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완독의 어려움과 괴로움
대출 기간 3주 동안에 완독 하지 못한 이유를 몇 가지 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텍스트의 양이 너무 많습니다.
신국판과 크라운판 사이의 판형으로 책 자체도 작지 않은 사이즈인데, 여기에 본문 편집에서 여백을 작게 주었다. 심지어 본문이 6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입니다. 텍스트의 양 자체가 절대적으로 많습니다. 페이지당 1분이면 넘어가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이런 책은 2.5분 정도가 필요합니다. 책장 넘기는 속도가 더뎌질수록, 자기효능감이 줄어들고, 그럴수록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짧아집니다.
둘째, 배경 지식이 부족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 고르바초프와 셰바르드나제란 고유명사와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란 일반명사를 매일 아침 신문으로 접했었습니다. 그래서 익숙했던 게지요. 그 익숙함에서 '동시대성의 체화'를 착각했고, 여지없이 '지식 착각'에 빠진 겁니다. 소련 붕괴의 과정은 매일 아침 대충 훑어본 서울신문 지면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 거대한 과정을 이해하기에 저는 너무 어렸었습니다. 그래서 '충분한 배경지식' 속에서 독서가 진행될 줄 알았으나, 막상 페이지 하나하나를 넘길 때마다, 몰랐던 사실들만이 쏟아졌죠. 오죽했으면, 실라 피츠패트릭의 『아주 짧은 소련사』까지 뒤적여 봤을까요. 이러니 책장 넘기는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반납 기일이 다 될 때까지 독서를 끝마치지 못했습니다.
셋째, 욕심이 과했습니다.
이미 읽고 있던 책들이 있는 상황에서 대출 예약했던 책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대뜸 빌려 왔던 겁니다. 이미 읽고 있던 책의 완독과 리뷰 쓰기에 더해, 전시회 리뷰를 위한 병행 독서 사이에서 순번이 밀렸습니다. 사이사이 영화와 드라마 시청으로 한눈을 팔았고, 여기에 게임 플레이와 나들이까지 끼어드니 2주 동안에 넘길 수 있는 책장은 책의 절반에 불과했던 겁니다. 여기에 '타이핑'이라는 새로운 독서습관도 한몫 더합니다. 40여 페이지 남짓한 챕터 하나에서 주요 내용을 발췌해 타이핑하는 것만으로도 한 시간은 훌쩍 넘깁니다. 이 책의 발췌록은 한글 파일로 57페이지 7만 5천 자가 되더군요. 그렇다고 이 과정을 건너뛸 수도 없습니다. 책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는 이 과정을 포기하기엔 그 쓰임이 몹시 크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완결성 욕구 need for closure라는 게 존재합니다. 무언가를 매듭짓고 넘어가야만 한다는 건데, 그래서 귀인 attribution에 집착하다가 오류를 저지르는 모양입니다. 그렇다 보니, 무언가 미완의 상태로 지연된 일이 존재하게 되면 자이가르니크 효과 Zaigarnik effect가 발생한다고 하네요. '끝나지 않은 과제가 완료된 과제보다 더 잘 기억나고, 더 신경 쓰이는 현상'이라고 설명하는데, '똥 싸다 중간에 끊고 나온 느낌'이란 걸 테죠.
결국 일을 해냈다는 자기효능감 self-efficacy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도 한 축을 담당하는 듯합니다. 3주란 시간이 있었는데 겨우 책 한 권 다 읽지 못했다는 자책을 피할 수 없겠지요. 여기에 '본전 생각'도 나는 듯합니다. 그렇게 오래 책을 붙들고 있었는데도, '완결된 지식'을 얻지 못하고 '반쪽' 정보만 획득한 셈이라서 그렇겠지요.
『미움받을 용기』로 잘 알려진 기시미 이치로가 써낸 독서 에세이가 있습니다.
여러 곳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읽었는데, 특히나 이런 부분들이 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한 번 펼친 책은 반드시 끝까지 읽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더군요.
145쪽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 책을 끝까지 읽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읽다가 재미없으면 그만 읽을 용기도 필요하다. 재미가 없다고 해서 그 책이 좋지 않은 책이라는 뜻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 지금은 필요하지 않은 것뿐이다. 그럴 때 책을 덮을 용기를 내지 않으면 시간을 헛되이 쓰게 된다.
지금 당장 다 읽고 싶어 조바심이 나는 책이 아니라면, 좀 천천히 두고 읽어도 될 터입니다. '비겁한 변명'을 '책을 덮을 용기'로 포장하는 듯하다는 꺼림칙함이 없진 않지만, 이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뀌고 나서 마저 펼쳐 읽을 수도 있으니까요.
