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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Oct 28. 2021

[북리뷰] 이시바시 다케후미_『서점은 죽지 않는다』

백원근 옮김, 2013, 시대의창. "1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은 숙제"

1. 책방지기는 죽지 않는다.


 이 책의 원제목은 “本屋はしなない”이다.

 2013년 번역된 이 책은 표지가 한 번 바뀌었는데, 이는 작가의 다음 책인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유유출판사, 2021)"의 서문에서 그 의문이 풀린다.

 작가는 혼야(本屋)와 쇼텐(書店)의 차이를 역설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목에도 굳이 중의적 의미로 혼야를 썼는데, 그저 서점으로 번역된 게 속상했다는 것이다.

 일본어의 “야(屋)”는 전문적인 직업으로서의 상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직업을 행하는 사람의 의미도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긴타마(銀魂)”에 나오는 요로즈야나, 드라마 “불편한 심부름센터(不便な便利屋)”에 나오는 벤리야 역시 중의적으로 사용된다. 혼야도 마찬가지로, 책방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 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주인을 말하기도 한다. 

 엄혹한 시기에 혼야(책방)를 지켰던 혼야(책방지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열심히 썼는데, 난데없이 쇼텐(書店)이란 장소로 둔감했으니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는가?


 이 책이 출간된 2011년 일본의 출판계와 서점계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우리나라라고 별다르진 않았지만 말이다.

 한일 양국에서 2000년대 후반에는 온라인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에서 과당경쟁이 이어졌고, 그리하여 합종연횡이 계속되는 난국에 빠졌었다. 여기에 아마존과 킨들이라는 플랫폼으로 전자책이 등장하면서 종이책 시장에는 “종이책의 종말”과 같은 저주가 쏟아지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등장한 책이라서, 제목이 사뭇 비장했던 것이다.


 10년 전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동네서점들의 우울한 현실이 미화되지 않고 잘 풀어졌었다. 터무니없이 활기찬 캔디의 '괜찮아 잘 될 거야'도 아니었고, 역설적 제목의 비관론도 아니었다는 점이 좋았다. 그저 사양산업에서 길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현실을 견뎌내는 방식들을 담담하게 풀어나갔을 뿐이었다.

 지금 서점가가 맞닥뜨린 엄혹한 현실은 변함이 없다. 도서정가제는 불완전해서 작은 서점들에겐 제대로 도움이 되지 않고, 출판계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일반인들 중에는 “탐욕의 도서정가제를 폐지하라”는 구호가 난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풀어내지 못하고 10년을 넘기고 있는 문제들이 아주 많이 보인다. 



2.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들


가. 책방지기는 책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어야 할까?


34쪽 
책에 대해 많이 안다? 그것만으로는 이미 아마존의 검색을 당해낼 수 없어요. 누구든 잡아끌 수가 있어요. 제아무리 서점원이 책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한들 의미가 없어요. 


165쪽 
“가장 집중했던 시기에는 한 달에 90권 정도였습니다. 교대로 늦게 출근하는 날에는 새벽 3시 반쯤 일어나 출근할 때까지 세 권씩 계속 읽었습니다. 물론 다른 장르의 책은 전혀 읽지 않았습니다. 생선집 주인이 자기가 진열해 파는 생선의 맛이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조리법을 설명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본은 똑같다고 봅니다.”

 

 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책방지기라고 해도 책방을 운영하면서 그 많은 신간들을 다 읽을 시간은 없다. 

 노동집약적 영세 자영업인 책방이란 곳은 그 책방지기에게 말도 못하게 높은 노동하중을 부여한다. 책을 읽어보지도 못하고 서가에 꽂아야 하며,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바리스타로도 변신해야 하며, 짬이라도 날라치면 인스타그램에 홍보 피드를 올리는 광고기획자로 변모하길 강요한다. 그렇다 보니 읽어보지도 못한 책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100여년 전 헌책방에서 일했던 영국의 한 작가는 이와 같은 서점인의 생활에 대해, "서적상은 책에 대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책이 싫어지게 된다"고 평하기도 했다.

 팔리는 책과 갖추고 싶은 책이 거리가 멀수록, 책방지기가 책에 대해 알 수 있는 깊이는 더 얉아질 수밖에 없다. 10년전과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계속되는 숙제일 수밖에 없다.



나. 책방의 서가는 어떻게 꾸려져야 할까?

