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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6

굳이 짜증을 내면서 트렌드 분석서를 읽는 이유

by 안철

김나연 외 20인,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6, 파주:싱긋, 2025.



트렌드 분석서를 읽는 이유, 별 거 없습니다.

올해 나온 트렌드 분석서, 그러니까 제목에 '2026'이 붙는 시리즈 중에서 처음으로 책장을 넘긴 것이 이 책입니다.

공교롭게도 매년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이노션 출신의 친구녀석에게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이 친구, 이렇게 말하더군요.

"올해는 좀 읽어볼 만 해?"

제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짜증나지만, 그냥 참고 읽어."


이 책은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편집자가 없기 때문에, 파트와 챕터로 나눈 주제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유튜브 생태계를 3개 챕터, AI생태계를 3개 챕터 그리고 기업 마케팅 생태계를 4개 챕터에서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각 챕터는 파트가 다르다 보니, 내용이 겹치는 건 다반사요 심지어 서로 충돌하는 내용까지 기술하곤 합니다. 어질어질 하죠. 이용섭의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처럼 혼자 쓰는 책이나, 김난도 패밀리의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처럼 편집작가를 고용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 책처럼 중구난방이 되기 쉽습니다. 코트라의 『한국이 열광할 세계 트렌드』처럼 말입니다. 매년 출간되는 몇몇 트렌드 분석서들이 이노션과 같은 방식, 그러니까 대충 목차를 만든 뒤에 연구원들에게 각자 맡은 챕터를 알아서 작성하도록 한 뒤 취합하는 형태로 책을 만들면, 피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내용면에서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주목해 볼 만한 내용을 다룬 챕터와 그저 읽고 넘어가면 그만일 챕터 그리고 가루가 되도록 씹어야 할 챕터로 말입니다.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 위해 자료조사를 충분히 했고, 그리하여 글쓴이 자신도 해당 주제에 대해 단단한 통찰력을 형성한 경우가 있습니다. 언급된 논문이나 보고서를 찾아 보면, 인사이트를 확장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기도 하죠. 그래서 글이 단단하고, 읽을 때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하지만 관성적으로 쓴 글들은 그런 감흥이 없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광고 물량을 소화하는 굴지의 기획사이다보니, 자료는 많습니다. 그래서 ‘최신 정보’만큼은 정리가 됩니다만, 해당 주제에 대한 통찰을 공유하긴 어렵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이 ‘글을 위한 글’을 억지로 쓰는 경우입니다. 전문가적인 통찰력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해당 주제에 대해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라서 억지스럽게 글을 엮은 경우가 잦습니다. 기초적인 인문학 지식만 있어도 이렇게 쓸 수 없는 문장들이 발문으로까지 튀어나옵니다. “와, 씨발, 진짜 자기들 꼴리는 대로 막 싸지르는구나”라는 반응을 숨길 수가 없더군요. 마침 딱 맞는 인용문을 발견해서 여기에 옮겨봅니다.

개소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데도 말하기를 요구받는 경우가 그렇다. 따라서 어떤 주제에 대해 말할 기회나 의무들이 화자가 가진 그 주제와 관련된 사실에 대한 지식을 넘어설 때마다 개소리의 생산은 활발해진다.
해리 프랭크퍼트, 『개소리에 대하여』, 이윤 옮김, 서울: 필로소픽, 2016, 65쪽.

그래서 올해 이 시리즈에 대한 리뷰는 이 세 가지 패턴에 대해 살펴보는 것으로 나아가 볼까 합니다.



1. Un Certain Regard

올해의 책에서는 두 개의 챕터를 ‘주목할 만한 시선’으로 바라볼까 합니다.


가. <4989 RE:conomy: 중고의 재발견>

126쪽
요즘 ’리커머스 RE-commerce’라는 말을 자주 본다. 리커머스는 리버스 커머스 Reverse Commerce의 줄임말로, 구입한 물건을 다시 시장으로 돌려보내는 재유통 전반을 뜻한다. 국내에서 리커머스는 보조 선택지를 넘어 핵심 유통시장으로 커졌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중고거래 시장은 2008년 4조 원 규모였으나, 2021년 24조 원을 지나 2024년 35조 원을 넘어섰고, 2025년에는 43조 원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다.

