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간다에 대해 공부해 보려고 처음 펼쳐 들었던 것이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책이었습니다만, 썩 만족스러운 독서가 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시도만에 제법 괜찮은 책을 찾아냈습니다. 이 책, 마음에 쏙 듭니다.
2013년 대영도서관(British Library)은 영국의 역사가 David Welch와 협업을 하나 합니다. 도서관이 가지고 있던 프로파간다 자료들로 전시를 기획하면서, 이에 대한 해설을 프로파간다 전문가인 웰치에게 맡긴 겁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Propaganda: Power and Persuasioin』인데요, 1년 뒤에 웰치는 같은 제목의 책을 다시 출간하기도 합니다.
46 배판에 아트지로 만들어진 책은 꽤 오랜만에 봤습니다. 최근에 나오는 책들은 미술에 관련된 책일지라도 백상지에 국판이나 신국판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내지의 편집은 46 배판이다 보니 이단 편집을 했습니다. 행배열이 평상시의 독서 습관을 벗어나서, 읽기 속도에도 영향을 미치더군요. 여하튼, 아트지의 특성상 독서스탠드의 불빛을 반사하는 것도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지만, 4도 인쇄의 품질은 백상지가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불평을 내비치긴 어렵습니다. 책의 태생이 그렇다 보니, 사진자료가 많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이해도도 높여줄 뿐만 아니라,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대영도서관 사이트에서 사진자료의 상당수를 다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배치가 참 절묘하더군요. 한 장을 읽고 나면, 다시금 궁금해지는 내용이 그다음 창에 펼쳐집니다.
1장에서는 프로파간다에 대한 통시적 고찰을 보여줍니다. 프로파간다의 개념을 시작으로 언제부터 프로파간다는 시작되었으며, 어떤 형태로 발전했는지를 살펴봅니다. 특히나 “기업의 홍보(public relations)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형태로 펼치는 우회적 선전에 대해서도 경계하게 됐다”는 지적은 버네이스의 책을 통해서도 깨닫게 됐던 일이라 반가울 지경입니다. 프로파간다의 유형을 큰 거짓말(große Lüge), 흑색선전(black propaganda), 백색선전(white propaganda), 회색선전(grey propaganda) 등 네 가지로 나누고, 그에 대해 정의한 것 역시 큰 도움이 됐습니다.
선전은 ‘직간접적으로 선전가의 이익에 부합하게 의식적으로 생각해 내고 계획한 모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종의 개념과 가치관을 전파함으로써 표적청중의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의도적인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 12쪽
Propaganda is the dissemination of ideas intended to convince people to think and act in a particular way and for a particular persuasive purpose.
대략적인 개념을 확립하고 나니, 우리가 보통 프로파간다하면 떠올리곤 했던 상징들과 우상화들이 궁금해졌습니다. 2장에서 바로 국민의식과 지도자에 대한 프로파간다를 다루더군요.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곧바로 3장에서는 전쟁에서의 프로파간다를 다룹니다.
선전은 자국민에게는 전쟁 지원을 호소하는 수단으로, 중립국에는 영향력을 발휘할 목적으로, 적에게는 무기로 사용됐다. - 101쪽
거의 모든 모병포스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키치너 경(Lord Kitchener)이 등장하는 “국가가 당신을 필요로 한다(Your Country Needs you)” 포스터를 시작으로 전쟁 동원 프로파간다를 파헤칩니다.
특히나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 이루어졌던 프로파간다의 영향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발생한 부정적 인식을 잘 설명해 줍니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정부에 대한 깊은 불신이 생겨난 이유로, “적에 대한 터무니없는 고정관념에 근거한 악의적 선전과 애국적 구호를 이용해 정부가 의도적으로 전선의 상황을 호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사실로 파악했습니다. 그로 인해 프로파간다에 대한 불신이 생겼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항하는 선전전을 전개하는 데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나 프로파간다와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하는 검열의 문제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4장에서는 공공 정보로서의 프로파간다를 다룹니다. 공중보건 캠페인이나 정책 홍보와 같은 행위를 일종의 연성 프로파간다(soft propaganda)로 본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위생의 수사학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프로파간다로 다루어야 하는 모든 것들을 다 모아서 고민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쯤만으로도 좋은 입문서라는 평가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5장으로 넘어가면 네거티브 프로파간다에 대해 다룹니다. 그 어떤 프로파간다 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이라 할 수 있는 네거티브 프로파간다는 프로파간다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선전은 불확실한 시대에 번성하며, 일반적으로 증오에 불을 붙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단순하고 때로는 폭력적 감정인 증오의 즉각적이고 자발적인 속성은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깨울 수 있다. -182쪽
네거티브 프로파간다를 위해서는 “특정 계층이나, 인종, 국가 등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인습적 특성, 즉 고정관념(stereotype)을 이용”한다고 봤습니다. 무엇보다 “영화나 텔레비전 같은 선전 매체가 여론을 바꾸거나 강화하면서 사회적 태도(social attitude)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평가하는데요,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견해라고 봅니다.
그리하여 서구 역사에서 처음 실시된 네거티브 프로파간다로는 십자군 전쟁 초기에 이루어졌던 이슬람 세계에 대한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혐오감 넘치는 거짓말을 꼽고 있습니다. 그 뒤로 눈여겨볼 수 있는 네거티브 프로파간다로는 루시타니아(Lusitania) 호 침몰 사건을 들었습니다. 영국 측에서는 ‘독일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활용되었고, 독일 측에서는 ‘군수함 격침 전적’으로 활용됐습니다. 이런 식의 프로파간다는 20세기말 크로아티아-보스니아 전쟁에서도 벌어집니다. 같은 사진 이미지를 가지고 서로 상대측의 전쟁범죄라는 프로파간다가 이뤄졌다는 것이죠.
소련에서 ‘부농(kulak)’에 대한 프로파간다나, 태평양전쟁을 치르며 미국이 보여주었던 ‘황화(黃禍, yellow peril)’와 ‘누렁 원숭이(yellow monkey)’ 프로파간다, 그리고 나치의 반유대인과 반볼셰비키의 인종차별주의적 프로파간다가 그 궤를 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6장에서는 21세기의 프로파간다를 다루는데요, 조금 맥이 빠집니다. 아무래도 20세기 초반의 두 차례 세계대전기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던 학자이다 보니, 새로운 세기에 대한 연구는 다른 젊은 학자들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고 본 것이겠죠. 수박 겉핥기로 넘어가고는 있지만, 그 사이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미디어의 중요성은 잘 짚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