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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Oct 07. 2023

신문 기고문으로 책을 쓴다는 것

[북리뷰] 김인혜. 살롱 드 경성. 서울: 해냄출판사. 2023.

 1.      

이 책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조선일보』 주말판에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을 모아서 펴낸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연재물이 쌓이다 보니 책으로 묶였을 뿐이다.      

 서문에서 발견한 문장입니다. 이 책이 어떻게 해서 책이 되었는가를 짐작케 하면서, 앞으로 보여줄 글들이 어떤 모양새가 될지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기대가 앞서질 못하고, 어중간한 글을 만나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섰는데요, 슬픈 예감은 틀리질 않더군요.      


2021년 2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문학이 미술을 만났을 때》 전시가 열렸을 때, 전시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글로 풀어 주말판에 연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전시를 홍보해야 하는 큐레이터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재고의 여지도 없이 연재를 승낙했다.     

 목차를 살펴보다 보니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한 구성이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에필로그에서 확인된 문장으로 보건대 이렇게 시작된 거였더군요. 저자는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으로 재직했고, 올해 7월에 퇴직했다고 합니다.     


 저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무척 좋아합니다. 

 이 꺼림칙하면서 아름다운 미술관은 그 공간적 한계 때문에, 꽤나 세심한 큐레이션의 전시가 이루어지곤 합니다. 특히나 20세기 초반의 근대미술을 테마로 한 대중적인 전시나 작가 한 명의 충실한 회고전이 이루어지는 편입니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 풍부해지면서,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展이라던가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같은 감동적인 전시를 만날 수 있는 곳도 덕수궁관입니다.

 그런데 저처럼 학부시절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에게는 《문학이 미술을 만났을 때》와 같은 전시는 더 기억에 남기 마련입니다. 꽤나 신나서 관람했던 기억은, 책의 목차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 전시를 떠올릴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1장의 글들은 생동감을 가지고 머릿속에서 뛰어놀았습니다. 참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습니다. 2장은 그나마 저평가된 여성미술가와 부부미술가란 주제로 엮이다 보니 그럭저럭 읽혔습니다. 하지만 3장에 이르자 글들은 모래알처럼 응집력을 갖추지 못하고, 동어반복의 지루한 문장들만이 차별성 없이 펼쳐졌습니다. 왠지 이럴 것 같다 싶었는데요, 역시나더군요.           



2.

 연재 기고문을 엮어서 책을 쓴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큰 적은 나태와 오만입니다. 이미 써본 글이라는 오만과 그 과정에서 축적된 자료 조사로 인한 나태는 기고문의 분절되고 짧은 호흡과는 아주 다른 단행본의 호흡으로 바꾸는 작업을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논문을 가지고 대중서를 쓰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과정이기도 하죠. 꾸준히 쌓인 원고와 그 못지않게 쌓인 조사 자료는 금방이라도 책 한 권을 엮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만, 대체로 제대로 된 ‘책’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새로 글을 써야 한다는 그 귀찮은 작업에 돌입하기보다는 있는 원고들을 대충 범주화해서 무성의하게 묶는 일로 단행본 원고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책처럼, 안타까운 책들이 나오게 됩니다.

 1장에서는 문학 작가와 미술 작가 사이의 관계성을 살피기 위해서라도 전기적 사실을 살펴보는 것으로 맥락을 찾아내야만 하는 작업적 특성이 글에 반영되었다고 분석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2장에서는 부부라는 상호텍스트를 1장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리 유효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3장의 글들은 동어반복처럼 보이고 차별성을 획득하지 못해 표류하는 글이 돼버린 느낌입니다.


 같은 오류로 인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 책을 하나 꼽자면, 이근상의 『이것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책』을 자꾸만 떠올리게 됩니다.

 

 반면에 임태수의 《브랜드 브랜딩 브랜디드》와 같은 글에는 다음과 같은 리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여기저기에 투고한 글들을 다듬어 목차를 구성해 하나의 책으로 엮어냈다. 늘 내 머릿속에서 헝클어진 채로 부유하던 생각들이 임태수의 글에서 명확하고 차분하게 정착되어 있었다. 꽤나 반가우면서도 질투 나는 글이었다. 평상시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그렇게 정리된 생각을 통해 하나의 관통된 인식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전문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책을 쓴다는 것, 더 나아가 책을 엮는다는 것은 단순히 짧은 글들을 묶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좋은 편집자'를 만난다는 것이 출판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게으름을 피우는 저자를 닦달해서 제대로 된 책을 엮어내는 악역을 잘 소화해야 하니까요. 거기에 쓸데없는 군살은 쳐내면서 산으로 가려는 작가의 욕심도 잘 '캐리'하려면 '편집인으로서의 전문성'도 절실해집니다.

 그래서  작가와 편집자가 '조금만 더' 욕심을 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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