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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May 27. 2022

책을 사게 만드는 책과 독서를 포기하게 하는 책

『그런 세대는 없다』와 『다정한 개인주의자』로 예를 들어

책을 접하다 보면 매우 상반된 두 가지 반응을 경험하게 되곤 한다.


하나는 머릿글과 목차만으로 '어멋! 이건 사야 돼!"라는 책이 있다. 『그런 세대는 없다』가 그렇다. 국내에서 세대론을 다룬 책들 중에선 단연 최고가 아닐까 싶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들이 이런 식으로 서가에 꽂히게 된다. 이런 책을 두고 3주 전쯤엔 "꼰대의 자기 변명"인 듯싶어서 맘에 들지 않는다고 타박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이따위 책을 읽느라 내 시간을 허비해야 하나"싶은 책이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경우에 격하게 드는 생각이라서 그렇다.

보통 우리의 독서과정에선 '수많은 책들 중에서 하나'라는 선정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정보를 취득하고 해석해서 선택을 하는 피곤한 지적 노동을 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그런 노고 끝에 만난 책이 기대 이하일 경우 책을 집어 던지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 기대 이하일지라도, 그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면 또 서가에 꽂히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기대 이하면 '읽는 행위 그 자체'마저도 아까운 순간이 온다.


『다정한 개인주의자』가 그렇다. 최근 <조선일보> 기자 둘이 쓴 스타트업에 관한 책을 참 재밌게 읽은 터라, <월간조선>을 거친 <탑클래스>의 편집장 글이면 또 얼마나 재밌을까 싶었다. 그런데... 2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도, 전혀 다른 코호트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대다수 X세대들에게 늘상 피상적이기만 했던 X세대의 주변부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무엇보다 70년대생으로 한정하는 세대구분법의 임의성은 세대론 자체의 의미마저 기본부터 흔들어 놓는다.


가장 자주 활용하게 되는 세대 구분은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출생한 베이미부머세대, 1965년부터 1979년 사이에 출생한 X세대, 1980년에서 1999년 사이에 출생한 Y세대(또는 밀레니얼 세대)로 가르는 미국식 분류가 자주 쓰인다. 미국식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와 같은 세대 구분이 미국사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세대 구분은 크게 15년이나 30년의 간격을 두고 분류되곤 하는데, 이는 세대간의 동시대성(Gelichzeitkeit) 때문이다. 동시대에 성장한 개인들은 대부분의 학습기 시절에도 그리고 나이가 든 뒤에도 자신들에게 영향을 준 지적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환경에서 도출된 동일한 지배적 영향들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같은 방식으로 시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세대간격(generationsabstand)은 그 동시대성에 따라 갈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정한 개인주의자』은 그런 다층적 코호트인 X세대에 대해, 개인사적 관점을 기준으로 몹시 편협한 시선으로 기술되고 있었다. 『그런 세대는 없다』를 접한 뒤인데, 눈에 찰 리가 없다. 무엇보다 앞에 책에서 강조하는 "세대 대결로 몰아가는 세대론만큼 의미없는 것도 없다"는 묵직한 충고의 반대편에서 끊임없이 86세대에 대한 X세대의 궐기를 이간하고 있다는 점이 마지막 1/4의 독서를 포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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