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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프로파간다_에드워드 버네이스

책 제목은 맞는데, 내용은 찾던 것이 아닐 때

by 안철

[리뷰] 에드워드 버네이스 著/강미경 譯. 프로파간다. 공존. 2009.

책 제목은 맞는데, 내용은 찾던 것이 아닐 때



1. 프로파간다의 의미를 찾아서


시절이 하 수상하여, 선전에 대해 살펴볼 마음을 먹고 펼쳐든 첫 책입니다만, 제목과 달리 내용은 좀 맞지 않았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것 같아, 입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저는 선전(宣傳, propaganda)이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국가보안법 제7조가 아직도 큰 힘을 부르던 10대 시절부터 생긴 공포감 때문이겠지요. 헌법과 형법의 차이도 잘 모르던 국민학생 때조차도, 국가보안법만은 구별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특히나 찬양·고무·선전·선동의 콤비네이션은 1980년대 제 유년시절을 유령처럼 배회하며 어린아이의 입마저도 틀어막았더랬죠.

시국이 시국인지라, 요즘 형법 제90조를 자주 언급하게 됩니다. 내란(insurrection)의 예비(preparations), 음모(conspiracies), 선동(agitation), 선전(propaganda)은 법률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주 언급하게 되는 선전의 개념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없더군요. 대법원 판례로 정리된 명확한 개념도 없는 모양인지라, 몹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단 국어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이상하게 일본어의 향기가 느껴지는 뜻풀이여서, 쇼가쿠칸이 일본국어대사전의 뜻풀이도 좀 참고해 봤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만으로는 선전의 부정적 의미를 찾아볼 순 없지만, 일본국어대사전을 통해 프로파간다의 역어라는 점을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주의나 주장, 사물의 존재, 효능 따위를 많은 사람이 알고 이해하도록 잘 설명하여 널리 알리는 일.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선전 항목
ある物の存在や効能または主義主張などを人々に説明し、理解を求めること。また、その運動や活動。プロパガンダ。- 쇼가쿠칸 일본국어대사전 宣伝 항목

영어사전에서의 프로파간다의 의미는 좀 부정적이더군요. 2004년에 쓰인 마크 크리스핀 밀러의 머리말에서 인용한 “특정한 원칙이나 행위를 전파하기 위한 제휴나 체계화된 계획 또는 일치된 운동”이란 옥스퍼드영어사전의 뜻풀이가 지금은 좀 더 다듬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야 형법(또는 국가보안법) 상의 선전(propaganda)의 개념이 서는 듯합니다.

The systematic dissemination of information, esp. in a biased or misleading way, in order to promote a particular cause or point of view, often a political agenda. Also: information disseminated in this way; the means or media by which such ideas are disseminated. -옥스퍼드영어사전 propaganda 항목

에이브럼 노엄 촘스키가 추천사에서 밝혔듯이, 버네이스가 책을 쓴 1925년 연간에는 프로파간다라는 용어에 부정적인 의미가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제2차 세계대전 때에 독일과 그들이 저지른 온갖 악행과 연관됐기 때문에, 프로파간다는 나쁜 짓과 관련된 정보 따위를 의미하는 말로 여겨졌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찾던 내용이 아닐 때의 당혹감


이 책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측 선전활동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가 1928년에 쓴 책, 『Propagand』을 번역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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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을 기치로 1916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우드로 윌슨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프로파간다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이때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연방 선전 기관인 연방공보위원회(U.S. Committee on Public Information)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버네이스는 맹활약을 펼쳤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들의 활동이 프로파간다라를 단어를 ‘새빨간 거짓말’로 탈바꿈시켰다고 봅니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프로파간다에 대한 버네이스의 관념은 꽤나 비뚤어지게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1장 혼돈에서 질서로(Organizing Chaos)에서 드러나는 그의 기본적인 사고는 당혹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사회의 이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국가 권력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를 이룬다. - 61쪽
The conscious and intelligent manipulation of the organized habits and opinions of the masses is an important element in democratic society. Those who manipulate this unseen mechanism of society constitute an invisible government which is the true ruling power of our country.
우리의 선택 범위를 현실에 부합하는 비율로 좁히기 위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정부가 각종 정보를 추려내 중요한 사안만 부각하도록 하는 데 기꺼이 동의했다. - 63쪽
We have voluntarily agreed to let an invisible government sift the data and high-spot the outstanding issues so that our field of choice shall be narrowed to practical proportions.


프로파간다에 대한 전문가적 분석을 기대하며 책장을 펼쳤던 제 입장에선, 엘리티즘에 근간한 변형된 귀족정을 만나서 무척 당혹스러웠습니다. 연방공보위원회에서 프로파간다로 이룬 실적에 취한 나머지, 자신을 꽤나 특별히 여기게 된 듯합니다. 이후 마케팅 분야에서도 승승장구한 것으로 보아,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발전했나 봅니다.

어쩌면 선전과 일방적 호소보다는, 우리의 통치자를 선택할 현명한 사람들로 위원회를 꾸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 전반에 걸쳐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고, 우리가 입을 가장 좋은 옷과 우리가 먹을 가장 좋은 음식을 결정하게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 65쪽
It might be better to have, instead of propaganda and special pleading, committees of wise men who would choose our rulers, dictate our conduct, private and public, and decide upon the best types of clothes for us to wear and the best kinds of food for us to eat.

이쯤이면 민주주의의 적으로 돌아서겠다는 선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극단적인 발언도 별 거리낌 없이 기술합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읽다 보니, 깜짝 놀라게 되는 일이 잦습니다.

대중의 생각을 조종함으로써 대중이 새롭게 얻은 힘을 소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게 가능해졌다. 현재의 사회 구조 안에서는 그러한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 78쪽
It has been found possible so to mold the mind of the masses that they will throw their newly gained strength in the desired direction. In the present structure of society, this practice is inevitable.

다만 2장 새로운 선전(The New Propagand)에서부터는 프로파간다에서 습득한 스킬들을 마케팅으로 돌리기 시작합니다. 미국마케팅협회(American Marketing Association)가 성립된 것이 1934년의 일로, 20세기 초반 선전(propaganda), 광고(advertising), 홍보(public relations), 여론형성(public opinion)의 개념이 혼재된 상태에서 프로파간다의 여론조작(manipulation) 기법을 마케팅 캠페인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기업의 마케팅 캠페인 전략 수립부터 홍보 전략 및 광고 전략을 다룰 뿐만 아니라, 정치와 교육, 문화 전반에서 필요한 홍보(PR)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마케팅 이론에 대해 공부할 생각으로 펼쳐든 책이 아닌지라, 책장을 넘길수록 당혹감이 더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책장을 덮진 못하더군요. 다음 장에선 다시 프로파간다로 돌아갈 거야란 미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끝내 이 책은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고 맙니다. 그리하여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마케팅의 여론 조작의 위험을 다음과 같은 말로 정리합니다. 책장을 덮으며 골이 띵해집니다.

선전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선전은 생산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무질서를 바로잡는 데 필요한 현대적 도구라는 점을 직시한다. - 261쪽
Propaganda will never die out. Intelligent men must realize that propaganda is the modern instrument by which they can fight for productive ends and help to bring order out of cha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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