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한 번역이 드러나는 책을 읽는다는 것
남자들이 밀덕이 되는 이유는 간단하게도 설명할 수 있지만, 개인차도 있기 때문에 아주 단순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경향성’을 보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모종의 성별적 상관성이 존재할 것으로 추론해 볼 수는 있겠지요. 전략과 전술에 대한 호기심, 병기에 대한 엔지니어링적 관심 그리고 승리와 패배로 나뉘는 전쟁의 서사와 같은 것들이 남자들의 진화심리학적인 ‘남성성’에 맞닿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저는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전쟁의 서사는 목표 설정을 위한 전략이 그 줄기를 이루고,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전술이 말초에서 서사를 수식하게 됩니다. 그 구조를 분석하는 일 자체도 꽤나 즐거운 지적 유희일뿐만 아니라, 이를 사회 일반의 작동 원리로 전환하는 것도 제법 재밌는 일입니다. 武經七書 같은 것들을 경영이나 행정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잦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밀덕들의 주요 관심사는 전쟁사 이외에도 병기에 집중됩니다. 당대 최고의 엔지니어링 기술이 접목되는 것이 병기인지라, 사내 녀석들이라면 으레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죠. 대체로 현대병기에서 시작해서, 점차 지식을 빈틈을 메우며 커져가는 호기심이 화기에서 냉병기로 옮겨가게 되더군요.
이 책을 펼쳐든 것도 이런 밀덕스런 호기심에서 시작됐습니다. 번역서 제목 때문에 살펴보긴 했지만, <어둠의 경로: 전쟁의 구조와 서구의 발흥>이란 원서명이나 목차를 통해 살펴볼 수 있었던 결정적인 구조 변화의 맥락이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저자가 첫 장에서 밝혔듯이, “서구가 끊임없이 새로운 무기와 전쟁방식을 개발하도록 이끈 ‘어두운 길 dark path’은 15세기 초반부터 현재까지 세계의 다른 많은 부분들로 확장되고 있”는데, “이 길은 결정적인 전투라는 마법의 묘약을 찾는 전쟁 수행자들을 유혹했으며, 전쟁 비용을 계속 상승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전쟁은 전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모전과 정치적 지원에서 승부가 결정된다”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저자는 이 책이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유럽 국가들 간의 잔인한 경쟁이 대규모 군사-사회 혁명과 그에 수반되는 군사 혁신을 촉발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 대규모 혁명과 혁신이 전쟁의 근본적인 성격을 지속적으로 진화하도록 강요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습니다. 전쟁에서 이겨야 하니 모든 역량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때론 ‘혁신’이 이루어지기도 하더란 거죠. 그렇게 큰 충돌이 이루어지고 나면 자연스럽게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고요. 그런 맥락에서 피터 터친의 역사동역학 cliodynamics 같은 이론들이 설득력을 갖게 되더군요.
여하튼, 윌리엄슨 머리가 제안하는 5차례의 군사-사회 혁명과 그에 따른 군사혁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제1차 군사-사회 혁명: 근대국가 그리고 근대국가의 훈련된 군사 조직의 탄생(19500~현재)
군사 혁신: 화약 혁명, 대양해군 ocean-going navy의 성장, 성형 요새, 17세기 전술 혁명
제2차 군사-사회 혁명: 산업혁명
군사 혁신: 생산방식의 근본적인 변화 시작, 석탄 혁명, 증기 기관
제3차 군사-사회혁명: 프랑스혁명
군사혁신: 사회와 자원의 이데올로기적 동원, 총력전 total war의 시작
제4차 군사-사회혁명: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의 결합
군사혁신: 교통 혁명, 통신 혁명, 내연기관, 항공기, 복합 무기, 고사포 발사, 전략 포격, 농업혁명, 증기 터빈으로 구동되는 강철 선박
제5차 군사-사회 혁명: 과학-컴퓨팅 혁명
군사혁신: 핵무기, 컴퓨터, 정밀 타격 무기, 인공지능
이와 같은 저자의 구별은 책을 읽으면서는 도통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만, 따로 사망자 숫자로 살펴보게 되면 전쟁의 규모가 어떻게 커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억지로 끼워 맞춘 구분이긴 한데, 막상 검토하다 보면 상관성이 아예 없진 않더라는 찝찝한 경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번역서를 읽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다중언어자가 아닌 다음에야, 한국어 단일 화자에게 한국어 문헌의 정보전달력은 영문이나 다른 언어의 그것에 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압도덕입니다. 독서 자체 시간이란 자원의 전략은 말할 것도 없이, 이해를 위한 지적 활동에 필요한 노력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번역서를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번역서의 번역을 믿기 힘들어지면, 독서는 난항을 겪습니다. 원서라는 대본이 있을 때는 더더욱 버거워집니다. 번역이 이상할 때마다 일일이 원서를 찾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역을 여러 차례 발견하게 되면, 책장을 덮어야 하나 고민하게 되죠.
