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조잡하지만, 음모론 이해를 위한 간편한 입문서
이 책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음모론을 고민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 “편하게 살펴볼 수 있는 입문서” 정도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의 1장을 읽고 나서 짜증이 솟았습니다. 주석을 달지 않은 책, 그러니까 일본의 신쇼新書 편집 방식을 따르는 이 책의 내용을 신뢰하기 어려웠던 것도 있지만, 음모론에 대한 정의定義도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마다 그때그때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논문을 좀 찾아보곤 합니다. 그러다가 깨달았습니다. 참고할 만한 논문이 별로 없다는 걸 말이죠. 단행본마저도 전상진의 『음모론의 시대』나, 마이클 셔머의 『음모론이란 무엇인가』 정도가 읽어볼 만한 책이며 구해 볼 수 있는 책의 전부였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셔머의 책을 살펴보고 나니, 차라리 셔머의 책을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아직 국내 학계에서는 음모론에 관련하여 연구가 미진하며, 사회과학 내부에서도 학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곽인신, 한국과 국제사회 2020, vol.4, no.6, 통권 12호, 37쪽.
곽인신의 논문은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자기 표절로, 자신의 석사 논문을 정리해 박사 과정 실적용으로 저널에 게재한 논문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저보다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관련 문헌을 찾아봤을 터이니, 음모론 연구의 미진함은 더 잘 검토했으리라 믿습니다. 이와 같은 사정은 이 책의 권말에 실린 참고문헌에서도 드러나는 듯합니다. 국내 논문이나 저서는 참고문헌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고 나니 책을 읽는 태도가 꽤나 달라졌습니다. 마음 놓고 어디에 인용은 못하더라도, 동료 평가가 이루어진 다른 문헌으로 갈 수 있는 통로는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책을 다 읽고 정리를 하다가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음모론이란 무엇이며, 사람들은 왜 음모론에 빠지는지 크게 두 가지를 파악하고 싶었습니다. 앞의 3개 챕터를 활용해 책의 1/3에서 그것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음모론의 역사나 유형론은 이미 잘 알고 있었던 내용인지라 그리 주목할 만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두 개의 챕터를 활용해 대처법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이 역시 흥미를 끌진 못했습니다. 제가 봤을 때 음모론에 빠진다는 건, ‘환원불가능한 열가소성 플라스틱의 성형’과 다름없습니다. 다시 녹여서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무언가를 논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정의 definition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이론적 정의 theoretical definition가 그것인데요, 지금부터 우리가 다루는 그 용어는 이런 뜻이라고 선언하는 것이죠. 이 책의 첫 번째 챕터의 제목이 <1 음모론이란 무엇인가>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책, 제대로 정의 내리지 못합니다. 22쪽에서 뜬금없는 표가 하나 나오고 말죠. 여기서 저는 짜증이 폭발하고 말아서, 한국학술지인용색인 홈페이지를 뒤져보게 된 것이죠. 그 결과는 참담했지만 말입니다. 여하튼 저자가 정리한 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이클 바쿤 Michael Barkun에게서는 하나의 ‘세계관 worldview’이란 개념을 가져온 듯하며, 칼 포퍼 Karl Popper에게서는 개인 또는 집단의 의도된 ‘설계 design’라는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며, 캐스 선스타인 Cass Sunstein과 에이드리언 버뮬 Adrian Vermeule에게서는 ‘그들과 우리’라는 도식을 빌려온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마이클 바쿤 Michael Barkun의 저서와 장 니콜라 보르들로 Jean-Nicolas Bordeleau의 저서에서 일부 내용이 덧붙여진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이런 식의 ‘정의’로는 당최 납득이 되지 않아서, 충북대학교 정치학과 정태일 교수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정의를 살펴봤습니다. 그제야 좀 마음이 놓였습니다.
음모론은 사회현상의 근본적인 발생 원인에 대한 국가와 정부의 관점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의도적으로 불신되는 현상을 말한다.
- 정태일, 「한국정치에서 음모론과 선거의 연관성: ‘장준하 사망’, ‘광주민주화운동’, ‘천안함 침몰’을 중심으로」, 『한국과 국제사회』 2017, vol.1, no.1, 통권 1호 pp. 8쪽.
