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 뮈더의 명저를 조져놓은 출판 편집과 번역
제목도 ‘거지같이’ 바꾸더니, 구성의 심도까지도 제멋대로 뜯어고쳐서 책을 산으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번역은 엉망진창입니다. 이상하게 흐름이 끊겨서 살펴보면 통째로 날아간 단락이 나오질 않나, 용어의 번역도 신중하지 못한 수준을 넘어서 몰상식한 수준으로까지 떨어집니다.
번역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되면, 대체로 원문을 구해서 대조하면서 읽게 됩니다. 이럴 때면 독서 속도가 두 배 이상으로 늘게 됩니다. 단순히 원문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의 문맥을 확인하기 위해 국내 논문들까지도 찾아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워낙에 ‘공부’하자고 덤빈 주제의 책이라서 그런 정성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그저 재미로 훑어보는 책인 경우와는 독서 시간에서 적어도 5배 이상의 차이가 납니다. 이를 테면, 원제가 『魚で始まる世界史 ニシンとタラとヨーロッパ』였던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의 책장을 덮는 데까지 들어간 시간이 3시간 정도였습니다. 번역의 문제점을 파악하거나, 내용의 신뢰성을 교차 검증할 필요도 없으며, 무엇보다 내용 자체에 대한 숙고가 필요 없는 독서라서 ‘속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목부터가 직관적인데요, 2017년에 출간한 책 『Populism: A Very Short Introduction』이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의 원제는 『오늘날의 극우 The Far Right Today』입니다. 첫 번째 챕터인 <1. History>에서도 1988년 독일의 정치학자 클라우스 폰 바이메 Klaus von Beyme가 제안한 ‘전후 극우의 세 가지 물결 Three Waves of the Postwar Far Right, 1945–2000’을 설명하고, 그에 이은 21세기적 현상으로 ‘제4의 물결 fourth wave’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극우를 다룹니다. <들어가는말 introduction>에서도 명시적으로 선언하고요.
10쪽
이 책에서는 전후 극우 세력 postwar far righ이 주도하는 제4의 물결에 관해 쉽고도 간결하게 요약, 서술하고자 한다. 전문가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몇 가지 독창적인 주장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비전문가인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이 직관적인 제목을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제목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 책은 ‘혐오와 차별이 정치로 발전하는 과정’을 다룬 책도 아니고, 목차의 10개 챕터는 키워드조차 아닙니다. 심지어 ‘기수 챕터 제목-중제목-이탤릭 소제목’으로 구성된 3차 뎁스 depth의 목차를 제멋대로 2차 뎁스로 바꾸기까지 하면서, 주절주절 길게 바꾸었습니다.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멋대로 바꾼 목차명들을 보면서, 짜증을 넘어선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욕 많이 뱉었습니다. 심지어 권말의 ‘옮긴이의 말’에서 이런 문장들을 발견하곤, 차마 글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의 쌍욕을 내뱉었지요.
254쪽
나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가능한 한 저자의 저술 취지를 살리고,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용어를 쉽게 풀어쓰면서 그 내용을 세계사적 관점,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 현실과 접목해 보려고 노력했다.
단언컨대, 저자의 저술 취지를 상당히 파괴하면서, 독자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용어를 멋대로 오역했으며, 그 내용을 번역자 편의대로 생략하고 왜곡하기를 서슴지 않았다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정초부터 포퓰리즘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카스 뮈더와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의 공저, 『포퓰리즘』을 읽었더랬습니다. 그 책이 그랬던 것처럼, 이 책 또한 깔끔한 문장으로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서술합니다. 책날개에 쓰인 카렌 누스바움의 추천사에 격하고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들어가는말 introduction>중 ‘이 책의 전문용어에 대한 정의 Termiology’에서 다음과 같이 용어를 정리합니다. 『포퓰리즘』에서도 포퓰리즘의 정의부터 내리고 시작했는데요, 이렇게 용어부터 공유하고 시작하는 것이 담론을 꽤나 정돈된 형태로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독서경험을 가져다줍니다.
13쪽
이 책에서는 이른바 보수주의나 자유주의와 같은 주류 우익 mainstream right이 아닌, 자유민주주의에 적대적인 반체제 anti-system 성향의 우익에 대해 다룬다. 나는 이것을 극우 far-right라고 부르는데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극단우익 extreme right은 민주주의 본질인 국민주권과 다수통치를 거부한다. 극단우익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에게 권력을 쥐어줌으로써 세계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을 야기한 파시즘 fascism이다. 급진우익 radical right은 민주주의의 본질은 수용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요소인 법치나 권력분립, 소수권리 등의 개념에는 반대한다. 극단우익이 혁명을 추구한다면, 급진우익은 개혁을 추구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급진우익은 국민의 힘을 신뢰하는 반면, 극단우익은 그렇지 않다.