이 책은 군사학과 전쟁사를 다룬 책인지라, 군사용어의 정확한 번역이 무엇보다 중요한 책입니다. 그런데 군사용어의 오역, 그것도 계급과 같은 아주 기초적인 것에서 오역이 ‘반복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짜증이 솟구칩니다. 안 그래도 지난한 독서 경험을 더 처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쓸데없이 깁니다. 윌리엄슨 머리가 좀 더 스마트한 저자였더라면, 이 책의 두께는 1/3으로 줄었을 겁니다. 보통의 저자라면 절반으로 줄었겠고요. 그런데 이 팔순의 노인은 중언부언하면서 불필요한 사료들까지 껴안았습니다.
그렇다고 지루한 건 아니었습니다. 주제와 상관없는 기술들일지라도, 저 같은 밀덕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진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져서, 배가 산으로 가고 있지만, 아무튼 재미는 있더란 말입니다.
밀덕으로 살아온 것 치고는 공부가 부족해서 확실히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독서를 통해 세 가지 정도는 해결할 수가 있었습니다.
많은 책들에서 흑색화약 black powder을 이용한 화약무기의 등장이 서구 중심의 약탈적 인류사를 이끌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잘 알지 못했었죠.
화기 fire arm는 크게 총기 gun와 화포 cannon으로 나눕니다. 개인무기인 총기는 15세기 화승총 matchlock musket에서 시작해서, 18세기 격발시간을 줄이는 플린트락 flintlock 머스킷으로 발전했고, 이어 19세기에는 사정거리를 늘리는 미니에 탄을 쓰는 강선 머스킷 rifled musket으로 개선됐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19세기 중반에 장전 시간을 줄이는 후장식 breech loading 라이플을 거쳐 19세기 후반 볼트액션 라이플로 혁신합니다. 화포도 마찬가지로 보링 기술의 발달로 18세기말 영국에서 카로네이드 carronade 포를 사용하게 됐고, 19세기 중반에는 최초의 후장식 대포인 크루프 포가 도입되기도 했고, 마침내 19세기말에는 후장식 야포가 도입됐습니다.
이렇게 화기가 발전하게 되면서 군사 교리 military doctrine이 변화하게 됩니다. 16세기가 되자, 기병 중심의 중세 교리는 화기의 발전으로 보병 중심 교리로 이행했고, 화포의 발달로 이를 방어할 星型요새 trace italienne/bastion fort가 새로운 방어 전략으로 대두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부대의 편제가 보병, 기병, 포병으로 단순화하고 구분되는데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갤리선 선수에다 달았던 화포가 범선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레판토해전 이후에는 갤리선은 도태되고, 캐럭선과 갤리온선 등의 범선으로 대체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위관 3계급, 영관 3계급, 장관 3계급의 체계가 정착된 것은 아무래도 나폴레옹전쟁 이후인 것으로 보입니다. 현행 위관-영관-장관의 소중대 9계급 체계는 대일본제국에서 만들어낸 계급체계이나 그에 대응하는 체계의 원형은 이때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그 변화를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군대 편성의 변화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계급의 변화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16세기말 네덜란드 독립전쟁 당시, “마우리츠 공작은 연대 Regiment 규모를 약 1,600명에서 고대 로마의 연대 Roman cohort 규모에 가까운 580명으로 줄여 기동성을 향상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17세기 중엽 “독일에 상륙한 스웨덴 군대의 기본 전술 편성은 약 500명으로 구성된 대대 battalion”였다고 합니다. 이때는 “근대국가와 군사 조직이 출현”하던 시기였지만, “국가는 여전히 용병을 모집”했고, 그 단위는 연대였다고 합니다. “사실상 17세기 후반 유럽의 군대는 로마 군대의 훈련된 대형을 재창조한 셈”이라고 부연합니다. 마리우스 개혁기의 로마 군단 legion은 5,000명으로 통일되었습니다. 1개 군단은 10개의 코호르트 cohort로, 1개의 코호르트는 6개의 켄투리아 centuria로 구성됩니다. 80명 선의 켄투리아는 중대, 500명 선의 코호르트는 연대에 해당하겠죠.
