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카스 무데 등_포퓰리즘

포퓰리즘에 대한 교과서 수준의 핸드북

by 안철

카스 무데,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 『포퓰리즘』, 이재만 옮김, 교유서가, 2019.

Cas Mudde, Cristobal Rovira Kaltwasser, 『Popul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17.



1. 책 속에 길이 있다.


지천명이 되고 나서야,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에 동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책 속에 (나름의) 길(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저는 호기심이 생길 때면 늘 책을 찾게 됩니다.

물론 그전에 구글 검색창에 해당 정보를 검색해 본 뒤에, 이를 다룬 논문을 찾아보곤 합니다. 그렇게 대략적인 정보의 의미망을 구축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를 체계적으로 다룬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호기심의 원천은 정보의 간극, 그러니까 알고 있는 것과 아직 알지 못하는 것 사이의 격차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 간극 메우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호기심이고 합니다. 지식 간극 이론 knowledge gap theory에 따르면, 호기심은 무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부족에서 시작된다고 하죠. 그렇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아직 알지 못해서 나를 미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하는 과정은 반드시 선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운이 좋으면 단 한 권의 책으로 입구를 찾을 수도 있지만, 그런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 책, 저 책을 전전하다 보면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일정량의 지식 episteme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의 지식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옮겨 다니다 보니, 문득 든 생각이 있습니다. 각각의 책에서 기술된 사고의 흐름이 바로 하나의 ‘길’이며, 그 길을 찾아내는 행위가 바로 독서라고 말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어떤 ‘길’은 따라 걷게 되고, 또 다른 ‘길’은 굳이 걷지 않고 돌아 나오게 되더란 거죠. 그제야 ‘책 속의 길’이란 메타포가 이해됐습니다.


길은 그저 길입니다. 하나의 장소를 다른 장소와 연결시켜 주는 수단으로,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길은 수단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쓸데없는 미사여구를 섞어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작가 사정에 맞는 ‘최적의 길’을 찾아 그 길을 걸으면 그뿐입니다. 내비게이션에서 물리적 거리가 짧은 ‘최단 거리’로 갈 것인지, 안 밀리는 시간적 ‘최단 거리’로 갈 것인지, 톨비 안 해도 되는 무료 도로를 이용할 것인지처럼, 각자의 사정에 맞춘 선택이란 거죠.



2. 극우포퓰리즘에서 시작된 호기심


언제서부터인지 ‘극우포퓰리즘’이란 표현은 한 몸처럼 붙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만, 극단주의 extremism 우파 right-wing 포퓰리즘 populism으로 그 ‘이념소理念素’를 나눌 수 있을 듯합니다. 극단주의 우파 extreme right와 극우 far-right는 어떤 곳에서는 동의어로, 또 다른 곳에서는 차별적 언어로 간주되기도 해서, 쉽사리 상호 대체될 수 있는 용어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테면, 이정은의 논문, 「왜 극우포퓰리즘이 득세할까? - 개인주의 변천사와 관련하여 -」에서는 far-right populism을 그 역어로 채택하고 있지만, 개념은 구분 없이 넘나들고 있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진욱 등의 『광장 이후』에서도 극단주의 우파 이데올로기를 분석한 신진욱을 제외하곤 극우의 개념을 ‘자명한 것’으로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태현의 『극우의 노래』에서 분석한 ‘한국적 극우’는 “배타적 민족주의, 반엘리트, 반국제화주의, 그리고 권위주의를 극우의 특성”을 띄지 않는 기괴하기 그지없는 특성을 보여줍니다. 이러니 개념의 혼란은 사람을 환장하게 만듭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과 그 너머에 존재하는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의 ‘간극’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 호기심에 이끌려 이 책 저 책을 펼쳐볼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구글 그리고 제미나이와 챗GPT를 통한 기초조사와 몇 편의 논문을 통한 기본 지식 축적을 통해, 몇 권의 책을 추려낼 수 있었습니다. 극단주의에 대해서는 존 버거의 책을, 극우주의에 대해서는 박권일의 책을, 그리고 포퓰리즘에 대해서는 카스 뮈더(네덜란드인이므로 외래어표기법 상으로 카스 무데가 아니라 카스 뮈더가 맞다.)의 이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이 외에도 에르네스트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의 책과 뮈더의 다른 책,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도 2차적으로 읽어볼까 고민 중입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길을 찾다 보니 책을 잡은 것인지, 책 속에서 길을 찾은 것인지 제 자신도 헛갈리는군요. 그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책 속에서 ‘답’을 찾았던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의 답을 찾아내기 위해 책 사이를 유영하며 ‘길’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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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포퓰리즘에 대한 교과서 수준의 핸드북