쉽게 말하자면 ‘선 없이 깽판 치는 극단우익’과 ‘선 지키며 깽판 치는 급진우익’을 합쳐서 극우라고 통칭하며, 급진우익이 선을 지키는 방식을 좀 더 점잖게 말하면, ‘우익포퓰리즘 populist radical right’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이 번역서의 역어인 ‘우익포퓰리즘'부터가 ‘거지 같은’ 오역이라고 보는데요. ‘포퓰리즘 급진우익’이라고 번역하는 게 맞았다고 봅니다.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우익’은 ‘주류 우익’을 일컫는 일반적인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카스 뮈더가 정의하는 ‘포퓰리즘’은 민주주의 영역 내에 존재하기 때문에, “적어도 포퓰리즘은 친 민주주의적인 반면, 반 자유민주주의”이라서, “그 정의상 극단우익은 포퓰리스트가 될 수 없지만 급진우익은 될 수 있다”고 덧붙이는 겁니다.
극우 이데올로기 역시 용어적으로 정리되어야 합니다.
카스 뮈더는 엘리트주의, 조합주의 coporatism, 인종차별주의, 이민 배척주의, 권위주의를 중심 이데올로기로 꼽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권위주의는 “질서 정연한 사회에 대한 신념으로, 권위를 침해하는 행위는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이념”이라고 정리합니다. 따라서 극우는 “거의 모든 정치적 쟁점을 ‘자연스러운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이런 문제를 “철권통치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포퓰리즘에서 배제하는 엘리트 개념과 극우의 엘리트 개념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 정치공학적 전술에서 그러한 것처럼 ‘좌익 엘리트’들이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과 '문화 마르크스주의‘ 사상으로 국가를 타락시켰다고 비난합니다.
또한 '우리와 그들‘로 구분 짓는 극우의 구분도 상당히 변화했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주로 종족-민족적 ethno-national 용어로 이민자 immigrants를 정의했지만, 이와 유사한 ‘외국인 aliens’이라는 용어는 종족-종교적 ethno-religious 용어로 정의”합니다. 앞의 이민자들은 ‘외국에서 移民온 異민족’으로 한정됐었지만, 뒤의 외국인은 해당 국가 태생이지만 주류 인종이 아닌 소수 민족이거나 기독교 아닌 종교, 특히 무슬림도 배제에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점입니다.
대안우파 Alt-Right는 미국에서 인기를 얻은 용어로, “고학력 백인 민족주의자 리처드 스펜서에 의해 대중화”된 개념입니다. ‘일베’나 ‘펨코’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87쪽
대부분의 대안우파 활동은 체계적이지 않고 익명이며 ‘포챈 4chan’이나 레딧 Reddit과 같은 광범위한 인터넷 플랫폼에서 이루어진다. 이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여성 혐오나 인종차별적인 밈 meme이나 게시물을 올려 사람들을 괴롭힌다. 대안우파는 다른 비정형적인 온라인 하위문화들, 특히 게이머 세계와 반페미스트적 관점에서 남성과 관련된 내용을 게시하는 온라인 웹사이트 manosphere와 상당히 겹치는데, 이들은 좀 더 젊고 교육을 많이 받은 백인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카스 뮈더는 “제4의 물결을 특징짓고, 제3의 물결과 차별화할 수 있는 근거는 극우의 주류화”라고 단언합니다. “1945년 이후, 주류 정당과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극우 정치가 대체로 선을 넘은 일부 예외적 상황”으로만 취급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우익포퓰리즘 정당과 정치인들은 주류 우파들에게 수용 가능한 정치적 결합으로 수용되었고, 때로는 좌익으로도 수용”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그 결과로 ⓐ대부분의 극우 정당의 지지도가 크게 높아져서 2010~2018년에는 7.5퍼센트의 득표율을 보여주었고. ⓑ독일이나 스웨덴처럼 극우에 저항했던 나라들이나 헝가리나 네덜란드처럼 극우가 소외된 나라들에서도 우익포퓰리즘 정당들이 득세하고. ⓒ우익포퓰리즘 정당들이 자국 내 최대 정당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카스 뮈더가 이 책에서도 밝혔듯이, 10년 전 자료를 가지고 연구를 진행했기 때문에 2026년 현재의 현실과는 더 달라진 양태를 보여줍니다. 이탈리아의 이탈리아형제들은 제1당으로 여당이 됐으며,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오스트리아의 자유당은 연립여당의 ‘배제’로 인해 제1야당에 머무르고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의석수를 차지했으며, 독일의 Afd도 연방의회에서 20% 넘게 의석을 확보하면서 제2정당으로 발돋움했습니다. 2025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극우는 약진했습니다.
