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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해리 프랭크퍼트_개소리에 대하여

한 철학자의 '책 book 아닌 소책자 booklet'가 보여주는 발랄

by 안철

해리 프랭크퍼트, 『개소리에 대하여』, 이윤 옮김, 서울: 필로소픽, 2016.

Harry G. Frankfurt, On Bullshit,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5.



그 언젠가가 이번이 되었네요.

얼마 전 한겨레 북 섹션 기사에서 해리 프랭크퍼트의 책, 『진실에 관하여』가 출간됐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리 궁금한 책은 아니었습니다만, 되레 이 책을 좀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죠. 언론학자 정준희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 이 책에 대해 언급하면서 정치인의 ‘개소리’에 대해 비판한 이래로, 이 책을 한 번쯤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온 터였습니다.


bullshit에 대한 역어로 자주 쓰이는 것이 헛소리입니다.

다만 이 책에선 개소리로 번역을 했습니다. 워낙 다양한 종류의 유의어 때문에 그저 헛소리라고 번역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겠지요. 그래서 이 책에서는 nonsence에 대한 역어로 헛소리를, bullshit에 대한 역어로 개소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대단한 기대는 없었습니다.

저자인 해리 프랭크퍼트가 철학자이긴 하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 자체가 학술적으로 접근하긴 어려울 듯했기 때문입니다. 그저 재기로운 사변 정도를 들여다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요, 예상이 빗나가진 않았습니다.

막상 책을 쥐어들었을 때 놀라게 되는 이유가 두 가지인데요, 너무 작고 얇다는 점입니다. '책 book'이라기보다는 '소책자 booklet'라고 불러야 맞겠다 싶을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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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는 냉소적인 문장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개소리를 하고 다”니니 그럴 수밖에 없다면서도, 이를 너무 당연히 여기다 보니 “우리에게는 개소리에 관한 이론이 없다”는 사실을 주지 시킵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거리게 됩니다. 그래서 개소리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목적임이 밝혀지는데, 그것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귀결되는 듯합니다.

37쪽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개소리의 본질이라고 보는 것이다.


저자의 논지는 막스 블랙 Max Black의 책, 『The Prevalence of Humbug』에서 출발합니다. humbug, laberdash, claptrap, hokum, drivel, buncombe, imposture, quackery와 같은 bullshit의 유의어들을 언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 책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개소리의 본질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정의”를 정리하기도 했는데요, 그에 더한 저자의 정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개소리는 대충 싸지르는 말이다.

“부주의하게 만든 조잡한 물건이 어떤 면에서 개소리와 비슷하다”면서, “개소리 자체가 항상 부주의하게 혹은 제멋대로의 방식으로 생산된다는 점, 개소리는 결코 세심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대변 shit은 설계되거나 수공예로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싸거나 누는 것”이라 단호하게 말합니다.


나. 개소리는 일종의 허세다

48쪽
거짓말하기와 허세 부리기는 둘 다 부정확한 전달 또는 기만의 양상이다. 그런데 거짓말의 독특한 본성에서 가장 중심적인 개념은 허위성 Falsity이라는 개념이다. 본질적으로 거짓말쟁이는 참이 아닌 것을 계획적으로 퍼뜨리는 사람이다. 허세 부리기도 전형적으로 뭔가 허위인 것을 전달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빤한 거짓말과는 달리, 허세 부리기는 좀 더 특수하게는 거짓이 아니라 속임수의 문제다. 이것은 허세 부리기가 개소리에 가깝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왜냐하면 개소리의 본질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이 가짜 phony라는 데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위조품에서 잘못된 점은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이다”라고 지적하면서, 이것이 개소리의 본질적 속성에 다가가는 특질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거짓말하는 사람은 그가 진리라고 여기는 것이 부과하는 객관적 제약에 따라야만 하며, 이것은 일정 수준의 숙련도를 필요”로 하지만, “개소리쟁이의 작업이 의존하고 있는 창조성의 양상은 거짓말에 동원되는 것보다는 덜 분석적이고 덜 정교하다”라고 지적합니다. 그리하여 “정직한 사람의 눈과 거짓말쟁이의 눈은 사실을 향해 있지만, 개소리쟁이는 사실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합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개소리의 본질인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은 이렇게 드러나게 됩니다.


다. 진정성 그 자체가 개소리다

저자는 오늘날 개소리가 확산되는 이유로 회의주의에도 주목했습니다.

회의주의는 “우리가 객관적 실재에 접근할 수 있는 어떤 신뢰할 만한 방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다 보니, “사태의 진상이 어떠한지를 인식할 가능성을 부인”할 수밖에 없다고 봤습니다. 그리하여 “객관적 탐구라는 개념이 이해 가능한 개념이라는 믿음을 약화”시키며, 그에 따라 “정확성 correctness이라는 이념에 대한 헌신이 요구하는 규율”에서 “진정성 sincerity이라는 대안적 이념을 추구할 때 요구되는 규율”로 후퇴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사물에 대한 진리로 간주할 만한 본래적 속성이 없다는 확신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려는 것이 무의미하므로, 그 대신 개인들은 자신에 대해 충실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결심하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지적합니다.

그렇다 보니 다음과 같은 결연한 결어로 글을 끝맺습니다.

68쪽
우리 자신에 대한 사실들은 특별히 단단한 것도, 회의주의적 해체에 저항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본성은 사실 붙잡기 어려울 정도로 실체가 없다. 다른 사물들에 비해 악명 높을 정도로 덜 안정적이고 덜 본래적이다. 그리고 사실이 이런 한, 진정성 그 자체가 개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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