정태일에 따르면, “음모론은 그 사회에서 국가와 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신에 대한 일종의 반발이자 저항”인데, “국가와 정부의 원인규명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하여 이에 대한 새로운 원인규명을 요구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 보니 “음모론은 보편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수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부연합니다. 그리하여 “정치권력의 획득과 반대편의 정치세력에 대한 견제 용도로 작동하는 경우가 보편화”된다고 덧붙입니다.
또한 저자는 음모론이 “개인의 심리적 욕구와 사회적 조건, 역사적 경험이 결합한 복합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신봉자들에게 강한 자부심과 소속감을 제공”함으로써 “단순한 설명을 넘어 정체성과 공동체성의 기반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불확실하고 복잡한 사회 속에서 개인과 집단이 현실을 해석하고 대처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때로는 심리적·정치적·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이 되기에 하나의 세계관이라고 본 것이겠지요.
여기서 저자의 흥미로운 진술이 눈에 띕니다. “사회가 불안정하고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세상을 단순하게 설명해 주는 서사를 원하기 마련인데 그 역할을 음모론이 대신 수행한다”고 말합니다. 영국의 젊은 신경과학자 레오르 즈미그로드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일종의 내러티브”라고 말하면서, “이데올로기 집단은 사회문제에 대한 절대적이고 유토피아적인 해답이나 엄격한 행동 규칙을 제공하며 이를 헌신적으로 실천하게 만듦으로써 집단 내부의 사고방식을 구축한다”고 부연합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지적, 그러니까 “이데올로기는 근대에 새로이 등장한 자연법칙 종교” 말까지 합치고 나면, 어떤 신념에 기반한 세계관이란 정의까지 확장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렇게까지 정리를 해 놓고 나서야, 두 번째 챕터의 책장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이데올로기 ideology, 프로파간다 propaganda, 아지테이션 agitation, 데마고거리 demagoguery, 음모론 conspiracy theory은 서로 다른 개념이지만 몇 가지 공통적인 구조적 특징을 공유합니다. 핵심적으로는 ‘정치적 동원’과 ‘인식의 조직화’라는 연결점을 드러냅니다. 이들은 '현실을 해석하는 단순한 서사'이자 '도덕적 서사'를 제공하며, '우리와 그들'이란 적대적 구도를 만들어 냅니다. 이때 '감정'을 동원하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그렇다 보니, 카스 뮈더가 설명하는 포퓰리즘 서사 역시 여기에 맞닿게 됩니다. 따라서 이들의 공통점을 진화심리학이나 인지심리학 등 심리학적 관점에서 고찰해 보면 무척 많은 부분이 겹친다는 점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사람들이 음모론에 빠지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좀 중구난방입니다. 상당히 아쉽습니다.
45쪽
‘거짓 경보 false positive’는 틀리더라도 안전한 선택이었기에 뇌는 실제보다 위협을 과장해 감지하는 방향으로 발달했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이 오늘날 복잡한 사회에서는 ‘과잉 해석’으로 작용해 존재하지 않는 음모나 의도를 만들어내게 된다.
진화인류학자 조지프 헨릭 Joseph Henrich은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과잉 해석’을 하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저 바람소리일 뿐’이라고 미탐지 false negative하는 것보다는 ‘포식자일 수도 있다’며 오탐지 false positive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과잉 해석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아무래도 저자는 헨릭의 이론에서 확장해 ‘불확실한 것에 대한 과잉 해석’으로 음모론에 접근하게 된다고 본 듯합니다.
46쪽
현실의 사건들은 대개 다양한 요인과 배경 속에서 일어나지만 음모론은 그것을 단 하나의 설명 즉 ‘그들의 계획’으로 단순화한다.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고 명확한 원인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은 인간의 인지적 특성과 깊이 맞닿아 있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선 아리 크루글란스키 Arie Kruglanski의 인지적 종결 욕구 need for cognitive closure을 동원합니다. “불확실한 상태를 빨리 정리하고 싶은 심리”로 인해 음모론에 끌리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이외에도 데이비드 버스 David buss의 차이 탐지 적응 difference-detecting adaptation도 가져와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 적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타인의 건강, 기분, 지위, 태도 등을 파악하는 능력이 진화했다고 보는 버스의 견해 역시 음모론에 빠지게 되는 이유로 설명됩니다. 또한 마티 헤이즐턴 Martie Haselton의 오류 관리 이론 error management theory, 그러니까 가장 불리한 상황을 보수적으로 회피하려는 심리도 빼놓기는 어렵습니다.