극우의 전형적인 리더상은 프랑스의 장 마리 르펜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백인(다수 인종/민족), 남성, 이성애자, 고령, 권위주의, 카리스마, 거친 면모, 폭력성, 군인 출신이라는 전형적인 극우 지도자의 특성”을 지녔다고 평가합니다.
극우 활동가 activist는 “극우 정치에 평생 헌신한 혁명가들, 극우 정치로 전향하기 전 주류 정치에서 활동한 개종자들, 광범위한 극우 단체와 비극우 단체에서 활동해 온 방랑자들, 그리고 그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가족 관계로 인한 연결과 같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극우 활동을 하게 된 순응자”들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로빈 던바가 설명하는 ‘컬트의 신도’나 레오르 즈미그로드가 설명하는 ‘이데올로지컬 브레인에 고착된 인간’에 대한 설명과도 비슷합니다.
국제적으로 극우는 두 가지 정형화된 형태의 지지자 supporter로 나뉜다고 설명합니다. ⓐ백인이고, 나이가 많으며, 심술궂고, 인종차별을 서슴지 않는 형태와 ⓑ문신을 과하게 하고, 젊고, 폭력적인 나치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입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저학력, 백인, 남성, 그리고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화가 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서유럽의 극우 정당들의 ‘전형적인’ 투표층 voter은 “백인·남성·청년이면서 고졸 이상의 학력에, 이민자와 이민에 대한 염려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합니다. “전형적인 극우 정당 투표층은 소수에 불과”하며, “극우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대다수는 극우 이외의 정당에 투표한다”고 부연합니다.
안타까운 사실 중에 하나는 1990년대 극우가 선거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유권자를 노동 계급화 proletarianization 한 결과”였다는 겁니다. “노동자들이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에 소외당하자 프랑스의 국민전선이나 오스트리아의 자유당과 같은 극우 정당들이 이들을 끌어들였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리하여 독일의 AfD와 네덜란드의 자유당과 같은 소규모 정당들도 자국에서 강경한 노동자 정당에 속할 수 있게 됐다고도 부연합니다.
항의 대 지지 Protest versus Support
항의 대 지지에 대한 논쟁의 핵심 질문은, “극우 정당의 유권자들이 기성 정당에 항의하기 위해 극우 정당을 지지하는가?”라고 설명합니다. 이 질문은 시위 유권자가 실제로 극우의 이념을 지지하지 않지만, 기성 정당의 행태와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극우 정당을 이용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지 유권자가 실제로 극우 사상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이념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극우 정당을 선택했다는 의견도 제기됩니다.
경제적 불안 대 문화적 반발 Economic Anxiety versus Cultural Backlash
경제적 불안 측은 “극우 유권자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neoliberal globalization’로 인한 경제적 스트레스에 최우선으로 대응하기 위해 극우를 지지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문화적 반발 측은 “대량 이민과 다문화사회의 부상에 항의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위협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극우 정당에 투표한다”는 입장입니다. 수십 년간의 학술적 연구는 “경제적 불안보다 문화적 반발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증명했다고 부연합니다.
전 세계 대 지역 Global versus Local
“극우 정치의 성공은 정치적 공급의 결과”로, “실업률과 이민 수준이 높을 때 이것을 국가 정체성이나 국가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위협이 '외국인'에 의해 유발된다고 주장하여 이익을 얻는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이 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극우 운동가들이 아니라 타블로이드판 언론과 기회주의적인 주류 정치인”인 경우가 꽤 많다는 점입니다.
지도자 대 조직 Leader versus Organization
극우 담론에서 '지도자'의 비중이 큰데, 이는 “ 현대의 극우가 여전히 20세기 파시즘의 21세기 버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고 봤습니다.
