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출판 편집이 왜 중요한지 다시 일깨우다
にらい‐かない
沖縄や奄美で古来信じられてきた海のかなたの楽土・聖地。
そこから神々が来訪して福をもたらすとか、火や穀種が来るとか伝える。
책을 펼쳐 들고 서지면을 펼쳐본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됐습니다. 아, 그저 나의 작은 편견이 허상을 만들어낸 것이로구나 하고 말입니다.
니라이카나이출판사는 2020년 1월 29일 서울 마포구에 주소지를 두고 등록한 출판사입니다. 그냥 한국 출판사였던 거죠. 아템포, 에쎄, 엘릭시르, 이콘, 콜라주, 테이스트북스, 파불라, 포레와 같은 문학동네의 임프린트가 외국어를 브랜드명으로 쓰는 것처럼, 그저 류쿠제도의 신화에서 전래하는 낙원을 사명으로 썼을 뿐이었던 거죠. 하지만 저는 "어째서 일본의 출판사가 한국의 동네책방에 관심을 갖는 거지?"란 의문을 갖게 됐었습니다. 전례도 있습니다. 일본의 출판평론가 이시바시 다케후미가 『本屋が アジア をつなぐ 自由を支える者た』(유유출판사에서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라는 생뚱맞은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를 통해, 제법 많은 우리의 동네책방들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작업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진지한 탐색 작업인가 싶어서 책에 대한 정보를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다가, 당최 감을 잡을 수가 없었죠.
이렇게 책의 실물을 잡아들고 펼쳐 들면 많은 것들이 선명해집니다. 지난 주말에 미란다 프리커의 책, 『인식적 부정의』를 서론만 읽고 과감하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인지심리학에 관한 책인 줄 알고 펼쳤다가, 인식론과 정의론을 다루는 도덕철학의 어디쯤에서 헤매겠구나 싶어 얼른 덮어버렸습니다. 정의론을 다룬 몇 권의 책을 더 읽어봐야겠다며 관심도서 목록을 채우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덤벼들 주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이번 시도는 굳이 '퇴각'하지 않아도 되긴 했습니다만, 여러 가지 불만이 쌓인 것만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일단 출판사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고 나니, 감이 잘 잡히지 않았던 것들이 선명하게 예상 가능한 일로 변했습니다. 아, 이 책 또한 그저 그런 중구난방의 에세이집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요, 결론적으로 그렇더군요. 그저 2022년 사계절출판사에서 출간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책방』의 처참한 수준의 아무 글 대잔치만 아니길 바랐습니다만, 그런 참사는 면했습니다.
다국적 거대 출판 기업, 이를테면 펭귄랜덤하우스나 하퍼콜린스가 아니라면 출판사의 일은 IP사업이라기보다는 채광사업과 같은 일이 됩니다. 좋은 저자를 찾아내서 그로부터 팔리는 원고를 뽑아내는 일이 현재 출판사가 주로 하는 일이라는 거죠.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이, 출판산업 역시 크게 상품 기획, 상품 제작, 판촉, 유통의 네 가지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상품 제작과 유통의 과정은 완전히 외주화가 이루어진 터라 이 과정에서 수익을 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니 '상품 기획'과 '판촉'에 집중해야 하는데요, 마케팅은 또 완전히 저 세상 전문가들이 넘치는 영역인지라 이른바 '출판 공룡'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면 외주화 하는 것이 나은 편입니다. 그러니 이제 출판사에게 남은 역할은 상품기획 밖에 없습니다. "좋은 저자를 찾아내서 그로부터 팔리는 원고를 뽑아내는 일"말입니다.
책 역시 하나의 상품입니다.
