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어떻게 진화했고 또 왜 지속되는가?
‘종교의 진화 방법과 지속 사유’라는 직관적인 제목을 제쳐 두고, 엉뚱하게 지어버린 번역서 제목은 짜증이 샘솟을 지경입니다.
로빈 던바는 머리말에서 종교의 정의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면서 그 역사성에 주목합니다. 따라서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를 탐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죠. 또한 “종교는 하나의 퍼즐”이라 선언하면서, “많은 억압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믿음은 지속”하는 이유와, “하나만 있어도 될 종교가 너무나 많이 존재”하는 이유를 궁금해합니다. “왜 지속하는가” 역시 탐구하지 않을 수가 없던 겁니다. 그리하여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단언하기에 이릅니다.
355쪽
간단히 말해, 인간 사회에서 종교를 대체할 어떤 것이 있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종교는 철저히 인간적인 특성이다. 종교의 내용은 장기적으로 분명히 변화하겠지만, 좋든 싫든 그것은 우리와 함께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난데없이 번역서명에 ‘뇌’가 등장합니다. 이거, 참, 짜증이 솟구칩니다.
이 책에서는 던바의 수 Dunbar's number와 사회적 뇌 Social Brain 가설을 통해 종교가 인간 사회의 결속력을 높이고 집단 응집성을 유지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탐구합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뇌가 신을 찾는 게 아니라, 차차 신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번역서명은 책의 핵심 주제에서 벗어나 마치 뇌과학 서적인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종교의 복잡한 사회인류학적, 진화심리학적 측면을 '뇌'라는 단일 요소, 즉 신경과학적/생물학적 관점으로 축소함으로써 환원주의적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아무래도 선행 독서가 큰 도움이 된 듯합니다. 한민의 책으로 종교학의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한 뒤이기도 하지만, 조지프 헨릭, 유발 하라리, 얀 아스만 그리고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데이비드 웬그로의 책들을 붙잡고 골치를 썩였던 것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된 것 같습니다. 진화인류학, 빅히스토리, 기억연구, 진화심리학과 같은 학제 간 연구의 폭넓은 교류를 먼저 경험해 봤기 때문이겠지요. 여기에 최정규의 진화적 게임이론까지 가세하면 꽤나 도움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레오르 즈미그로드의 신경과학, 존 허빙 등의 정치심리학, 조너선 하이트의 도덕심리학과 같은 심리학 서적들까지 포함하면, 인식의 지평은 훨씬 넓어지더군요. “어, 이거 어디선가 읽은 내용인데?”라는 기시감을 차근하게 고민해 보면, 어렵잖게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꽤나 즐거운 지적 유희이기도 했네요.
1장에서 3장을 통해서 “종교란 무엇인지” 그 개념에 대해 정리하고, 4장에서 6장을 통해 “무엇이 종교를 만들어내는지” 그 특질을 설명하며, 7장에서 10장을 통해 “종교는 어떻게 진화했으며 또 어떻게 지속되는지” 그 역사성을 다룹니다.
첫 번째 장인 1장 <종교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에서는 사회과학의 학문적 전통에 따라, 이분법적 단순화를 도입합니다.
종교를 몰입종교(또는 애니미즘, 샤머니즘 그리고 원시종교)와 교리종교의 두 가지 형태 나눕니다. 무 자르듯 딱 가를 수 있는 개념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 둘로 개념을 나눈다면 이해에 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이때 중요한 것은 “이 둘의 순서가 필연적으로 한 종교를 다른 종교로 대체하는 과정은 아니라는 것”이며, 오히려 “종교의 한 형태(교리적 단계)가 이전 형태(샤머니즘 또는 애니미즘) 위에 장착되는 일종의 유착 과정 accretion”임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인간은 곧바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보이지 않는 어떤 신비한 존재 탓으로 돌리는 성향을 보인다”라고 지적하면서, “종교는 생물학적 시스템에 내장된 오류”라고 말합니다. 또한 “다른 생물학적 목적에 알맞게 진화한 형질들 또는 인지적 프로세스들의 부적응적 부산물”이라고도 첨언합니다.
그래서 던바는 “종교가 우리에게 제공한 기능, 이것을 기능하게 하는 심리학적 및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 그리고 종교 기원의 시기”에 주목한다고 설명합니다.
2장 <신비주의적 입장>에서 던바는 “신비주의 mysticism는 모든 거대 종교들의 주된 구성 요소”라고 말합니다.