이때의 연대를 지휘하는 연대장을 colonel이라 지칭했고, 이 계급은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령이 됐습니다. 연대장의 부관은 말 그대로 lieutenant colonel이 중령이 됐고, 그 아래 부관은 major sergeant colonel은 major로 줄어서 소령이 됐습니다. 연대의 하위 조직인 각각의 용병대 company는 던바의 수가 적용되는 150명 수준이었는데, 이 용병대의 대장 captain이 중대장 직책으로 굳어지면서 대위 계급이 됐습니다. 용병대 대장의 제1 부관 1st lieutenant과 제2 부관 2nd lieutenant은 소대장 직책으로 중위와 소위 계급을 지칭하게 됐고요. 연대들이 모인 상위 지휘 체계도 필요했을 텐데요, 그 상위 계급을 general이라 칭했다고 합니다.
장성 계급의 연원이 되는 편제는 프랑스혁명 이후에 나타나게 됩니다. “프랑스군은 자원병 volanteer과 징집병 conscript을 통합하는 데 특히 효과적인 방법을 확립했는데, 예를 들어 자원병 2개 대대와 1개 전열대대 line-battalion를 결합해 준여단 demi-brigade을 조직”했습니다. 여단 brigade이란 편제와 준장에 해당하는 여단장 brigadier general이란 계급이 여기에 연원 합니다. 또다시 프랑스군은 “약 8천에서 1만 명 규모의 전군사단 all-arm division을 창설”합니다. 그 후에 “나폴레옹은 이런 전군 사단들 2~4개를 하나의 군단 corps으로 통합해 더욱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소규모 군대 mini army를 조직하고, 필요한 경우 신속하게 본군 main army에 통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단 brigade < 사단 division < 군단 corps < 야전군 army로 이어지는 편제가 이때 완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여단장 상위의 계급과 직책인 야전군 사령관, 군단장, 사단장의 계급 체계가 general, 제네날의 부관인 lieutenant general과 major sergeant general(줄여서 major general)로 분화하고, 지금의 대장, 중장, 소장에 해당하게 됐습니다. 나폴레옹 시기의 야전군 grande armée 편제는 2~4개 사단으로 이루어진 7개 군단과 사령부 직속의 별동부대인 기병예비대 cavalry reserve, 포병예비대 artillery reserve, 황실근위대 imperial guard로 편제됐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 부분도 꽤나 엉터리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해군의 계급은 육군과는 꽤 다릅니다.
애초에 해군의 장교 직책은 captain, lieutenant, midmanship의 3가지가 전부였습니다. 함장과 그 밑에 부관들이 제1, 제2, 제3 식으로 직책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적함을 나포라도 하게 되면 제1 부관 1st lieutenant가 새로운 배의 지휘관 commander이 됩니다. 이런 전통에서 함선 지휘관 skipper은 대령 captain이나 중령 commander이 맡습니다. 그렇다 보니 해군 장교 계급은 지휘관 계급인 대령과 중령 그리고 소령 lieutanant commander과 부관 계급인 대위 1st lieutenant, 중위 2nd lieutenant, 그리고 소위 ensign로 나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해군 대령을 줄기차게 대위로 오역하고 있습니다. 유보트 작전을 지위했던 독일 해군의 카를 되니츠 대령이나 미해군 최초의 항공모함 함장인 조지프 리브스 대령은 ‘대위로 3계급 강등’되는 수모를 겪습니다. 중령 계급도 사령관 commander이란 직책과 함께 체계적으로 오역이 이루어졌습니다.