리퍼브 Refurb, 바이백 Buyback, 트레이드인 Trade-in과 같은 방식으로 제도화되고 있는 리커머스가 대세로 자리잡은 배경에 대해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는 경제적 요인으로, 소비 기준이 ‘가격’에서 ‘총소유 비용 Total Cost of Ownership’으로 이동했다고 봤습니다. 둘째는 심리적 요인으로, ‘손실 회피 성향’이 강화됐다고 분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유의 무게는 가볍게, 경험의 밀도는 높게 가져”가려는 MZ세대의 가치관 변화를 꼽았습니다.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MZ세대’ 표현을 빼면 격학고 동감하게 되는 분석입니다.

무엇보다, “시장이 성장하고 거래 방식이 진화함에 따라 투명한 가격 책정, 상태 등급, 구성 정보의 공개 등 과거 중고거래의 장애요인으로 여겨지던 요소들은 이제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는 점도 분석에서 놓치질 않습니다. 여기에 포착하지 못했던 정보가 더해지면서, 리커머스 트렌드의 심화에 대한 설득력을 더해줍니다.

136쪽
리커머스 시장의 성장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2025년 들어 중고거래와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거대 유통 기업도 이 비즈니스에 뛰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이다. 두 백화점은 모두 매입 품목에 대한 기준을 수립하고, 철저한 검수를 통해 중고 시세에 맞춰 백화점 포인트로 보상해준다. 백화접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중고 의류 판매를 위해 백화점을 방문하는 소비자를 록인 Lock-in하고자 하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결연한 결어에도 반감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140쪽
기업들이 중고거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소비가 위축되는 시기에 단기적인 매출 증대의 목적도 일부 있겠으나, 보다 근본적인 목적은 소비자와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나. <서치 레볼루션: AI 시대 브랜드 노출 전략>

일반적인 검색에선 구글을, 대화형 검색에선 챗GPT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 저는 주로 사용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해왔었습니다. 그러니 SEO에 목매달았던 마케터들이 이제는 GEO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란 걸 간과했었습니다. 누군가의 먹고사니즘에서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는 사안인지라, 내용이 참 튼실합니다.

295쪽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베인앤컴퍼니가 2024년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검색의 약 60%가 다른 웹사이트로 이동하지 않고 검색 페이지에서 종료된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AI에 회의적인 사용자들마저 절반 이상이 검색 화면에서 곧바로 답을 얻는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술에 대한 태도와 관계없이, 새로운 검색 방식이 이미 일상적인 정보 탐색 습관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챕터를 정리한 이는 “생성형 AI 플랫폼은 콘텐츠 노출의 최적화 기준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고 봤습니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검색 환경에서는 “생성 엔진 최적화 Generative Enging Optimization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웹 전반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중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정보를 조합해 답변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키워드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 구체적인 데이터와 명확한 출처, 반복적인 인용 가능한 정보, 표나 수치로 정리된 구조화된 포맷 등이 GEO 환경에서 신뢰받는 새로운 기준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AI에 인용되기 위해서는 콘텐츠 자체가 AI가 참고하고 싶은 형태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 다음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콘텐츠가 AI가 바로 인용할 수 있도록 구조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AI는 명확한 질문과 답변 구조를 통해 논리적으로 정보를 구성한다. 따라서 콘텐츠는 자주 묻는 질문에 답하거나, 무언가를 단계별로 설명하거나, 특정 질문에 명확히 응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는 것이 인용 확률을 높인다. 또한 AI는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명확한 엔티티 entity와 구조화된 맥락을 인식하기에 문서에 스키마 마크업 등을 통해 AI가 쉽게 해석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 AI가 참고하는 다양한 외부 정보 출처에 브랜드가 전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파운드의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생성형 AI플랫폼에 따라 정보를 인용하는 출처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2. 그냥 읽고 넘어가면 될 챕터


가. <모닝 레이브: 우리의 아침은 당신의 밤보다 힙하다>

‘새로운 문법의 놀이문화’나 ‘Z세대가 아침부터 춤추는 이유’ 따위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가져다 붙인 억지들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갓생(God+生)에 대한 피로감에 겟생(Get+生)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는 이 얼토당토않은 이유는 헛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이제 아침은 더 이상 ‘준비’의 시간이 아니다. 가장 젊고, 가장 감각적이며, 가장 연결되는 시간대다”와 같은 아무말 대잔치에 이르면, 그저 욕이 나오고 말죠.

다만, “여유로운 아침 루틴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처럼 존재한다는 것 정도는 들여다 볼 만합니다. ‘서울모닝커피클럽’과 같은 예, <밀크랩 커피숍 세트 MILKLAB Coffee Shop Sets> 같은 예가 그렇습니다.


