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실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가이드북
2016년이 시작이었던 듯합니다.
사실에 기반한 경험적 증명보다는 이미 믿기로 마음먹은 신념을 판단의 근거로 삼고 있던 당시의 극우세력에 대한 강한 혐오는 강력한 귀인 attribution을 요구했습니다. 도대체 이 인간들은 ‘왜’ 그렇게까지 어리석은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는 거죠. 다만 이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진지한 노력은 2022년이 되어서야 가능했습니다. 게을렀던 거죠.
최근 몇 년 사이, 정치철학을 비롯해 인지심리학과 사회심리학 관련 서적이나 논문 그리고 이를 활용한 정치학 서적에 천착했었습니다. 이 책 역시 그 연장선 상에 놓인 책입니다. 음모론, 가짜뉴스, 허위정보, 사이비종교 등 대체로 그 설명에 같은 인지심리학 이론을 동원하게 되는 여러 현상들을 살펴보니, 종국에는 탈진실에도 이르게 됐네요. 그리하여 대체로 왜 그런가를 이해할 수는 있게 됐는데, 이를 타파할 ‘답이 없다’는 회의론에 빠지게도 됐습니다.
특히 작년 연말에 읽었던 해리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 On Bullshit』는 이 책에서도 인용하고 있는데요, 짧고 간명한 설명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이 책과 함께 일독을 권해볼 만하다 생각해 봅니다. 프랭크퍼트가 책임지고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언론인이나 정치인이 그 사실 여부에 개의치 않고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는 걸 '개소리 bullshit'라고 정리했던 것처럼, 매킨타이어는 그 언론인이나 정치인이 뻔히 거짓인 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이익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활용하는 상황을 탈진실 post-truth라고 정리합니다.
Post-truth
Contention that feelings are more accurate than facts, for the purpose of the political subordination of reality.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포스트트루스였고, 이로 인해 이 단어는 제법 유명해졌습니다. 이때 트럼프가 입만 열면 떠벌려대던 가짜 뉴스 fake news라는 말도 함께 유행했었죠.
옥스퍼드 사전에서는 "relating to circumstances in which people respond more to feelings and beliefs than to facts", 케임브리지 사전에서는 "relating to a situation in which people are more likely to accept an argument based on their emotions and beliefs, rather than one based on facts", 또 콜린스 사전에서는 "of or relating to a culture in which appeals to the emotions tend to prevail over facts and logical arguments"이라 풀이합니다. 품사가 형용사라는 건 함정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을 취합해 보자면, ⓐ사실 fact보다는 ⓑ감정 feeling/emotion이나 신념 belief이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 맥킨타이어의 용어집 속 정의, 그러니까 “현실의 정치적 종속을 목적으로 감정이 사실보다 더 정확하다는 주장”도 녹여낼 수 있을 듯합니다. 맥킨타이어는 명사로 사용했다는 점과 ‘정치적 목적의 개입’이란 점은 의미 있는 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Thus post-truth amounts to a form of ideological supremacy, whereby its practitioners are trying to compel someone to believe in something whether there is good evidence for it or not. And this is a recipe for political domination.
“결국 탈진실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우월주의”라는 매킨타이어의 정리는 포퓰리즘을 규정하는 카스 뮈더나 종교를 바라보는 유발 하라리의 입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월주의를 장착한 사람들은 충분한 근거가 있든 없든 자신의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강제로 주입하려고 애쓴다”면서,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정치적 우위를 점하고자 한다”는 설명이 대중을 원하는 질서에 종속시키려는 수단적 이데올로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하여 “탈진실은 더욱 악랄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자기기만과 망상에 빠져 진실이 아닌 말을 진심으로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경우”라고 부연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대중의 반응이 ‘실제로’ 사실 여부를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쯤에서 음모론이나 사이비 종교 그리고 정치적 극단주의자의 멘탈리티로 이어지는 것이겠지요.
The selective use of facts that prop up one’s position, and the complete rejection of facts that do not, seems part and parcel of creating the new posttruth reality.
매킨타이어는 탈진실을 이해하기 위한 로드맵으로 과학부인주의 science denialism를 주목합니다. “새롭게 탄생한 탈진실 세계에서는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실만 선택적으로 이용하고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 사실은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 현실을 창조해 내는 핵심 수단이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말입니다.
과학은 사실 fact를 진실 truth로 받아들이기 위해 과학적 연구 방법론을 활용합니다. 주로 경험 증거 empirical evidence가 이를 담보하죠. 그리고 검증 방식으로 동료 평가 peer review를 거치게 됩니다. 그제야 이론 theory이 하나의 진실 truth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아직 반증불가능해서 “증거를 기반으로 보증된 ‘믿음 belief’에 불과하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이 공간을 과학부인주의자들이 파고듭니다. 과학부인주의자들을 다룬 오레스케스와 콘웨이의 책 『Merchant of Doubt』을 여러 차례 인용한 매킨타이어의 의도는 다음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을 듯합니다.
