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의 현신으로 시작한 개고기 장수, 젓가락 덕에 펨코붕이로 마감하다.
2022년 출간된 김학준의 책, 『보통 일베들의 시대』에서 저자가 정리한 이준석에 대한 평가가 그렇습니다. 김학준의 정치한 비평에 공감했는지, 신평 변호사 역시 "이준석은 세련된 일베 성향의 정치인"이라는 발언을 내놓았었더랬죠.
김학준은 2014년에 발표한 자신의 석사논문을 토대로 이 책을 썼는데요, 그의 석사논문 자체도 당시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베와 펨코로 집약되는 '이대남'의 멘털리티를 이해하는 데에 아주 큰 도움이 된 책이었습니다.
'이준석 따위'로 무시하던 2022년에는 심드렁하게 읽었던 부분을 3년 뒤인 지금 다시금 펼쳐 읽게 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준석이 우리 사회에 '더 해로운 존재'로 부상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2022년에서도 "펨코와 일베, 디시 등에서 터져 나오는 암성들의 불만을 정당화하며 제도 정치의 주요 의제로 올린 그는 '펨코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보수 계열 남초 커뮤니티와의 끈끈한 관계를 자랑한다"라고 분석될 지경이었습니다.
중산층 태생의 그는 과학고를 거쳐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했다는 개인적 성취(또는 스펙)와 함께 일베를 위시한 남초 커뮤니티들에서 상대 정파에 대한 가장 자극적인 공격 방식을 섭렵하고, 조직되지 못한 불만(즉, 차가운 열광)을 동원하여 능력주의에 기반한 사회를 이룩하겠다는 '정치적 비전'을 제시한, 한국 정치사상 보기 드문 캐릭터다. 그가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여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하기 때문에 '일베의 현신'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데이터와 게시물, 인터뷰 등을 통해 도출하고 이해한 일베의 특징, 즉 평범 내러티브라고 하는 내용과 '내로남불'과 냉소를 위시한 공격이라는 형식을 갖추었으며 능력주의라는 비전을 실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김학준, 『보통 일베의 시대』, 오월의봄, 2022. 356쪽.
이준석이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통해 스스로를 능력주의의 롤모델로 위치"시킨다고 김학준은 지적합니다. 최근 운운한 '동탄의 기적'이라는 발언의 뿌리이기도 하겠지요.
내가 생각하는 공정을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어릴 때 아버지가 상경해서, 서울에서 취직해서, 상계동 정도 자리 잡아서 자식을 키웠더니 나중에 그 자식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국가장학금을 받고 갈 수 있고, 그 사람이 집안에 정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정치 연줄 없이 대한민국 당대표까지 할 수 있다 정도면 공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이 사다리가 깨지면 나는 되게 위험할 거라 생각한다. 그냥 진짜 회사원의 아들이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고 최고의 학교를 다니고 나중에 제1야당 당대표까지 할 수 있으면 그게 공정이라 생각한다.
곽우신, 조선혜, 박현광, <"20대 여성, 어젠다 형성 뒤처지고 구호만">, 오마이뉴스, 2022. 1. 20.
흥미로운 것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마이클 샌덜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몰이해를 표출하하는데요, 되레 마이클 샌덜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지적하는 능력주의의 위험성을 이준석은 그대로 드러냅니다.
마이클 샌덜은 이 책에서 "불평등한 사회에서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라고 지적합니다. 이런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들을 오만 hubris으로, 패자들은 굴욕과 분노로 몰아간다" 점에서 위험하다고 말입니다. "능력주의적 오만은 승자들이 자기 성공을 지나치게 뻐기는 한편 그 버팀목이 된 우연과 타고난 행운은 잊어버리는 경향을 반영한다"라고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지만, 이준석은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저 '약장수'라 비난하며, 그의 수업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샌덜의 정치 철학을 폄훼합니다. '같잖음'이 선을 넘습니다. 오히려 이준석은 "좋은 사회는 '탈출할 수 있다'는 약속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샌덜의 지적이 훨씬 더 현실적임을 깨달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천박한 능력주의 윤리의 작동기제와 맞물리기도 하는 것이 혐오의 윤리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로 갈음할까 합니다.
이준석이 "즐겨 사용하는 술수는 '적'이 언젠가 뱉은 말을 탈맥락화시킨 후, 가장 자극적인 부분만을 과장하여 그것을 상대의 추악함으로 부감함으로써 원래의 발언이 가지고 있던 도덕적 함의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앞서 소개한 책에서 김학준은 꼬집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지편향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맥락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베와 펨코라는 반향실 echo chamber 속의 사람들에게는 더더욱이나 그렇습니다.