나. <소소(小小)소비: 웬만해선 소비를 막을 수 없다>

작년 12월 3일에 일어났던 친위쿠데타 이후 얼어붙었던 소비심리가 새로운 정권의 탄생으로 점차 회복세를 보이는 모양입니다.

108쪽
소비시장의 회복세는 지표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2025년 7월 소비자심리지수 CCSI는 110.8로 전월 대비 2.1포인트 상승하며 202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 와중에도 소분 모임을 통한 소비, 1인분 소비, 듀프 소비와 같은 ‘전부터 있었던 듯한데 조금 새로운 형태’의 소비행태가 보이는 듯합니다. 그 조금 다른 형태를 정교하게 짚어주는 것이 바로 트렌드 분석서를 읽는 이유가 됩니다.

121쪽
소분 모임, 1인분 소비, 듀프 소비는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공통적으로 오늘날 소비자의 새로운 태도를 드러낸다. 소분 모임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대용량을 나누며 효율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다양한 제품을 조금씩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인분 소비는 혼자서도 작은 사치를 누리며 충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게 하고, 듀프 소비는 합리적인 가격으로도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자부심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 방식을 모두 불황 속에서도 소비가 멈추지 않고, 오히려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한다면 콧방귀를 뀔 수밖에 없습니다. 불황형 소비라고만도 볼 수 없고, 또 진화한 형태라고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소스타인 베블런이 소비에 대해 분석한 이래로, 소비 활동을 하는 인간은 그저 호모 에코노미쿠스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소비를 통해 무언가를 과시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분출하기 마련이라서 말입니다. 그래서 다음처럼 ‘심하게 낙천적인’ 전개를 바라보다 보면, 내가 왜 트렌드 분석서를 읽고 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게 됩니다.ㅏ

111쪽
결국 소셜미디어와 커뮤티니는 소비를 단순히 ‘경험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경험을 공유하고 해석하는 과정으로 확장시킨다. 소비자는 이 과정에서 더 큰 만족과 가치를 얻고, 그것이 다시 소비를 이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바로 이 지점이 불황에도 소비가 멈추지 않고 되레 활기를 띠는 중요한 이유다.


다. <가내수공유튜버: 혼자서도 잘해요>

이 챕터에서 보여주는 유튜브 생태계 현황 분석은 탁월합니다. 흠잡기 어렵습니다.

145쪽
유튜브는 이제 세 거인이 지배하는 전쟁터가 되었다. 첫째는 방송사다. tvN, JTBC, MBC 등 기존 방송사들이 이미 검증된 콘텐츠와 축적된 제작 노하우, 막대한 제작비를 무기로 유튜브를 제2의 편성표처럼 활용하며 시청 시간을 흡수하고 있다. 둘째 연예인과 전문 스튜디오는 처음부터 다각적인 수익모델을 갖춘 ‘기업형 콘텐츠’로 승부한다. 전문 PD와 작가진, 여러 명의 카메라 감독, 전문 편집팀이 수십 명의 스태프와 함께 움직이며 하나의 IP 자산을 만들어낸다. 마지막으로 침착맨, 히밥처럼 개인으로 출발한 메가 크리에이터들마저 이제는 분업화된 팀을 갖춘 ‘콘텐츠 기업’으로 진화하여, 고품질의 영상을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뛰어난 관측이 항상 탁월한 분석을 가져오진 못합니다. 이런 식으로 얼토당토않은 분석도 이루어지니까요. 도대체가 “시청자들은 날것을 갈망하기 시작”했다는 뇌피셜은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알고리즘의 진화가 개인에게 기회를 열었다”는 망상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쯤 하면, 클라이언트의 입맛에 맞춰서 서베이 분석을 지어낸 엉터리 보고서를 떠올리게 됩니다.

154쪽
거대 자본이 주도하는 콘텐츠 시장은 두 가지 현상을 낳았다. 첫째, 과잉 제작된 콘텐츠에 대한 피로감이다. 예측 가능한 공식과 상업적 논린에 갇힌 콘텐츠에 지친 시청자들은 날것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둘째, 알고리즘의 진화가 개인에게 기회를 열었다. 특히 숏폼 콘텐츠의 부상은 아무리 작은 채널도 타깃 시청자에게 정확히 닿을 수 없기에, 개인은 자신의 고유한 관심사로 틈새를 장악할 기회를 얻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지청자의 니즈는 ‘잘 만들어진 콘텐츠’를 넘어 ‘나와 연결된 콘텐츠’로 이동했다. 콘텐츠의 본질이 ‘보여주기’에서 ‘관계 맺기’로 이동하는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라. <디지털 부업의 탄생: 작은 채널이 맵다>

마치 ‘던바의 수’처럼, 인지적 한계에 따른 친소 관계의 정도가 드러나는 적정 숫자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흥미롭습니다.

