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몽스북. 2021. “이것이 과연 작은 브랜드를 위한 책?”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나갈 생각이라면 두 가지의 중요한 전제, 즉 ‘왜 작은 브랜드인가?”와 ’무엇이 작은 브랜드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할 필요가 있다. 모두 똑같은 해석을 할 필요는 없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며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여기까지 읽었을 때만 해도, 목차에서 느꼈던 불안감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절망하게 됐다.
“그렇다면 어떤 브랜드가 ‘작은 브랜드’인가? ‘작은’은 절대적 크기나 규모의 개념이 아니다. 상대적 개념으로서 ‘작은’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상대가 바로 ‘큰 브랜드’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 아닌 것’으로 개념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인 것’에 대한 개념이 선행하여 확립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끔 국어사전에서 보이는 순환논리의 상대적 개념 정립처럼, 실체를 규정할 수 없는 관념어로 휘발되어 버리고 만다. 이런 식의 논리는 종국적으로 ‘경계’의 문제로 회귀 되어서, 규정할 수 없는 경계의 아포리아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근대 관념론 철학에서 출발해 수많은 ‘정의 definition’를 내리며 살고 있다. 짐짓 그런 것이 있다고 믿고 논의를 시작해야만 유의미한 결론을 향해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브랜드가 아닌 것이 작은 브랜드”라는 뇌피셜을 이심전심, 염화미소로 전달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태도가 책에서 드러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저자 역시 아직까지도 이 문제에 대해 똑부러진 사고를 정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 너머의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길을 애써 찾아내는 과정에 있다 보니 그렇다.
“‘작은 브랜드를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좀 멋쩍긴 하지만, 작은 브랜드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출발점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그리하여, 이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책이 의미를 가지고 재밌게 읽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먼저 깃발 들고 앞서가는 자’의 어려움을 십분 이해한다. 학술적으로 접근한 것도 아니고, 경험칙에 근거한 몇몇 직관을 에세이로 ‘토해 낸’ 것뿐이다. 무언가 대단히 정돈된 무엇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저 짧은 글 하나하나에서 다음으로 전진할 수 있는 실마리를 줍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테다. 그런 면에서 이 토막글들의 집합체를 들여다보는 일은 꽤 의미가 있을 테다.
보통의 목차는 ‘편-장-절-조’의 위계를 갖는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1.-가.-1)-가)’와 같은 방식 방식이나. 로마숫자를 넣거나 알파벳을 넣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의 한 묶음’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범주화한다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4~5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에세이에 도비라(とびら. 중간표지) 한 페이지, 관련 이미지 두어 페이지를 붙여서 두서없이 37편의 글을 모아 놓은 것은 범주화라는 체계적인 ‘반추’가 없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때그때 되는 대로 써놓은 짧은 글들로, 그것들을 관통하는 일반적인 원리를 도출해내는 일은 불가능할 테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경향의 글들을 묶는 수고로움쯤은 감내할 필요가 있는데, 그마저도 방기하고 있다. 이건 저자의 게으름이나 편집자의 어리석음에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앞에서 한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하는 평가들이 뒤에 띄엄띄엄 나오는 것도 문제일뿐더러, 그리 멀지 않은 글에서 서로 배치되는 이야기도 서술되고 있다. 이러면 버럭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각각의 글들은 썩 훌륭하다. 업계 경력뿐만 아니라, 업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인사이트의 결과일 테다. 특히나 하나의 대상을 가지고 주저리주저리 떠들기보다는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는 것이나 부담스럽지 않은 길이로 완결해내는 것은 미덕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매주 연재되는 글이었다면, ‘한 번 묶어서 출간하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 글이나 한 데 묶어서 인쇄한다고 책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럴 거라면 출판사의 편집자라는 직업이 존재할 이유도 없다. ‘글’이 ‘책’이 되기 위해서는, 코덱스의 형태로 갖추어지는 물성에만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코덱스의 형태로 정착되는 ‘사고의 완결성’이라는 관습에도 기반해야 한다. 목차를 살펴보다가 현기증을 느낀 이유이기도 한데, 목차를 통해서 생각의 얼개를 짜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집조자도 목차를 갖춘다. 연작시가 아니라면 각각 독립된 작품인데도, 그 작품들을 통해 시인이 전달하고자 했던 문학성 기준으로 시들을 모아낸다. 그러니 서사문학에선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전문서에 기반한 대중서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국내 기업으로는 KCC스위첸, 굿모닝증권, NH투자증권, 풀무원, 에넥스, 하이트, 웅진, 무신사 등과 해외 기업으로는 도브헤어, 이케아, 아우디, 나이키, 올드스파이스, 소프트뱅크는 작은 브랜드라고 할 수가 없다. 동네책방인 ‘당인리책발전소’와의 갭이 너무 크다. 정책적으로도 대기업-중견기업-중기업-소기업-소상공인으로 분류할 정도인데, ‘큰 브랜드 아니면 작은 브랜드’라는 잣대로는 모호하기 그지없게 된다.
물론 ‘큰 브랜드’의 브랜딩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브랜딩의 기본, 그러니까 마케팅의 기본은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STP와 4P에서의 규모 차이가 있을 뿐이고, 그리하여 ‘규모의 경제’가 성립되느냐의 문제에서 전략적 차이가 발생할 뿐이다. 그러니 ‘큰 브랜드’에서 마이크로 캠페인을 진행한다면 분명 배워볼 것들이 없진 않다. 다만 책에서 다루는 것들이 그런 사례라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작은 브랜드가 ‘작기 때문에’ 다른 전략을 가져가야 한다는 점은 가용 ‘자원Resource’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작은 브랜드의 피지컬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전략들이 너무 자주 언급된다.
다만 무신사에 대한 언급을 보면서 스타일난다를 떠올리고, 아이리버에 대한 언급을 보면서 실패한 브랜드 아이리버를 떠올리면서 ‘나만의 해석’을 재정립해 볼 수 있다는 실마리를 얻기는 했다.
중쇄를 거듭하고 있다. 많이 팔린다는 이야기다.
많이 팔린다는 건, 그만큼 많이들 읽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서 주변에 추천한다는 이야기일 테다. 어렵지 않고, 그래서 편하게 빨리 읽을 수 있다는 점은 요즘 독서 세태에 부합한다. 빼놓을 수 없는 미덕으로 배워서 갖춰야 할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