다만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지지자를 모을 수는 있지만, 일단 조직에 들어온 지지자들은 이탈한 지도자를 따라 나가기보다는 조직에 남는 충성도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저자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우익포퓰리즘 사상과 조직을 위한 비옥한 번식지가 조성되었다”고 단언합니다. 다만, 이것이 “우익 포퓰리즘의 가치가 주류적 가치와 동일하거나 대다수 국민이 공유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며, 오히려 “약간 더 온건한 형태로 바뀌어 다수의 인구에게 지지받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부연하면서. 다시 한번 극우의 주류화 mainstreaming에 대해 경고합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극우의 우군 friend이자 적 foe이라는 양면성”을 드러냈다고 설명합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극우를 지지하지는 않고, 극우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하지만, 그들은 극우가 잘 팔린다는 것을 눈치챘다”면서, “편집자들은 그것이 수익을 의미하는 이목을 끌어들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언론에서는 판매를 위한 이야기를 꾸며낸다”고 비판합니다. 게다가 극우 정치인에 대한 언론의 맹폭을 “오만한 엘리트에게 부당하게 공격을 받는 약세 후보”라는 프레이밍도 이루어졌다고 덧붙입니다.
극우 세력에 소셜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소셜미디어가 전통적인 언론의 게이트 키퍼를 우회하고 공개적인 논쟁으로 나아가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필터버블과 반향실 효과를 이용해 확증편향을 가져올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기도 합니다.
대체로 제4의 물결에서 “합병과 포섭을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었으며, “개방적인 합병이 아닌 암묵적 관용이 일반화되었다”고 분석합니다.
경계 Demarcation
경계란 “자유민주주의 정당 liberal democratic parties이 극우 정당을 정치적 상호작용에서 배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극우 정당에 왕따를 놓는다는 거죠. 2025년 독일 총선 이후, 제2당으로 성장한 Afd를 배제하기 위해 우익 기민/기사연합과 좌익 사민당은 ‘대연정’을 시작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극우 오스트리아자유당(FPÖ)을 배제하고 세 정당이 중도 연정을 꾸렸습니다. 2024년 프랑스 하원 선거 이후, 내각 신임투표 불발로 ‘정부 붕괴’가 연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국민전선은 연정에 넣어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배제가 더 힘을 내긴 어려워 보입니다. “모든 국가에서 다양한 이유로 비공식적인 저지선들은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대립 Confrontation
대립은 극우 정당들과 그들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을 의미하나, 배제마저 힘들어지는 와중에 크게 힘을 내진 못한다고 보입니다.
포섭 Cooptation
포섭은 “자유민주주의 정당이 우익포퓰리즘 정당을 배제하되, 그들의 쟁점은 배제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주류 정당들이 택하는 기회주의적인 대립 전략으로, 극우 정당은 정당 취급 안 하면서도 그들이 가지고 나온 정책 이슈는 각색해서 활용한다는 겁니다.
합병 Incorporation
합병이란 “우익포퓰리즘이 주류 정당과 마찬가지로 주류화되고 보편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탈리아의 우익 포퓰리스트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Silvio Berlusconi나, 오스트리아자유당의 연정 참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챕터는 12개의 요약문 thesis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없다면 마지막 챕터만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①극우는 대단히 이질적이다 The Far Right Is Extremely Heterogeneous
②우익포퓰리즘이 주류가 되다 The Populist Radical Right Is Mainstream(ed)
③극우대중주의 정치는 더는 우익포퓰리즘 정당만의 것이 아니다 Populist Radical Right Politics Is No Longer Limited to Populist Radical Right Parties
④경계선이 점점 모호해지다 The Boundaries Have Become Blurred
⑤우익포퓰리즘이 점점 일반화되다 The Populist Radical Right Is Increasingly Normalized
⑥극단우익은 정상적 병리 상태이며, 우익포퓰리즘은 병리학적 정상 상태다 The Extreme Right Are a Normal Pathology, the Populist Radical Right a Pathological Normalcy
⑦우익포퓰리즘의 상승은 해체보다는 재정렬에 대한 것이다 The Rise of the Populist Radical Right Is About Dealignment Rather Than Realignment (For Now)
⑧극우의 성 차이 현상은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The Far Right Is a Gendered Phenomenon
⑨극우 정치에 면역력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없다 No Country Is Immune to Far-Right Politics
⑩극우는 여기 머물러 있어야 한다 The Far Right Is Here to Stay
⑪극우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한 가지 방법은 없다 There Is No Single Best Way to Deal with the Far Right
⑫ 자유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The Emphasis Should Be on Strengthening Liberal Democracy
247쪽
만약 극우에 대응하기 위해 언론의 자유나 시위권을 제한한다면, 일차적으로 극우 운동가들의 민주적인 권리가 침해당한다. 그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들까지 훼손당하며, 결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약화시키는 역효과가 일어난다. 한 집단을 겨냥한 억압적 조치가 나중에는 급진적이거나 극우적이지도 않은 일부 집단을 포함한 다른 집단까지 억압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칼 포퍼의 ‘관용의 역설’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주장을 접하고 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아직 친위쿠데타에 대한 울분이 풀리지 않아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