대한민국 대통령이 나오자, 그다음 놈은 미국 대통령이 튀어나오더군요. 이 ‘초딩들’의 피선거권에 대한 무지함 이면에도 ‘권력’의 현실적인 서열은 인식되었던 모양입니다. 소싯적 꽤나 ‘영악한 어린이’였던 저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되겠다고 말했었습니다. ‘헬조선인’보다 ‘소련사람’이 더 낫지 않겠냐는 원시적 사대주의로 무장했던 터라, 그까짓 국적이야 ‘귀순’하면 그만 아니겠냐는 단순함도 갖추었더랬죠. 핵무기의 선제적 사용을 보다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악당’이 더 힘이 셀 수 있다고, 무척이나 현실적으로 평가도 가능했던 거고요. 물론 그 3년 뒤에 소련 공산당이 해체될 것이라곤 그 당시 상상도 못 했었습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에 이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악의 제국’이 어느 날 갑자기 해체되는 걸 봤을 때는 ‘영악한 중딩’ 입장에서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렇다고 당시엔 궁금증을 바로 해결할 순 없었습니다. 중딩에게 허락된 호기심도 아니었고, 스스로 호기심을 해결하기에는 접근 방법을 조언해 줄 만한 사람도 주변에 없었습니다. 1994년 돌베개에서 출간한 『공산당선언』을 펼쳐 봤다는 것만으로도, 돌아가신 우리 영감님은 “아들 새끼가 빨갱이가 됐다”며 ‘나라 잃은 표정’을 지으실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30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소련 해체의 순간에 대해 살펴볼 수 있게 됐네요.
그 와중에도 ‘소련 해체는 자본주의 승리의 증거’라는 프로파간다에 끊임없이 저항해 왔었습니다만, 그 정확한 반증을 제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공부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이제 이 책의 주요 내용을 토대로 ‘퍼즐’ 조각을 좀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역사가에게 소련의 붕괴는 조각이 딱 들어맞지 않는 퍼즐” 같았기에, 이 책을 통해 “소련 붕괴의 불가피성도 재고”해 봅니다. 그렇다고 "악의 제국"이 보존될 수 있었던 방법"을 추측하는 책은 아니라고 강변합니다. 그보다는 “일어난 일에 관해 지적으로 정직해지려는 시도”라며. “역사는 불가피한 사건의 연속이 아니며, 소련의 종말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리하여 이 책은 “더 넓은 역사적 서사 안에서 경제적/재정적 요인에 아주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여 소련 붕괴를 살펴”보았고, 그리하여 “소련 경제와 재정의 의도적, 비의도적인 파괴는 소련이 해체된 원인 중에 가장 유망한 후보로 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이 과정에서 외적 요인들을 내적 원인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저자는 소련의 최후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파악한 원인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첫째, 미국의 우월성과 냉전 시대 정책이 소련을 후퇴하고 굴복하게 만들었다.
둘째,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고르바초프의 개방과 투명성 지향 정책) 노선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훼손했고 소련 체제가 실패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셋째, 소련은 경제가 내부적으로 붕괴했기 때문에 멸망했다.
넷째, 각국의 독립 움직임이 '최후의 제국'의 내파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가장 막강한 소련 엘리트층이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반대했고, 뜻하지 않게 소련의 종말을 야기했다.
다만 “어느 것도 개별적으로는 소련을 무너트릴 수 없”었기에, 이 책을 통해 논증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9장 합의 Consensus>는 1992년 클린턴의 선거 참모였던 제임스 카빌의 캐치프레이즈 "The economy, stupid"로 시작합니다. 다만 “경제, 멍청함._제임스 카빌(1992)”이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순간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서론에서 선언했다시피, 소련 붕괴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고르바초프라는 재앙적 리더십과 경제 정책 실패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선 끊임없이 소련 경제에 대해 분석합니다. 막연하게 추정했던 경제 상황의 열악함과 소련이란 공룡을 무너뜨린 경제 정책 실패의 과정이 무척이나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루하기 그지없는 텍스트의 홍수 속에서, 깜짝 놀랄 정도로 ‘단순하고 무능한 경제 정책 결정’을 발견할 때마다 정신이 확 듭니다. 그런 거라도 있어서 이 벽돌책을 간신히 완독 할 수 있었을 테지요.
저자는 구조 개혁이 아니라 잘못 설계된 탈집중화가 문제였다고 말합니다.