공군 계급도 마찬가지인데요, 2차 대전 시기에 영국과 독일은 공군이 독립해 나왔지만, 미군은 미육군항공대 USAAF로 육군 소속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영국 공군의 계급은 육군과 다르지만, 미공군의 계급은 육군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영국 공군 중장 air marshal이 ‘공군 원수’로 체계적으로 오역됩니다. ‘육군 대장 밑에 공군 원수가 편제되는 이상한 그림’은 이렇게 완성된 것이죠.
프랑스 육군이나 독일 육군의 5성 장군의 계급명에는 field marshal이 들어가는데, 미육군은 그저 general of the army인지라, 그 차이에서 오는 오역도 존재합니다. 이 책에서는 독일 육군 원수 gernalfeldmarschall의 영어 번역인 field marshal에 대한 체계적 오역으로 ‘야전 원수’가 꾸준히 쓰입니다.
“서구 산업 자본주의의 발달은 15~16세기에 시작해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가속화된 서구 열강의 다른 지역에 대한 군사적 지배와 식민 지배, 국제 노동 분업, 천연자원의 무분별한 착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토마 피케티의 지적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피케티에 따르면, “프랑스 왕국과 잉글랜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1500~1800년 사이에 줄곧 전쟁을 벌여온 탓에 세금을 많이 거둬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국가 부채가 쌓이고 있었”고, “이전 부채에 따른 이자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세수만으로는 전쟁 비용을 감당하기가 불가능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형성된 조세·금융·군사 능력이 훗날 유럽의 부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고도 부연합니다. “국민 소득의 1%만을 세금으로 걷는 국가는 사회를 동원할 수 있는 권력과 역량이 극히 제한적”이지만, “국민의 6~8%를 국가에 복무시킬 수 있는 국가는 특히 질서 유지와 대외적인 군사적 야망 실현에 훨씬 더 막강한 능력을 갖게 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의 근대 국가의 역량이 어떤 양상으로 발전해서 발현된 것인지 제법 궁금했던 차입니다. 이를 설명해 주는 책으로는 제격이었습니다.
83쪽
17세기 후반기에는 근대국가 성립에 필수적인 두 가지 요소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첫째, 초기 형성과정의 근대국가들은 세금 징수, 군대 조직의 체계화, 일상적 법 집행과 통치 등의 업무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관료 체계를 꾸준히 발전시켰다. 18세기 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육군과 해군이 국가에 의해 조직되고 배치돼 국가의 통제 하에 있었다는 점이다. 영국과 러시아가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해군력의 강화로 유럽인들이 먼바다에 군사력과 경제력을 투사할 수 있게 되면서 세계의 바다들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환경에서 경쟁한 신흥 강국은 스페인, 프랑스, 영국의 세 나라였는데, 이들 중 승자가 된 나라는 가장 작고 힘이 없어 보였던 영국이었다.
120쪽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경제적 능력과 재정적 능력 그리고 기계설비로 영국은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의 앙시앵 레짐 정부를 지원하고 전장에서 앙시앵 레짐의 군대를 유지시킬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게 됐다. 또한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영국 해군은 전쟁 기간 내내 프랑스 해안을 봉쇄하면서,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세계 무역을 통제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산업혁명은 영국이 이베리아 반도로 강력한 군대를 동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영국군은 이 전쟁에서 스페인 게릴라의 도움을 받아 길고 소모적인 전쟁 끝에 스페인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냈다.
169쪽
이념적 열정과 징병제로 인해 1792년에서 1815년 사이 프랑스에서만 약 150만 명의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이는 국가의 인구 감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편, 영국은 전면적인 징병제를 실시할 정도로 국가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영국의 잉여 인력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산업혁명에 참여했다. 이렇듯 영국과 프랑스는 군사적 노력을 지속할 수 있었지만, 동유럽의 구체제 국가들은 그렇지 못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재정적 비용을 치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경제는 계속 성장했다는 것이다.
177쪽
대서양 건너편에서 벌어진 미국 남북전쟁은 양측을 한계점까지 몰아붙인 최초의 진정한 근대 전쟁으로 발전했다. 이 전쟁은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이 직접적으로 결합한 제4차 대규모 군사-사회 혁명의 첫 번째 사례였다. 또한 이 전쟁은 클라우제비츠의 ‘총력전’ 개념이 새로운 차원에 도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