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변화가 어려운 이유와 변화에 성공하는 법
서양의 저자들은 책 제목을 무척이나 직관적으로 짓습니다. 도서관 카드 카탈로그 시스템에서 유래한 전통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이 책의 원서 제목도 그렇습니다. “시작: 변화가 어려운 이유와 변화에 성공하는 법”이란 제목은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2부의 주요 내용을 설명(변화가 어려운 이유)해주며, 3분의 1에 육박하는 결론(변화에 성공하는 법)을 고스란히 드러낼 뿐만 아니라, ‘행동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주제까지 밝히고 있으니 말입니다. 영문판의 제목이 ‘New Beginning’인 이유와도 맞닿을 터입니다.
그런데 번역서의 제목은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이란 낙관적 진보주의를 지지하는 이성과 달리, 인간의 태도는 현실에 안주하려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2부의 내용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뇌’를 언급하는 것으로 변화를 거부하며 현실에 고착하는 인간의 태도를 인지심리학에 한정시킵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에서 사회심리학은 물론이요, 사회학에서 도덕철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문을 폭넓게 살펴보고 있어서 적절한 제목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런 타박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별 거 없습니다. 그저 이 책을 펼쳐 들었던 이유가 “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라는 인지심리학적 기제가 궁금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펼쳐든 책은 제법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터라, 살짝 짜증이 난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기대를 하나도 충족하지 못한 건 아닙니다. “도대체 내 친구는 왜 술을 끊지 못하는가”에 대해 몇 가지 심리학적 이론들이 적용될 수 있었는데, 그에 대한 몇몇 해답도 찾아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제목과 실제 내용 사이의 간극은 짜증을 자아내기 충분합니다. 이는 리뷰를 정리하는 데에도 적잖은 방해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심리학자도 아니고,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것도 아니라서, 구성이나 논지 전개가 조금 난잡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동원된 인지심리학 개념들이 그리 간단한 것들이 아닌지라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왜곡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단점은 책을 읽을 때에도 이질감을 일으키고, 리뷰를 쓸 때도 괴리감을 자아냅니다.
그렇다 보니 인지심리학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 책이 결코 재밌지도 않고, 쉽게 읽히지도 않은 듯합니다. 저자 자신이 아직 완벽하게 정리하지 못한 사유들을 어찌어찌 범주화해 내서, 가까스로 구조를 만들어낸 탓일 겁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부(Teil I: Das gespaltene Bewusstsein)’에서는 왜 이 책을 썼는가를 설명합니다. ‘2부(Teil II: Sieben Illusionen über den Fortschritt)’에서는 무엇이 ‘진보’를 가로막는가를 설명합니다. ‘3부(Teil III: Wie Veränderung funktioniert)’에서는 변화를 이루어내려면 어찌해야 하는가를 설명합니다.
"Das Richtige wissen und es nicht tun ist Mangel an Mut", soll Konfuzius gesagt haben.
- Stefan Klein, Aufbruch: Warum Veränderung so schwer fällt und wie sie gelingt, S. Fischer Verlage, 2025, p.11.
논어 위정 편 24장에는 ‘見義不爲, 無勇也’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것을 인용하는 것으로 책은 시작합니다.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부족해서”라고 독일어 그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적었듯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싶었기에 이루어진 인용이겠지요.
247쪽
낡은 폐습을 끊어내는 일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새로운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습관을 버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로 걸음을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저자가 카리브해의 영국령 섬인 몬트세랫(스페인의 몬세라트에서 유래한 지명)에서 경험했던 괴리감에서 이 책은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가망 없는 싸움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을 보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는 선민의식에서 시작된 의문은 곧이어 자신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집니다. 용케도 ‘데카르트적 회의’로 재빨리 이어진 겁니다.
18쪽
우리는 변화를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변화에 소극적이다.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지금은 그냥 이렇게 살고 싶어 한다.
