에 권력을 쥐어 주는 완벽한 도구인 듯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결국 판도라의 상자였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정보 공유의 시대는 허위 정보(잘못된 정보)나 가짜 정보(고의로 퍼뜨리는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면서도 규제를 받지 않는 무분별한 통로를 양산한다. - 142쪽
전에는 군 장성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독재가 생겨났다. 하지만 지금은 유권자들 스스로가 독재를 탄생시킨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주된 이유는 소셜 미디어 덕분에 후보자들이 하나의 정부 형태로서 민주주의에 관해 시민들이 가질 법한 의심을 키우거나 편승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짜 정보 캠페인을 활용해서 제도를 공격하면서 대의 정부와 자유 언론, 독립적 사법부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훼손하고, 관용과 다원주의에 대한 지지를 갉아먹을 수 있다. 또한 가짜 정보를 활용해서 부정 선거를 주장하고 최소한 일부 유권자들에게 선거 결과가 뒤집어졌다고 설득하면서 시민들이 선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 수 있다. - 151쪽
2020년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가 펴낸 책, 『페이크와 팩트 The Irrational Ape』에서도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그라임스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진실로 자리 잡을 때, 진실성의 결여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합니다. 그리하여 "대개는 스펙트럼의 양 끝에서 외치는 극단적인 주장만 남고, 대립하는 진영이 서로를 감시한다"라고 봤습니다. 어떤 주제든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옳거나’ 혹은 ‘그르거나’ 둘 중 하나인 이원론으로 환원된다고도 봤습니다.
이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부분은 "정보원과 우리의 편향"이라고 지목합니다. "인터넷은 원칙적으로 다양한 범주의 정보를 보여주지만, 확증편향이라는 인간의 성향은 추론의 결함에 도전하기보다는 기존의 믿음을 강화하는 이야기를 선택한다"라고 말입니다.
반향실은 어디에나 항상 존재하며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신문이나 편향을 드러내는 텔레비전 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이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긴급하며 훨씬 해로울 수 있다. 조금은 반직관적이지만 이렇게 된 이유로는 우리가 인터넷에서 수용하는 정보가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역설적인데, 우리는 인터넷이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허용하며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접하지 못했던 수많은 목소리를 들려준다고 순진하게 생각한다. 확실히 이는 신흥 기술을 수용하던 인간의 의기양양한 낙관론이었다. 현실은 좀 음울하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필터링하고 유도한 광고의 시대에 살며, 이는 차례로 우리에게 맞춤 재단된 정보를 직접 만든다.
-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페이크와 팩트』, 김보은 옮김, 디플롯, 2024, 356쪽.
미국은 2백여 년 만에 처음으로 아노크라시가 되었다. - 176쪽
저자는 단언합니다. “오늘날 공화당은 약탈적 파벌처럼 행동하고 있”으며, “공화당 쪽에서는 승리하기 위해 언제든 민주주의를 뒤집어엎을 기세”라고 말입니다.
트럼프가 백악관을 차지하고, 공화당은 캐피털힐을 장악했으며, 대법원은 보수적 판사들로 었습니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전정부 친화적 정부 인사를 숙청하고, 수많은 행정 명령을 발동하고, 범죄자 친구들을 사면했습니다. 그 와중에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대통령이 의회와 협의하는 대신 행정 명령으로 통치’했다는 겁니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지적했듯이, 잠재적 독재자(그러니까 독재자 지망자)들이 헌법적 강경 태도 constitutional hardball를 기반으로 토대를 쌓았다는 겁니다.
그 와중에 내부의 배신자들 처단에는 단호했습니다. 아홉 명의 공화당 하원 의원이 트럼프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고, 일곱 명의 공화당 상원 의원이 트럼프 고발에 찬성표를 던졌었습니다. 이들 17명의 공화당원들 대부분은 은퇴하거나, 2022년 선거 이후에 당내 경선에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미국 사회는 “정치적 스펙트럼과 상관없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점점 폭력을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전합니다.
다만, 미국이 한국사회와 결정적으로 차이가 났던 건 군부였습니다.
지난 60년간 한국 사회에서는 3차례의 군사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이 세 차례에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엘리트 장교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미국 군부의 엘리트들은 한국 사회와는 완전히 반대의 판단을 내렸습니다.