대체로 모든 종교에는 신비주의적 요소가 있거나 명시적으로 신비주의적인 분파 branch나 섹트 sect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신비주의적 입장 mystical stance’으로, 트랜스 상태로 진입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트랜스 같은 상태에 진입하는 감수성, 초월적(또는 영적) 세계의 존재에 대한 믿음, 그리고 우리를 돕는 숨겨진 힘(들)을 불러낼 수 있다는 믿음과 같은 요소에 집중합니다. 또한 신비주의적 입장은 인간 삶의 영적 차원을 믿고자 하는 욕구와 변성의식상태 altered states of consciousness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육체적 죽음 너머에서 계속 살아가는 어떤 부류의 생명력이나 영혼에 대한 믿음은 엄청하게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길고 힘든 과정을 거쳐서 영적차원과 연결될 수 있는 샤먼이 된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소규모 사회에서 샤먼이 수행하는 기능을 세 가지 주요 유형”으로 묶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①삶의 불확실성과 관련된 기능(점복, 치유, 채집 성공), ②통과의례 및 기타 사회현상과 관련된 기능(출생, 사망, 결혼, 전쟁, 분쟁 해결, 기우제), ③공동체 문제 관리와 관련된 기능(법률 및 정치 문제, 카리스마적 리더의 역할)이라고 말입니다.
74쪽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점술(미래 예측)은 인간의 영원한 관심사였다. 우리는 여전히 이에 대해 염려한다.
3장 <믿는 것이 좋은 이유>에서는 종교의 기능상 이익을 개체 수준과 사회 수준으로 나누어 생각해 봅니다.
개체 수준의 이익으로는 자연재해에 대항하는 점술과 부적을 만들어 줌으로써 사람들을 안심할 수 있게 해 주고, 위약효과나 때론 실제로 의학적 가치가 있는 약초와 식물을 처방함으로써 특정 질병이나 상태에 대한 치료법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사회 수준의 이익으로는 도덕적 고위 신 Moralizing High God을 들 수 있습니다. “도덕적 고위 신을 가지면 사회 구성원들이 기꺼이 세금을 내고, 서로에게 돈을 빌려주고, 배신자를 제재하는 경찰력 및 여타 세속적 수단의 존재를 받아들이려 한다”는 겁니다. 유발 하라리가 자신의 책 <사피엔스>에서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한 바와 같겠지요.
“대중을 제압하기 위한 엘리트들의 발명품”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종교는 대중들을 지배하여 엘리트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한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합니다. 사후적으로 종교의 의례들이 국가나 엘리트의 이익을 강화하기 위해 채택될 수도 있는데, 인간 犧牲 human sacrifice이 적절한 예일 수 있다는 겁니다.
트랜스 댄스를 통해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도 하나의 기능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4장 <공동체와 회중>에서는 던바의 수 Dunbar’s Number를 통해 “약 150명이라는 최적 회중 규모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5장 <사회적 뇌, 종교적 마음>에서는 우정의 일곱 기둥 Seven Pillars of Friendship이나 정신화 mentalizing와 같은 개념들을 소개합니다.
특히나 공동의 종교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5차 지향성’이 필요한데, 이것을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는 뇌용량은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에 이르러서야 확립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뇌 가설이라는 것이고요.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호모사피엔스는 ‘사회적 뇌’가 필요했고, 그래서 뇌용량이 커졌으며, 그렇게 커진 뇌용량을 통해 ‘5차 지향성이 가능한 뇌’를 구비해서 종교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때 동원되는 뇌 영역들은 엔도르핀 수용체가 작동하는 영역으로, 종교적 경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신비의 절정에서 당신과 신 사이의 직접적 상호작용을 포함”하기에 “종교는 강렬한 사회적 현상”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입니다.
6장 <의례와 동기성>에서 던바는 “의례는 거의 모든 종교에서 근본 토대를 형성한다”라고 단언합니다.
“교리종교에서 종교 예식의 중심 부분을 제공하는 한편, 샤먼종교에서 신들을 달래거나 행운을 만들거나 트랜스에 진입하기 위한 실천들을 식별한다”는 것이죠. 또한 “의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늘 동기화되어 in synchrony 수행된다”는 점이라고도 말합니다. “의례가 엔도르핀 시스템을 활성화시켜 소속감과 공동체 유대감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동기성은 엔도르핀 효과의 크기를 과장함으로써 특히 이런 측면에서 강력한 역할”을 하며 “추가적인 가치를 제공하고 의례의 결속 측면을 유의미하게 증가”시킨다고 설명합니다.