저자는 “우리에겐 변화에 대한 피로감도 있고, 손해 보기 싫은 마음도 있으며, 지금 가진 것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그 점이 중요하다고도 말합니다. 또한 “변화는 사회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인지적 문제이기 때문”이라고도 부연하는데, 그래서 인지심리학의 여러 이론이 등장하게 됩니다.
우선, 현상 유지 편향 Status quo bias이나 손실 회피 Loss Aversion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는 인지 부조화 감소 Cognitive Dissonance Reduction나 심리적 관성 Psychological inertia과 같은 좀 더 상위에 존재하는 구조적 이론으로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진보에 대한 7가지 착각’을 하나의 테시스 thesis로 다루고 있습니다. 막상 살펴보면 그리 적절하지도 않고, 심지어 상호차별적이지도 못합니다. 억지스럽게 7개로 범주화했지만 몸통이 분리되지 않은 샴쌍둥이처럼 서로 고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도 불편했고, 읽고 나서 정리하는 것도 꽤나 불편했습니다. 가장 ‘거지 같은’ 것은 역으로 진술해야 하는 사실에 부합하게 되는 착각 illusion을 테시스로 삼았다는 겁니다. 쓸데없이 사람을 헛갈리게 하는데요, 예를 들자면 바로 다음의 첫 번째 테시스는 결국 “우리는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고집쟁이다”라는 말입니다. 죄다 그런 식인 거죠.
66쪽
가장 기본적인 지각조차도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우리의 선입견에 부합하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모든 정신활동의 출발점에는 기대가 있다.
저자는 인간이 그리 합리적인 존재가 아님을 밝히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합니다. 대체로 심리학을 다루는 책들은 ‘17세기 계몽주의 기획’에서 비롯된 인간의 합리성을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하곤 합니다. 이 책에서도 자주 인용하는 대니얼 카너먼이나 리처드 세일러가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부정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하여 저자는 인간이 이성의 합리성을 추구하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현실주의자란 견해가 허상이라고 지적합니다. 되레 “뇌는 끊임없이 현실을 자신의 기대와 일치시키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예측부호화 predictive coding 이론을 따른다고 지적합니다. “뇌는 예측을 통해 자신의 느림과 비효율성을 극복”하는데, “예측 부호화를 통해 매 사건에서 세부사항을 새롭게 관찰하는 대신 선입견에 의지하는 것”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마치 통조림처럼 저장되어 있다가 나온다”고 설명합니다.
베이지안 추론 Bayesian inference에 기반한 예측부호화 이론을 좀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는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예측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경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의 논의를 지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논거가 되긴 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인지심리학자가 아니니, 사소한 뒤틀림은 그냥 넘기는 게 나을 듯합니다.
여하튼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의 ‘관점맹 aspect blindness’이라는 개념을 가져와서, “사람들은 자신의 지각과 자신의 생각을 현실 그 자체로 착각한다”고 설명하며. “우리 모두는 관점맹이 되어 살아간다”고 부연합니다.
85쪽
자신이 기대하는 바를 정확히 아는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끼며, 늘 똑같은 루틴으로 살아가는 것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게 해 준다. 습관은 질서를 부여하고 삶의 목적의식도 느끼게 해 준다. 이 일반적인 설명은 우리가 습관을 따르는 이유로 충분하다.
저자는 “호기심은 학습을 가능케 하기 때문에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인간이 새로운 무언가에 매료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친숙해지는 것만으로도 선호도가 발달”한다는 로버트 자이언스의 단순노출효과 Mere Exposure Effect를 동원합니다.
그렇다 보니, “새로운 루틴을 만드는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 옛 루틴을 떨쳐버리는 일이 어려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습관에 따라 행동할 때 의도 같은 것은 없이, 그냥 그 자체로 실행된다”면서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Vilayanur S. Ramachandran의 ‘뇌 속의 좀비 Zombie in the Brain’ 개념도 가져옵니다.