193쪽
여러 연구에서도 팔로워가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참여율이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반면, 팔로워수 7,000~1만 명 구간이 가장 높은 반응률을 보인다는 결과들이 보고되며, 스몰 크리에이터의 잠재력이 주목받고 있다.


마. <Long Time Yes See: 길어도 보더라>

230쪽
유튜브의 「유튜브 컬쳐&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Z세대의 59%가 숏폼 동영상 앱을 사용하여 콘텐츠를 찾은 후 해당 콘텐츠의 긴 버전을 시청하고 있으며, 한국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유튜브 쇼핑 엑셀러레이터 행사 중 한 유튜브 관계자의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쇼츠로 먼저 핵심을 파악한 후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보기 위해 롱폼을 시청하는 식의 콘텐츠 패턴이 나타난다고 한다.


바. <취향 큐레이션: 콘텐츠 오마카세>

저는 큐레이션이란 말장난을 아주 싫어합니다.

미술계에서 전통적으로 활용했던 용어로서의 큐레이션이 아니라면, 데이터 큐레이션 정도의 의미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루 스토퍼드의 말처럼 “모든 게 큐레이션된다고 한다면, 도대체 그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탄식밖에 남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다 보니 “오늘날 큐레이션된 경험에는 플랫폼, 큐레이터 등 큐레이션의 주체가 놓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핵심 요소, 바로 신뢰성, 일관성, 다양성이다”라는 근본 없는 기술들에는 짜증이 솟구치게 됩니다. 오늘날의 큐레이션이 아니라, 애초에 큐레이터가 담당했던 일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개인화 서비스는 그저 개인화 서비스일 뿐이지, ‘큐레이션’의 영역에 들 순 없습니다. 개념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그저 ‘자명한 개념’으로 접근해서 ‘자의적으로’ 개념을 사용하게 되면 내용은 산으로 가게 됩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눈길을 줄 만한 내용이 없진 않습니다. 문제는 “믿을 수 있고 검증된 것”까지는 현재 AI가 담보할 수 없는 기술이란 것이고, 그래서 ‘인력’에 의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하다 보니, ‘오마카세’와는 아주 다른 개념인 콘텐츠 큐레이션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어질어질합니다.

167쪽
AI 기술의 확산과 가짜 뉴스 등 조작된 콘텐츠의 범람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더해지면서, 사람들은 정보의 양뿐 아니라 ‘질’까지 파악해야 하는 이중의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많은 것 중에서 좋은 것“을 골라주는 것을 넘어서, ’믿을 수 있고 검증된 것‘을 제공해주는 큐레이션에 대한 갈망이 커지면서 다시금 주목받게 된 것이다.



3. 읽어봐야 쓸데없지만, 씹다 보면 더 깊은 사고가 가능한 챕터


가. <My AI Soulmate: 사랑과 우정 사이>

정서 교감형 AI 탑재 애완로봇이 제법 오래전부터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 빼곤 별 볼 일이 없습니다.


나. <오운쳌: 오늘의 운세 체크>

편견과 억측이 난무하는 챕터입니다. 이번 책에서 최악의 챕터를 꼽으라면 이 챕터를 꼽을 수 있을 듯합니다.

우선 트렌드 분석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구린‘ 편견이 다음과 같이 드러납니다. 한민의 책이나, 한국일보 기자들의 책이라도 읽어봤다면, 이런 엉터리 문장이 나오진 않았을 겁니다.

38쪽
신문 한편에 실린 띠별 운세를 훑어보거나 중요한 일을 앞두 고 철학관을 찾는 것이 기성세대의 익숙한 풍경이었다면, 오늘날 Z세대는 가장 친숙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점친다. 이들은 사주나 타로, 별자리, 손금 등 동서양을 막론하는 다채로운 운세 서비스를 시공간의 제약 없이 손안에서 즐긴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발문에선 숨이 멎을 것 같습니다.

“Z세대는 운세를 불확실한 현실을 헤쳐나가기 위한 주체적인 자기관리 도구이자 심리적 보조 수단으로 사용한다.”