44쪽
“우리는 의혹을 팝니다(doubt is our product). 대중의 정신에 박혀 있는 ‘사실의 실체’에 맞서려면 의혹만 한 게 없기 때문이죠.”
Succumbing to cognitive bias can feel a lot like thinking. But especially when we are emotionally invested in a subject, all of the experimental evidence shows that our ability to reason well will probably be affected.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대체로 동원되는 인지심리학 이론이 몇 가지 있습니다. 매킨타이어는 탈진실의 뿌리에는 인지 편향 Cognitive Bias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인지 편향에 굴복하는 과정도 하나의 사고 과정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우리가 특정한 주제에 감정적으로 몰두한 경우 올바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영향을 받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부연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사실을 믿고 싶다는 의지를 이미 가지고 있다면, 게다가 우리 주위 사람들마저 그 사실을 믿고 있다면, 아주 사소한 자극만으로도 우리는 그 사실을 믿게 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또한 매킨타이어는 프로이트 심리학의 자기방어기제를 시작으로, “사회심리학 역사상 유명한 세 가지 고전적 발견 Three Classic Findings from Social Psychology”이라면서,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 솔로몬 애시의 집단 동조 이론, 피터 웨이슨의 확증 편향을 설명합니다. 대체로 정치적 극단주의자, 음모론자, 컬트 신도 등의 멘탈리티를 설명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이론들입니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부정하는 사실 fact을 접하게 되면 괴로운데(인지 부조화), 이를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증거만 선택(확증 편향)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때 주변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는 것에 휩쓸리는 경향(집단 동조)이 있다는 거죠. 여기에 확증 편향을 좀 더 설명하기 위해 리처드 세일러와 같은 행동경제학자나 대니얼 카너먼, 애모스 트버스키와 같은 인지심리학자들의 이론도 소개합니다.
매킨타이어는 위의 이론들 말고도 크게 세 가지 심리학 이론을 더 가져옵니다. 의도적 합리화 motivated reasoning, 역화 효과 backfire effect, 더닝-크루거 효과 Dunning-Kruger effect가 그 셋입니다.
매킨타이어의 요약에 따르면, 의도적 합리화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사실이 실제 진실을 인식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으로, “인지부조화를 겪는 사람은 자존감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불안감을 줄이고자 자신의 감정을 진실에 맞추기보다는 비합리적이게도 자신의 믿음을 감정에 맞추려고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의도적 합리화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믿음을 마음껏 비틀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정신 상태”인 반면, 확증 편향은 “이미 믿고 있는 사실을 확증하는 방향으로 정보를 해석함으로써 그러한 정신 상태를 실현시키는 메커니즘”이란 차이가 있다고도 부연합니다.
역화 효과는 말 그대로 ‘맞불’과 같은 효과를 말하는데, “열성적인 정당 지지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반하는 증거를 맞닥뜨리자 증거를 부정하고 잘못된 신념을 계속 고집”하면서 그 신념을 강화하게 되는 효과를 말합니다.
더닝-크루거 효과는 “저능한 사람이 자신의 저능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과 관련된 인지 편향”이라고 설명합니다. 더닝과 크루거의 실험 결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로 메타인지 능력과 관련된 것으로, “너무 멍청해서 멍청한 줄도 모르는 현상”이라고 매킨타이어는 단순화합니다. 물론 “모든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더닝-크루거 효과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습니다.
By allowing “equal time,” the media only succeeded in creating “false equivalence” between two sides of an issue even when there were not really two credible sides.
매킨타이어는 오늘날 언론이 봉착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계적 중립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는 믿을 만한 양쪽 입장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주제를 다룰 때도 ‘동일 시간 배분’의 원칙을 따르느라 양쪽 입장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성‘을 지키게 되었다”점이라고 지적합니다.
17세기 근대적 기획으로 시작된 언론산업은 대체로 당파성에 기반을 두고 편파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그 결과 19세기 후반 황색언론의 시대에는 가짜뉴스로 전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고 부연합니다. 그 예가 미국-스페인 전쟁이라고 말이죠. 그리하여 20세기 미디어 이론은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기계적 중립을 선택하게 됐다고 매킨마이어는 설명합니다. 책의 말미에 수록된 정준희의 해제에서도 같은 맥락의 지적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How ironic that the Internet, which allows for immediate access to reliable information by anyone who bothers to look for it, has for some become nothing but an echo chamber.
소셜미디어가 가져온 역설, 그러니까 “누군가 수고를 들여 발견한 믿을 만한 정보를 즉시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반향실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건 매킨타이어만이 아닙니다. 인지 편향에 의해 소셜미디어의 필터버블은 강화되고, 그 결과 반향실에 갇히게 된다는 우려는 정말 많은 이들이 지적합니다.
