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소요서가_서울 중구 산림동

'철학서점', 도대체 누가 찾아 가나 싶었다.

by 안철

1.

‘소요서가’란 작은 책방을 모르진 않았다.

우선은 이 책방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철학서점’이란 기치를 여기저기에서 ‘읽은’ 기억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특히 관심이 가는 곳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인문학을 아우르던 ‘사회과학서점’의 몰락사를 목격하고 있던 차에, 이 말도 안 되는 전문서점에 관심이 갈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백에이십’이 만세를 부르고 나간 청계상가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부터가 고개를 절래절래 젓게 된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의기양양하게 대림상가와 청계상가 3층에 진입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공실을 남기고 떠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점도 한몫 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세운상가 축에 밀어닥친 한파까지 더해본다면 결코 긍정적인 입지라곤 할 수 없었다. (같은 이유로 ‘영화 및 음악 매장’을 표방하는 ‘금지옥엽’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가고 있었다.)

2022년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이곳의 풍경도 사뭇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달 중구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진행됐던 <을지서비스센터>를 통해 확인된 것만 봐도, 청년예술인들의 을지로 진입이 꽤나 늘어났다. 확실히 ‘힙지로’의 영역이 크게 확장하고 있었다. 특히나 을지로와 청계천 사이의 대림상가와 청계상가의 유동인구 증가가 눈에 띄게 늘었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이라서 ‘이백에이십’이란 책방 이름을 지었던 이곳도 이제는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200만원으로 ‘0’이 하나 더 붙었다. 60년대 후반에 지어진 대림상가와 청계상가가 이런 수준이고,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에 지어진 을지로변 건물들의 임대료도 들썩거리긴 마찬가지다.

오세훈 시장 1기때부터 재개발을 기대했던 지주들 입장에선 21세기 자체가 악몽이었을 텐데,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임차인들 입장에선 또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해야만 할 테다.



2.

‘철학서점’은 도대체 누가 찾는 걸지 궁금했으나, 굳이 찾아가볼 생각은 없었다. 심지어 종묘 앞에서 대한극장까지 세운상가 보행데크를 관통하기도 여러 차례였지만, 단 한 번도 소요서가를 목격한 적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요서가가 위치한 청계상가 동편은 늘상 동선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난 달 우연하게 ‘목격’하게 됐다. 아직 재개발 진행이 더딘 산림동 세운5구역의 오래된 건물들을 바라보며 걷다 보니 어디서 본 듯한 ‘가게’의 파사드를 발견했다. 그게 ‘소요서가’였다.

이미 서가에 쌓여있는 책이 여러 권이었고, 일주일 전에는 동네책방 ‘책이는당나귀’에서 『철학의 역사』를 업어온 상태였던지라 굳이 또 책 한 권을 사들고 들어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잠시 밖에서 사진이나 몇 컷 찍다 보니, 내가 너무 좀스럽다 싶었다. “오늘 사서 바로 읽지 않는다면 대체로 읽지 못하게 된다”는 경험칙 때문에도 서점 방문에 신중해지곤 하는데, 그깟 거 좀 안 읽고 쌓아둔다고 죽는 것도 아니다. 스타벅스에서 화이트초콜릿모카 한 잔에 마스카포네 티라미수 케이크 하나 먹을 돈이면 책 한 권을 산다. 그 달콤한 사치를 한 번쯤 그저 책장에 쌓아둔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배포를 좀 키워야겠다 싶기도 해서, 책방에 들어가 서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쟝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를 좀 사두어야겠다는 생각이 퍼득 들었다. 그 결과... 쟝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을 사들고 나왔다.

공교롭게도 내가 서점 안에 들어갔을 때에는 40대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책을 살피고 있었고, 내 다음으로 들어온 내객 역시 남자였다. 점심시간의 어수선함이 느껴지는 청계상가 3층 보도와는 다르게, 사뭇 유유자적하게 세 명의 남자들이 서가들을 ‘逍遙’하고 있었다.

작은 책방을 찾는 내객의 성비는 심할 때는 9:1이 될 정도로 여성의 비율이 높다. 이곳 소요서가는 7:3 정도의 성비를 보여서 여성 내객의 비율이 높다고 한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였다.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보고서를 통해서 무언가 비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연령대에 따른 성별 데이터까진 제공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성별에 따른 도서구입처는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지만, 현장에서 확인하게 되는 ‘동네책방’의 성비 차이는 확연해진다.

심지어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성비의 차이는 극단적이 되는데, 그곳의 유일한 남성 참여자가 나인 경우도 여러 차례 경험해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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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근혜 정부 시절 유행어가 하나 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하는 대표의 ‘급’을 두고 파토를 내면서, 이정현 홍보수석이 대통령 말씀이라며 위의 발언을 상기시켰다. 혹자는 박정희 독재시절 ‘각하의 말씀’이었다고 기억하기도 하고, 혹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한 대목을 자기 좋을 대로 곡해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헤겔의 『대논리학』의 한 대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앞에 책은 제대로 읽어내질 못해서 당최 기억할 수가 없고, 뒤엣것은 표지조차 본 적이 없는 책이라서 더더욱이나 확인해서 긍정할 수가 없다. 우야든동, 이 유행어에 대해서는 꽤나 많은 이들이 긍정하며 확대 재생산했다. “A sound mind in a sound body”와 마찬가지로, 적절한 형식을 갖추어야 그 내용이 적절히 전달될 수 있다는 의미로 자주 활용됐다.

자영업의 매장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럴싸한 파사드가 갖추어져야 점내로 고객을 유인할 수 있다. 그런데 오래된 건물이라고 다 ‘레트로’한 것은 아니더란 말이다. 그냥 ‘올드’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그저 ‘낡기만 한’ 경우도 없진 않다. 세운상가축의 7개 상가 중에서 그저 낡기만 한 축에 속하는 대림/청계상가에서 ‘레트로’한 감성을 세우기 위해서는 익스테리어에 ‘힘’을 줄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소요서가’의 파사드는 평타 이상을 하고 있다. 조잡스러워 보이는 콘크리트면을 강판으로 감싸면서 미니멀하면서도 모던한 파사드를 만들어냈는데, 윗층의 적벽돌 벽면과 연결되면서 시너지를 발휘한다. 대림/청계상가에 늘어선 다른 업종의 경우에도 그와 같은 형태의 파사드 익스테리어가 훨씬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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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얼마전까지만 해도 쓸데없이 포장지나 봉투를 받아오는 걸 싫어했다. 어차피 집에 도착하자마자 재활용 쓰레기 신세가 되는 것들에 공연한 수고를 끼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서점의 ‘패키징’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검토해볼 필요가 생긴 지금은 굳이 ‘포장’을 하거나, 챙겨주는 봉투를 마다하지 않는다.

‘소요서가’는 이렇다할 특색이 없는 갈색 종이봉투에 깔끔하게 디자인한 스티커를 붙여서 내주었다. 파사드의 익스테리어와 서가에서 의탁자에 이르는 인테리어, 거기에 로고의 타입페이스까지 이어지는 브랜드의 일관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철학’이란 주제의 무거움을 ‘쿨하게’ 전달하기 위한 브랜딩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준은 아니지만, 과하지 않은 수준으로 잘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었다.

고급스러운 포장지에 리본 띠와 왁스 실링의 패키징은 확실히 보기 좋긴 하지만, 비용의 문제도 있고 자기 수요 도서에는 과한 감이 있다. 그렇다 보니 저비용 패키징을 통해 고객경험CX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이 정도가 적당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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