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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죄수의 딜레마_윌리엄 파운드스톤

조금 비만인 게임이론 입문서

by 안철

[리뷰] 윌리엄 파운드스톤 著/ 박우석 譯. 『죄수의 딜레마』. 양문. 2004년.

William Poundstone. 『Prisoner's Dilemma』. Doubleday. 1992

조금 비만인 게임이론 입문서


최근 게임이론에 관심이 생겨서 이런저런 책들을 읽어 보고 있습니다. 네 번째로 펼쳐든 책인데요. 이 정도면 입문서로 나쁘지 않다 싶었습니다.

이 책은 좀 오래된 책인데요, 1992년에 출간됐고, 국내에 번역된 것도 2004년입니다. 그래서인지 번역이 꽤나 낡았습니다. 게임이론에 관한 역어들이 정착되기 전이기도 하거니와, 그 외에도 여러 역어들이 자의적으로 번역되어 있어서 순간순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랜드연구소 RAND Corporation로 일상적으로 번역하고 있는 곳을 굳이 직역하여 ‘랜드 회사’로 표기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물론 영국의 IISS나 그걸 본떠서 만든 미국의 CSIS의 번역이 아직은 매끄럽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영국의 RIIA에 대한 별칭인 채텀하우스를 폭넓게 사용하는 것처럼, 미국의 랜드연구소, 브루킹스연구소, 헤리티지 재단과 같은 역어들은 정착이 끝났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소한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이 또한 미답의 설원을 먼저 걸었던 선인의 작은 헤맴으로 이해한다면, 그러려니 넘어갈 수준이긴 합니다.

외래어표기법을 일탈하거나 국적에 대한 고려가 없는 인명 표기 역시 잦은 편이어서, 살짝 짜증이 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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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에 읽었다면 그냥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했을 듯합니다.

하지만 하임 사피라의 책을 먼저 읽어둔 터라, 그에 비하면 ‘비만’이란 표현을 쓸 수밖에 없겠습니다. 판형과 조판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400페이지짜리 이 책을 1/3으로 줄인다면, 하임 사피라의 책이 될 듯해서 그렇습니다.

입문에서 중요한 것은 간단하게 정리된 개념들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 개념들을 기초로 이론이나 학문의 뼈대를 축조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세세한 에피소드’가 맥락에 끼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런 ‘TMI’들이 많고, 그래서 조금은 ‘비만’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풍부한 에피소드들이 쓸데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이 첫 책이 아니었고, 앞서 읽은 책들에서 다루지 않았던 ‘자세한 이야기’들은 자명한 것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게임이론에 대한 이해의 맥락을 형성해 줍니다. 이를 테면 존 폰 노이만 John von Neumann과 오스카 모르겐슈테른 Oscar Morgenstern의 1944년 저서, 《게임이론과 경제행위 Theory of Games and Economic Behavior》가 게임이론의 시작이란 점, 그 이후로 랜드연구소에서 메릴 플러드 Merrill Flool와 멜빈 드레셔 Mevin Dresher 그리고 앨버트 터커 Albert W. Tucker로 이어지며 죄수의 딜레마로 연결되며 심도 깊은 연구가 이루어진 이유들이 설명됩니다. 특히나 내시균형이 도출되는 과정 역시 랜드연구소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도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게임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딜레마를 꼽으라면, 챗GPT마저도 죄수의 딜레마를 꼽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 책의 제목이 죄수의 딜레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설명이 될 듯합니다. 죄수의 딜레마를 제목으로 삼은 챕터에서 가장 흥미로운 진술은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플러드와 드레셔 모두 그들이 애초에 랜드 회사의 누군가가 죄수의 딜레마를 ‘해소’해주기를 소망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내쉬, 폰 노이만, 또는 누군가가 그 문제를 숙고한 후 새로우면서도 더 우수한 비제로섬 게임의 이론에 도달하기를 기대했다. 그 이론은 죄소의 딜레마에 의해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개인적, 집단적 합리성 간의 갈등을 다룬 것이다. 다소간 그것은 협조가 결국 합리적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해결책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플러드와 드레셔는 이제 죄수의 딜레마가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거의 모든 게임이론가들은 그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죄수의 딜레마는 부정적인 결과로(게임이론과 세상이 실로 잘못되었다는 증명으로) 남아 있다. 184쪽


이 책의 12번째 챕터의 제목은 <적자생존 Survival of the Fittest>입니다.

이제야, 하임 사피라가 “유난히 흥미롭게 생각하는 게임이론의 하위 분야가 진화적 게임이론”이라고 말했는지, 당최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기 힘들었던 모시 호프먼과 에레즈 요엘리의 책, 『살아 있는 것은 모두 게임을 한다』에서 여러 챕터를 통해 다루었던 진화적 게임 이론과의 관계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에서 진화적 게임 이론이 도출되는 과정을 설명하며, 로버트 액설로드 Robert Axelord의 미래의 그림자 shadow of the future의 개념 또한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왔습니다.

엑셀로드는 설득력 있게 비우호적인 환경 내에서 어떻게 협조가 일어나는지를 이론화했다. 오는 말에 가는 말(Tit-for-Tat)은 항상 변절하는 고도로 착취적인 전략에 대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만일 오는 말에 가는 말 경기자들은 군체가 다른 동료들과 대부분의 상호작용에서 잘 견뎌낼 수 있다면, 그것들은 항상 변절하는 경기자들보다 잘할 수 있다. - 362쪽


앞서 읽었던 사피라의 책에서 다룬 <달러 경매 the dollor auction>는 몹시 모순적이며, 비합리적인 게임이었습니다.

마틴 슈빅 Martin Shubik과 로이드 섀플리 Lloyd Shapley 그리고 존 내시 John Nash에 의해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이 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는데요, 특히나 슈직은 “극단적으로 단순하고 고도로 재미있으며 교훈적인 실내 게임‘으로 묘사했다고 전합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게임 역시 우리 실생활에서 다양한 형태로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요, 무릎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노동자와 경영자 모두를 위협하는 파업은 달러 경매와 많은 점에서 공통된다. 각 측이 조금이라도 더 버티기를 원한다. 만일 그들이 지금 굴복한다면, 상실한 임금이나 상실한 이익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달러 경매는 건축 설계 공모(건축가들은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유명한 신축 건물을 설계하지만 오직 승자만이 계약을 딴다)와 특허 경쟁(경쟁하는 회사들은 신상품을 위한 연구와 개발에 투자하지만 오직 특허를 딴 회사만이 돈을 번다)을 닮았다. 그 밖에도 우리 주변에는 달러 경매가 무궁무진하다. 낡은 자동차 수리, 잃은 돈이 억울해서 몇 차례 카드를 더 돌리기, 포기하고 택시를 부르기 전에 몇 분만 더 버스 기다리기, 나쁜 직장이나 잘못된 혼인 관계를 유지하기 등등. -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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