104쪽
두 번째 유형의 낙관주의자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세상에 불행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닥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확률의 법칙에서 자기들은 예외라고 믿는 셈이다. 두 번째 유형의 낙관주의자들은 전체 인수의 최소 80퍼센트를 이룬다.
저자는 “아직 잘 굴러간다”는 세 번째 착각을 설명하기 위해 탈리 샤롯 Tali Sharot의 낙관주의 편향 Optimism bias을 동원합니다. 특히나 “낙관주의의 수수께끼는 사람들이 모든 삶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기대를 고수한다는 점이다”라는 샤롯의 발언을 직접 인용합니다. 여기서 낙관주의 편향은 “현실에 상관없이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대뇌가 어떻게 선택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지를 보여”주는데, “우리는 직접 경험하는 위험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의 보고에 의존할 때는 그 위험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다만 “경솔한 낙관은 세 가지 이유에서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 “불확실성이 과도한 기대를 부추긴다면, 새로운 것이 등장할 때마다 열광과 실망의 악순환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 ⓑ “네트워크화된 사회에서는 개개인의 환상이 강화되다 보니 비이성적 과열이 생겨날 수 있다는 점”, ⓒ “오늘날 대부분의 위협은 전 지구적인데도 사람들은 운명이 자기와 자신의 주변에는 호의적으로 작용하리라 믿는다”는 점 등을 꼽았습니다.
126쪽
지식도 지능도 확증편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한다. 그 반대다.
저자는 헝가리의 산부인과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 Ignaz Semmelweis의 사례를 가지고 지식인 사회에서 벌어지는 확증 편향을 설명합니다. 대체로 인간은 인지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확증편향에 빠지는데, 이때 인지적 구두쇠가 작동한다고 봅니다.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기 위해, 자기 좋을 대로의 정보만 취합하면서도, 그마저도 대충 한다는 말이죠.
또한 저자는 앤서니 그린월드 Anthony Greenwald의 ‘전체주의적 자아 Totalitarian Ego’도 설명에 동원합니다. 이는 “독재자처럼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지배하는 내면의 기제”를 말하는데,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무오류성을 의심케 하는 모든 감정과 생각을 억누른다”고 설명합니다. 더 나아가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택하고 왜곡하여 관리한다’고도 해설합니다.
그렇다 보니 지식은 힘을 쓰지 못하고, 심리적 관성이 여전히 행동을 관제한다는 겁니다.
155쪽
늘 내시 균형이 작용하고 있다. (다만) 소비자들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저자는 앞서 인간의 합리성은 쉽게 부정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사유의 폭 역시 그 한계가 명확함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서로 합심해서 ‘토끼보다 큰 사슴’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슴사냥게임 stag hunt game이 아니라, ‘혼자 폭망 하느니 같이 망하자’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빠진다고 한탄합니다.
다시 말해, “시민들은 모두가 처한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조치들을 거부”하며, “삶을 바꾸기보다 현상 유지를 원하는 듯하다”고 말합니다.
182쪽
기후를 보호하는 조치를 쉽게 찾아낼 수 있고 그것이 주는 경제적 유익을 명백히 계산할 수 있음에도 그 조치를 실행하기가 왜 그리 힘든지는, 복잡하게 얽힌 두 가지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의 이성은 이익보다 눈앞의 손실에 더 무게감을 둔다. 따라서 방향 전환의 비용이 그것이 가져올 이익보다 자동적으로 더 크게 다가온다. 소유효과에서 비롯된다.
둘째, 방향 전환이 가져오는 많은 유익은 수년 뒤, 심지어는 수십 년 뒤에야 나타난다는 점이 변화의 매력을 감소시킨다. 이익이 늦게 나타날수록, 그 이익은 그다지 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거꾸로 말해 지금의 편안한 행동이 초래할 부정적 결과가 시간적으로 더 멀리 있을수록, 우리는 변화를 주저하게 된다.