트럼프는 임기 내내 미국 장성들에게 추파를 던졌지만, 장군들은 대통령의 권력 확대 요구를 인정하기보다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가 내세우는 의제와 거리를 두었다. 2020년 국방 장관 마크 에스퍼 Mark Esper는 현역 병력을 투입해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대를 막으라는 지시를 거부했다(그는 결국 나중에 해임됐다). 그리고 2021년 1월 3일, 제임스 매티스 james Matis, 에스퍼, 딕 체니 Dic Cheney, 도널드 럼즈펠드 Donald Rumsfeld 등 전 국방 장관 열 명이 『워싱턴 포스트 The Washington Post』에 성명을 발표해서 자신들은 대통령이 아니라 헌법을 수호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함참 의장 마크 밀리 Mark Milley 장군이 몇 달 전 작성한 성명에 의견을 같이 한 것이다. <합중국 선거 결과를 결정하는 데 군대가 할 역할은 아무것도 없다.> - 177쪽
오늘날 미국의 극단주의자들은 이른바 가속주의 accelerationism을 신봉한다. 현대 사회는 구제할 길이 없으며 그 종말을 한시바삐 앞당겨야만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다는 묵시록적 믿음이다. - 220쪽
제노사이드 워치 Genocide Watch의 「제노사이드의 10단계 The Ten Stages of Genocide」를 언급하고 있는데요, 꽤 유용한 듯합니다.
① 분류 (Classification)
사회 구성원을 "우리 vs. 그들"로 구분하며, 민족, 인종, 종교, 국적 등에 따라 그룹을 나눈다.
② 상징화 (Symbolization)
구분된 집단에 특정 이름, 색깔, 복장, 상징 등을 부여하여 차별을 강화한다.
③ 차별 (Discrimination)
법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특정 집단의 권리를 제한하고 차별적인 정책을 시행한다.
④ 비인간화 (Dehumanization)
대상 집단을 인간이 아닌 존재(예: 해충, 질병, 적)로 묘사하여 폭력을 정당화한다.
⑤ 조직화 (Organization)
집단학살을 계획하고 조직적인 행동을 준비한다. 비공식적인 테러 집단이 동원되거나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을 수 있다.
⑥ 극단화 (Polarization)
선전과 법을 통해 집단 간의 분열을 심화시키며, 중도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제거한다.
⑦ 준비 (Preparation)
희생자 명단 작성, 재산 몰수, 강제 이주 등의 방식으로 집단학살을 실행할 준비를 한다.
⑧ 박해 (Persecution)
대상 집단을 체포, 강제 수용소 이송, 기아, 고문 등으로 조직적으로 탄압한다.
⑨ 학살 (Extermination)
대규모 살해가 이루어진다. 이 단계에서 가해자들은 이를 "학살"이 아니라 "정화" 등의 표현으로 정당화하려 한다.
⑩ 부정 (Denial)
학살 이후, 가해자들은 증거를 감추거나 사건을 부인하며, 책임을 희생자나 외부 세력에 전가하려 한다.
저자는 내전의 양상은 테러와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 전략은 다음의 4가지 방식 정도로 정리될 것 같습니다.
첫째는 소모전입니다. 공공 기반 시설을 공격해서 시민들이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정부가 테러리스트들의 요구에 굴복할 때까지 지속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협박입니다. 정부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하다면, 그 정부 구성원 개인-고위공무원, 경찰, 검찰, 판사 등-을 협박해서, 적절한 법집행을 마비시키는 방법입니다.
셋째는 <더 세게 지르기 outbidding>입니다. 둘 이상의 집단이 경쟁할 때 활용하는 전략이라는 겁니다. 이를테면, 하마스가 파타흐와의 주도경 경쟁에서 자살 폭탄 공격을 채택했던 것이 예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넷째는 <망치기 spoiling>입니다. 마찬가지로 둘 이상의 집단이 경쟁하고 있고, 그중에 하나가 정부와 유화적 협상에 들어가려 할 때, 판을 뒤엎기 위해 ‘깽판’을 치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우리 대다수가 민주주의가 작동한다는 것을 믿을 때에만 작동한다. - 253쪽
미국 정치권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국내 테러 문제를 외면해 왔다고 비판합니다. “극단주의자들의 지지에서 적극적으로 이득을 보거나 그들에게 등을 돌림으로써 생겨날 정치적 대가를 걱정하기 때문”으로, 이런 태도가 미국 사회의 불안을 더 높였다고 지적합니다. “내전을 피하고자 한다면 외국 전투원들을 색출해서 무력화하는 노력과 똑같은 자원을 투입해서 국내의 자생적 전투원들에게 대응해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사회안정망의 재정비도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인종을 막론하고 가장 취약한 시민들을 부양하는 노력을 새롭게 해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인종과 종교의 구분선을 가로질러 사회 안전망과 인적 자본에 투자하고, 양질의 초기 교육, 보편적 보건 의료, 최저 임금 인상 등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취약 노동 계급은 “파국 일보 직전”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으며, 따라서 그들이 국내 자생 테러단체와 마찬가지인 극단주의자들의 민병대를 형성하는 위험성이 있다고 봅니다.
또한 단호한 법집행도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링컨 대통령이 노예제 문제에 대해 남부 연합 주들과 협상을 거부한 일은 올바른 선택이었으며, 이런 경우에 정부는 반란자들을 체포, 기소하고 그들의 자산을 압류함으로써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지도부 제거>를 통해 테러 단체의 붕괴를 촉진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