독자라 지칭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채워줄 수 있는, 더 나아가 소비자의 니즈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상품으로 기획하지 않는다면, 책은 팔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시장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꼼꼼히 분석하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상품을 기획하는 것, 즉 '출판 편집'의 중요성은 전에 비해 훨씬 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의 출판 기획은 나쁘지 않았다고 봅니다. 제가 펼쳐볼 생각을 했으니까요. 알만한 동네책방 주인들이 필진으로 참여해서, 자신들의 '추억 속 동네책방'을 풀어낸다는 것에 저 같은 사람은 혹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훅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잘 알려진 책방지기 필진'으로,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고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더라"라는 영화 『짝패』의 대사가 그들의 가치를 설명합니다. 잘 돼서 계속 운영하는 것인지, 그저 그만 두지 못해서 계속하고 있는 것인지 내밀한 사정까진 알 수 없습니다만, 그저 아직까진 그만두지 않았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목소리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라차, 이 밤수지, 조예은, 채도운, 호재, 류지혜, 무라사키, 박용희, 윤태원, 김하림, 구선아, 문주현, 추혜원, 계선이, 박성민"이란 낯선 이름들은 책방의 상호와 엮이면서 힘을 갖춥니다.
둘째는 '추억 팔이'입니다. 지금은 망해서 문 닫아 버린 서점 이야기,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한국십진분류법에 따라 013으로 분류된 책을 스무 권쯤 읽어 보면, 모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옛 기억을 더듬는 이야기에 쉽게 기울어집니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쉽게 미화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설명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왜곡해서라도 좋은 것으로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이라서 그렇습니다. 학대의 기억마저도 추억할 수 있는 게 사람이란 거죠. 그러니 추억팔이에 대한 수요가 충분히니 그에 따른 공급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저 한숨이 새어 나오는 패착이 한 둘이 아닌지라, 하나하나 다 잡아서 까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편집이 부재한다는 그 엄청난 사실 하나만 짚겠습니다.
출판 기획 업무는 출판 편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여기서는 제외하고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출판 기획 이후의 단계, 즉 저자로부터 원고를 전달받아 독자에게 제공하기 위한 상품으로 완성하는 '다듬질' 과정을 좁은 의미의 편집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원고의 오탈자나 수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애초 그 책이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을 지켜내기 위해 내용 수정은 물론이요, 정도가 좀 심해지면 저자와 함께 책을 완전히 새로 쓰는 수준에까지 이릅니다. 애초에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주제에 부합할 수 있도록 원고의 방향을 붙잡아주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 책에는 그런 작업이 부재합니다. '서점을 잇는 사람들'에 실명 또는 가명으로 참여한 저자 개개인이 어떤 생각으로 쓴 글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그냥 죄다 쓸어 담았습니다. 그러니 글 하나하나는 서로를 지지하지 못하고 서로 겉돌기만 합니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글들이 겉돌기만 하면 다행이기까지 합니다만, 이럴 때면 악순환의 서킷은 쉽게 만들어집니다. 참여 필진의 필력에서 편차가 발생하다 보니, 주제에 대한 이해도가 깊고 방향성을 추구한 원고들 사이에서 생뚱맞게 튀는 글들이 보입니다. 그런 글들이 이 조그맣고 얇은 책에 거대한 단층면을 만들어내죠. 짧은 호흡으로 몰아쳐 읽게 되는 이런 책의 독서 경험에는 아주 큰 악영향을 미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애초 이 책의 기획했던 바는 명확합니다. '추억이 방울방울' 열리긴 기대하고 원고를 의뢰했을 터입니다. 5페이지에 수록한 다지리 히사코의 글에서와 같은 감성을 말입니다.
그런데 돌아온 글들은 하나 같습니다. "기억 속 서점이 어느샌가 사라져 버렸다"가 답니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에서, '삶은 계속된다'는 이야기를 하긴 어렵습니다. 그저 눈앞에 놓인 어려운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글로 지지부진하게 마무리되고 맙니다. 그렇게 이 책은 쓰지야마 요시오의 글에서처럼 무언가 희망을 주는 추억을 소환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만,
마을에서 서점을 한다는 것은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 책장을 책임지는 일이나 마찬가지기에 어린이가 혼자서 책을 살 때면 어른들이 살 때보다 살짝 더 긴장하게 된다.
- 쓰지야마 요시오/ 정수윤 譯.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돌베개. 2023, 118쪽.
이지선의 글에서처럼 냉혹한 현실에 닥쳐서, 그저 허둥거리는 꼴만 바라보게 됩니다.
모두가 인터넷으로만 물건을 산다면 동네에 남아 있을 구멍가게가 있을까? 거대한 물류 센터만 살아남고, 배달앱으로 주문하는 플랫폼만 남게 되겠지.
- 이지선, 『책방뎐』, 오르골, 2021. 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