151쪽 
주목받지 못하던 책을 팔리는 책으로 만드는 기획판매를 곧잘 해낸 이토와 같은 서점원의 성과를 도매상이나 출판사는 POS 시스템의 데이터를 통해 곧바로 파악하고, 이를 전국적인 판매로 연결시키는 수법이 차츰 확산되고 있다. 유통과 판매를 제어하는 쪽에서 보면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런 시스템에 이용될 뿐인 곳으로 이토가 되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73쪽 
서점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책들로만 서가를 꾸민다고 해서 책이 잘 팔린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지난주 베스트셀러’ 서가 쪽이 더 잘 팔릴지도 모릅니다.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에서 출판한 “구글 문제의 핵심”에서 저자는 구글의 페이지구현 방식은 미인 투표와 같다면서, 그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읽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201쪽
진열된 책들을 보면 이 서점 나름의 독자적인 분야와 주제별 구성이 뚜렷하다. 이른바 베스트샐러는 거의 비치되어 있지 않다. 서가를 보면서 새로운 발견을 하도록 하는 것이 이 서점의 매력이다.
독자와 서점의 요구는 곧잘 괴리된다. 10년에 한 권 팔리는 책을 독자가 발견하면 기쁘겠지만, 서점엔 의미없다.


 요즘엔 대형서점인 교보문고도 북큐레이션을 한다. 중규모의 지역서점만큼 구색을 맞출 수 없는 코딱지만한 동네책방에겐 북큐레이션은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가를 꾸리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잘 팔리는 책과 좋은 책의 괴리, 그리하여 독자가 원하는 책과 서점 운영을 가능하게 해 주는 책 사이의 괴리를 종종 만나게 될 테다.

 "서가에 없으면 없는 거예요"를 말할 수밖에 없는, 동네책방의 부실한 서가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대체제가 될 수 있는 도서를 제안하는 북큐레이션이어야 할 테다. 문제는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전문서점을 표방하는 건 서울이나 경기 정도의 인구 밀집지에서나 가능하다. 서울면적에 인구 4만이 사는 시골에서 읍내에 둘 있으면 다행인 서점들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아니라서 말이다.

 몇몇 유동인구가 많은 관광지에선 가능할 수도 있겠다. 인구에 비해 터무니없이 동네책방이 많은 제주도의 전문화된 구도 정도라면 말이다.  



다. 책방도 장사다!


115쪽
"점장이 월급이 없어요. 다시 말하자면, 인건비가 제로다 이거죠, 우리 서점은 인건비가 들지 않는다, 이 말씀... 어때?


118쪽 
이하라 마미코가 반복해서 말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장사인지, 지역을 위한 봉사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하라는 서점을 장사로 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지역 사람들은 이하라를 그런 존재로 보지 않을 때가 많다. 


148쪽
"저축한 돈을 털어서 대고 있어요. 앞으로 계속 해나갈 수 있을지 기운이 빠지기도 해요."
"책이 좋아서 서점을 하고자 했는데, 단지 책을 좋아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제가 주인공이지만, 책을 팔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고객이 주인공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


 브로드컬리에서 2016년 출간한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에서 줄기차게 묻는 질문이었다. 책 팔아서 먹고 살 수 있느냐고 말이다. 오기로라도 책만 팔아 먹고 살아보련다고 대답한 사람도 있고, 커피 따위 안 팔고 버텨보련다고 답한 사람도 있었다. 그 오기와 패기가 5년쯤 지나자 노련함으로 바뀌었다는 게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선 위안이 되기도 했다. 

 소규모 자영업은 "인건비 제로"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망했다고 보면 된다. 대표적인 1인 영세 사업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동네책방은 말 그대로 "자기 인건비 버는" 사업이라서 말이다. 그걸 해내지 못하면 사업을 계속 영위하기 어렵다. 이 숙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책방의 숫자도 여전한 듯하다.



라. 도서정가제가 문제인가, 공급률이 문제인가?


역시 마진율이 문제입니다. 어떻게든 25%는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수입원도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문화교실을 운영해 왔지만, 수강자를 확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거래처 매입, 잡화, 문구, 중고책, 어느 것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2001년부터 완전도서정가제를 시행했고, 우리나라는 2014년부터 현행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책방 주인들이 쓴 책이나 인터뷰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가 바로 도서정가제 문제와 공급률 문제였다. 책도매상으로부터 책방에 공급되는 책의 원가가 70%~85%가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설마 그렇게까지 높겠냐 다들 혀를 내두를 뿐이다. 85%에 공급된 책을 10% 할인하고, 5% 적립해서 판매한다면 책방의 이익은 0이 된다. 임대료와 유지비 그리고 인건비를 들여가면서 책을 파는데, 이문이 0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면 장사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렇다 보니 책방지기들이 피토하듯 내뱉은 말은 항상 이 두 가지로 귀결된다. 완전도서정가제 시행과 대형서점과 차별되는 공급률의 공정화.

 그런데... 이게 일반 소비자에게는 저항이 크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사서 읽으려면 책값이 싸야 할 것 아니냐는 무척 단순하고 무식하며 지랄맞은 의견이 꽤나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중고서점까지 참전하게 되면, 단무지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게 된다. 

 책방지기들 입장에선 속이 뒤집어질 개소리일 테지만, 지금도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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