반향실은 어디에나 항상 존재하며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신문이나 편향을 드러내는 텔레비전 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이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긴급하며 훨씬 해로울 수 있다. 조금은 반직관적이지만 이렇게 된 이유로는 우리가 인터넷에서 수용하는 정보가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역설적인데, 우리는 인터넷이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허용하며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접하지 못했던 수많은 목소리를 들려준다고 순진하게 생각한다. 확실히 이는 신흥 기술을 수용하던 인간의 의기양양한 낙관론이었다.
-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페이크와 팩트』. 김보은 옮김, 디플롯. 2024년, 356쪽.
가령 신문 구독자들은 신문기사 제목이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할수록, 그 기사를 비중 있게 여기고 열심히 읽는다. ‘필터 버블 filter bubble’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소셜미디어가 사용자들에게 편향된 뉴스를 제공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디지털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필터 버블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악화시켰을 뿐이다.
- 슈테판 클라인, 『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 유영미 옮김, 서울: 어크로스, 2026년. 128쪽.
인터넷은 고립된 개인들이 서로 관여하고, 더 큰 움직임의 일부를 느낄 수 있게 하는데,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동질적인 소셜미디어에서 익명으로 활동하면서 그들의 극우적인 생각에 대해 필터링을 거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러한 소셜미디어들은 또한 반향실 echo chambers의 기능도 하는데, 이는 메시지의 도달 번위와 강도를 증폭시켜 새로운 추종자들을 끌어들이고 기존의 추종자들을 좀 더 급진적으로 변화시킨다.
- 카스 무데,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권은하 옮김, 경기도 고양; 위즈덤하우스, 2021년. 157쪽.
트위터와 같은 형태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민주주의를 아주 제한적으로만 지원할 뿐이며, 동시에 반민주적 목적을 위해 너무나 손쉽게 악용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악용이 실제로 일어난 경우에도 ‘생각의 시장’이라는 신화적 담론은 이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X는 고도로 비민주적인 구조에 ‘민주주의’라는 보기 좋은 허울을 씌우고 있다.
- 사라 스테인 루브라노, 『정치는 말로 설득되지 않는다』, 이혜경 옮김, 서울: 북플라자, 2025. 190쪽.
우리의 동료 본능은 주거 공동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당파성 “거품”을 일으켰다. 이 거품은 우리의 의견을 재확인해 주는 뉴스와 의견을 가진 동료들로 우리를 둘러싸고, 반대되는 관점으로부터 절연시킨다. 게다가 이 거품은 에코 효과를 내는 反響室이 되어 순응적 표현을 촉진하고 동료의 지지 반응을 제공한다. 이런 순응 학습과 순응 행동의 사이클로 인해 공화당과 민주당 내부의 합의는 공고해졌고 양당 사이의 간격은 넓어졌다.
- 마이클 모리스, 『집단본능』, 전미영 옮김, 부키, 2025. 326쪽
Even if right-wing politicians and other science deniers were not reading Derrida and Foucault, the germ of the idea made its way to them.
이 작지만 훌륭한 매킨타이어의 저작에서 도무지 동의하기 어려운 챕터가 하나 있다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을 포스트트루스 현상의 철학적 배후로 지목하는 제6장이 될 듯합니다. “보수 진영 정치인들과 그 밖의 과학부인주의자들이 데리다나 푸코를 직접 공부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들 사이에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는 현상적 지적까지는 동의할 수 있겠지만, 포스트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을 동일시하는 것에는 적잖은 반감이 생기고 맙니다. 자크 데리다, 자크 라캉,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와 같이, 탈중심/해체를 중심이론으로 포스트구조주의의 이론적 도태를 만들고, 이후 미셸 푸코에 의해 심화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을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에서 “객관적인 진실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첫 번째 논지와 “누군가 어떤 진실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정치적 이념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두 번째 논지로 단순화할 수 있다는 매킨타이어의 주장에는 고개를 젓게 됩니다. 포스트구조주의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구조주의적이진 않다’는 말 그대로의 범주화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In an era of post-truth, we must challenge each and every attempt to obfuscate a factual matter and challenge falsehoods before they are allowed to fester.
대체로 모든 책의 말미는 앞으로의 대책이나 대응 행동 요령을 설파하곤 합니다. 이 책이라고 다를 리는 없어서, 마지막 제7장에서는 “탈진실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사실 문제를 모호하게 만들려는 그 어떤 시도에도 의문을 제기해야 하며 어떠한 거짓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매킨타이어는 “어떤 주장이 아무리 터무니없다고 할지라도 아무도 믿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합니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이유는 그 가짜뉴스를 기꺼이 믿어줄 사람들이 있고, 그렇기에 그로 인해 이득을 볼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편한 진실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도 말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바로 “탈진실이든 선진실이든 진실을 무시하는 태도는 정말로 위험”하니, 거짓에 맞서 싸워줄 것을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