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다다르다_대전 중구 은행동

지역 문화 진흥을 위한 인문학 공간을 지향한다는 동네책방

by 안철

1. 인문학서점 다다르다


대전 원도심인 중구 은행동에 위치한 <다다르다>는 인문학서점을 콘셉트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인문학의 3대 요소라 할 수 있는 문학, 사학, 철학을 기본으로 하고, 사회과학과 예술을 망라하면서 더 넓은 개념의 인문학을 아우르는 장서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책을 보유하기 위해 다다르다는 4,700종 6,500여권을 서가에 구비하고 있다.


<다다르다>의 전신이었던 <도시여행자>에 대한 강한 인상이 어떤 책으로부터 시작됐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나 『어서 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 그 둘 중에 하나였던 것 같은데 어느 쪽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지는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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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여행자>는 지금 <다다르다>가 운영되고 있는 은행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흥동에서 첫발을 뗐다.

잘 알지도 못하고, 제대로 취재한 것도 아닌 히스토리를 내가 읊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 정도는 다른 사람의 입...이 아닌 손을 빌려 보련다.

도시여행자는 ‘지역과 청년’, ‘가치 있는 여행’을 말하고 싶은 독립책방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대흥동의 여행콘텐츠를 다루고 있고, 더 나아가 여행에 대한 즐거운 영감을 주고자 한다.


<다다르다>를 방문하기 전부터 대흥동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을 전해듣기는 했었다.

대전의 원도심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다고 들었지만, 그런 말이 가능할 정도로 원도심의 도시재생이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대흥동에서 나오게 된 정확한 이유와 과정에 대해 취재하지는 않았다. 그리 유쾌할 리 없는 이야기를 꼬치꼬치 캐묻는다는 것이 당사자에게도 묻는 이에게도 편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전에는 대흥동에서 여행전문책방을 운영하셨던 것으로 아는데..."라는 질문에, 건물주에 대한 강한 분노를 느낄 수 있는 짧은 탄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대흥동을 떠나온 이유 역시 남의 손을 빌려 본다.

김 대표는 “임대차 보호법이 5년이기 때문에 대흥동은 5년이 되면 무조건 퇴거를 시키고 있다”며 “부동산이 중개수수료, 권리금에 대한 용역비 등으로 수익모델을 정했기 때문에 마을, 공간의 지속가능성과는 정반대 모델을 갖는다. 도시여행자도 이 흐름 속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다다르다>는 원도심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내방객들이 없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관광명소의 서점처럼 관광객이 밀려들어와 기념촬영을 하는 곳은 아니다. 그리 많은 이들이 서점을 채우고 있진 않았다. 오후 5시 30분경에 대여섯 명이 책장을 살펴보고 있었고, 6시를 조금 넘긴 시각 책방을 빠져나올 때엔 서너 명의 손님들이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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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증에 적어주는 '서점일기'에서도 꽤나 흥미로운 문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서점 다다르다는 한 종의 책을 100권씩 팔아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간 100권이 팔린 책이 여럿 나왔다.
100권이 팔렸을 때곧장 작가님께 소식을 전하고
서점에서 사랑받은 만큼 복토크를 진행하고 싶었다.
공간에서 사랑받는 책 이야기를 통해
작가를 서점에 초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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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찾는 책을 갖춘다는 것


최근 학창시절 동아리 후배가 2009년에 등단해 몇 권의 시집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잘 알지도, 친하지도 않은 후배였으나, 내가 이름과 얼굴까지 기억 못할 정도로 무심한 사람은 아니었더라. 어딘가의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온 박소란 시인이란 이름에서 후배의 얼굴이 겹쳤고, 마침내 찾아온 시인의 이력은 그 후배가 틀림없었다. 군대까지 다녀온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시인의 이름을 가지고 초등학생처럼 장난쳤던 것도 불현듯 떠올랐다.

필요한 책이 있어서 서점을 찾았던 것이 아니라서, <다다르다>에서는 평소 한 권 사보자 싶었던 책에서 한 권 선택하기로 했다. 그때 문득 시인이 떠올랐다.

<다다르다>의 서가에는 꽤나 많은 시집들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모든 시인의 시집을 준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나 '창비시선 386'이란 일련번호가 매겨진 박소란의 시집을 갖추고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 심지어 박소란의 시집은 지금까지 3권이 출간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서가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앞뒤로 꽤나 일련번호의 차이나 나는 두 권의 시집 사이에 『심장에 가까운 말』을 찾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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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대중이 시원치 않은 나는 대략 3천권쯤이 갖춰진 것인가 싶었다. 지레짐작으로 넘어가기엔 꽤나 중요한 부분이다. 용기를 내서 갖춰진 장서의 권수를 물어보았다. 현매로 책을 떼어오는 요즘의 서점 운영 현실을 생각해 봤을 때, 언제 팔릴지 모를 재고를 매장에 깔아놓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돌아온 대답이 4,700종의 6,500권(월초에 물어본 것이었지만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이었다.

이정도를 갖추고 있어야, 박소란의 시집을 사들고 나올 수 있는 수준이 될 테다.



3. 원도심에 책방을 차린다는 것


현재 은행동의 입지는 꽤나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다르다가 들어서 있는 중교로73번길의 남쪽 골목입구는 대흥동성당과 등록문화재인 대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구 충청지원(현 대전창작센터)의 다름 골목이며 꽤나 눈길을 끄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DSC04689.jpg 다다르다가 입지한 중교로73번길 남쪽 입구. 팬텀팬스테이크와 한국문구가 꽤나 눈길을 끈다.

중교로73번길 북쪽입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바로 성심당 제국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대전하면 성심당 빵과 칼국수가 유명하다. 칼국수는 예전만큼의 명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성심당은 대전역에 내놓은 분점도 매일 매시간 문전성시를 이룰만큼 유명해졌다. 그렇다 보니 중교로73번길 본점 주변으로 다양한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실로 성심당 골목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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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명물 성심당. 본점 주변에 다양한 형태의 확장 점포들이 들어서 있다.


일제시대 경부선이 지나가면서 만들어진 위성도시 대전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별 볼 일 없는 면단위 시골이었다. 이런 도시가 급팽창하면서 인천, 군산, 목포, 마산과 같은 수탈항에 버금가는 일본색을 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도시의 유산은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개전 초기 너무 쉽게 함락된 서울과 달리 미군과 함께 처음으로 저항선을 펼쳤던 곳이 대전인지라... 그렇다. 한국전쟁동안 완전히 박살난 동네가 됐다. 대전역에서 구 충남도청 본관에 이르는 구도심은 폐허가 됐었다.

DSC04690.jpg 길건너 성당은 대흥동, 길 이쪽의 대전창작센터는 은행동이다.

한국전쟁 이후 대전의 중심이 되었던 이곳 원도심, 그러니까 구 충남도청 본관과 대전역 사이의 동네는 어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90년대초반까지 중심지를 이루었다. 하지만 90년대 신도시 건설붐이 일어나면서, 어느 동네나 마찬가지로 새로 생긴 신도시로 도시 중심의 패권을 빼앗기며 그렇게 몰락해 가고 있다. 중앙로 이북의 선화동은 이미 죽은 동네가 되어버렸고, 은행동을 중심으로 대흥동 일부 정도가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동네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도시여행자>와 같은 도시 콘텐츠가 인파를 불러오면, 그 다음 세입자는 여지없이 식당이나 술집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꽤 아찔한 일이다.

DSC04691.jpg 은행동 대전창작센터를 찍은 장소는 또 대흥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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