다. 랜덤팬덤: 우연에 열광하는 요즘 사람들

앞의 챕터와 쌍벽을 이룹니다.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56쪽
또한 랜덤은 혼자만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는다. 친구들과 결과를 공유하거나, 소셜미디어에 인증하며, 예상치 못한 결과를 두고 웃고 떠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줄거움이 만들어진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특성이 오히려 모두를 같은 출발선에 세우고, 그 불화실성 자체가 공통의 관심사가 된다. 결국 랜덤은 선택의 압박에서 벗어나고, 즉각적인 만족을 맛보며, 관계를 이어주는 매력적인 놀이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의 랜덤 트렌드는 단순히 우연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 예측 불가능성을 즐기며 새로운 경험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고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늘어놓고 있는데요. 랜덤은 그저 도박일 뿐입니다. 소소한 도박은 ’요행‘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상품화된 랜덤은 더 이상 ’요행‘이 될 수 없습니다. ’세렌디피티‘ 같은 개소리는 작작해야 합니다.


라. <노화탈출 넘버원: Z세대의 헬스케어>

의료진조차도 쉽사리 분석할 수 없는 것이 생체데이터입니다. 환자마다 개인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추적 분석이 이루어져야 의미있는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의료진이 아닌 개인이 중심”이 된다는 건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레토릭이 됩니다. 무엇보다 의료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데이터를 유의미하게 해석할 수 있는 리터러시를 갖추는 것이 힘듭니다. Z세대에갠 어림없고, 적어도 '영포티'쯤은 되어야 가능한 일이 될 터입니다. 여기에 또 자기 멋대로 ’큐레이션‘이란 개념을 원용합니다. 이러니 아무말 대잔치의 참 의미없는 성찬이란 것이죠.

105쪽
의료진이 아닌 개인이 중심이 되고, 수동적으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큐레이션 하는 시대가 열렸다.


마. 진격의 덕후: 주류가 되어가는 서브컬처

서브컬처란 말 자체를 왜 원용했는지 모르겠다싶은 발문으로, 이 챕터는 설명됩니다.

서브컬쳐는 이제 소수 마니아를 위한 전유물을 넘어, 어엿한 주류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장 자체가 형용모순입니다. 짜증이 솟구칩니다.

펑크나 힙합과 같은 음악산업의 서브컬쳐가 이제는 메인스트림이 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아키하바라를 중심으로 서브컬쳐로 존재했던 오타쿠문화가 이제는 제법 메인스트림으로 전개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니 ”한때 서브컬쳐였던 오타구 문화가, 이제는 메인스트림의 한축이 됐다“고 썼다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 의미로 쓴 거라고 이해하기엔, 심지어 발문으로 뽑아냈으니 핑계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문장이 나오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글을 쓴 사람이 주제에 대해 통찰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 <Brand New Art: 브랜드가 예술이 될 때>

사. <마케팅 아레나: 브랜드의 새로운 무대가 된 스포츠>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하나마나한 뻔한 이야기들만 난무합니다.


아. 쁘(브+브)랜드십: 전략적 팀플레이

제휴서비스들이 욕먹는 이유를 간략하지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289쪽
소비자는 이제 더 많은 혜택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매일 쓰는 혜택‘을 원한다. 생활비 절감과 자신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 들이는 노력을 줄여주는 것이 구독 선택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 지금, 식사·이동·여가·결제처럼 일상의 루틴에 맞물리는 파트너십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단순히 로고만 함께 올리는 제휴가 아니라, 소비자의 맥락과 행동 패턴을 세밀히 분석해 맞춤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이용자가 ’나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느낄 때 파트너십은 진정한 차별화가 된다.



스페셜 리포트: <So Far So Cool 2026: 쿨함에 대하여>

그냥 이 한 마디 쓰려고 어그로 끌었던 것 같다는 생각만 듭니다.

335쪽
‘쿨’은 시대와 맥락에 따라 유동적으로 달라지는 성질을 지닌다.



부록: <SPACE TREND: 공간 경험의 미래>

이것도 마찬가지로 다음의 세 문장 정도가 끝인 듯합니다.

340쪽
이노션 트렌드인사이트팀이 2024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집계한 데이터에 의하면, 백화점 팝업스토어를 제외하고, 서울 내에서 열린 팝업스토어 중 약 47.5%가 성수에서 열렸다.
357쪽
성수를 대표하는 XYZ Seoul, 엠엠성수, 피치스 도원 같은 대형 팝업 임대공간은 높은 인지도와 방문율 덕분에 이미 2026년까지 예약이 꽉 찼을 정도로 임대 경쟁이 치열하다.
393쪽
팝업스토어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공간 마케팅의 A부터 Z까지를 한 번에 담당하는 토털 솔루션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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