인간의 합리성은 다시 한번 의심받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상태 그대로의 것이나, 익숙해진 것이나, 빼앗길지도 모를 소유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에 저자는 주목합니다.
리처드 세일러 Richard Thaler의 ‘소유효과 Endowment Effect’나 대니얼 카너먼 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츠키 Amos Tversky의 누적전망이론 Cumulative Prospect Theory에서 활용하는 ‘손실회피 loss aversion’ 개념이 설명에 동원됩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데, “손실이 현실이 되자마자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손실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현상태를 기준으로 삼고, 대안이 가져다줄 실제적 유익보다는 지금 상황과 비교해 어떤 손실이 있는가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라고도 부연합니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심리적 기제가 갖춰집니다.
209쪽
변화를 꺼리고 이데올로기에 물들기 쉬운 성향은 뇌 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식이 통하리라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슴 서늘한 소식이다.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세게관은 논리적인 근거를 따르지 않는다. 어떤 세계관에 끌리는가 하는 문제는 뉴런의 데이터처리의 경제성에 기초한다. 인지적 유연성이 중요하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일수록 자신의 견해를 의심할 줄 모른다.
저자는 “사람은 안정감을 주는 세계관에 쉽게 이끌린다”면서, “뇌는 위조 공장”이라 말합니다. “착시현상에서처럼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우리로 하여금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지각하게 한다”는 거죠.
저자는 금연운동의 역사를 예로 10장을, 여성참정권 운동과 노예해방 운동을 예로 11장을 채우고, 마지막 장을 4단계로 이루어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사용설명서 Gebrauchsanleitung für eine bessere Welt”로 꾸렸습니다.
저는 대체로 이런 챕터에 이르게 되면 꽤나 염세주의자가 되곤 합니다. 그래서 ‘현상 분석은 탁월하나 그 대책은 몽상적이다’라는 리뷰를 자주 씁니다. 이번이라고 다를 바는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다음과 같은 저자의 지적에는 눈길이 가나 봅니다.
299쪽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염세주의는 도덕적으로 보나 지적으로 보나 우리의 선택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더불어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
ⓐ 1단계: 결정능력 갖추기
사람들로 하여금 장기적 이익을 깨닫도록 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더 이상 외부적 힘에 휘둘리는 장난감처럼 느끼지 않고, 자신의 동력으로 행동한다고 봅니다. “변화의 문화는 결정의 자유를 중시하지만, 종종 자신의 유익에 반하여 비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음”도 인정해야 할 것으로 봤습니다.
ⓑ 2단계: 습관을 대치시키기
“낡은 습관을 어떻게 더 유익한 루틴으로 대치할까”가 중요합니다. 모든 것이 좋은 말로 해결되지 않듯이, 오랜 세월 굳어진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도덕적 호소나 내면의 돼지개를 이겨내는 일만으로 세상의 문제를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희망한다면, 어쩔 수 없이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 3단계: 연쇄반응 준비하기
전염효과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태도와 행동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저자는 “관성, 피드백 효과, 불안정성, 임계점 등이 합쳐져 갑자기 다른 상태가 등장”하듯이, 변화는 비약적으로 일어난다고 봤습니다. 저 역시 격하게 공감합니다.
ⓓ 4단계: 좋은 이야기를 하기
마지막은 커다란 차원에서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고, 더 나아가 이야기 속에서 살다시피 하”기에, “삶의 방향을 잡기 위해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고 부연합니다. 무엇보다 “두려움은 우리가 특정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해주지만, 주도권을 발휘하거나 습관을 바꾸게 하지는 못”하기에, 긍정적인 서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298쪽
많은 사람들이 체념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데올로기로 도피하거나 단순한 해결책을 들먹이며 좋았던 시대로의 귀환을 약속하는 선동가들을 추종한다. 낙담한 자들은 희망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다. 희망은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기대가 아니다. 희망은 미래가 열려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