7장 <선사시대 종교>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우리가 아는 종교는 약 20만 년 전 해부학적 현생인류가 등장하기 이전에 진화했을 가능성이 낮으며, 샤먼종교가 먼저 나타났고 교리종교가 나중에 나타났다고 정리합니다. 호모사피엔스만이 5차 지향성을 허용할 만큼 충분히 큰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8장 <신석기 위기>에서는 집단생활과 종교의 발생 사이의 관계를 밝힙니다.
튀르키예의 쾨베클리 테페와 차탈회위크 유적을 통해, “사람들은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마을에 살았던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살기 위해 농업을 발전시켰다”는 견해를 도출해 냅니다. 이는 “침략자들을 막아내기 위해서”인데, “정착지 생활이 최선의 방어 수단을 제공”했다는 겁니다.
264쪽
조직화된 종교는 더 큰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도록 말썽을 억제하는 기계장치의 일부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집단생활은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마을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 스트레스와 내부 폭력의 수준을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은 더 큰 정착지에서 살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었는데, 이를 위해 “공동체 유대 활동(춤, 잔치)의 빈도 증가, 계약 가족 간의 신붓값 bride-wealth 교환을 포함하는 보다 공식적인 혼인 약정, 민주적 사회 양식으로부터 남성 위계와 공식적 리더십 역할로의 전환, 더 명시적인 의례, 공식적 종교 공간 및 종교 전문가를 포함하는 교리종교로의 전환 등이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교리종교가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를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에, 그리고 대략 같은 시기의 이집트 고왕국에, 사제 계급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합니다. 도덕적 고위 신은 매우 늦게 발전했는데, 대부분 기원전 1000년대로 인구 규모가 100만 명 이상으로 폭증하면 이에 따라 공동생활의 스트레스를 관리하기도 더 어려워진다는 점과 불가피하게 연관된다고 봤습니다. 약 10만 명 인구를 지닌 사회에서는 “신의 응징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복잡한 의례와 회유적 예배가 지속하는 긴 시기가 있었으며, 이로 인해 신을 달래야 할 필요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고 봅니다. 고위 신의 등장보다 약 2000년 전 앞선, 기원전 2500년경에 나타났다고 봅니다.
9장 <컬트, 섹트, 카리스마>에서는 컬트와 카리스마 리더에 대해 설명합니다.
던바는 “모든 컬트는 그들이 속한 더 큰 종교적 경관의 어떤 측면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에 “컬트가 성공적으로 시작되려면 리더가 어느 정도 카리스마적 성격이 있어야 하고, 자신이 구원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깊은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리더가 지지를 끌어모아 카리스마적 리더로 성장하면, 그 주변에 “엘리트 내부 서클을 가진 계층적 구조가 형성되며, 이는 리더와 추종자 사이의 연결 통로 역할을 함과 동시에 리더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는 문지기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되면 “컬트의 리더는 추가적인 신비감과 거리감을 획득해 매력이 증폭”되며, 특히 “거리감은 추종자가 접근 허가를 받았을 때 특권의 감각을 증대하는 역할을 한다”라고 풀이합니다. 특히나 “개종이 트라우마를 일으키고 심리적 고통을 수반할 수 있는 한, 이러한 과정은 엔도르핀 시스템과 강한 소속감의 심리적 과정을 자극”해서 “위기에 빠진 사람들에게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기 때문에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창립자 사망 후 한 세대 정도가 지나면 컬트 대부분은 살아남지 못하는데. “그 대부분이 특정 시대의 산물로, 이후 세대들은 더 난해한 교리와 관행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10장 <분열과 분파>에서는 섹트에 대해 설명합니다.
325쪽 더 큰 규모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하향식 메커니즘은 더 넓은 세계를 작은 규모의 친밀한 집단 단위로 쪼개려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경향을 충분히 거스르지 못한다. 우리가 정말 의미 있게 느끼는 것은 이 작은 관계들이며, 이는 신뢰감과 의무감, 그리고 헌신의 느낌을 도입해 사회집단이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해 준다.
“세련된 신학의 우아한 상부구조 아래에 깊은 역사를 지닌 조상 대대의 샤먼종교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간과한다고 던바는 지적합니다.
모든 주요 종교가 규모의 증가에 따라 내부 스트레스를 겪는데, 이로써 분쟁을 경험하게 되고, 섹트가 출현하게 됩니다. 이때 조직구조를 성공적으로 개발하여 일정 수준의 신학적 규율을 부과하고. 외부지향적으로 적극적인 모집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섹트는 살아남아 또 다른 컬트로 진화할 수도 있다고 분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