고르바초프 경제개혁의 핵심은 사회주의 기업법이었습니다. 이는 자체회계·자체금융·자치(3S)를 통해 국영기업에 자율성을 부여하려는 시도였지만, 주보크는 이를 "탈집중화이되, 잘못된 탈집중화”라고 규정합니다. 중앙의 가격·자원·금융 통제는 유지한 채, 기업과 협동조합에 부분적 시장 접근권만 허용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계획경제도, 시장경제도 아닌 혼합적 무질서가 발생한 거죠.
이중 화폐체계 붕괴와 통화 통제 실패도 큰 문제였습니다.
소련은 오랫동안 베즈날 화폐와 현금 화폐를 철저히 분리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해 왔습니다. 그러나 개혁 이후, 협동조합과 국영기업이 결탁해 베즈날 자산을 현금화했습니다. 국가가 정한 낮은 가격으로 자원을 사서, 이를 국내시장과 수출시장에 전매해 500% 이상 초과이윤을 달성했지만, 이 소득에 낮은 세율이 적용되면서 통화량은 급증해, 통제 불가능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했습니다. 1989년 말, 정치국과 국영은행 모두 이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거시경제 관리 실패로 인한 '외환·재정 붕괴'도 문제였습니다.
주보크는 소련 붕괴를 군비 경쟁 탓으로 돌리는 통설을 부정합니다. 국방비는 GDP의 약 15% 이하로 치명적 수준은 아니었고, 진짜 문제는 원유 가격 의존적 재정 구조였다고 봤습니다. 1986년 배럴당 27달러에서 10달러로 유가가 급락하면서, 수출 수입은 120억 달러 감소했고, 무역수지 적자는 140억 달러 늘었습니다. 이로써 서방 외채 급증은 1985년 272억에서 1986년 394억 달러로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재정 안정성은 붕괴됐고, 개혁을 감당할 완충장치를 갖출 수 없었습니다.
농업·공급 체계 붕괴도 문제였습니다.
소비에트연방은 식량수입국이었는데, 이는 농업 경제가 완전히 왜곡되어 있던 탓이 큽니다. 1988년 가을 수확량의 1/3만이 국가에 수납됐습니다. 그렇게 식량 부족은 심화되었고, 식량 가격 인상과 수입 확대라는 재정적 딜레마를 초래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경제 통제는 느슨하게 풀면서 동시에 당 조직을 해체하고 권력을 소비에트와 공화국으로 이전했습니다. 그 경제 혼란 속에서 책임 주체가 사라지자, 중앙은 세수·통제력을 잃게 됐습니다. 포퓰리즘적 지출 요구만 폭증하다가 연방 해체 압력으로 전환된 것이죠.
587쪽
1980년대, 15년간 모든 개혁에 저항해 온 소련 지도부는 고르바초프 아래서 엄청난 규모의 경제적·정치적 변화를 개시했다. 그러나 그러한 개혁을 뒷받침하는 구상과 계획은 치명적으로 낡았고, 경제적으로 결함이 있었으며, 기존 경제와 정치체를 내부로부터 파괴했다. 개혁의 설계자, 그중에서도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실패를 인정하고 경로를 수정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舊시스템의 잔해에서 새로운 행위자들이 등장하는 것을 가능케 했고, 그 행위자들이 혼란을 물려받았다.
588쪽
고르바초프의 리더십, 성격, 신념은 소련의 자멸에 주요 요인이었다. 그는 이데올로기적 개혁가적 열성과 정치적 소심함을, 도식적인 메시아주의와 현실과의 거리 두기를, 비전이 넘치고 숨 막히는 외교 정책과 결정적인 국내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갖췄다. 그러한 특징이 그를 소련사에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그러나 폭력과 무력에 대한 혐오감은 보수주의자들도 공유할 만큼 그의 세대에 전형적이었다. 이것은 스탈린 사후 몇십 년 동안 소련 엘리트의 더 깊은 문화적·사회적 변모를 가리킨다. 그들은 정치적·경제적 폭풍이 들이닥쳤을 때 놀랄 만큼 무기력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국의 집단적 의지 마비를 목격한 고르바초프의 보좌관 게오르기 샤흐나자로프는 이를 시스템 위기라고 불렀다.
무엇보다 저자가 가장 놀라운 부분이라고 지적하는, “미국에 기대고 인정과 편입의 대가로 미국의 지도와 조언을 기꺼이 따르려는 고르바초프와 옐친 두 사람의 욕망”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 러시아 지도자들은 “기가 막히도록 순진하게 서방에 인정되고, 정당화되고, 받아들여지고, 편입되기를 원했다”고 평가합니다.