기초조사 과정에서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을 주 연구 분야로 다루는 카스 뮈더는 이 분야의 손에 꼽히는 전문가로, 꽤나 자주 인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정말 많이 인용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저자들이 서두에서 선언적으로 기술했던 이 책의 목표는 확실히 달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8쪽
이 책의 목표는 포퓰리즘 현상을 명확히 설명하고 현대 정치에서 포퓰리즘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이제는 ‘국우포퓰리즘’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포퓰리즘’은 무엇인가를 또박또박 말할 수 있게 됐으니 말입니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얇고 작은 소책자 booklet를 다 읽는 데는 너덧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만, 주요 내용(34,000자)을 타이핑하면서 곱씹다 보니, 책 읽는 데 쓴 시간보다 두 배는 더 쓰고 말았습니다.

각 장별로 주요 내용을 일별 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What is populism?

15쪽
포퓰리즘이란 사회가 궁극적으로 서로 적대하는 동질적인 두 진영으로, 즉 ‘순수한 민중’과 ‘부패한 엘리트’로 나뉜다고 여기고 정치란 민주의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심이 얇은 이데올로기다.

저자는 포퓰리즘은 “단독으로는 현대 사회가 낳은 정치적 문제들에 복잡한 해답도, 포괄적인 해답도 내놓지 못”하기에,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중심이 얇은 이데올로기’란 개념으로 접근할 때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포퓰리즘의 가변성이 그토록 큰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정치 행위자들은 농본주의, 민족주의, 신자유주의, 사회주의 등 중심이 얇거나 두꺼운 다양한 이데올로기들과 포퓰리즘을 결합시켜 왔다.
둘째, 폭넓은 정치 행위자들을 수용할 수 있다.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여러 형태와 규모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그들 모두 한 가지를 공유한다. 바로 공들여 만든 ‘민중의 목소리 vox populi라는 이미지다.
셋째, 민주주의와의 관계에 더 포괄적이고도 다면적인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접근법이다. 민주화 과정이 어떤 단계에 있느냐에 따라 포퓰리즘이 (자유)민주주의 친구와 적 둘 다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포퓰리즘 정치의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을 모두 고려할 수 있다. 우리의 접근법은 포퓰리즘 수요, 즉 대중 수준에서 포퓰리즘 이념을 지지하는 측면도 살펴볼 수 있게 해 준다.

포퓰리즘의 정의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 민중, 엘리트, 그리고 일반의지의 개념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중 the people은 ‘텅 빈 기표’라서, “매우 유연하게 쓰일 수 있는 구성물”이 됩니다. 또한 엘리트의 개념은 “정치, 경제, 미디어, 예술 부문에서 지도적 위치를 점하는 사람들을 대부분 포함”하여 ‘지배 권력’을 지는 계층을 일컫게 됩니다. 다만 포퓰리스트 자신과 그 동조자들은 엘리트에서 제외하는 편리함도 갖춥니다. 그리고 루소적 개념의 일반의지 volonté générale를 동원하지만, “공적 영역에서 합리적 과정을 거쳐 구성되기보다는 ‘상식’에 기반”하기에, 이는 “특정 얼개에 일반의지 개념을 끼워 맞춘다”라고 볼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나. 세계 각지의 포퓰리즘 Populism around the world

대체로 좌파 포퓰리스트들은 사회주의와 포퓰리즘을 결합시키고,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민족주의와 결합시킨다고 봅니다.