반향실은 어디에나 항상 존재하며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신문이나 편향을 드러내는 텔레비전 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이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긴급하며 훨씬 해로울 수 있다. 조금은 반직관적이지만 이렇게 된 이유로는 우리가 인터넷에서 수용하는 정보가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역설적인데, 우리는 인터넷이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허용하며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접하지 못했던 수많은 목소리를 들려준다고 순진하게 생각한다. 확실히 이는 신흥 기술을 수용하던 인간의 의기양양한 낙관론이었다. 현실은 좀 음울하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필터링하고 유도한 광고의 시대에 살며, 이는 차례로 우리에게 맞춤 재단된 정보를 직접 만든다. 소셜미디어는 사용료를 내지 않는 대신 광고 수익에 의존하며, 따라서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광고로 연결해야 이익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상품이다.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페이크와 팩트』, 김보은 옮김, 디플롯, 2024년, 356쪽.
그라임스의 책, 『페이크와 팩트』는 이준석과 같은 선동가들의 얄팍한 술수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조언해 줍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반향실의 인간들은 비합리적 irrational입니다. "먼저 감정을 숨김없이 쏟아낸 뒤, 이성을 활용해서 처음 느낀 감정에 대한 정당성을 파악"하는데요, "모순을 수용해서 생각을 개선하기보다는 격분한 피타고라스학파처럼 편안한 이상을 뒤집는 것은 무엇이든 짓밟으려 한다"는 게 가장 큰 비극이 됩니다. 무엇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진실로 자리 잡을 때, 진실성의 결여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걸, 펨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민주당 지지자들의 커뮤니티라고 해서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점 역시 또 다른 비극이지만, 지금은 이준석을 이야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준석 식의 탈맥락 전략 중에 하나가 이와 같은 '피장파장의 오류 tu quoque'라서, 더 언급하진 않으렵니다.
여기서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는 문제는 '확증 편향'입니다. "확증편향이라는 인간의 성향은 추론의 결함에 도전하기보다는 기존의 믿음을 강화하는 이야기를 선택"하기 때문에, "이런 동향에 정통한 사람은 사람들의 편견을 충족해 주고,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정확하게 해 주면서 엄청난 이익을 얻"습니다. 이 역시 이준석 식의 탈맥락 전략 중에 하나입니다.
이런 식으로, "맥락과 보호벽을 벗겨내면 대개는 스펙트럼의 양 끝에서 외치는 극단적인 주장만 남고, 대립하는 진영이 서로를 감시"하게 되며, "환원주의적 렌즈로 들여다보면 어떤 주제든 이원론이 된다.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홇거나’ 혹은 ‘그르거나’ 둘 중 하나"가 돼버립니다. 이준석의 해로움은 이와 같은 방식의 탈맥랙화 전략을 통해 '이분법적인 갈라 치기'에 도달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준석은 언제나 사과하지 않습니다. 이는 두 번째 전략인 탈맥락화에서 이어지는 전략입니다.
김학준은 "다양한 맥락과 이론적 개념을 동원하여 그를 '혐오주의자'라고 옳게 규정하더라도, '혐오 발언(또는 선동)을 한 바가 없다'라고 맞서는 뻔뻔한 주장은 비판을 너무나 쉽게 무력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전장연에 대해서 제가 사과할 일 없습니다. 제가. 전장연이 오히려 저에게 장애인 혐오 프레임을 씌우려고 했던 것에 사과한다면 받아줄 의향은 있습니다마는 저는 전장연에 대해서는 제가 잘못한 발언이 있다면 전장연에 소개해 달라고 했거든요. 아직까지 답이 없습니다.
<이준석 "차기 당대표? C나 D 나오면 막기 위해 나갈 것">, 노컷뉴스. 2022. 4. 5.
대선후보 3차 토론에서 나왔던 처참한 발언에 대해서도,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상식의 눈높이에서 묻는다. 제가 한 질문 가운데 어디에 혐오가 있느냐”라고 되물으며, 탈맥락화 전략의 모든 세트 구성을 보여주면서, 절대 사과하지 않는 뻔뻔한 무책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적반하장으로 들어섭니다. 전장연 사태에서 보여주었던 그 적반하장이 또 나오는 것이죠. 펨코에선 이런 반응에 열광할 겁니다. 반향실은 그런 곳이니까요.