51쪽
내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느낌,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진실을 꿰뚫고 있다는 확신이 안정감을 준다. 이것은 통제력을 잃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확신일지도 모른다.
인지과학자 레오니드 로젠블릿 Leonid Rozenblit과 프랭크 케일 Frank Keil은 설명 깊이의 착각 Illusion of Explanatory Depth이란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실제로는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꽤나 잘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특히 정치, 사회 문제처럼 복잡한 분야에서 ‘나는 그 본질을 파악했다’는 우월성 착각 Illusory Superiority이 자기 효능감을 고조시키면서 꽤나 높은 인지적 만족감을 줍니다. 이 메커니즘은 극우 포퓰리즘이나 음모론 또는 컬트 집단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심리학자 애런 케이 Aaron C. Kay 등이 발전시킨 보상적 통제 Compensatory Control 이론도 설명을 강화하는데 동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개인적 통제감을 잃을 때, 외부의 질서나 권위를 더 강하게 믿음으로써 통제감을 보상하려 합니다. 이때 음모론이 강력한 도구로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죠.
55쪽
내집단 편향이란 내가 속한 집단을 선하고 옳다고 믿는 경향이다. 반면 외집단 동질화는 ‘그들’은 전부 똑같고, 악의적이며, 믿을 수 없다고 여기는 심리다. 음모론은 이 두 가지 감정을 자극한다.
46쪽
음모론은 ‘반증 불가능성’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과학은 사실을 검증하고 반박하면서 진보한다. 하지만 음모론은 어떤 반론이 제시되더라도 그것 자체를 또 다른 ‘조작의 증거’로 해석한다. 과학 철학자 칼 포퍼 Karl Popper는 ‘반증 가능성’을 과학과 비과학을 구별하는 핵심 기준으로 삼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음모론은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일종의 종교적 신념 체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확증편향 confirmation bias, 의도성 편향 intentionality bias, 비례성 편향 proportionality bias, 패턴 과잉 인식 patternicity, 이력현상 Hysteresis 등을 설명에 동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로 설명을 대체하고자 합니다.
음모론에 빠진다는 건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구워낸 도자기를 점토 상태로 돌리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뇌과학자 레오르 즈미그로드는 “한번 이데올로기가 각인되면 모래에 그린 그림과는 달리 지우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음모론 역시 그렇겠고요. 즈미그로드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 뇌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무언가를 쉽게 배우는 대단한 기관”이라서, “교조적 체계에 푹 빠지면 몸은 기꺼이 그것에 따르는 경직성을 받아들인다”고 부연합니다. 마치 ‘築城三年、落城一日’이란 일본어 관용표현에서처럼, 음모론에 빠지게 되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죠. 그러고 나서 다시 성을 쌓으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죽기 전에 다 쌓지 못할 수도 있고요.
204쪽
하지만 아버지는 곧 “단지 타이밍이 틀렸을 뿐”이라며 여전히 모든 예측이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이라 믿었다.
게다가 심리학에서는 동기화된 추론 motivated reasoning에서 시작해, 인지 부조화 해소를 거쳐, 정체성 보호 인지 identity-protective cognition에 이르게 되면 역화효과가 발동한다고 봅니다. 쉽게 말해, 내가 틀릴 리가 없으니 네가 틀렸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음모론에 빠진 이들에겐 답이 없게 됩니다.
220쪽
브랜던 나이한 Brendan Nyhan과 제이슨 라이플러 Jason Reifler의 연구에서는 정치적 음모론 신봉자 상당수가 반박을 접하면 오히려 기존의 신념이 강화되는 역효과 backfire effect를 보였다. 정체성에 기반한 신념을 수정하는 과정이 곧 자기 존재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다른 연구들은 이를 “정보의 충돌이 아니라 정체성의 충돌”이라고 설명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음모론에 맞서는 5가지 전략”에서 현실성을 포착하기 어렵습니다.
프리벙킹 Prebunking, 스트리트 에피스테몰로지 street epistemology,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제도적 대응 알고리즘 규제와 플랫폼 책임 강화, 심리적 개입 공감과 정체성 접근과 같은 제언들은 상당히 공염불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