주로 논문 작성에 익숙한 ‘교수님’들이 책을 쓸 때, 매 챕터마다 그 챕터의 결론을 정리하기도 하고, 권말에는 책의 결론을 ‘초록 쓰듯이’ 갈무리를 합니다.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책이 그런 편인데요, 이 책도 여지없습니다. 각 챕터의 끝머리에 ‘결론’이란 소제목과, 마지막 챕터인 결론만 발췌독해도 괜찮을 정도입니다. 다만, 이런 정리는 완독 한 이후에 그 효용이 커집니다. ‘압축된 결론’ 사이에 존재하는 ‘맥락’은 본문을 다 읽고 난 이후에야 파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도 같은 방식의 결론들이 노출됩니다. 이 친절한 방식은 완독 이후 ‘리뷰 쓰기’를 위한 ‘리뷰’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 챕터인 <결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저자가 재고해 보고자 했던 소련 붕괴의 불가피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듯합니다.
589쪽
소비에트 시스템에 훨씬 더 논리적인 경로는 대중 지지를 누리는 안드로포프 같은 권위주의의 지속과 급진적 시장 자유화의 결합이었을 것이다. 수십 년 전 바로 레닌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1990~1991년에도 러시아인들 대다수는 강력한 지도자, 더 나은 경제, 국가의 통합을 원했다. 자유 민주주의, 시민권, 민족 자결주의가 아니라 말이다. 고르바초프는 이를 제공하는 데 실패했고, 그래서 그들은 그 대신 옐친을 지지했다.
미처 해결하지 못하고 서둘러 소련을 해체하면서 숱한 문제들이 남겨지기도 했습니다.
서방에서는 소련의 붕괴가 “냉전으로부터 행복한 탈출, 공산주의에 대한 승리, 자유주의적 가치의 승리, 그리고 영구적 평화와 번영에 대한 기대”로 해석할 뿐이었습니다. “지정학적 경쟁자이자 군사화된 거인이 사라졌다는 커다란 안도감”이 가장 컸을 뿐이었던 거죠. 그리하여, “서방의 돈은 동유럽과 공산주의 중국으로도 쏟아져 들어갔”고, “워싱턴 컨센서스와 세계 단기 금융 시장은 러시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다른 구소련 공화국들도 곤경에 내버려 뒀다”라고 평가합니다. 그 결과, “글로벌 금융 기구들은 국가 주권과 자존심을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이전 초강국의 엘리트와 국민은 갑자기 세계 먹이사슬의 밑바닥 언저리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경제는 “현대화 대신 대규모 탈산업화”가 일어났습니다. 저자는 “불가피했지만 대체로 야만적이고 무의미한 일”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민영화는 급성장하는 중간계급을 낳지 못했”고, “국가 자산의 분배는 뻔뻔할 정도로 불공정”했으며, “자국 시민들에는 무관심한 라틴아메리카의 수출 지향 매판 부르주아를 닮은 새로운 파벌인 이른바 ‘올리가르히’를 탄생”시켰을 뿐이라고 냉정하게 비판합니다. 그리하여 1980년대에 대략 30퍼센트였던 빈곤층은 1990년대에는 70~80퍼센트로 폭증했습니다. 그나마 “소련에는 사회 안전망이 있었고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된 가격으로 기초식품 품목을 구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러시아에서는 사회보장과 복지제도들이 많이 파괴”됐습니다. “소련 시절에도 생활은 좋지 않았지만, 소련이 사라진 뒤 대다수의 사정은 훨씬 나빠”졌습니다.
옛 소련의 성급한 해체가 남긴 영토와 민족 분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무력 분쟁을 제외하면 신생 국가들 간의 전면전은 피할 수 있었지만, 크림반도를 둘러싸고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의 즉각적 점화, 러시아-발트 긴장, 트란스니스트리아, 체첸, 그루지야,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의 분쟁은 영구적 평화가 아니라 지속적인 분쟁을 뜻했다”는 저자의 분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리하여 블라디미르 푸틴은 “2008년 조지아를 상대로 군사력을 사용했고, 2014년에는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돈바스 지역에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벌였”으며, 2024년에는 우크라이나 동부를 휩쓰는 전면전으로 이행했습니다. 민족주의자로 변신한 구 소련의 노멘클라투라의 성급한 권력욕이 쉽사리 찢어발긴 연방은 이렇게 미해결 된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