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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May 03. 2022

[북리뷰] 박지현_나의 포근했던 아현동

경기도 고양시: 2022, 아홉프레스. "조악하지만, 포근한"

1. 아현동 아니고 북아현동


2021년 <퍼블리셔스 테이블> 행사에서 이 책을 처음 만났다. 

그 때 저자와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무언가 접점이 뒤틀렸더랬다. 그렇다. 나는 아현동을 이야기했고, 저자는 북아현동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1944년 경성부 서대문구는 마포구로 분구가 이루어진다. 이때 아현정은 마포구로 넘어가고, 아현정 위쪽의 북아현정은 서대문구에 남게 됐다.

해방 이후 행정구역명 정비를 통해, 정(町)을 동(洞으)로 바꾸고 왜색이 짙은 지명은 다시 작명하게 됐다. 다케조에(竹添)초는 충정로가 됐고, 북아현정은 북아현동이 됐다. 마찬가지로 마포구 아현정은 아현동이 됐다. 

애초부터 아현동과 북아현동은 태생이 다른 동네인데, 북아현동을 아현동이라 이르면 답이 나오질 않는다.

마포구 아현동은 아현역과 애오개역에서 언덕을 타고 올라가면, 정상에서 염리동과 동계를 맞대게 된다. 범죄예방을 위한 공공디자인으로 채색됐던 소금길로 유명했고,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의 저자인 송은정이 책방 <일단멈춤>을 운영하기도 했던 동네였던, 염리동 말이다. 지금은 죄다 밀리고 아파트가 올라간 상태다. 

염리동이란 동명이 생각나지 않아 ‘고개 너머 동네’로 이야기를 했지만, 북아현동 사람에겐 냉천동에 대한 이야기로 들렸을 테다. 그때의 미묘한 어긋남의 정체를 이제야 깨닫게 됐다.


그에 비해 북아현동의 재개발은 더딘 편이다. 신촌로 주변으로는 재개발이 완료되었지만, 충정로3가를 타고 올라가 냉천동으로 넘어가기 전의 옛 금화시민아파트까지 이르는 동네하며, 그 건너편 사면으로 펼쳐지는 북아현동까지 여전히 재개발은 난항을 겪고 있다. 대화가 술술 맞아 떨어질 리가 없던 것이다.

2014년 1월 금화시민아파트에서 바라본 북아현동과 아현동의 모습. 앞쪽이 북아현동, 고층아파트 건설이 한참인 곳이 아현동


2. 엉터리 vs 있는 그대로


 애오개는 조선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지명이다.

 일설에는 마포로 넘어가는 대표적인 고갯길인 만리재에 비해 크기가 작아서 ‘애고개’라 불렸다고도 하고, 다른 설명에선 도성 안 유아 사망자의 장지로 자주 쓰이다 보니 ‘애고개’가 되었다는 설명도 있다. 어떤 것이 정확한 설명인지는 워낙 오래된 구전들이다 보니 확인하기 힘들다. 다만 아주 오래전부터 애오개란 지명이 존재했고, 그걸 한자로 변환한 것이 阿峴이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전쟁 직후 애기들의 시체를 이 고개에 묻도록 해서 지어진 이름인데”와 같은 엉터리 설명은 지명의 유래만 확인해 봐도 쓸 수 없는 문장이다. ‘전쟁’이 임진왜란을 말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한국전쟁 이전에도 이 동네는 번화한 주택지였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더 많은 인구가 밀려들어온 곳이였다. 아무리 가볍게 쓴 에세이라곤 해도, 너무 엉터리란 지적을 피하긴 어렵겠다.

다만, 부정확한 정보 속에서 아이들만의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민담구조의 토착화의 좋은 예라고는 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프로프의 민담형태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민담에는 정형성을 띄는 구조요소들이 존재한다. 그런 구조요소들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는데, 특히나 향토적 특성에 맞게 취사선택된다. 소위 ‘학교전설’로 떠도는 민담의 형태 분석을 해보면, 북아현동과 아현동 일대에서 꽤나 유사한 이야기들이 모집될 테다.

그렇다 보니,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펼쳐 보이는 구전(口傳)은 있는 그대로 쓰여짐으로써 더 의미가 클 수도 있겠다. 다른 지역에서 자랐지만 비슷한 경험을 가진 독자들에게 자신의 지역적 특색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테니 말이다.


3. 3판 1쇄

 가장 놀라운 사실은 1인출판사, 심지어 작가, 편집자, 편집디자이너를 혼자서 다 하며 만든 책이 6쇄까지 찍고 있다는 점이다.

 문학적 감수성이라고 1도 느낄 수 없는, 그리하여 절대 칭찬할 수 없는 문장을 시작으로,  스마트폰으로 찍고 보정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은 사진으로 연속되는 아마추어적인 편집은 물론이요, 이마를 치게 만드는 조악한 편집디자인까지 헛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피식 웃음을 짓게 된다. 순진무구함 때문이다.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낸 “포근함”은 과거를 꽤나 ‘아름답고 순수한 그 무엇’으로 추억하고 있다. 미자 리의 『원주』에서처럼 흠칫 놀라 되짚어보는 상처 따윈 고민할 필요가 없이,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만을 떠올려 보면 된다. 

 무엇보다 행동반경을 ‘우리 동네’로 국한하면서 누구나 겪어봤을 일상적 체험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꽤나 편하게 읽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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