지역적으로 북아메리카에서는 초원 포퓰리즘 prairie populism, 반공산주의 운동,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 티파티 운동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역사를 통틀어 세 차례의 포퓰리즘 물결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물결은 1929년 대공황 발생과 함께 시작되어 1960년대 말에 이른바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들이 부상할 때까지 지속되었는데, ‘순수한 민중’과 ‘부패한 엘리트’의 대결 구도를 만드는 게 공통점이었습니다. 두 번째 물결은 1990년대에 출현했으며, 가장 전형적인 예는 아르헨티나(카를로스 메넴), 브라질(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페루(알베르토 후지모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 번째이자 현재의 물결은 1998년 베네수엘라에서 우고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시작되어 이후 볼리비아(에보 모랄레스), 에콰도르(라파엘 코페아), 니카라과(다니엘 오르테가) 같은 나라들로 확산됐습니다.

유럽에서는 199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유의미한 정치 세력이 되었다. 급진적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원형은 장마리 르 펜이 1972년 프랑스에서 창당한 국민전선 Front national으로 꼽습니다. 주류 정당에 나타난 예료는 전진이탈리아 Forza Italia와 영국독립당 United Kingdom Independence Party 같은 몇몇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 정당을 살펴봅니다. 공산주의의 몰락에 따른 동유럽 국가의 예로는 헝가리 정당 청년민주동맹 Fiatal Demokratátak Szövetsége/Fidesz과 폴란드 정당 법과 정의 Prawoi Sparawiedlivość/Pis를 톺아봅니다. 경제 위기에 따른 사례로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과 에스파냐의 포데모스 Podemos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그 외 지역에서는 뉴질랜드의 뉴질랜드 퍼스트 New Zealand First, 오스트레일리아의 일국당, 필리핀의 조지프 에스트라다, 남한의 노무현, 타이완의 천수이볜, 우간다 요웨리 무세베니, 잠비아 마이클 사타,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야후, 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등을 꼽고 있습니다.

“포퓰리스트는 우세한 정치 세력이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충분히 제기하지 않고 있는 사회적 불만을 감지하고 정치 쟁점화하는 데 능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민주적 이상의 헤게모니가 강해지는 추세와 함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가중되면서 “민중의 일반의지를 찬양하는 이데올로기인 포퓰리즘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전망하기도 합니다.


다. 포퓰리즘과 동원 Populism and mobilization

포퓰리즘적 동원의 전형적인 형태는 “기존 정당조직에 대체로 의존하는 개인이 자신의 매력을 바탕으로 캠페인을 펼치고 지지를 모으는 식”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대통령제 하에서는 ‘사인적 지도력’을 강화하는 반면에, 의회제 하에서는 ‘정당’의 출현을 자극한다고 봅니다.

포퓰리즘적 ‘사회운동’의 강점은 “기득권층에 대한 광범한 분노를 해석하고 해결책이 주권자 민중에게 있다고 설득력 있게 제안하는 능력”에 달려 있어서, “기득권층의 고위 인사들이 두루 연루된 중대한 부패 스캔들이나 국민주권 원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사건”이 발생하면 포퓰리즘적 사회운동이 출현하기에 좋은 조건이 됩니다. 다수결 선거제, 서로 제휴 관계인 두 당의 양당제, 선거나 로비를 통해 정치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막는 높은(경제적) 장벽 등 제한된 정치적 기회주의 구조 political opportunity structure/POS를 갖춘 정치체에서는 사회운동의 양상으로 동원될 가능성 높아집니다.

최근의 양상은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잘 조직된 기존 정당을 넘겨 받은 다음 비포퓰리즘정당에서 포퓰리즘 정당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으로 유럽 등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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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포퓰리스트 지도자 The populist leader

포퓰리스트 지도자의 공통점은 바로 “민중의 목소리를 자처한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합니다.

