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처음 만나는 되는 계기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서점에서 만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요즘처럼 소규모 큐레이션 동네서점이 늘어나면서, 그 서점만의 큐레이션을 통해 책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잦다. 그런 기획들은 보통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서 더 크게 전파되기도 한다.
작년말 《Unlimited Edition 100》행사를 관람하고, 헛헛한 마음에 잠시 관악구 동네서점인 '엠프티폴더스'(https://emptyfolders.modoo.at/)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남향의 서점 통창으로 11월 오후의 햇살이 따듯하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기대와 달랐던 '아트북페어'에서 채우고 오지 못했던 무언가를 담고 싶다는 마음이 꽤 강했더랬다. 서가를 둘러보기 전부터 시덥잖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책방지기를 꽤 오래 붙잡아 두기도 했는데, 그때의 싱거운 대화 하나가 떠오르기도 한다. 서점보다 책방이란 말을 더 선호하는 이유가 뭘까에 대해, "서점은 한자어라서 너무 딱딱한 느낌이지만 책방은 좀 푸근한 느낌이 드는 단어라서 그렇지 않나 싶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말에 이내 "책방도 冊 + 房이라는 한자어이긴 한데요"라고 지적하곤 멋쩍게 웃기도 했다. 늦가을 볕 좋은 오후였던 탓에 사람이 꽤 실없어진 모양이다.
그때 엠프티폴더스는 '월간서가'라는 자체 기획도 진행하고 있었고, 대교와 대교문화재단에서 스폰서한 프로그램인 '세가방'의 후원으로 큐레이션 서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런 계기로 엠프티폴더스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소개하고 있었고, 그 강렬한 제목은 내 기억 속에 남게 됐다.
엠프티폴더스를 방문한 그 다음달에는 연남동에서 '세가방'의 <사시사책>이란 이름의 성격을 규정하기 어려운 행사가 열렸다. 세가방 운영위탁회사인 어반플레이의 연남동 사옥에서 진행됐는데, 그때에도 엠프티폴더스는 이 책을 출품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동네에서 직접 가 구매할 생각이었지만, 정작 책을 구매하게 된 건 해가 바뀐 1월의 알라딘중고매장이었다. 오전부터 꾸물거리던 하늘이 눈을 쏟아내던 12월 어느 주말 오후에 찾아간 엠프티폴더스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외부 강의일정으로 잠시 닫아둡니다"란 안내판에 적잖이 당황해야만 했다. 1인 운영 동네책방의 유동성은 이런 돌발적 상황을 가끔 보여주기 때문에, 방문전 인스타그램을 통한 개점 확인이 필수다. 그걸 놓친 내 탓이 크다. 설렁설렁 걸어서 들러볼 만한 지근 거리는 아닌지라, 마음먹고 찾아가지 않으면 쉽사리 발걸음을 하긴 어렵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결국 엉뚱한 곳에서 책을 사고 말았다.
작년과 재작년까지만 해도 5월이면 모집하던 세가방 참여 공고가 올해엔 6월이 중순을 지나도록 올라오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스폰서의 후원금이 대폭 줄어들고 사업이 중단된 것이 아닌가 싶어 아쉬움이 크다.
2. 결국 책을 다시 쥐게 되는 계기
매일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슬쩍 훑어보는 데만 한 시간씩 걸릴 정도로 수많은 동네서점들을 팔로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어떤 내용의 피드가 언제 올라왔는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데, 어느 순간 기가 막히게도 흥미로운 내용의 피드가 눈에 딱 들어올 때가 있다.
새로 입고한 책들을 소개하거나, 특정한 책에 대해 소개하는 피드는 많다. 그런데 경상남도 남해의 동네책방 '스테이위드북'의 피드에서는 꽤 재밌는 언급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영하 북클럽 6월책입니다. 매달 지정하실 때마다 해당 책은 품절 사태를 빚지요. 거기에 편승하고 있고요."라는 발언을 접하면서, '00선정도서'란 것의 힘이 참 대단하는 생각을 해봤다.
'선정도서'의 힘은 참으로 컸다. 40년 전에도 '00선정도서'로 마케팅했던 책들은 꽤나 잘 팔리는 편이었고, 지금도 그런 마케팅의 전통에는 큰 변화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선정'행위가 권위를 넘어서 권력이 되고, 도서 유통 시장에 커미션과 백마진을 요구하는 이상한 현실을 창조하기도 했다. 헛웃음이 나는 일이기도 하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다른 창작 활동들에 비해 좀 더 소박하긴 하지만 결코 그것들에 뒤지지 않는 진정한 창조 활동이라 할 수 있다"는 에필로그의 한 문장으로 귀결되는 아주 긴 농담이었다.
누가 구조주의 비평의 성지 프랑스 출신 아니랄까, 비독서의 유형에 대해 구조주의적으로 분석하더니 마침내는 독서와 비독서의 경계를 허물어 탈중심의 해체에 이르는 '지극히 프랑스적인' 글이었다.
다만 비독서의 유형화라는 1절에서 그치지 않고, 의미를 찾기 힘든 2절에 쓸데없는 농담에 가까운 '대처 요령'과 같은 '뇌절'까지 치는 것으로 이 진지한 농담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벗어났다. 1절만 하는 게 딱 좋은 경우에 해당한다.
'비독서'를 유형화한 작업 자체는 너무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유형화는 비단 책에서 그치지 않고, 텍스트와 정보집합체로까지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보지 않은 영화, 듣지 않은 음악, 먹지 않은 음식, 맡아 보지 않은 향수에 대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한정된 자원인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매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선택의 순간에서 늘상 직접적인 경험으로 만들어진 선험칙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그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전문(傳聞)은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다른 누군가의 별점을 통해서, 영화를 선택하고, 음악을 고르고, 식당을 찾아가며, 쇼핑몰에서 주문을 하기도 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읽어야만 비로소 책을 살 수 있는 사람일지라도, 읽기로 마음먹기 위해서는 사전 정보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 필요한 지점일 수도 있다.
특히나 비독서의 유형 중에서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에는 리뷰만큼 좋은 해법이 없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과거에 대해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들은 꽤 많은데, 수많은 실험들을 통해 인간의 기억은 얼마나 쉽게 윤색, 왜곡, 소실되는지 잘 드러나 있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기억을 더듬어 올라갈 수 있는 도구로써 리뷰는 꽤나 훌륭했다. 특정 시점에 특정 관점으로 특정 언어를 구축하는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고의 결과이다 보니, 독서 당시의 텍스트와의 교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제법 날카롭게 남기기 마련이다. 자신의 언어를 가장 쉽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자신인지라 그 기억을 환기시키는데 있어 리뷰는 무척 강력한 도구가 된다.
"임자, 해봤어?"란 말로, 경험의 중요성을 넘어서서 합리적 추론의 유효성마저도 부인했던 작고한 기업인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해보지 않아도, "척 보면 앱~니다"라며 거드림을 피울 수도 있는 노릇이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신나게 떠들고 나서, 나중에 내 말의 구멍을 발견했을 때의 창피함은 꽤 오랜 기간의 이불킥을 가져오긴 한다. 학부시절의 말실수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되살아나는 걸 보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런 개망신이 더욱 단단한 지식의 무장을 가져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