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꿈"도 볼 수 없었던 맹탕 전시
자신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는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이상한 죄책감 같은 게 들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으로 기대했다가 일방적으로 실망하고선 왜 남 탓을 하냐는, 그런 마음이 들곤 하는데요, 막상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웃기는 생각입니다.
악평을 한다는 건, 비평 대상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그렇다 보니 그 부정적 평가가 '공평무사'하다는 자기 인식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스스로도 부당한 행위라는 인지를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체 스스로를 공평무사하다고 간주하는데, 그 '좋은 사람이란 자기 표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악평 대상이 잘못되었음을 반드시 입증해야만 합니다. 즉, 인지부조화를 피하기 위해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는 것이죠. 비평 대상이 진짜 나빴음을 정합성을 갖춘 논리로 증명하거나, 스스로를 속여가면서 '무조건 나쁜 놈'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도 장담했듯이, 사람들은 뒤엣것을 정말 쉽게 잘 해내곤 합니다. 그래서 자기긍정감을 위해서라도 인지부조화를 해결해야 하는데요, 자기기만에 능한 인간의 기본 속성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이나 자기검열이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브런치에서 꼭 좀 와주십샤 초정한 것도 아니요, 이 전시에 대한 리뷰를 기다리고 있는 구독자가 있는 블로거도 아닌지라, 제가 굳이 이 팝업전시를 찾아갈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궁금해서 찾아갔던 거고, 그러니 브런치가 열심히 차려놓은 밥상을 보고는 "젓가락 가는 음식이 없다"고 투정을 부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굳이 혹평이 가득한 리뷰를 쓸 이유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이틀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만, 결국에는 리뷰를 쓰자고 결론 내렸습니다. 싸르륵하는 아랫배를 움켜잡고 불편함을 감내하느니, 시원하게 설사를 지르는 게 나으니 말입니다.
올해로 13회째인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고, 매년 크고 작은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는 데다가, 이 프로젝트의 태생적인 문제점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기에, 별로 볼 게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볼 수 있었던 제대로 된 전시 역시 브런치북 프로젝트의 지난 기록을 모아놓은 것뿐이었습니다. 혹시나 하고 갔다가 역시나 하고 돌아왔다는 거죠.
'작가라는 꿈'은 대체로 ISBN을 갖춘 출판 이력에서 저자로 등록됨을 의미합니다. 그렇다 보니 '출판'으로 비로소 작가라는 명명이 가능해지는 거죠. 따라서,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통해 출판이 이루어지는 것이야말로 브런치가 제공해 줄 수 있는 '작가의 꿈'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팝업전시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아야만 합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게 저따위 목록이나 책을 전시하는 것만으로는 '전시 exhibiton'에서 필요한 직관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박물관 큐레이션에서 최악인 방식을 두 가지나 썼으니 말입니다.
소장품이 부족한 박물관들이 고육지책으로 사용하는 큐레이션이 '문자'나 '서적'으로 때우는 겁니다. 서적이란 정보 집적체의 아이콘으로 자주 다루어집니다. 그래서 직관성은 높은 편이라서 '책 표지'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식은 꽤나 즐겨 사용되는 편입니다. 이를테면 국내에 단 두 권만 존재하는 훈민정음해례본은 그 복제폼이 숱하게 많이 제작되어 엄청 많은 박물관에 전시 중입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입니다. 훈민정음 햬례본이 갖고 있는 추상적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끌어올 수 있는 정보량은 한정적입니다. 더 많은 '서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더 구제적인 이미지와 그 이미지가 직관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방식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로 동원되는 이미지는 '나랏말싸미'로 시작하는 해례본 서문의 이미지이기도 하죠. 국립한글박물관에서도 이 구태의연한 전시기획을 그대로 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션을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매년 반복되는 이벤트다 보니 실현 가능한 범위가 작다"는 이병준 배우의 대사가 자연스럽게 귓가를 맴돌더군요. 설마 성의 없게 지난 브런치북 프로젝트의 수상작 명단과 함께 책을 전시하진 않겠지 했는데... 여지없더군요. 무엇보다 이 섹션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텍스트의 바다에서 그 무엇도 눈길을 사로잡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킥이 있는 인터랙티브도도 없었습니다. 억 단위로 예산을 썼을 기획일 텐데요, 이 따위로 하면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남이야 잔치를 망치건 말건 제 알 바는 아닙니다만, 적어도 '나님이 왕림한 잔치가 부실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첫 번째는 역시나 '브런치북 프로젝트'입니다. 적어도 매년 10명 정도의 '작가 등단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으니까요. 하나의 신문사나 문예지에서 기껏해야 네댓 명을 등단시킬 수 있는 것에 비하면 단일 플랫폼으로서는 적잖은 숫자입니다.
두 번째는 소규모 출판사에서 작가에 접촉하는 방법으로 브런치를 자주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브런치는 '출판이력이 있는 작가'에게 쉽게 열리는 플랫폼입니다. 누군가는 여러 차례 시도해도 허락되지 않았던 가입이 저처럼 출판 이력이 있는 사람에겐 대번에 열립니다. 다시 말해서 글을 써본 사람들이나 적어도 '열심히 쓰는 사람'들에게 가입이 '허락'되면서, 네이버 블로그나 티스토리보다 양질의 글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나 소나 똥글을 싸지르는 네이버 블로그'와는 다르게,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전문적인 글을 시리즈로 연재하는 경우가 잦다는 겁니다. 당연히 좋은 글을 찾는 데 품이 덜 드는 브런치를 작가 발굴의 방식으로 활용하는 출판 관계자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긴 하겠더군요.
다만 첫 번째 테마는 워낙에 정전화된 전범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고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기획을 하긴 어렵겠지요. 그래서 이번 전시의 <zon3 2. 꿈의 정원>처럼, 벽면을 가득 채우는 직관성은 있지만 정보 하중은 바닥인 2-1 섹션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고, 여기에 변칙을 가미한다는 것이 하나마나한 어중간한 2-2 섹션이 되고 말았겠지요. 차라리 2-2 섹션의 테마를 2층과 3층으로 이어지게 확장해서 가져갔다면 나았을 겁니다. 브런치란 플랫폼의 브런치북 프로젝트가 있어서, 비로소 '작가'가 되었던 '보통 사람의 서사'를 '잘 포장'했다면 좋았겠지요.
두 번째 테마는 브런치란 플랫폼이 '출판계의 서드 파티'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잘 드러낸다고 봅니다. 규모를 갖춘 출판사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접하면서 '갑'의 위치를 가지고 싶은 플랫폼의 입장을 모르지는 않습니다만, '손 안 대도 코 풀어주는 고마운 서드 파티'가 안중에 없다는 듯한 태도가 드러납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로 수확해야 할 좋은 작물들을 '입도선매'해가는 약탈자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됩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작가의 꿈>이었던 걸로 봐선, "야 너두~"가 브런치란 플랫폼의 장점이라고 광고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 방식은 '플랫폼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한정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뭐랄까요 관료조직에서 보이는 비효율성이 드러나는 듯합니다. "파이를 키우는 건 내 알 바 아니고, 내 실적만 제일 크면 그만"이라서, 플랫폼의 정체성이나 발전 방향도 중구난방인데 그 홍보 방식에서도 '홍보 그 자체의 실적'에만 집중한 것처럼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