또한 포퓰리스트 지도자는 “카리스마적 스트롱맨”으로 규정됩니다. 이들은 “말보다는 행동을 하는 사람, '전문가'의 조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려운 결정을 서둘러 내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이때 카리스마적 지도력은 “지도자와 추종자들 사이의 특수한 유대에 달려 있으며, 지도자 개인의 특성 못지않게 추종자들의 기대와 인식에 의해 규정된다”고도 지적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실제로 성공한 포퓰리스트들은 거의 인사이더-아웃사이더입니다. 정확하게 정치체제의 핵심 집단에 속했던 정치 엘리트는 아니었지만, 그들과 강한 연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정치 신인이라고 주장하곤 하는데, 이는 “주류 직업정치인들과 대비되는 유리한 이미지, 즉 마지못해 정치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유리합니다. 마치 “개인의 야심이 아니라 더 숭고한 소명, 정치를 민중에게 돌려준다는 소명을 위해 정치에 관여한다”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정치계급’과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겁니다.


마.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Populism and democracy

저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적절한 정의는 “국민주권과 다수결의 결합이라는 것”이라 규정합니다. 따라서 “선거권과 환경에 따라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과 교정책 중 어느 쪽이든 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 과정을 간략하게 표현한 도식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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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이 “선거민주주의 또는 최소민주주의 하에서는 체제의 발전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완전한 자유민주주의하에서는 체제의 발전을 저해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이제껏 포퓰리즘 세력의 집권은 헝가리의 오르반과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같이 “탈민주화 과정”으로 이루어졌으며, 페루의 후지모리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에는 민주주의 체제의 붕괴로 귀결되기도 했다고 분석합니다.

다만 “포퓰리스트들이 민주주의를 붕괴시킬 정도로 체제의 존립을 위협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라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기본권 보호에 특화된 독립 기관들을 보호하는 여러 행위자 및 제도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기 때문”이라는 건데, 오늘날 유럽 국가들이 경험하고 있다는 겁니다.


바. 원인과 대응 Causes and responses

저자는 포퓰리즘은 “그 태도를 강화시키거나 표명하기에 알맞은 상황이 올 때까지 휴면 혹은 잠복 상태로 존재한다”라고 설명합니다. 민중이 기득권층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포퓰리즘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주류 정당이 적합한 대표 역할과 책임 있는 행위자 역할 사이에서 헤매기 시작할 때가 그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또한 저자들은 “포퓰리스트들은 진공상태에서 활동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서유럽의 민주화 과정을 예로 들어보면, 군주와 지주 같은 비민주적 엘리트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나 사회주의자 같은 민주적 엘리트주의자들이 대립의 역사 속에서 후자는 ‘보통사람들’을 매우 불신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또한 미국의 건국자들은 반엘리트 정서와 반민중 정서가 모두 반영된 꽤나 복잡한 연방제도를 창안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반민중 정서의 엘리트층이 존재했을 때 포퓰리즘이란 꽃이 피어난다는 겁니다.

결론은 대부분의 사회과학이 그러하듯 좀 허망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미래를 그려야 한다는 점이 명확한 한계로 작동하기도 하고, 심지어 ‘이상적’ 일 필요가 있어서 더더욱 끈구름 잡는 이야기로 흐르게 됩니다.

187쪽
포퓰리즘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실천하기 어렵긴 하지만, 포퓰리스트 행위자 및 지지자와 열린 대화를 하는 것이다. 대화의 목표는 포퓰리스트 엘리트와 대중의 주장이나 고충을 더 잘 이해하고 자유민주주의적 대응법을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저자는 이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민중에 영합하는 단순한 해결책과 평범한 시민들의 도덕적·지적 능력을 무시하는 엘리트주의적 담론을 모두 피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포퓰리즘은 대개 옳은 질문을 하고 틀린 답을 내놓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포퓰리즘 공급을 없애는 일뿐 아니라 포퓰리즘 수요를 줄이는 일까지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덧붙입니다. 포퓰리즘 수요를 줄여야만 자유민주주의가 실제로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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