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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여론_월터 리프먼

짜증 날 정도로 중구난방인 책

by 안철

[리뷰] 월터 리프먼, 『여론』, 이충훈 옮김, 까치, 2012.

Walter Lippman, 『Public Opinion』, New York: Free Press, 1997.

짜증 날 정도로 중구난방인 책


월터 리프먼이 이 책을 처음 출판한 것은 1922년입니다만, 이 책의 판권은 사이먼 앤드 슈스터의 임프린트인 프리프레스에서 출간한 1997년 판본에서 가져온 모양입니다. 진즉에 저작권이 만료되어 PDF파일로 돌아다니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요, 사후 70년까지 저작권을 보장해 주니 아직은 저작권 만료 저작물은 아닌 모양입니다.

백 년도 전에 츨판된 이 책은 아직까지도 언론학 서적들에선 회자되고 있습니다. 특히나 고정관념 Stereotype은 즐겨 인용되곤 합니다. 언론에 대한 책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만, 앞의 1/3에서 여론 형성 과정에 대한 미디어의 역할과 인지심리학적 상간관계를 제법 잘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무엇보다 1차 세계대전 시기의 대규모 프로파간다와 여론 조작을 경험한 뒤라서 더욱 주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맥락을 통해서, 이 책은 프로파간다와 언론의 관계를 최초로 조명한 정전 canon으로의 위상을 확립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월터 리프먼이 당대 가장 유명한 언론인 중에 하나였던 점은 분명하지만 언론학자라고 할 순 없었고, 이 책 역시 언론학에 관한 책은 아닙니다. 그저 인간 인식의 한계와 민주주의 체제에서의 여론 조작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서, 어찌 보면 민주주의에 회의적인 이데올로그의 데마고기에 더 가까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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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전을 읽는 제1원칙은 ‘아는 척이 하고 싶다’는 것인데요, 아는 척의 기본은 인용이고, 인용을 하려면 해당 저작의 맥락을 이해하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2원칙은 ‘기원을 찾아 계보를 이해하는 것’이 되고, 제3원칙은 마침내 ‘고정관념’을 불식시키고 콘텍스트를 회복함으로써, 올바른 이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펼쳐든 이유 역시 이 책을 펼쳐 보았다고 뽐내고 싶은 마음에서, 적당한 인용구들을 챙긴 다음에, 그 인용구들이 어떤 맥락에서 활용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적당한 인용구가 하나 나옵니다.

진정 효과적으로 생각하는 데에서 가장 필요한 점은 기존의 판단을 일소하고, 순수한 관찰력을 회복하며, 감정에서 해방되어 호기심을 가지고 솔직해지는 것이다. - 74쪽

공교롭게도 이런 태도는 포스트 트루스의 시대, 가짜뉴스와 기망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가 그의 책, 『페이크와 팩트』에서 “허위정보와 음모론 그리고 프로파간다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적 회의론으로 무장해 자기 자신을 다잡는 수밖에 없다”라고 강변한 것이나, 대니얼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가 그들의 책, 『당신이 속는 이유』에서 “덜 받아들이고, 더 확인하라” 다그친 이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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