이준석의 뻔뻔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양두구육' 발언입니다. 그 기자회견문에서 개고기를 팔았다는 사과는 한 마디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본인의 피해자 코스프레만 존재할 뿐입니다. 언제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일련의 상황을 보고 제가 뱉어냈던 '양두구육'이라는 탄식은, 사실은 저에 대한 자책감 섞인 질책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양의 머리를 흔들면서 개고기를 가장 열심히 팔았고, 가장 잘 팔았던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 선거 과정 중에서 그 자괴감에 몇 번이나 뿌리치고 연을 끊고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를 겪는 과정 중에서, 어디선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누차 그들이 저를 '그 새끼'라고 부른다는 표현을 전해 들으면서, 그래도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내가 참아야지,라고 참을 인자를 새기면서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고 목이 쉬었던 그런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한테 선당후사를 이야기하시는 분들은 매우 가혹한 겁니다. 선당후사란 대통령 선거 과정 내내, 한쪽으로는 저에 대해서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서 당대표로서 열심히 뛰어야 했던 제 쓰린 마음이, 그들이 입으로 말하는 '선당후사'보다 훨씬 아린 '선당후사'였습니다. 내부총질이라는 표현을 봤을 때 그 표현 자체에서는 저는 어떤 상처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저 올 것이 왔다는 생각과 함께 양의 머리를 걸고 진짜 무엇을 팔고 있었는지에 대한 깊은 자괴감이 다시 한번 찾아왔습니다.
2022년 8월 13일 이준석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문 중에서
정책결정자가 이론보다 주로 감정에 휘둘릴 때가 있다.
존 J. 미어샤이머, 서배스천 로사토,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해문집. 2024, 107쪽.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이준석의 정당이 사당화 됐기 때문입니다.
사당화의 가장 큰 폐해는 정당의 의사결정체계가 를 갖추지 못해서, 집단 지성을 활용해 신뢰할 만한 이론에 근거해 심의 deliberation를 거쳐 최선의 답을 도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당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존 미어샤이머와 서베스천 로사토의 책,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도움이 될 듯합니다. 이 책은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 특히나 국제 정치에서의 정책 결정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여기서 국가란 행정부를 말하며, 선거를 통해 집권하게 되는 '수권 정당'이 행정부를 맡게 됩니다. 따라서 정당 역시 국가와 마찬가지의 정책 결정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겠지요.
국가가 합리적 행위자라고 말하는 것은 국가의 정책이 신뢰성 있는 이론에 근거하고, 심의를 포함한 정책 결정 과정을 통해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역사적 기록은 대부분의 국가가 거의 항상 합리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존 J. 미어샤이머, 서배스천 로사토,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해문집. 2024, 323쪽.
미어샤이머와 로사토는 "합리적인 정책결정자는 Homo theoreticus"로 "세상을 이해하고 특정 상황에서 행동의 방식을 결정할 때 신뢰성 있는 이론을 사용한다"라고 선언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택을 내릴 때 합리적인 개인은 정보에 주의"하며, "무엇을 할지 정하기 위해 자신에 주어지는 어떤 정보든 수집하고 분석"합니다. "전략을 선택한 뒤에도 중요한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면 마음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정책결정자들은 종종 상황과 인식의 한계 때문에 휴리스틱 heuristics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숙고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거나 정보가 부족할 수도 있고, 능력이 모자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가장 자주 사용되는 휴리스틱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가 ‘가용성’ 휴리스틱, 둘째가 과거와 현재 사건의 유사성을 과장하는 경향인 ‘대표성’ 휴리스틱, 셋째가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도 초기 판단의 업데이팅을 막는 경향인 ‘기준점 설정’ 휴리스틱입니다.
이준석의 젓가락 사태가 바로 휴리스틱에 의존한 상황 인식에 기인합니다. 또한 이준석 개인이 휴리스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은 개혁신당이 이준석의 사당으로 전락하면서,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 숙의 시스템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쓴소리를 하며 다양한 이론에 근거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만 하는 참모들이 침묵하고, 이준석 개인의 부정확한 판단을 맹종함으로써 정당이 갖추어야 하는 합리성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비합리성은 다음 세 가지 형태 중 하나를 띨 수 있다.
첫째, 정책결정자들이 신뢰성 없는 이론을 취하가나 아예 이론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을 하고 심의에 실패한다.
둘째, 신뢰성 있는 이론에 근거하지만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심의가 누락된다.
셋째, 신뢰성 없는 이론을 취하거나 이론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을 하지만 심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실증적으로 봤을 때, 신뢰성 있는 이론을 취하지 않는 것과 심의 과정을 누락하는 것이 연관되어 있는 듯하다.
존 J. 미어샤이머, 서배스천 로사토,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해문집. 2024, 2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